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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2화 (3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2화

    9. 6살, 첫 정규 앨범(3)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 뒤 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시하라 린은 돌아가는 항공편에 여유가 생겨 정식 인터뷰가 아닌, 개인적인 궁금증을 물어왔다.

    인터뷰를 할 때와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대화야 괜찮지만 이시하라 씨, 지 금부터의 이야기는 건 기사로 실으시면 곤란합니다.”

    “그럼요. 저 그렇게 못된 사람 아 닌 거 아시면서.”

    “기자 분들은 다들 그리 말씀하시 더라고요.”

    그렇게 말한 히무라는 슬쩍 웃으며 이시하라 린의 가슴팍에 눈길을 주었다.

    “……치.”

    이시하라 린이 가슴 주머니에 있는 펜을 꺼내더니 뭔가를 꾹 눌렀다.

    “자, 됐죠?”

    “네. 되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더 주 문했고, 그것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 시하라 린과 대화를 나누었다.

    “도빈 군, 대스타가 된 기분은 어때?”

    “대스타?”

    “응. 음악인들 사이에선 벌써 엄청 유명해졌다구. 특히 ‘가장 큰 희망’ 은 다들 완벽하다고 난리던데?”

    “모르겠어요.”

    나는 처음 듣는 말이다.

    “흐음. 히무라 씨, 어떻게 된 거예요? 본인이 이렇게 모르고 있어도 되는 거예요?”

    “아뇨. 그렇지는 않죠. 일본 방송국 에서도 연락이 왔으니 아마 도빈 군도 슬슬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내부적으로는 아무래 도 도빈 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지도 상승이 더딜 거라 예 상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서는 저희도 인지하고 싱글 앨범 이 후로 여러모로 노력 중이고요.”

    “그런가요. 저도 의아하게 생각하

    고 있었어요. 도빈 군이 생각보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더라고요. 미국에서도. 일본에선 완전 대스타 지만.”

    “하하. 음……. 보통은 한 단계씩 밟아 오르기 때문에 일이 이 정도 진행되면 적어도 본인 주변에는 이 야기가 퍼지는 게 일반적이죠. 다만 도빈 군에게는 그러한 환경이 없다 보니 정보도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예로 일본에서는 홍보를 진행한 만큼 성과가 있지 않았습니까?”

    “한국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 각하세요?”

    “이번 정규 앨범은 한국에도 발매 할 예정입니다. 유통사도 찾았고 며칠 뒤면 온라인 쪽과 함께 공개될 거예요. 홍보 방식에 대해서도 준비 해 놓은 게 있고요. TV 출연 같은.”

    “엑스톤, 프로모션 부재로 천재 음악 가의 불화! 라는 타이틀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기사거리는 없어져 아쉽지만 역시 나카무라 씨와 히무라 씨답게 잘 준비하신 모양이에요.”

    “하하. 도빈 군과 함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도빈 군을 홀대할 순 없죠. 누가 뭐래도 지금 엑 스톤의 기대주는 도빈 군입니다. 개 인적으로, 저는 도빈 군이 사장되는

    클래식 세계를 살릴 가장 큰 희망이 라 생각합니다.”

    “아하하. 그거, 혹시 준비한 멘트에요?”

    이시하라 린이 잠시 웃었고, 히무라는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역시 가장 궁금한 건, 죽음 의 유물 2부. 도빈아, 역시 이번에 도 참가하는 거니?”

    “네. 사카모토 료이치가 준비해 달 라고 했어요.”

    “개런티는?”

    “이시하라 기자님.”

    “헤헤. 그냥 물어본 거예요.”

    물어본다고 알려줄 생각은 없었지 만 히무라가 알아서 이시하라 린의 질문을 막아주었다.

    이시하라 린도 굳이 끝까지 물을 생각은 없었는지 곧 말을 돌렸다.

    “그리고…… 아마 계약 기간이 아 마 올해까지였죠?”

    “이거, 이시하라 씨가 날카로운 건 알았지만 그런 것까지 체크했을 줄 은 몰랐네요. 도빈 군 앞에서는 자 제해 주세요. 혹시나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다음에도 독점, 아니, 가장 먼저 인터뷰 자리 부탁드릴게요.”

    “아무렴요.”

    자기들끼리 뭐라 말하는지.

    때마침 나온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 했다.

    역시나.

    이내 장대비가 쏟아진다.

    “참, 도빈아. 너 팬 모임 생긴 거 아니?”

