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5화 (3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5화

    9. 6살, 첫 정규 앨범(6)

    히무라가 일본으로 떠나고 며칠 뒤.

    나는 한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에 출연하였다.

    본래는 앨범 홍보차 히무라와 함께 출연이 약속된 일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혼자 나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 바이올린 연주에 열렬히 환호했고 그중에는 진정 나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아직 소식이 없는 히무라와 나카무라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내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 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일본의 상태를 알려주는 뉴스는 T 日에서 조금씩 그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그 처참함의 내용은 연일 심각해졌다.

    “엄마, 저 저 사람들 돕고 싶어요.”

    “엄마도 그래. 하지만 저기로 가는 건 안 된단다. 너무 위험해.”

    재해를 맞이한 일본은 방사능이라는 것 때문에 심각히 오염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을 믿을 뿐이다.

    더욱이 이런 작은 몸으로는 저 현 장으로 간다 해도 짐이 될 뿐이다.

    음악으로 지친 그들을 위로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음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인정받고 있으나.

    저곳에 가서 내가 연주를 하는 게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모 르는 멍청이는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뿐 이다.

    “……엄마, 저 저금 기부해 주세요.”

    “기부?”

    “네. 돈은 또 모을게요. 빨리 집을 사고 싶지만, 지금 저 사람들을 외 면하면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 그 돈, 저 사람들 덕분에 벌었잖아요.”

    내 말을 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께선 말없이 나를 끌어안아 주셨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어머니와 아버 지께서 내가 번 돈에 조금도 욕심을 내지 않으셨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 이 나게 마련이라는 것도 안다.

    힘드니까.

    당장 우리 가족이 어려운데 남을 돕겠다고 나섰을 때 반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분의 말씀을 전혀 달랐다.

    “우리 도빈이 다 컸네? 그래. 집은 아빠가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아버지의 말씀 뒤에 두 분의 미소.

    나는 진정으로 이 두 분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 * *

    도호쿠 대지진은 너무도 큰 재해였다.

    그러나 이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소 사고와 그 사후 피해 누적은 인재였다.

    일본 정부는 사건을 축소화하기에 급급했고 그에 따라 일본 국민들은 고통 받을 뿐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돕는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에서는, ‘도와야 한다’, ‘돕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불우이웃을 먼저 도와 야 한다’ 등 여러 말이 나왔으나.

    많은 사람이 인류애적 가치로.

    또는 목적을 두고.

    이웃나라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아름답게 풀리지 만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여러 말이 있었던 것 처럼 일본에서도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을 때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고마움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반응도 분명 존재했다.

    ‘뭘 믿고 받아?’

    ‘조선 놈들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

    그러한 일본 내 일부 반응이 대한 민국에 알려지면서, 일본을 돕는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더욱 커 져만 갔다.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를 증오하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 번 상처가 되었다.

    ‘이래서 쪽바리 놈들은 안 돼.’

    일본 내 몰지각한 사람들을 향한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러한 반일 감정이 더욱 심화되는 일이 있었는데.

    국내 유명 식품업체에서 자사 판매 제품을 원조하려 나섰을 때, 일본 정부가 그를 거절하였고, 대신 ‘일 본의 식재료를 구매해 주는 것은 받겠다’라는 말을 꺼내면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호의로 선량한 일본 주민을 도왔던 사람들은 같은 한국인에게 멍청하다며 손가락질을 받았고.

    일본 정부와 일본 내 정신병자들로 인해 선량한 일본 주민들은 원조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은 지금 도 고통 받는 자국인들에 대한 원조조차 방해한 셈이었다.

    “기가 찰 일이지. 쯧쯧.”

    배영준은 뉴스와 신문을 볼 때면 혀를 찰 뿐이었다.

    아버지 배영준과 함께 이러한 상황을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배도빈 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죄 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 은 사람들.

    그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했건만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로 인해 상황 은 이상하게만 돌아갔다.

    신분제와 전쟁, 기아가 사라진 바 람직한 미래라 생각했던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아니, 배도빈에게는 적잖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19세 때, 그가 본 대학에서 배웠던 프랑스 혁명의 고결한 정신과 칸트, 실러의 사상들이 이루어진 미래라 생각했건만.

    180년 뒤의 현재도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했다.

    비록 가난하지만, 첫 번째 삶과 달리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일까.

