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1화 (31/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31화

9. 6살, 첫 정규 앨범(2)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이승훈은 때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어, 누나. 무슨 일이야?”

-들어 봐. 나 진짜 힘들어 죽겠어.

“왜?”

-오디션을 몇 번을 보는지 몰라. 지긋지긋해 죽겠어.

“아〜 아직도 못 뽑았구나?”

-그렇다니까? 푸르트벵글러 그 아 저씨 깐깐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꽉 막힐 줄은 몰랐다구. 정말 단 원들도 스트레스 받고 난리도 아니야.

“하하하! 그러게. 벌써 한 달은 된 것 같던데.”

-그러니까. 승훈아, 네가 빨리 독 일로 와서 누나 좀 살려주라.

“나 로스앤젤레스로 가고 싶은 거 알잖아. 아, 맞다. 나 오늘 진짜 신기한 애 봤어.”

-애? 무슨 애?

“응. 여섯 살이라던데 난 바이올린 그렇게 잘 켜는 아이는 처음 봤다니까?”

-여섯 살? 드문 일이네? 네가 남 칭찬을 다 하고.

“알바로 영재 학원에 바이올린 교 습 나갔거든. 적당히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서 대충 알려주고 올 생각이었는데 세상에. 바이올린을 가르쳐 달라는데 가르칠 게 없어서 도리어 난감했다니까.”

-MSG 적당히 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여섯 살이 하면 얼마나 한다고 네가 가르칠 게 없어.

“진짜라니까? 배도빈이라고, 두고 봐. 몇 년 안에 엄청 유명해질걸?”

- 뭐라고?

“유명해진다고.”

-아니. 이름 말이야.

“배도빈. 왜?”

-꺄! 어쩜. 대박이야. 도빈이가 벌써 여섯 살이야?

“어? 누나 알아?”

-그럼. 내가 재작년에 일본까지 가서 녹음도 해줬는데. 너한테도 선물 로 보내줬잖아. ‘부활’.

“••••••어?”

-그 부활 쓴 애가 도빈이야. 어머. 도빈이가 벌써 여섯 살이네. 맞네. 시간 빨리 가는 거 봐.

이승훈은 누나 이승희가 보내주었던 앨범을 찾았다.

책상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책 무더 기 가장 아래에 숨겨져 있던 CD 한 장을 찾을 수 있었다.

‘Auferstehung(부활)’이란 독어가 금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그것에는 분명, 도빈 배라는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관심이 없어 처박아두었거늘.

그러나 설마 그 아이가 만든 곡이 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누나 이승희는 세계적인 첼리 스트였으며, 동시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제1첼로를 맡고 있었다.

결코 어린아이의 곡을 연주하는 데 참여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도빈 배’라는 이름은 들었지만 영재 학원 베토벤에서 본 ‘배도빈’과 연관시킬 수 없었는데.

“세상에……

사실이고 말았다.

-여보세요? 이승훈?

“아, 응. 누나. 미안.”

-도빈이 지금도 귀엽냐구. 완전 아 기였는데, 아, 지금도 애지만. 어때?

“……최고지.”

-그래? 한번 만나러 가봐야겠다. 바이올린은 또 언제 배웠대?

이승훈은 누나 이승희와의 전화를 끊은 뒤, CD플레이어에 ‘부활’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플레이했을 때.

이승훈은 누나가 보내준 선물을 뒤 늦게 튼 것을 후회했다.

‘ 맙소사.’

완벽하다.

완벽하다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길 이 없는 완성도였다.

곡의 구성이 어느 곳 하나 빈틈이 없었으며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 의 변화에 어느새 이끌렸다.

고통스럽고 괴로웠으나 끝에는 더 없는 환희.

“이걸…… 재작년에 만들었고? 그 꼬마가?”

이승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 하곤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역시 수재로 인정받으며 어렸을 적부터 국제무대에서 활동했지만 배도빈이란 아이의 연주, 작곡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암동 NBC 취재센터 사무실은 평소와 같이 분주했다.

전화 벨 소리와 대화 소리로 가득 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들린 고함.

“너 이 새끼,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잠시간 소란스러웠던 사무실이 조용해졌지만 이내 기자들은 다시금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될 문제야! 여태 왜 모르고 있었던 거야! 어! 네가 그러 고도 기자라고 할 수 있어?”

바로 어제.

취재센터장 최병철은 일본에 있는 지인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 내용이 너무나 터무니없었기에 믿지 못했지만 상대가 정색하며 자료까지 보내주자, 고맙다는 말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배도빈이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천재가 네 살 무렵, 재작년 크리스마스에 내놓은 ‘부활’이란 싱글 클래식 앨범이 2011년 현재 일본에서만 누 적 판매량 91,381장을 기록했으며.

가관인 것은 2010년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죽음의 유물: 1부’의 메인 테마곡까지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일본과 미국의 기사를 찾아 본 최병철 취재센터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 졌다.

이런 대박 소식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솟은 것이었다.

‘한류’라는 키워드는 언제나 먹히 게 마련.

더군다나 어린 나이에 일본과 미국 음악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도 화제성은 보장되었다.

거기에 더해.

바로 어제 일본에서 정식 발매한 ‘도빈 배’의 첫 번째 정규 앨범 ‘Do b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이 발매 첫날 17, 000장이 판매되었는데.

이 기세라면 초동 판매량(발매 후

일주일간의 판매량)이 역대급이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최병철 NBC 취재센터장은 눈이 돌아가 잠 조차 이루지 못한 채 출근했는데.

[세계를 놀라게 한 여섯 살 천재!]

