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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3화 (3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3화

    9. 6살, 첫 정규 앨범(4)

    월요일 아침.

    어머니 그리고 히무라와 함께 일본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나카무라가 우리를 반겼다. 평소 후줄근한 모습과는 다 르게 면도도 하고 차림도 말끔했다.

    “오랜 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카무라 씨.”

    “안녕하세요.”

    나와 어머니와 인사를 나눈 나카무 라는 히무라와도 가볍게 악수를 나 누었다.

    내가 일본 말을 조금 익힌 것처럼 나카무라 역시 어색한 발음으로나마 인사 정도는 한국말로 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시간을 확인한 나카무라가 미안하 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일정이 조금 촉박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주말이면 좋았겠지만, 제 일정 때문에 많은 분에게 피해를 줄 순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도빈이 가 TV에 출연하는 일이기도 하고. 하루 정도는 휴가 내도 괜찮아요.”

    어머니께서 나를 쓰다듬으며 말씀 하셨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이동하 시면서 이야기 나누시죠.”

    “네.”

    간단히 인사를 마친 뒤 나카무라는 우리 일행을 차로 안내했다.

    미국에서 존 리처드가 가져온 차보다는 못했지만 근사해 보였다.

    “어머.”

    “도빈 군을 위해 NHK에서 보내온 찹니다.”

    기분 좋게 올라타자 나카무라의 설 명이 이어졌고, 히무라가 그것을 통 역해 주었다.

    “도빈 군이 출연할 프로그램은 ‘고 고나마’라는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도빈 군이 출연하는 시간은 30분 정도고 촬영은 시부야의 NHK 수도 권 방송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라 하네요.”

    “뭐 하면 돼요?”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직 접적으로 물었다.

    “음……. 대본이 오긴 했는데 아무 래도 읽을 수는 없을 테니까. 지금 잠깐 설명해 줄게.”

    가방에서 대본을 찾은 나카무라가 다시금 설명을 이어갔다.

    “기본적인 질문들이네. ‘부활’은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지. 사카모토 선생님과는 어 떤 사이인지 정도?”

    뭔가 이시하라 린도, 김준용 기자 도 지금 NHK라는 곳도 비슷한 것만 물어보는 기분이었다.

    “혹시 예능 같은 건가요?”

    어머니도 궁금하신 게 있는지 입을 여셨고.

    “하하. 그렇진 않습니다. 가벼운 분위기의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일본의 예능은 한국과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어서……. 도빈 군이나 어머님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거절하는 중입니다. 또, 도빈 군의 이미지에도 맞지 않고요.”

    “다행이네요.”

    다행히 나카무라의 답변에 안도하신 모양이다.

    “그 외에…… 도빈 군에게 연주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혹시 바이올린 가져왔니?”

    “네.”

    “다행이다. 도빈 군이 녹음에 직접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요청하더 라고. 어려울 수도 있다고는 말해두었는데, 괜찮을까?”

    “어려울 것 있나요?”

    “하하. 생방송이고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는 터라 긴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사람이 많으면 더 좋죠. 괜찮아요.”

    열 살 무렵부터 공연을 하고 다닌 내게는 무대가 곧 삶이었다.

    긴장이 라니.

    청중은 많을수록 좋다.

    “도착하곤 리허설을 간단히 진행한 뒤에 곧장 촬영에 들어갈 겁니다. 생방송이라서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대기 시간이 생기거나 급하게 움직 이게 될 수도 있고. 이 점은 어머님 께서도 알고 계셔주세요.”

    “네. 몇 시에 시작인가요?”

    “1시 25분부터 55분까지입니다.”

    “도빈이 배가 고플 텐데……

    “하하. 촬영이 끝나면 곧장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카레?”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카레도 맛있지만 일본의 카레도 확실히 그 풍미 가 있다.

    “하하. 아니. 이번에는 가이세키라 고 코스로 준비했단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카레가 아니 라고 하니 실망하는 도중, 엄청나게 높은 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쿄 타워야. 곧 도착이네.”

    히무라의 말대로 곧이어 옅은 갈색 외벽의 기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오 기 시작했다.

    그것은 ‘丄처럼 휘어져 높은 건물을 감싸는 모양이었는데, 이곳이 오 늘 방송을 하는 곳인 모양.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생각에 조금 은 들뜬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한 차례 리허설이라는 것을 마치곤 곧장 실제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생각보다 리허설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몇몇이 늦어지는 바람에 시간 이 부족했던 터라.

    나는 히무라와 같이 사회자라는 사람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마무리해야 했다.

    나카무라는 내가 긴장을 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지만 히무라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며 도리어 그를 다 독였다.

    “그래도 생방송인데 문제라도 생기면.”

    “자네는 아직 도빈 군에 대해 모르는 것 같네. 하하. 도빈 군이 어디 가서 긴장하는 거 봤나?”

    “응.”

    옳은 말이다.

    함께한 시간이 벌써 2년 가까이 된 만큼 히무라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이다.

    “배도빈 씨! 히무라 씨! 본방 3분 전입니다!”

    “이제 가봐야겠군.”

    “도빈아, 잘해. 파이팅!”

    “파이팅!”

    어머니께서 두 주먹을 꼭 쥐곤 위 에서 아래로 힘 있게 내리셨다.

    나 역시 어머니의 응원에 화답하기 위해 똑같이 따라하곤 히무라와 함께 세트장이라는 곳에 올라섰다.

