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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6화 (3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6화

    10. 6살, 입장(1)

    Berliner Philharmoniker

    cellist Lee Seunghee

    나카무라나 히무라가 이 정도 크기 의 종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적 이 있었다.

    아마도 명함일 텐데 확실히 뭔가 중요한 물건 같았다.

    문제는 영어의 알파벳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읽을 수가 없어 누구 것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는 점 이다.

    아래에는 전화번호로 보이는 숫자 가 적혀 있었고, 메일 주소로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히무라가 깜빡한 모양인지 이것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아 나는 나 중에 물어볼 요량으로 따로 명함을 챙겼다.

    다음 날.

    학원을 마치고 최지훈과 함께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도빈아!”

    키 큰 여성이 갑자기 나타나 놀라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부활’의 녹음을 도와주었던 첼리스트 이승희다.

    “이승희 누나?”

    “기억하는구나? 어머, 얘 더 귀여워졌다.”

    여성에게 귀엽다는 말을 하도 들어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좀처럼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도빈이 보고 싶어서 왔지. 실은 내 동생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든. 바이올린 가르친다고 하던데.”

    “아.”

    이제 보니 이승훈이라는 바이올린 강사와 조금 닮은 느낌이다.

    “도빈이에게 할 말도 있고. 히무라 씨가 이야기 안 하셨어?”

    “……아.”

    따로 챙겨두었던 황금색 명함이 떠올랐다. 아마 그게 이승희의 명함인 모양이다.

    “못 들었나 보네. 확실히 정신이 없었을 거야. 오늘 도빈이 부모님도 뵈어야 하는데. 집에는 어떻게 가?”

    “학원에서 차로 데려다 줘요.”

    “어, 어, 어……

    이승희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최지훈이 드물게 이상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돌리니 이승희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 혹시. 베를린 필하모닉의 이, 이승희 첼리스트신가요?”

    “어머. 너도 귀엽게 생겼네. 그래. 이승희야. 도빈이 친구니?”

    “네, 네!”

    “반가워. 나 아는 사람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너도 음악하니?”

    “네! 피아노 배우고 있어요."

    실력이 있는 연주자라 그런지 최지훈도 이승희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다.

    2년 전에 ‘부활’을 녹음할 때도 세 계적인 첼리스트라고 소개받았던 만큼 최지훈에게는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죄송하지만 혹시 여기에 사인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래.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승희가 웃으며 최지훈이 건넨 공 책에 사인을 해주곤 그것을 돌려주었다.

    최지훈은 그것을 가슴에 끌어안고 황홀한 듯 이승희를 보았다.

    어린놈이 조숙하기는.

    동경이라기보다는 뭔가 좀 더 원초 적인 눈빛이다.

    “혹시 집 주소 알아?”

    “몰라요.”

    “그럼 운전하시는 분한테 도빈이 주소 좀 물어보고 올게. 여기서 잠 깐 기다리고 있어.”

    “네.”

    이승희가 찾아온 이유.

    아마 히무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눈 모양인데, 무슨 일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도빈아.”

    “응?”

    “너 이승희 님하고 친해?”

    “아니.”

    “아, 안 친해?”

    “친구긴 하지만 엄청 친하진 않지.”

    “그렇구나……

    몇 번 보지도 않았고, 녹음을 도와 주긴 했지만 그간 연락을 했던 것도 아니다.

    친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대답 했더니 최지훈이 뭔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잘 가. 아, 안녕히 가세요.”

    “내일 봐.”

    “그래〜 지훈이도 잘 가렴.”

    “네!”

    최지훈과 인사를 하곤 이승희의 차에 탔다.

    이승희는 내가 본 사람들 중에 운전을 가장 괴팍하게 했고, 집에 도착 할 무렵에는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어머, 도빈아 어디 아프니?”

    “•…"아뇨.”

    다시는 이승희가 운전하는 차에 타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탕탕!

    “엄마, 도빈이에요.”

    “어머. 오늘은 조금 일찍 왔네?”

    문을 두드리자 어머니께서 반갑게 나를 맞이하셨고, 내 뒤에 서 있는 이승희를 보곤 놀라셨다.

    “누구시더라……

    “안녕하세요, 어머님. 일본에서 한 번 뵌 적 있었는데. 이승희라고해요.”

    “아! 그때 첼로 연주해 주셨던 분 이시네요. 죄송해요, 너무 예뻐지셔서 못 알아봤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오늘 히무라 씨 부탁도 있고 해서 찾아뵈었어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네네. 어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솨아아아-

    집에 들어가고 어머니께서 항상 말 씀하시듯, 손을 씻고 있는데,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것 좀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나카무라 씨 이야기는 들었어요. 히무라 씨도 지금 움직이는 게 어렵다고. 무슨 일인가요?”

    “실은 엑스톤이 많이 힘든 모양이 에요. 이번 일로 사옥이랑 음반 창 고가 무너지고, 피해자도 많대요. 이대로는 회사 운영이 어려워질 거라고.”

