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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8화 (2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28화

    8. 6살, 첫 친구(4)

    다음 날.

    딱히 상담할 사람이 없었던 배영 준, 유진희 부부는 히무라에게 배도빈의 상황에 대해 알려주면서 조언을 구했다.

    히무라 역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입장인지라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도빈 군은 뭐가 싫다고 하던가요?”

    “점심 먹고 억지로 재우려는 것도 싫고, 율동하는 것도 싫고 흙장난 하는 것도 싫고, 유치원에서 하는 건 전부 싫다고 하네요.”

    "으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히무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그런 행위를 싫어하는 이유에 대 해서는요?”

    “창피하다든지 불필요하다든지 말 했어요. ……아, 그 시간에 음악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게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역시.”

    “네?”

    “아, 네. 제 추측이 맞을 것 같아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전문가는 아 니라서 모르지만 아마 도빈 군은 지 금 자신의 상황에 대해 대단히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네요.”

    “네……. 저도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싫어해서 그런 거 라 생각했는데 이유도 곧잘 말하고. 단순히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 고요.”

    “네. 사실 도빈 군과 같은 천재는 일반적인 유치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유 치하고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도 있고, 이미 도빈 군은 자기 의사 에 대해 확고한 무엇이 있으니까요. 더불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그에 대한 목적성도 뚜렷하고요.”

    “그렇지만……

    “하하. 어머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 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나카무 라를 통해 아이 심리 상담사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엔 도빈 군의 수준에 맞춰 영재들을 모 아 둔 곳으로 옮기는 게 좋지 않을 까 싶네요.”

    “영재를 모아 둔 곳이요?”

    “영재 유치원이라고, 발달이 빠른 아이들을 관리하는 곳이 한국에도 있을 겁니다. 상담을 받아봐야겠지 만……. 저는 도빈 군이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도리어 도빈 군에게 악영향이 될지도 모릅니다.”

    “악영향이라됴?”

    “예를 들어 하고 싶은 음악을 제대 로 하지 못해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 한 행동 이상이라든가, 심하면 음악 에 대한 관심, 재능을 박탈당했다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겠죠. 많은 천

    재가 그렇게 천재성을 잃게 됩니다.”

    “••••••아아.”

    “……낙담하지 마세요. 어머님께서 도 어머니란 역할은 처음이지 않습 니까. 단지 저도 아이를 키워보고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자 식을 사랑해서 했던 행동이 어쩌면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러니 전문가에게 알아보자고 말씀드린 겁니다. 도빈 군은 특별한 아이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네요.”

    배영준, 유진희, 히무라 그리고 나 카무라는 한국 교육대학 부설 영재 교육원에 의뢰해 배도빈의 천재성을 검사했다.

    동시에 아동 심리 전문가를 초빙해 배도빈의 심적 상태를 알아보았는 데.

    오늘은 그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협진을 했던 영재교육원 이응래 교수와 김희원 상담사의 말은 예상 외였다.

    “지능 테스트 결과입니다. 지각 능 력이 또래 기준으로 상위 17%, 수 리 능력은 상위 51%. 언어 능력에서는 상위 3%입니다. 이것만 봐서는 언어 능력이 뛰어난…… 평범한 아이죠.”

    이응래 교수의 말을 들은 네 사람 은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배도빈이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건만, 나타난 지표만으로는 지능이 특출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그러나 확실히 따로 말씀하신 쪽 에서는 놀랍네요. 준비했던 기준으로는 도빈 군의 역량을 측정하기 어 려웠습니다. 이런 말 드리기가 참 아이러니한데, 천재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처음이네요.”

    “그럼……?”

    “네. 공인해 드리겠습니다.”

    이응래 교수의 설명이 끝나자 김희 원 상담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도빈 군은 비교적 행복합니다. 무 엇보다 어머님과 아버님에 대한 사 랑이 잘 드러나 있네요. 이건 어렸을 때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었다고 봐야겠죠.”

    김희원 상담사의 말에 배영준, 유 진희 부부가 서로를 바라봤다.

    “다만 최근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는 도빈 군도 유치원을 다니는 이유에 대해 잘 인 지하고 있다는 점인데, 현실적인 문 제로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데에 서 오는 거라 더 문제인 것 같네요. 스스로 그 점을 분명히 말하는 만큼 저는 두 분 부모님께서 도빈 군의 바람을 들어주는 게 옳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빈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다

    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앞으로의 사 회성을 위해서라도 유치원은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지만…… 저는 도빈 군이 사회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진 않네요. 저와 이야기하는 도 중에 여러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 네. 사카모토? 씨라든 지 이승희 씨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타인과 교류하는 데 문 제가 있어 보이진 않네요.”

    “도빈이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뿐이라……

    “물론 또래 관계 역시 중요하지만, 저는 도빈 군의 경우에는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있어 노력한다는 점부터 도빈 군 의 인격 형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네. 부모님께서는 놀라실지도 모르지만, 도빈 군은 이미 어느 정도 의 사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또래 나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요. 저와 대화를 할 때도 차분하게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했고요.”

    “부모 된 입장이신 두 분에게는 아직 어린 아들이겠지만, 도빈 군은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도빈 군과 이야기할 때는 좀 더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아이로만 본 것은 아닌지.

