다시 태어난 베토벤 037화
10. 6살, 입장(2)
“여보.”
“도빈이 생각을 듣고 싶어서 그래. 도빈이는 어떻게 생각해?”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나를 곧은 시선으로 보았다. 나 역시 아 버지와 눈을 맞추는데, 거짓을 말하 진 않았다.
“가고 싶지만 아빠, 엄마랑 같이 살래요.”
“아빠도 도빈이랑 같이 살고 싶어. 이제는 도빈이 덕분에 우리 가족끼 리 살 수 있으니까.”
"응."
“그렇지만 독일에도 가고 싶은 거지? 음악도 하고 싶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보, 내일 이승희라는 사람 같이 만나자.”
“왜요?”
“이야기해 봐야지. 우리 이야기만 했잖아. 도빈이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게 무슨.”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도빈이를 원 한 거니까. 도빈이의 생각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가고 싶지만,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한다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도빈이의 생각을 전하는 게 중요 하지. 우리 아들 대단하잖아?”
“여보.”
“괜찮을 거야. 나도 도빈이 혼자 독일에 보낼 생각 없어. 절대 그러 지 않을 거야.”
“……그래요. 그럼.”
아직도 뽀뽀해 달라고 하는 아버지 지만, 이럴 때는 믿음직스럽다.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를 생각해 멀리서 온 이승희에 대한 예의로라도 내 본심을 전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찾아온 이승희는 아버지를 보곤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첫인상은 활달했는데, 부모님을 대 할 때는 꽤 얌전하다. 그녀가 매너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일 터.
아버지 역시 반갑게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이승희라고 해요.”
“어서 오세요, 승희 씨. 도빈이 아 빠입니다.”
거실로 와 자리를 잡은 이승희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까지 뵐 줄은 몰랐어요. 혹
시 어제와 다른 이야기를 해주시려는 거라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네. 이야기는 어제 아내에게 들었습니다. 저와 아내의 입장을 승희 씨께 잘 말씀드린 것 같더라고요.”
“아, 네. 그럼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해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실 은 이번에는 도빈이의 입장을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그렇지, 도빈아?”
조금 당황한 이승희를 두고, 아버 지께서 내 등에 손을 얹었다.
살짝 떠밀었는데, 마치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를 마냥 어린아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고마워요, 누나.”
“어머.”
이승희가 조금 기쁜 표정을 지었다. 놀람 반, 기쁨 반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고 있어요. 저도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내가 이승희를 바로 보고 있는 것 처럼, 그녀 역시 내게서 시선을 피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놀라움을 가시며, 온전히 기쁜 표정이 되는 과정을 보 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 생각은 아직 없어요.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거든요.”
분명 사실이다.
내가 비록 한 평생을 살았다 해도, 전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이 없을 수는 없다.
18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은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일반적인 아이와는 분명 다르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사상 그리고 마 치 처음 태어난 듯 모르는 것투성이기 때문에 나 역시 새롭게, 나름의 사회화를 거쳐야만 했다.
사카모토나 히무라가 내게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을 추천해 준 것부터가 이미, 이 시대에는 음악을 하는 방법이 그렇게 변했기 때문일 터.
만일 부모님과 배영빈, 나카무라와 히무라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내 음악을 세상에 제대로 보여주지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녹음’해서 ‘CD’라든가 ‘파 일’로 파는 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못했으니까.
일본과 미국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 나라에서 활동하면서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또 아직은 보호받을 입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작정 내 욕심을 좇아 행동하기에는 현재 나는 부족함이 많으며, 부모님도 아마 같은 생각이실 터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것과 내 사회화 속도에 차이가 있기에 언젠가는 이 두 분을 설득해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 마음을 모두 전달할 순 없지만, 다행히 이승희는 마지막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도빈이 생각이 그렇다면 어 쩔 수 없지. 도빈이 생각 들려줘서 고마워.”
이승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 아.”
“응?”
“같이 살 수 있다면 괜찮은 거니?”
“……네.”
악수를 나누던 중에 이승희가 문득 이상한 말을 꺼냈고 아버지,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
“혹시 두 분, 독일에 거주하실 수 있다면…… 어렵겠죠?”
“하하하. 아무래도 생활이 있으니 까요. 저도, 아내도 되도록 도빈이에 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지만요. 아 무래도 아내야 독일이 익숙할 테지 만 저는 아닌지라. 일자리도 여기에 있고요.”
“그렇군요. 그랬죠. 아하. 제가 정 말 급했나 봐요. 당연한 걸 생각하 지 못했네요.”
이승희가 나를 얼마나 데리고 가고 싶은지 알겠다만 조금 무리가 있는 이야기다.
“도빈이가 입단한다면 집을 알아보는 거야 가능한 일이니 혹시나 싶어 여쭤봤어요. 충분히 도빈이와 두 분 입장을 이해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미련이 남나 봐요.”
이승희도 본인이 무리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인지하는 모양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곳에 직장이 있으신데 무작정 독일로 함께 갈 수 도 없는 법이다.