    “정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네요. 빨리 복구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죠. 아, 그래서 히무라 씨가 도빈이와 엑스톤의 계약을 파기하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네? 그게 무슨……

    “아무래도 지금 엑스톤으로서는 도빈이를 관리해 주기 어려우니까요. 앞으로의 음반 판매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라 도빈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계약서에도 천재지변으로 인해 서비스가 어려울 경우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니 법적으로 문제는 되지 않을 거예요. 히무라 씨도 도빈이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엑스톤 소속 이라 제게 따로 부탁하셨어요. 제가 아는 변호사를 소개해 드릴게요.”

    “히무라 씨에게는 정말 어떻게 감 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네. 정말 좋은 분이죠.”

    같은 생각이다.

    손을 씻은 뒤 어머니 곁에 가 앉자, 어머니께서 사과 한 조각을 집어 내게 주셨다.

    “그게 좋다고 하셨으니 진행해야겠네요. 저는 그런 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히무라 씨가 한 말이라면 괜찮겠죠.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앨범 판권 관련해서 몇 가지 사항을 안내해 드릴 거예요. 그리고 그 뒤의 일 때문에 제가 온 건데.”

    “네.”

    “실은 그렇게 되면 도빈이의 소속 사가 없어지게 되는데, 앨범을 판매 할 곳도 없어지게 되어서 제가 그 다리 역할을 해드리려 해요. 단, 추 가 계약이 아닌 싱글 앨범 ‘부활’과 정규 앨범 ‘Dobean Bae 배도빈: 피

    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에 대한 판매권만을 계약하는 거예요.”

    “혹시.”

    “어머님 생각이 맞을 거예요. 당장 도빈이가 만든 곡들을 서비스할 곳을 찾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 에 아무 곳과 계약할 수는 없잖아요. 나중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도빈 군이 프리로 있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사실, 히무라 씨를 생각한 일이 기도 하고요. 그분 한 번 쓰러졌다고 해서 포기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 히무라 씨가 도빈군과 함께할 때를 생각했던 거예요. 도빈아, 누나 말 이해할 수 있니?”

    “네. 저도 히무라 아저씨 기다릴 거예요.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어요.”

    이승희가 씩 웃었고, 어머니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고마워요.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오셔서 이런 말을 해주시고.”

    “아니에요. 저도 받은 게 있으니까요. 또 바라는 일도 있고요.”

    “바라는 일이요?”

    “네. 여기까지가 히무라 씨에게 받 은 부탁인데, 사실 저도 도빈이랑 어머님, 아버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네. 말씀해 보세요.”

    “지금 제가 속해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비어 있어요. 실은 제 동생이 도빈이가 다 니는 학원에서 일을 하는데, 도빈이 바이올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좋다고. 저도 신기해서 직접 연주했다는 정규 앨범을 들었는데……. 전 솔직히 아직도 놀라 있어요. 제가 들 어온 그 어떤 바이올린보다 좋았거 든요.”

    이승희가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머님, 도빈이가 베를린 필하모닉 입단 오디션을 보게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건 혹시……. 물론 합격해야겠지만, 독일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죠?”

    “네. 도빈이라면 베를린 필에서도 데려오고 싶을 거예요.”

    어머니께서는 잠시 말을 잃으셨다.

    그러나 이내 평소의 상냥한 목소리 대신 단호히 이승희의 말을 거절하셨다.

    “죄송합니다. 이번에 승희 씨가 도빈이를 위해 많이 도와주신 것은 감 사하지만 도빈이를 벌써부터 타지에서 살게 할 수는 없어요.”

    “어리기 때문이겠죠?”

    이승희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어요. 도빈이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래도 이렇게 무리한 부탁을 굳이 꺼낸 건…… 도빈이의 재능이 간절했기 때문이에요.”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 만큼 제 결정도 받아주시리라 생각해요. 도빈이를 높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이 일은 무리에요.”

    “……네.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부담을 드린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도빈이에게도 좋은 기 회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보셨다.

    아마, 나를 자랑스레 생각하시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린 아들을 내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함께하실 것이다.

    나도 이것을 나만의 욕심을 내세워 어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첫 번째 고향인 독일로 가서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자로 활동하는 것은 내게도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지금의 모국인 대한민국이 나 일본보다도, 그곳이 내 정서에 맞을 것이다.

    가고 싶은 의지와 이유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선뜻 어머니께 내 뜻을 밝히지 않은 것은, 부모님께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 변호사와 함께 다시 뵙도록 할게요. 여기, 제 명함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도빈아, 잘 있어. 내일 또 올게.”

    “네.”

    현관에서 이승희를 배웅하고는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 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 오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아버지도 히무라의 노력과 마음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사람이지. 처음 계약할 때 만 하더라도 의심했는데. 지금에 와 서는 다행이란 생각까지 하게 되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나저나 나카무라 씨 병문안은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도리지. 도빈이도 가고 싶지?”

    “네.”

    “그래. 한번 알아보자. 그리고……

    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빈이는 독일에 가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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