    또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기 때문일까.

    다시 태어난 이곳을 더없이 사랑하게 된 배도빈은, 여전히 상처 받은 사람이 있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대지진 이후로 한 달이 흘렀다.

    그간 나는 방송 출연 제의를 받아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녹음실에서 피아노를 친다 거나 바이올린을 켜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베토벤’에 가는 시간 이 줄어들었는데, 가끔 가더라도 선 생들이 나를 가르치려 하지 않아, 최지훈과 따로 피아노를 치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래도 최지훈과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최지훈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으며, 내가 제대로 접하지 못한 ‘현대 음악’에 대한 그림자라도 보여주곤 했다.

    그것이 지금 히무라가 없어 생긴 갈증을 채워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겨났다.

    “어머, 네가 도빈이니?”

    “꺄. 귀엽다

    “어머머. 혹시 이 아이 TV에 나왔던 그 천재 아니에요?”

    기쁜 일이라 나는 그들을 친절히 대했지만 그 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씩 지쳐갈 때.

    일본으로 향했던 히무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 이후로는 첫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께서는 몇 마디를 주고받으시더니 이내 내게 전화 기를 건네주셨다.

    “히무라 아저씨란다.”

    고개를 끄덕이곤 전화기를 귀에 댔다.

    “아저씨.”

    -하하. 안녕. 잘 지냈니?

    “그럼요. 아저씨는요?”

    -하하. 솔직히 잘은 못 지내고 있어. 이것저것 정리할 일이 너무 많거든. 그래도 앨범 수익금은 제대로 정산해 줬단다. 도빈이가 그렇게 바 라던 집도 살 수 있겠던걸?

    “고마워요.”

    -고맙긴 무슨. ……도빈아.

    “네.”

    -실은 이번 지진으로 엑스톤이 조 금 어렵게 되었어. 사옥이 전부 무 너져 버렸거든. 창고도. 다친 사람도 많고. ……나카무라 아저씨는 이제 함께하기 어려울 거야.

    떨리는 히무라의 목소리를 타고 온 소식이 내 심장을 후벼 팠다.

    “나카무라 아저씨가 혹시.”

    -아아.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많이 다쳤거든. 나중에 도빈이가 병문안 한번 가주면 좋겠다.

    “그럼요. 갈게요.”

    -고마워. 나카무라도 네가 가준다 면 기쁠 거야. 음……. 그리고 당분 간 이쪽 일을 수습하려면 한국에는 가지 못할 것 같아. 녹음실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으니 마음대로 사용 하고.

    “네. 그러고 있어요.”

    -하하. 다행이네. 아저씨가 최대한 빨리 정리할게. 또 같이 음악하자.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서두를게. 아, 그리고 네 음악이 이 주변에 많이 들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아서 달 리 할 일이 없거든. 다들 휴대용 C D플레이어로 네 곡을 듣는 것 같아.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어.

    -참, 그리고 소포를 보냈는데, 일본의 평론가들이 네 앨범을 듣고 쓴 평론을 추려봤어. 한자가 많아서 도빈이가 읽기엔 어려울 것 같아 옆에 한글로 적었으니까 한번 읽어봐. 도 움이 될 거야. 남들이 도빈이 음악을 어떻게 보는지 보는 것도 분명 공부가 될 거야.

    “네.”

    단 한 달 만인데, 히무라의 목소리는 무척 지쳐 보였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히 고맙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프로듀서 히무라 쇼우가 아들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들은 그 소식을 굳이 아는 척 내색하지는 않았다.

    히무라가 지금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 리는 것이 그 때문이라는 잘 알기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봐요.”

    -그래. 또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뒤에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며칠 뒤.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부동산이라는 곳을 찾았다.

    본래 두 달 뒤에나 정산되어야 할 앨범 판매 정산액을, 히무라가 무리 해서 송금해 준 덕이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수익을 챙겨준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히무라를 두고 고마 운 사람이라 칭했는데, 자칫 잘못했다간 내 수입금 지불이 밀렸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회사 복구를 우선시하여 정산액을 써버리고, 지급을 미루는 회사도 많다고 하셨기에.

    나도 부모님도 히무라가 그런 미래를 예상하고 미리 내 몫을 챙겨놓은 거라 생각했다.

