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4화 (3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4화

    9. 6살, 첫 정규 앨범(5)

    NHK의 오후 교양 프로그램 ‘고고 나마’는 3월 7일, 평소보다 근소하게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구성이었지 만, 단 하나.

    다섯 살 천재 음악가 배도빈이 출 연한 30분, 특히 그 마지막 10분에서 최고 시청률 11.3%를 기록한 것 이었다(관동 지구 기준).

    평일 오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수밖에 없는 수치였지만, ‘고고나마’ 가 세운 기록적인 순간 시청률에 주 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툭 _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샐러리 맨들이 밥을 먹다 젓가락을 떨어뜨 린다거나.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빨래를 개고 있던 주부가 넋을 놓고 화면을 본다거나.

    “흘흘흘.”

    한가로이 오후를 즐기던 노부부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 등.

    수많은 일본인이 배도빈의 연주를 듣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그 10분간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그것이 천재 음악가 배도빈의 시작 이었다.

    그날 저녁을 시작으로 각 음반 판 매점을 찾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초동 10만 장을 자부

    하던 엑스톤으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는 수치가 나타나고 있었다.

    2011년 3월 10일 목요일.

    엑스톤 본사 사무실에 한 사원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2, 20만 장 돌파했습니다!”

    그 소식에 나카무라를 비롯한 엑스톤의 전 사원이 각자 서로를 끌어안 고 비명을 질렀다.

    “좋아!!”

    “그래!”

    무려 6일 만에 실 앨범 판매량 20만 장을 돌파한, 2010년대 최대 기 록을 세운 엑스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매년 축소되는 클래식 음악계.

    이제는 미래가 없어보였기에 클래식 음악만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작곡 가 중에는 없어져 갈 무렵.

    마치 보석과도 같은 소중한 천재가 등장하여 엑스톤을 구제한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 여 엑스톤을 일본 제일의 클래식 레 이블로 만들었던 나카무라에게는 너 무나 기쁜 순간이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그간 배도빈을 향한 나카무라와 히무라 그리고 엑스톤 2팀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경영진 역시 같은 시각,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해 듣곤 쾌재를 내질렀다.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음이 분명했다.

    나카무라는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 간 그의 오래된 벗이자 동료인 히무라 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카무라와 함께, 엑스톤을 이끌었던 그 역시 이 소식을 듣고 반가워 할 것이 틀림 없었다.

    - 나카무라!

    역시나, 전화를 받자마다 히무라가 다급히 나카무라를 불렀다.

    “나왔어! 나왔다고!”

    -얼마나 나왔는데 그래? 어서 말 해보게!

    “20만 장! 초동 20만 장을 돌파했다고! 친구! 도빈 군이 해냈어! 해 냈다고!”

    잠시간 전화기 너머 그의 동료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히무라 쇼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음을 확신했다.

    어쩌면 너무 기쁜 나머지 핸드폰을 부서져라 쥐어 전화기가 망가졌을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엑스톤에게, 일본 클래식 음악계에는 이러한 상황이 간절했던 것이었다.

    -잘됐네. 정말…… 잘됐어.

    “고생했네. 정말 고생했어. 도빈 군에게도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게. 조 만간 엑스톤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러 방문한다는 말도 함께.”

    -여부가 있겠나.

    히무라는 잠시 간격을 두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기쁨에 겨워 하던 나카무라는 의아해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나?”

    -실은…… 한국에서도 2만 장이 팔렸네.

    “하. 하하. 하하하하!”

    소위 소수 천재의 나라 대한민국.

    뛰어난 천재들이 잊을 만하면 튀어 나오는 대한민국이었지만, 클래식 음악 시장은 매우 좁았다.

    때문에 한국의 뛰어난 음악가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활동하였고, 그 빛을 발했다.

    그런데 그런 시장에서 첫 앨범이 2만 장이라니.

    나카무라는 분명 대한민국에서도 일본과 같은 기적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 성공만이 남았네. 도빈 군이 라면 분명 일본과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거야.”

    -그럼. 그렇고말고. 한국에 찾아온 다니, 술 한잔할 때를 기다리겠네.

    “음! 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연락하겠네.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나카무라는 이내 도착한 메일을 확인했다.

    그의 스마트폰으로 도착한 메일에는 엑스톤의 대표 도쿠가와의 축사가 담겨 있었다.

    [고생했네. 오늘은 마음껏 즐기도록 하게.]

    그 문자가 담은 뜻은 하나였다.

    나카무라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향해 외쳤다.

    “대표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은 신나게 달려봅시다!

    “와아!”

    “휘 이익!”

    엑스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다음 날.