사실 집안의 생계야 내가 어떻게든 챙길 수 있다지만.
우리 부모님은 6살 아들이 버는 돈만 바라보는 분들이 아니시니까.
“도빈아.”
그때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끌 어안으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 끌려 갔고, 이내 나를 두고 똑바로 보시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도빈이는 음악이 좋지?”
무슨 뻔한 질문을.
그러나 어머니께서 워낙 진지하셨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답했다.
“좋아요.”
“음악하다가 힘들면 엄마한테 힘들 다고 말하기로 약속할래?”
음악이 편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음악을 함에 있어 나는 언제나 필 사적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 고, 나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방법 이자,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한 번도 안 힘들었던 적 없어요.”
내 말에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 그 리고 이승희도 놀란 듯했다.
“음악은 세상에 저를 표현하기 위 한 일이에요. 쉬운 일이 아니고 힘 들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즐겁지 않은 적은 없어요.”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
이번에는 내가 힘을 주어 잡았다.
“저는 음악을 해야 해요. 그러고 싶어요.”
세상 역시 이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일전에 사카모토 료이치가 내게 영 화 음악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했던 말을, 이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훌륭한 곡은 비로소 그 자리를 찾아야 한다네. 그 위대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곡이 수백 편의 영화에 사 용되었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고개를 들어 사카모토 료이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인자한 표정에서, 그 올곧은 눈에서 나는 그를 신뢰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네의 음악이 필요한 영화가 있네. 함께해 주게.’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이 세계는, 현대는 아직 내 음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내 음악을 들으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고 위로받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영화와 함께 ‘die mei ste Hoffnung(가장 큰 희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듣고.
또 히무라를 통해 절망에 빠진 이 들이 ‘Dob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으로 조 금이나마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전 해 듣고는 깨달았다.
사명감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내가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만큼이 나 사람들도 내 음악을 듣고 싶어 하니, 그 과정이 어렵다 해서 그만 둘 수 있을 리 없다.
힘들다고 그만둘 일이 결코 아니다.
부족하게나마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한국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음악이 힘들다고 말씀드리 진 않을 거예요.”
말을 마치자 어머니께서 다시 한번
나를 꼭 끌어안으시곤 흐느끼셨다.
“우리 도빈이 기특하다.”
눈물이 섞인 그 한 마디에 나는 어 머니의 등을 토닥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훔친 어머니 께서 아버지께 시선을 주었다.
“여보.”
아버지께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 이셨고.
어머니께서 고개를 돌려 이승희에 게 뜻을 전하셨다.
“도빈이와 제가 독일에서 생활할 터전을 마련해 주세요. 또 도빈이와
관련된 일은 모두 제게 확인해 주셨으면 해요.”
“……네! 물론이죠!”
그렇게 나와 어머니는 독일로 향하 게 되었다.
독일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
아버지 혼자 한국에 남아 있을 생 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아버지께서는 괜찮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도빈이가 돈 많이 벌어서 아빠 비 행기 태워주면 되지?”
“네.”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때 아버지께선 지금까지 어리게 만 봤던 내가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곤 더 이상 품 안에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 고 한다.
어머니와 이승희는 이런저런 이야 기를 많이 주고 받으셨는데, 깜짝 놀랄 일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걱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독일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어머니도 조금은 기대하는 눈치를 보이신 것.
“도빈이는 독일 가면 젤 먼저 뭐 하고 싶어?”
“음……. 라인강을 보고 싶어요.”
본의 나의 옛집은 라인강 옆에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이 유독 고통스러웠다 고는 하나 바이올린과 오르간, 상냥 했던 엘레노레, 라인강만은 나를 위 로해 주었기에.
집 앞에 펼쳐져 있던 아름다운 라인강을 떠올렸다.
“라인강? 그래. 그러자. 참. 베토벤 생가에서도 라인강을 볼 수 있으니 본에 들리는 게 좋겠네. 도빈이도 베토벤의 집에 가보고 싶지?”
“어……. 네.”
내 옛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씀이 신가?
뭔가 기분이 묘했다.
현대 사람들이 나를 악성이라 부르 며 칭송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뭔가 관광지 가 된 느낌이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생각이 들었는 데, 어머니께서 본의 지리를 아시는 듯 말씀하셔서 여쭤보았다.
“엄마, 베트호펜 집 근처에 라인강 이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응? 아. 엄마가 대학을 독일에서 다녔거든 . 뒤셀도르프라는 미술대학교 인데, 정말 좋은 곳이란다. 하아. 그 때는 정말 좋았지. 여행도 많이 하고 다녔는데.”
“Kunstakademie Düsseldorf?”
내가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이름을 쓸 적에도 있었던 대학 이름이 나와 조금은 놀랐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더 놀란 모양 이시다.
“어머? 도빈이도 알아? 어떻게? 어디서 배웠니?”
말씀드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혼자 배웠어요.”
“흐응.”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곤, 히무라 와 나카무라에게 보낼 편지를 마저 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