    엑스톤이 사실상 경영악화로 인해 인수되었단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 은 그로부터 좀 더 뒤의 일.

    히무라의 선택이 없었더라면 정산 액조차 제대로 못 받을 뻔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무너지는 회사 안에서도 어떻게든 내 돈을 지켜준 히무라와 나카무라 에게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60,360,300엔(세전)을 얻었고.

    우리 가족만이 살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이곳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도빈이는 어떠니?”

    “좋아요. 해도 잘 들고. 엄마, 이 방은 제 방으로 써도 돼요?”

    “그럼. 누구 집인데.”

    “이 방 도빈이 방으로 쓰려면 방음을 해야 할 텐데. 도빈아, 여기서 피아노도 칠 거지?”

    “그러면 좋겠어요.”

    “그래. 이사하기 전에 아빠가 도빈 이가 마음껏 음악할 수 있게 방음처리 해줄게.”

    믿음직스러운 아버지를 보며 나는 활짝 웃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저도 아예 이민을 가게 되어 급하게 처분해야 했거든요. 짐도 미리 정리 했고, 혹시 불편하실까 봐 청소도 해두었습니다.”

    “네.”

    “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핸드폰 번호도 이메일도 계속 살아 있으니까요.”

    예전 집주인과 인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중국집으로 향했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

    세 명 모두 배가 터질 듯이 먹은 다음에는 다시 한번 ‘우리 집’을 구 경하러 천천히 걸었고 해가 진 거리에 봄 향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빈집에서 얼마간을 말없이 있었고 결국.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려다 가, 어머니께서 나를 꽉 끌어안는 바람에 움직이지 못했고.

    이내 나와 아버지 역시 참지 못하 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도빈 군에게.

    그간 연락을 못해 미안하단다. 아저씨에게 여러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래도 도빈이는 혼자라도 열심히 음악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얼아 전 사카도토 선생님을 통해 도빈 이가 일본에 기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 돈이 네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일본인으로서 진심을 다해 감사할 뿐이다.

    나 역시 그런 너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겠지.

    네가 보여준 그 따뜻한 마음을 나는 잇지 못할 거한다.

    마치 최후의 모습을 보는 듯한 이곳에서 가끔 들리는 너의 바이올린 소리로 너의 손길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

    크게 되어라. 네 음악은 희망이다.

    히무라가 보낸 소포를 받은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사를 준비 하는 와중에 쪼그려 앉아 그의 편지를 읽었다.

    충분히 슬퍼했지만 그래도 울컥 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들을 애도하 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었기에.

    그가 보낸 나머지 물건도 살펴보았다.

    며칠 전 히무라가 전화로 말했던 것처럼 현대의 음악 평론가들이 내 첫 정규 앨범에 대해 쓴 감상과 그 것을 직접 한글로 옮겨 적은 히무라 의 메모장이 있었다.

    그것을 꺼내 살피니.

    [타루미 토타] ★★★★★

    ‘Dob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은 놀라울 정 도로 정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감정을 뒤흔드는 그의 강 렬한 멜로디는 잠시나마 내 정신을 음악과 함께하여,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우에무라 키하치로] ★★★★★

    놀랍다. 과거 수많은 음악가를 통해 더 이상은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배도빈은 새로운 시도 없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아직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시와타 야스히로] ★★★★★

    지금까지의 음악을 한데 모은 듯하다.

    [나카무라 요코] ★★★★★

    배도빈의 음악은 구성력에 있다.

    강렬한 주제음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반주가 함께했을 때 이뤄지는 완벽한 하모니에는 감동을 넘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시도한 기타와 바이올린의 협주곡은 음을 짧게 냄과 동시에 음차의 변화가 확실해 인상적이었다.

    하루 빨리 그의 다음 앨범이 나오길 고대해 본다.

    제법 그럴 듯한 이야기를 써두었는 데, 나의 위대함이야 당연한 일.

    조금 더 구체적인 칭송이라 흡족해 지긴 했다.

    히무라는 이것저것 많은 걸 보냈는 데 그중에는 신시사이저의 매뉴얼도 있었고, 주로 내가 배우려 했던 것에 관련한 물건이었다.

    “도빈아, 소포 다시 싸야 해. 집에 가서 풀자.”

    “네〜”

    어머니의 말에 히무라의 선물들을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으려는데, 금 빛 종이가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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