[음악사를 이을 천재 탄생? 모차르트의 환생인가!]

벌써 배도빈에 대한 기사를 배포한 언론사가 있었던 탓에 기어이 폭발 한 것이었다.

최병철 센터장은 연예취재부 기자 들을 모아두곤 있는 대로 소리를 지 르며 그중 최고 선임인 김준용 기자를 까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입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어!”

‘하, 시발.’

출근하자마자 센터장으로부터 갖은 욕설을 듣는 김준용 기자의 속은 말 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클래식 업계는 좁다.

그러나 그 정보 또한 적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만큼 보도되는 내용은 대부분 한국 내 인맥을 통해 알려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것을 기자들이 캐치하여 보도하 게 되는데, 심지어는 본인들이 직접 기자에게 소식을 전달해 주는 경우 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데에선 정보가 늦을 수밖에.

배도빈이란 녀석은 데뷔조차 일본에 서 한데다가 활동 역시 많지 않았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와 연조차 없으니 여태 기자들이 그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센터장이 이렇게까지 난리법 석을 떨어댈 만한 이야기이긴 했다.

우리나라 음악가 중에, 클래식 작곡가로서 이렇게나 성공한 사람은 몇 없었다.

게다가 그 나이 여섯 살.

김준용 기자 역시 분한 마음을 삭이고자 최병철 센터장의 책상을 훑어보는데.

눈에 들어온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어! 네가 사람 새끼야! 왜 닥치고 있어! 입 다물고 있으면 뭐가 달라 져? 어!”

“센터장님, 잠시만.”

“닥쳐, 이 새끼야! 뭘 잘했다고 말 대꾸야!”

‘아니, 말하라며.’

김준용 기자는 화를 꾹 누르곤 침 착히 입을 열었다.

“이거 전부 추측성입니다.”

“……뭐?”

“아직 인터뷰 딴 곳이 없는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도 급했던 겁니다. 밤새 외국 기사들 읽고 썼을 테 죠. 보십쇼. 사진도 없고, 인터뷰 내 용도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최병철 센터장이 신 문을 뒤적이기 시작하더니 소리쳤다.

“야! 배도빈 뉴스 보도된 거 있는 지 찾아! 당장!”

“예!”

몇몇 사람이 갑자기 분주해지더니.

“없습니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을 전했고.

최병철 센터장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김준용 기자가 짐을 챙기곤 사 무실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김준용이! 너 인터뷰 못 따고 오면 책상 뺄 줄 알아!”

“예〜 예!”

쪼륵- 쪼르르륵-

히무라가 사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 고 있는데 이시하라 린이 카페로 들 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와 함께였는데,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어, 귀찮지만 나 역시 흔들어주었다.

“안녕, 도빈 군. 많이 컸네?”

“안녕하세요.”

“어? 일본 말은 언제 배웠어?”

“잘 못해요. 빠른 말이나 어려운 건 히무라 아저씨가 통역해 줘야 해요.”

“아이구〜 귀여워. 그래. 누나가 천천히 말해보도록 할게. 참, 안녕하세 요, 히무라 씨. 도빈이가 너무 반가 워서 인사가 늦었네요.”

“하하. 주인공은 도빈 군이니까요. 반갑습니다.”

히무라가 이시하라 린과 악수를 나누곤 자리에 앉았다.

카메라맨은 불쌍하게도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았다.

“그나저나 축하해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이 벌써 17,00 0장이나 팔렸다면서요?”

“하하. 아무래도 싱글 앨범과 영화 테마곡이 대박이 났으니까요. 다들 도빈 군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던 거 라 생각합니다.”

“현 추세로는 초동 10만 장도 가능할 거라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기다림이 간절했던 만큼 첫 날 판매는 좋았지만 역시나 시장 이 좁아진 건 사실이니까요.”

“겸손하시네요. 그럼,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죠. 도빈 군은 어떻게 생각해?”

말이 빨라서 못 알아들었다.

고개를 돌려 히무라를 보니 웃으며 내게 한국말로 말을 해주었다.

천천히 말해주겠다고 했던 이시하 라 린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10만 장이요.”

“와. 자신감이 대단한데?”

“그래야 전세금이 나오거든요.”

“ 전세금?”

이시하라 린이 고개를 갸웃 하니 히무라가 일본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뭔가 이해 하기 어려워하는 눈치지만.

결국에는 내 뜻을 이해한 이시하라 린이 웃고 말았다.

‘전엔 울었으면서 지금은 왜 웃는 데?’

“아하하하. 아, 너무 웃겨. 도빈 군 정말 여전하네.”

“아까는 많이 컸다면서요.”

“여전히 귀엽다는 뜻이야. 그래, 부 모님과 집을 얻으면. 그다음에는 뭐 할 거야?”

“지금 음악 학원에 다니는데, 조금 수준이 낮은 것 같더라고요.”

"응?"

“바이올린 가르쳐 준다고 했으면서 결국엔 아무 것도 안 알려주고. 그래서 대학에 갔으면 좋겠어요.”

“도빈이는 정말 음악이 좋구나? 기 특해〜 하지만 대학에 가기에는 조 금 어리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갈 때 나이도 봐요?”

“으, 응? 그……렇지 않을까?”

“그런 게 어딨어요.”

뭔가 불합리하다.

배움에 어떻게 나이를 기준으로 든단 말인가.

“하하. 아마 도빈 군의 능력을 입 증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 겁니다. 도빈 군도 너무 걱정하지 마렴.”

잔뜩 불만을 가졌을 때 히무라의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시하라 린. 사람은 좋지만 뭔가 어리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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