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30화
9. 6살, 첫 정규 앨범(1)
음악 영재 학원 ‘베토벤’을 다닌 지 2주가 흐른 시점의 아침.
바이올린을 배우는 날이다.
현대의 새로운 연주법을 익힐 생각 에 아침을 급히 먹곤 서둘러 학원으로 향하는 중에 히무라가 말을 걸어 왔다.
“학원은 어떠니?”
“별로 배우는 건 없는데 재밌어요.”
“하하! 그렇구나. 오늘은 연습하던 리코더 안 가져왔네?”
“네. 오늘부턴 바이올린을 가르쳐 준대요.”
“바이올린이라……. 확실히 배울 게 없을지도.”
첫 번째 정규 앨범 ‘Dobean Bae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에 바이올린이 많이 사용되었던 만큼.
내 연주를 많이 들은 히무라는 배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또 모르는 법.
현대 음악을 배우는 일은 현재 나 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기에 그 기대를 놓진 않았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학원 앞 에 도착했다.
“그럼 도빈아, 3시에 데리러 올게.”
“3시?”
“응. 오늘이 앨범 발매일이잖아. 아 사히 신문에서 인터뷰하러 온대.”
“이시하라 린 누나가 오는 거예요?”
“응. 도빈이 보고 싶다며 자원했다 네.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기자도 있고. 부러운데?”
“그 누나는 이상하지만.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히무라와 인사를 나누곤 차에서 내렸는데 때마침 낭랑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도빈아!”
최지훈도 차에서 막 내린 듯한데, 차가 엄청나게 좋아 보인다.
확실히 부잣집 아들이 맞는 모양.
집사로 보이는 사람이 최지훈과 인사를 나누곤 돌아갔다.
“그거 네 바이올린이야?”
"응."
“네 바이올린이라니 기대된다.”
“기대해. 너도 가져왔네?”
“응. 나 바이올린 잘 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있는데 최지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거짓말이야. 2주 전부터 엄청 연습했어. 그래서 손가락이 다 아파.”
“원래 처음 할 땐 그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학원으로 들어섰다.
애들은 애들이다.
며칠째 보는 광경이지만 강사가 없는 시간에는 다들 떠들고 노느라 정 신이 없다.
나는 옆자리의 여자아이에게서 이 어폰 한쪽을 빌려 유진 킴의 연주 영상을 얻어 보고 있는데, 그 아이 가 자꾸만 나를 힐끔힐끔 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며 묻자 여자애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시선을 이리저리 피한다.
‘이상한 애네.’
개의치 않고 다시 영상에 집중하려 는데 때마침 학원 강사 이이진 씨가 누군가와 함께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러분, 집중〜”
“집중〜”
자기 자리를 찾아 앉은 아이들을 둘러본 이이진 씨가 만족스러운 표 정을 짓더니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소개했다.
“오늘부터 2주간 여러분께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실 선생님이세요. 한 국 대학교 음대를 다니고 계신 이승 호 선생님께 다들 인사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국 대학교라면 대한민국에서 가 장 좋은 대학이라 들었는데, 그곳의 학부생인 모양이다.
현대의 학부생이 어느 정도 수준인 지 알 수 있는 기회이자, 신문물을 받아들일 절호의 기회다.
“안녕, 여러분. 반가워.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는 이승호라 고 해. 오늘부터 여러분과 바이올린을 공부할 텐데, 혹시 바이올린 켤 수 있는 사람 있을까?”
“저요!”
최지훈이 아니라 다른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까불까불 대는 녀석이었는데 아이 들 앞에서 특기를 발휘할 생각에 달 아오른 느낌이다.
“좋아. 이따 한번 친구들에게 들려 주도록 하자.”
까불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친구는 없나?”
“조금 배웠어요.”
최지훈이 손을 들었다.
“얼마나 배웠니?”
“일주일이요.”
역시 천재인 척을 하려면 꽤나 힘든 모양이다.
피아노처럼, 배운 기간을 줄여 말 하라고 아버지에게 들은 모양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
‘그 인간’도 그랬으니, 자식을 통해 명예와 부를 챙기려는 못된 부모가 있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일주일이면 확실히 많이 배우진 못했겠구나. 혹시 연주할 수 있으면 잠깐 앞으로 나와줄 수 있니?”
“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최지훈은 개 의치 않고 앞으로 나갔다.
바이올린을 든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는데, 아이들 앞에 서니 어 느새 멈춰 있었다.
“부담 가지지 말고, 잠깐 보여줄래?”
“네.”
최지훈은 숨을 잠시 고르고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받쳤다.
그러곤 한두 번 음을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작한 연주.
어딘가에서 들어본 곡이었다.
서정적이면서도 그리운 듯한 선율 로 전해지는 것은…… 분명 어느 나 라의 민요와 유사했다.
난이도가 있는 곡은 아니지만 불과 2주 만에 저만한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확실히 천재는 아니더라도.
그 노력만큼은 최지훈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
짝짝짝짝!
“지훈이 멋있다!”
“지훈이 너무 좋아!”
최지훈이 바이올린을 어깨에서 내 려놓자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 했다.
나도 오늘을 위해 노력한 어린 친 구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야, 정말 일주일 동안 배운 거 맞니? 대단한데?”
“지훈이는 천재예요!”
“천재예요!”
“피아노도 엄청 잘 쳐요!”
“하하. 그래? 잘했어. 자, 이건 선 생님이 주는 선물. 지훈이는 조금만 더 연습하면 정말 잘하겠다.”
바이올린 강사 이승훈이 최지훈의 머리를 쓸어내린 뒤 손에 사탕을 쥐 어주었다.