    도착하고 나서 쭉 생각했지만 카메 라가 정말로 많이 있다.

    나와 히무라가 세트장 뒤에 올라서 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회자가 말을 시작했다.

    “생방송 오후의 만남! 어느덧 봄이 찾아왔습니다. 우에하라 양, 따뜻한 계절이 왔다는 소식만큼이나 반가운 이야기가 있다면서요?”

    “네. 바로 그제 발매된 음반. ‘Dob 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이 출시되었단 소식이죠.”

    “도빈 군이라면 2년 전 ‘부활’로 클래식 차트 1위를 한 세 살 천재 소년?”

    “그렇습니다. 2년이 흐른 지금, 도빈 군을 직접 만나보시죠!”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히무라가 내게 ‘나가자’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늦을 뻔했다.

    막이 걷히고 무대로 향하자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울 릴 정도였는데 이만한 환대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꺄! 귀여워!”

    “귀여워〜”

    내 귀여운 외관을 보고 호들갑을 떠는 무례한 여성들은 이곳에도 있는 모양이다.

    대본에서 요청한 대로 인사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예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해서 고개를 꾸벅 숙이곤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배도빈 입니다.”

    “꺄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리부 르스다.

    방청석이라는 곳에 앉은 여성들이 하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도빈 군은 아직 다섯 살이라고 알 고 있는데 일본말을 잘하는데요?”

    “조금밖에 몰라요.”

    “하하. 그렇군요. 자, 그럼 우선 도빈 군에 대해 알아보는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영상?’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동시에 세트 장 정면에 있는 큰 화면을 통해 뭔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가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보시면 슬퍼하 실 문구다. 촬영장에 계신 어머니를 힐끔 보자 다행히 그 뜻을 모르시는 듯 평소와 같아 다행이다.

    [단지 음악에 대한 열정만이 있을 뿐』

    언제 촬영했는지, 내가 엎드려 오 선지에 곡을 적고 있는 장면이 나타 나기 시작.

    이내 여러 문구와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정규 앨범의 겉표지로 쓰기 위해 찍은 내 사진이 나타났고.

    [전율하라, 내 절규에.]

    미친 소리와 함께 영상이 마무리되었다.

    도대체 낯이 뜨거워져 볼 수가 없다. 내 사진을 걸어두고 저딴 말을 걸어놓은 인간이 대체 누군지 궁금 해질 정도였지만.

    “귀여워!”

    사람들은 ‘카와이’라는 말만 반복 할 뿐이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은 모양.

    중년 남성 사회자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앉은 젊은 여 성이 슬쩍 대본을 보곤 입을 열었다.

    “싱글 앨범 ‘부활’ 판매량 91,381 장. 정규 앨범 ‘Dob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 곡’이 발매 이틀 차 만에 39,000장을 기록! 그리고 ‘죽음의 유물: 1부’ 의 테마곡인 ‘가장 큰 희망’의 스트 리밍 수 8천만 뷰! 정말 놀라운 수 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 클래식 곡이 이만한 성적을 올리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죠? 히무라 씨.”

    “그렇습니다. 2010년과 2011년 최 고의 정통 클래식 곡이라 해도 과언 은 아니죠.”

    “하하하! 도빈 군이 얼마나 대단한 지 잘 알 것 같습니다.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한데. 도빈 군, 어떤가요?”

    “느껴져요. 멜로디가 떠오르고 반 주가 떠오르는데 그걸 악보에 적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어요.”

    “오오.”

    다들 조금 놀란 반응.

    뭔가 일반적인 대화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반응이 더 크다고 해야 할까.

    이들이 이렇게나 과장해서 반응을 하는 것이 성격 차이인지 아니면 방 송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가식적으로 보이기 때문.

    다음 질문도. 그다음 질문에도 두 명의 사회자와 방청객들은 과한 반응을 보이며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도빈 군이 직접 녹음했다는 바이올린 곡 중에 하나를 직접 듣는 것으로 마무리하 도록 하겠습니다.”

    직원 중 한 명이 내 바이올린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이 불편한 심기를 달래기 위해 마음을 다졌다.

    저들이 내 말에 정말 놀라는 게 아니라.

    거짓으로 나를 대하고 있다면 진정 놀래어 주면 될 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받치곤 현을 잡았다.

    현대에 와서 가장 큰 변화를 느낀 것은 곡의 전개.

    전과 달리 전개가 매우 직관적이고 그만큼 강렬한 멜로디가 주를 이룬 다는 점이었다.

    속도가 빠른 것도 그중 하나.

    보다 자극적인. 보다 직관적인.

    나는 그것을 음악이 보다 솔직해졌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감상을 녹인 것인 바로 사카모토 료이치의 전자 기타와의 협주를 생각하여 만든 첫 정규 앨범 의 마지막 곡.

    ‘밴쿠오의 자손’이었다.

    ♪♫♬♪♫♬

    오로지 현을 쥔 왼손 손끝과 활을 쥔 오른손.

    그리고 곡을 지을 때의 마음을 담 아 음율을 내기 시작했다.

    몇 개의 송진을 바꿔가며 사용해 본 바.

    안드레아의 맑고 경쾌한 느낌이 ‘데 미안’의 강렬한 멜로디와 어울렸다.

    가감조차 없이 곡을 몰아붙인 뒤에 눈을 뜨자.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비로소 나는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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