    “ 팬?”

    “그래. 도빈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는데 회원 수가 벌써 5천 명이 넘었대. 여기, 사이트도 생겼어.”

    이시하라 린이 내게 핸드폰을 보여 주었고, 뭔가 요란스러운 화면이 보였다.

    일본 문자를 읽지 못하는 나로서는 알아볼 길이 없으나 어찌되었든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고맙네요.”

    “나도 여기 회원인데.”

    “네?”

    “기사에 실릴 사진 말고 따로 몇컷 정도 찍어줄 수 있을까? 누나 핸드폰으로. 자랑 좀 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아이, 귀여워. 자, 그럼 이리 와봐.”

    이시하라 린이 나를 뒤에서 껴안고 핸드폰을 든 팔을 쭉 폈다. 자연스 럽게 고개를 위로 들게 되었는데.

    민망한 촉감 때문에 빨리 좀 찍었으면 좋겠다.

    찰칵- 찰칵- 촤라라라라라라락.

    몇 장을 찍는 거야?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불만스럽게 쳐다보자, 이시하라 린이 뻔뻔스럽 게도 웃었다.

    “아, 이거? 아하하. 원래 이렇게 많이 찍는 거야. 그래야 가장 잘 나 온 걸로 올릴 수 있지. 아, 이게 제 일 잘 나왔다.”

    “나 눈 감고 있는데요?”

    “도빈이는 원래 귀엽게 생겼으니 괜찮아.”

    팬 모임에 올릴 사진이라더니.

    자기가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찾는 이시하라 린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뒤, 인터뷰와 비공개 인터뷰 가 끝났다.

    “바이바이〜 잘 지내〜”

    “바이바이.”

    이시하라 린을 마중하고 녹음실로 향할까,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중에 히무라의 핸드폰이 울렸다.

    “도빈아, 잠깐만.”

    내게 양해를 구한 히무라가 전화를 받았는데 조금 놀란 목소리였다.

    “네, 어머님. 네. 네? 아……. 일단 제 번호 알려주시면 되겠습니다. 원 래 나카무라와 이야기해야겠지만요.

    네.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쇼. 그럼.”

    아마 어머니와 통화를 나눈 것 같은데 뭔가 조금 난감하다는 듯 전화 기를 보고 있다.

    그러기를 몇 초.

    곧장 다시 한번 히무라의 전화가 울렸다.

    바쁜 모양이다.

    내일부터는 일본으로 가서 TV에 출연해야 하기에 오늘은 이만 쉴까 싶은데.

    통화를 마친 히무라가 입맛을 다시 며 내게 물었다.

    “도빈아, 한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데. 할 수 있겠어?”

    “또요?”

    “응. 방금 어머님이랑 통화했는데 방송국 뉴스 기자가 꼭 한 번 인터 뷰하고 싶다고 했대. 어머님은 도빈 이가 하라는 대로 하라 하시던데. 어떻게 생각해?”

    “인터뷰하면 돈 더 버는 거 맞죠?”

    “으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 발매도 얼마 안 남았고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럼 할게요. 짧게.”

    “그래. 그럼 이쪽으로 오라고 할게.”

    “아저씨, 이거 한 잔 더요.”

    “더? 어머님이 주스 하루에 두 잔 이상 주지 말라 하셨는데.”

    “이미 두 잔 마셨어요.”

    “으음. ……어머님에겐 비밀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히무라가 종업원 에게 다가가더니 ‘오렌지 주스 한 잔이요. 설탕이나 시럽 들어가나요? 네. 그거 좀 빼주세요’라고 주문했다.

    그러기를 얼마간.

    한 남자가 비에 잔뜩 젖은 채 카 페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대충 몸을 털더니 나와 히무라를 보곤 긴가민가하면서 다가왔다.

    “혹시 배도빈 군과 히무라 쇼우 씨 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김준용 기자님?”

    “네. 반갑습니다. NBC 취재센터의 김준용이라고 합니다. 급하게 오느 라 제 꼴이 말이 아니네요. 하하.”

    알긴 아는 모양.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앞에 있는 티슈 통을 그에게 밀어주었다. 티슈 몇 장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지 만 말이다.

    “하하. 고맙다.”

    김준용이란 사람은 티슈로 얼굴을 슥슥 닦더니 종업원을 불러 따뜻한 커피와 수건 한 장을 주문했다.