“자, 그럼 아까 손 들었던 친구.”
“네!”
“앞으로 나와볼까?”
“네!”
까불이 역시 앞으로 나가서 어깨에 바이올린을 받치곤 턱을 두어 번 옆으로 움직이더니 슬쩍 이승훈을 보았다.
이승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감곤 연주를 시작했다.
나이를 감안하고 감안한다면 들어는 줄 만한 연주.
차라리 최지훈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자신 있게 나선 그 용기 가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원 아이들은 최지훈이 연주한 곡보다 난이도가 있는 곡을 연주한 까불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자아, 잘했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여기.”
사탕을 받은 까불이가 까불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는데 그때.
“선생님! 얘도 바이올린 있어요!”
여덟 살 뚱땡이가 건방지게 내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래? 친구 이름은?”
나는 이승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배도빈이요.”
“좋아. 도빈이도 친구들한테 연주 들려줄 수 있니?”
원래라면 돈을 받아야겠지만, 선심을 쓰도록 했다.
여기 있는 아이 중에 13명은 나중 에 음악을 하며 살진 않겠지만.
단 한 명, 장래에 음악가가 될 친 구가 한 명 있었기에 그를 위해서 말이다.
바이올린을 들곤 앞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곡을 연주할지 고민이 되었다.
딱히 지금 당장 연주하고 싶은 바이올린 독주곡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몸을 돌렸는데, 책상 위에 놓인 옆자리 아이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들었던 유진 킴의 연주가 떠올랐다.
‘한번 해볼까.’
전자바이올린은 바이올린과 많이 다르기에 즉홍적으로 편곡을 해야겠지만, 즉흥곡은 내 특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바이올린을 꺼내 어깨에 받쳤는데 이승훈이 물었다.
“도빈이는 무슨 곡을 연주해 줄 거야?”
“제목 몰라요.”
“하하. 그래.”
“쟤 봐봐. 할 줄도 모르면서 바이올린 가져와서 저러잖아. 제목을 모 르는 게 말이 돼?”
웃으라지.
지금 내 연주는 너 같은 코흘리개 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착실히 걸어 나가고 있는 친구를 위함이다.
내가 받았던 충격.
현대의 음악을 듣곤 느낀 그 희열을 최지훈이 받을 수 있을까.
현을 켜기 시작했다.
♪♫♬
제목 모를, 누구의 영혼인지 모를 이 고혹적인 멜로디는 나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빠르면서도 경쾌한.
그러면서도 명확한 음 배치.
연주자 유진 킴의 연주 실력도 훌 륭했지만.
나는 이러한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그의 영혼을 위로한다. 기도한다.
이름 모를 천재가 남긴 진한 향수를 느끼며.
나는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러곤, 내가 들었던 부분까지 연주한 뒤에 손을 멈추었다.
눈을 뜨고 최지훈을 바라보자 놀란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그 얼 굴에서 나는 내가 그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감정이 그들에게 제대로 도 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도, 도빈이라고 했지? 중간에 왜 멈췄니?”
“이 뒤에는 아직 못 들었어요.”
“……못 들어?”
“네. 오늘 들었는데 선생님이 들어 와서 마저 못 들었거든요.”
이이진 씨도 이승훈도 학원 아이들 도 다시금 말이 없어졌다.
바라던 대로 최지훈이 놀랐기 때문 에 만족스럽다만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말도 안 돼.”
“세상에……
“저, 정말이니? 오늘 들은 게 확실해?”
“거, 거짓말이에요! 쟤 거짓말 엄 청 많이 한다고요!”
여기저기서 뒤늦게 반응이 나오는 데, 뚱땡이가 소리를 쳤다.
이승훈과 이이진이 나를 다시 보는 것으로 대답을 구하는데, 답할 가치를 못 느껴 가만있는 와중에 옆자리 의 아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저…… 진짜예요. 도빈이가 유진 킴 연주를 좋아해서 핸드폰으로 매 일 들려주는데, 콘트라단자는 이번 이 처음이었어요.”
“처음 듣는 곡을…… 같은 악기도 아닌 걸로?”
이승훈이 내 양어깨를 붙잡곤 흔들었다.
“도빈아, 다른 건. 다른 것도 연주 해 줄 수 있니?”
“이 손부터 좀 놔요. 아파요.”
“아아. 미안. 미안.”
“뭘 하면 되는데요?”
“아무거나. 도빈이가 아는 곡이면 다 괜찮아.”
“음. 그럼 한 곡만 더 연주하면 바이올린 가르쳐 주는 거죠?”
“뭐?”
“바이올린 가르쳐 준다면서요.”
내 말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지 이승훈은 난감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승훈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보이 지 않는 이이진 씨를 보기 위해 고 개를 슬쩍 옆으로 빼자.
이이진 씨가 이승훈을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도빈이가 연주를 너무 잘해서 한 번 더 듣고 싶으신가 봐. 당연히 가르쳐 주실 거야. 그러니까 연주해 줄래?”
“네.”
케이스에 넣었던 바이올린을 다시 꺼내어 어깨에 받치곤 생각에 잠겼다.
옆자리 아이가 들려준 유진 킴의 연주에는 정말 많은 곡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감정적으로 가장 뒤흔든 곡은 이것이리라.
현을 켜기 시작했다.
처음엔 터치하듯 가볍게.
그러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전개되는, 끊임없는 횡적음 배치.
그 과정에서 전달되는 감동은 분명 희망이었다.
“Viva La Vida……
연주를 마치자 이승훈이 곡명을 작게 읊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본디 목소리로 말했다.
“이이진 선생님.”
“네, 네?”
“이 아이는 대체 왜 여기에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