    배영준과 유진희는 그런 생각을 하 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상담사의 말처럼 아직 너무나 어린 아이일 뿐인데, 주변에서는 아들을 마치 하나의 어른을 대하듯이 이야 기했다.

    그럴 때마다 부부는 자신의 아들이 걱정되었다.

    뭔가를 사 달라고 때를 쓴 적도 없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도리어 부모인 그들에게 없는 집과 같은 재산을 직접 돈을 벌어 사 주겠다고 나서는 판이니 더더욱 걱정 이 될 수밖에.

    “이건 조금 조심스러운 추측이지 만…… 도빈 군과 상담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집이 가난하니 까 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부모 님 입장에서는 그게 마음 아플 일이겠지만, 저는 도리어 그런 두 분의 입장이 도빈 군을 몰아세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미안하니까 뭐라도 조금 더 챙겨 주려는 마음이 도빈 군 눈에는 자기 가 어서 빨리 자라야 한다는 것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현재 세 분 가정의 유일한 단점이라 생각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상담을 마친 배영준과 유진희 부부는 대학 부설 영재원 건물에서 나오 자마자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 *

    히무라, 나카무라와 함께 어딘가에 다녀오신 부모님께서는 나를 꼭 끌 어안으시곤 유치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너무나 반가웠는데.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영재 학원에 다니는 건 어떻겠냐는 더욱 반가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음반을 통해 현대의 음악을 듣고, 사카모토 료이치나 히무라를 통해 경험하곤 있다지만.

    현대의 음악 교육 과정에 대해서는 벌써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빈아, 엄마아빠가 너무 힘들게 했지?”

    “네?”

    “이제 도빈이가 걱정 안 해도 되게 엄마랑 아빠가 노력할게.”

    “••••••네.”

    ‘대체 어디서 무슨 말씀을 듣고 오 신 거지.’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그렇게 일이 잘 풀려 이곳 에 오게 되었다.

    “여러분, 오늘은 새 친구가 왔어요. 도빈아, 형, 누나, 친구들한테 인사 할까?”

    “안녕. 배도빈이야.”

    “어디서 왔어?”

    “몇 살이야?”

    학원 강사 이이진 씨의 요청에 인사를 했는데, 사실 일반 유치원과 그다지 다른 반응은 아니었다.

    조금 새침한 녀석들이 많다는 것을 제외하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많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인원과 구성 연령대.

    전체 인원은 서른 명쯤 있었던 저 번 유치원과 다르게 그 절반 수준이었다.

    나와 같은 나이가 아니라 몇 살은 더 먹은 아이들도 보였는데, 아무래 도 이곳에 오는 기준이 나이는 아니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쓸데없는 질문에는 대충 대답하고는 이이진 씨가 지정해 준 자리로 향했다.

    “자, 그럼 오늘은 리코더를 배워볼

    거예요. 다들 준비해 왔죠?”

    “네!”

    “도빈이는 선생님이 빌려줄 테니 따라서 해보자?”

    “네.”

    이이진 씨가 앞에서 이것저것 가르 치는 와중에 나는 리코더를 관찰하 기 바빴다.

    리코더라 하면 꽤 역사가 깊은 악 기다. 바흐 시대만 해도 독주 악기로 도 사용될 정도니 말이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소리를 조 심스레 내어봤는데, 내가 듣지 못했던 음색이 나왔다.

    ‘괜찮은데.’

    내가 활동할 시기에는 플루트라는 훌륭한 악기가 인기였던지라 그리 활용하지 않았고 그건 다른 사람들 도 마찬가지였는데, 확실히 리코더 만의 맛이 있었다.

    그렇게 한창 따라하고 있을 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더 많아 보 인다.

    “넌 뭐 잘해?”

    “ 나?”

    “응. 여기 온 애들 다 잘하는 거 하나씩 있어.”

    영재 학원이라더니,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나 보다.

    문뜩 궁금해져 되물었다.

    “다들 뭐 하는데?”

    “난 노래. 노래 부르고 싶은데 악 기 다루는 시간은 싫어.”

    ‘뭐, 노래만 좋아할 수도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니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꺼내놓기 시작한다.

    “저기 뚱뚱한 애는 바이올린이고, 저기 안경 쓴 여자애는 플루트를 잘 불어. 그리고 저기 있는 애는 피아노 치는데 곡도 만든대. 그리고 난 최웅.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아. 그 러니까 대장이야.”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똘망 똘망하게 생긴 남자애가 열심히 리코더를 불고 있었다.

    내 또래로 보였기에 피아노를 치 고, 작곡을 한다는 말에 조금은 놀랐다.

    “너도 신기하지? 쟤 이름은 최지훈 이라고 일곱 살. TV에도 나왔어. 엄청 유명해.”

    “그렇구나.”

    “……근데 너, 여섯 살 아니야?”

    “맞아.”

    “난 여덟 살이니까 나한테는 형이 라 불러야 해. 요라고 해야 하고.”

    “그래, 알았어.”

    슬슬 흥미가 떨어졌기에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할 바에는 리코더를 배우 고 싶었다.

    녀석의 말을 대충 흘리고는 이이진 씨가 말하는 내용을 귀담아듣기 시 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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