    그는 대충 젖은 몸을 닦아냈고 서 둘러 녹음기와 메모지 그리고 펜을 들었다.

    “우선…… 도빈 군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니?”

    “네.”

    “고맙다. 흐흐. 그럼 시작은 간단하 게 자기소개 좀 해줄 수 있니?”

    “배도빈. 여섯 살. 행운동에 살아요.”

    유치원에서 배운 자기소개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김준용 기자가 멋쩍게 웃더니 질문을 살짝 바꿔 물었다.

    “네 살 때부터 음악을 했다고 들었는데. 싱글 앨범을 낸 과정은 어땠어?”

    “나카무라 아저씨가 찾아왔어요.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 함께했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그랬구나. 히무라 쇼우 씨, 나카무 라라는 분은 어떤……?”

    “엑스톤의 총괄 매니저입니다. 도빈 군과의 계약을 처음 추진한 사람이죠.”

    “그렇군요. 한데 일본에서는 음…… 어떻게 어린 도빈 군을 찾을 수 있었던 건가요?”

    “도빈 군이 만든 음악을 사촌형이 일본 쪽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려서 말이죠. 원석을 찾은 듯한 느낌이라 최초 발견자와 저 그리고 나카무라 가 적극 추진했었습니다.”

    “커뮤니티 사이트요?”

    “네. 니코동이라고.”

    “아아••••••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보면 김준용 이란 사람은 나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몰라서 인터뷰를 하러 온 것 이겠지만.

    그건 이시하라 린도 마찬가지.

    적어도 그녀는 조금은 사전에 나카 무라나 히무라를 통해 나에 대해 알 고 왔던 반면에, 김준용 기자는 그 러지 않았다.

    환경 차이인가 싶기는 한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니 답답한 것도 사실 이다.

    “그랬군요. 그러면 엑스톤이 도빈 군이라는 원석을 발견해 함께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하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직접 만나보니 웬걸요. 음악에 대해서는 저희가 뭔가를 도와줄 수 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사카모토 선생님도 작곡에 대해서는 가 르칠 수 없었으니까요.”

    “사카모토 선생님이라면. 혹시 사카모토 료이치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 그런 정보에 대해 서도 처음 접하시나 보네요.”

    정곡을 찔리니 김준용 기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정말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도빈 군에 관련한 기사가 몇 개 나오긴 했습니다만 제대로 된 이야기는 없더군요. ‘마지막 희망’ 역시 설마 한국인이 만든 음악일까, 하는 반응이었으니까요.”

    마지막 희망?

    그런 제목을 지은 곡은 없는데.

    혹시나 ‘죽음의 유물: 1부’에 넣은 ‘가장 큰 희망’을 말하는 거라면 상당히 무례한 인간이다.

    “그렇군요.”

    그러나 히무라는 고개를 끄덕일 뿐, 여전히 웃고 있다.

    “혹시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있나요?”

    “아니요. 아직은 없습니다만. 생기 게 된다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네. 감사합니다.”

    괜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굳이 히무라를 본다든가, ‘며칠 뒤면 한국에서도 발매되잖아요’라고 묻지는 않았다.

    히무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기 때문.

    기본적인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무 작정 와서 이것저것 묻는 사람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 역시 꽤 무례하다는 느낌을 지 울 수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단 생각을 했다.

    “아, 김준용 기자님. 죄송하지만 내 일부터 도빈 군 스케줄이 또 잡혀 있어서요. 보시다시피 도빈 군이 아 직 어리기에 휴식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럼요. 그럼 마지막으로 내일 스 케줄이라 하시면……

    “이번에 낸 정규 앨범 관련한 일입니다. 오늘 이렇게 무리해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찾아왔어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또.”

    “아, 네. 저……

    히무라는 김준용 기자와 인사를 서 두르곤 나를 데리고 카페를 벗어났다.

    차에 탔을 때도 히무라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잘했어요, 히무라. 나 그 아저씨 싫었어요.”

    “……눈치챘구나? 도빈이가 눈치챘 으면 그 사람도 알았을 텐데. 나중에 전화 한번 해야겠네. 도빈아, 기 자를 적으로 두면 안 돼. 방금처럼 무례한 사람이 있어도 적당히 상대 해 줘야 한단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나나 나카무라에게 맡기고.”

    “응.”

    기특한 히무라.

    돈 벌어다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 과 척을 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 하다.

    그러기 위해 나를 대변해 주는 그 에게 나는 다시 한번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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