    직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달린 나카 무라는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도쿠가와 대표가 하루 휴가를 주었기에 나카무라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놓았다.

    속을 달래기 위해서는 매운맛의 컵 라면이 제일이었다.

    “아빠, 늦잠꾸러기.”

    그때 나카무라의 딸 나카무라 료코가 주방으로 걸어 나왔다.

    나카무라는 씩 하고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아빠는 늦잠꾸러기다. 오늘은 유치원 안 갔어?”

    “응. 오늘 쉬는 날.”

    “그렇군.”

    “아빠 컵라면 먹을 거야? 나두!”

    “컵라면은 어른만 먹는 거란다. 기 다려 봐. 아빠가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해줄게.”

    나카무라는 가스밸브를 열고 프라 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러곤 남은 밥과 야채를 다지고 있는데 때마침 커피포트가 울렸다.

    삐 이 이 이!

    히무라는 준비해 둔 컵라면에 물을 붓기 위해 커피포트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쿠르르르르릉!

    “어, 어?!”

    “꺄아아악!”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카무라는 커피포트를 싱크대에 올려놓곤 가스밸브를 서둘러 잠갔다.

    “료코!”

    그러곤 심하게 흔들리는 지면 때문 에 넘어진 딸을 감싸곤 서둘러 식탁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나 식탁이 좁은 탓에 그가 들 어갈 공간은 없었다.

    “아빠아! 아빠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와장창창!

    “꺄악!”

    “읍!”

    그러나 선반에 두었던 그릇들이 떨 어지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나카무라의 등에 박혔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가 모았던 LP명반들 역시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아빠아아으아앙! 들어와! 들어와 아아아!”

    “괜찮아. 아빠는 괜찮아.”

    콰당!

    “꺄아!”

    그러나 이내 선반과 책장마저 넘어졌고, 그중 묵중한 책장이 나카무라 의 다리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너무도 놀란 딸을 두고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어금니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꽉 깨물어 고통을 견딘 나카무라는 딸 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료코, 저기, 아빠 핸드폰 보이지?”

    나카무라 료코는 눈물범벅인 얼굴을 끄덕였다.

    “아빠가 지금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 저기까지 손이 닿겠니?”

    료코는 아빠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작은 몸을 움직여 핸드폰을 가져왔다.

    “착하다, 우리 료코. 착하다.”

    “아빠아아.”

    나카무라는 정신을 바짝 차리곤 서둘러 스마트폰을 보았다.

    시간은 오후 2시 47분.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한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으헙!”

    다시 한번 물건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어렸을 적부터 지진 훈련을 받았던 일본인인 나카무라마저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공포를 느꼈다.

    단지 그의 딸만이 그가 제정신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다행히 우선은 한 차례 흔들림이 멈추었다.

    나카무라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 정으로 핸드폰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전파가 잡히는 동안 지진은 잠시 멈춘 듯했고, 핸드폰을 통해 아나운 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쿄 시부야 NHK 수도권 방송센터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도쿄 시부야 NHK 수도권 방송센터 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지진을 감지한 여러분께 전합니다. 침착하십시오. 침착하십시오. 지진이 멈출 때까지.

    - 떨어진다!

    -안전한 장소에 머물러 주십시오. 우선, 머리 위를 주의하십시오. 물체 가 떨어질 수 있는 곳을 피하십시오.

    그 순간 멈춘 줄 알았던 지진이 다시 한번 더욱 크게 밀려들었다.

    콰당탕탕!

    “으윽!”

    “으아아앙!”

    나카무라는 고통으로 인해 끊어질 듯한 정신을 부여잡고.

    딸을 진정시키며 숨죽여 있을 수밖 에 없었다.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규모 7.3 의 지진 해일 경보가 내려졌고 주민 들의 대피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온 기쁜 소식을 듣고는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TV에서 뉴스가 전해졌다.

    그 말을 들은 히무라는 멍하니 TV 화면을 볼 뿐이었고 큰아버지, 큰어 머니. 부모님 그리고 배영빈과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면을 통해 보았을 때도 그 재해의 심각함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히무라는 서둘 러 핸드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분명 가족에게 했을 텐데, 히무라는 신호가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다 다시 걸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히무라 씨, 항공편부터 알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아.”

    그러나 히무라는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행 동했고 아버지는 그를 대신해 일본을 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아••••••

    그러는 와중에도 TV에서는 잔혹하 다 싶을 정도의 화면에 계속해 반복 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히무라는 이내 절망하고 말았다.

    나는 그런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음 날.

    도쿄로 직행하는 항공편이 마땅치 않았던 터라 히무라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한 뒤 육로로 가기로 결정 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나는 히무라에 게 한마디 위로조차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손을 꼭 잡아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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