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7화 (27/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27화

8. 6살, 첫 친구(3)

“하하하! 그거 안타까운 일이군그래.”

“웃지 마요.”

한국에 일이 있어 방문한 사카모토 료이치가 시간을 내어 찾아왔다.

그에게 유치원을 가야 한다고 하소 연을 했더니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사카모토라면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그도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뭐, 친구란 좋은 거지. 도빈 군에 게 앞으로 큰 힘이 되어줄 거라네.”

“음악 할 시간도 부족하단 말이에요.”

“시간은 많이 있네. 도빈 군의 부 모님도 도빈 군이 음악만 하며 살기를 바라진 않듯, 나 역시 그러하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살았으면 하 지. 음, 또 경험이 많을수록 감수성 도 풍부해질 테니까.”

이 태평한 친구, 남의 속은 모르고 잘도 그런 말을 한다.

몇십 년간 청각을 잃고 하고 싶었던 음악을 다 하지도 못한 채 죽은 나는 인생이 덧없이 짧다는 것을 누 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남은 시간이 애석하게 느껴질 정도 인데 말이다.

“그나저나 미국에 가지 못해 아쉬 워.”

“괜찮아요.”

“음. 실은 11일 뒤에 그래미 어워 드 시상식이 있어서 말이지. 도빈 군과 함께 참석하려고 했는데, 다음 기회를 봐야 할 듯하군.”

“그래미 어워드?”

“음. 음악인들의 축제지.”

사카모토 료이치는 그래미 어워드 에게 대해 이것저것 말해주었는데, 세계 각국의 천재들이 모인다니 나 도 조금은 혹했다.

“뭐, 말했듯이 기회는 많으니까. 내 년에는 어쩌면 수상자로 갈지도 모 르고 말이야. 하하.”

누가 내게 상을 준다면 누가 감히 나를 평가하냐고, 버릇없다고 꾸짖을 테지만 사카모토 료이치는 내심 그러길 바라는 듯했다.

“그러려면 준비하고 있는 앨범을

완성해야겠지. 지난번에 보여준 바이올린 독주곡은 인상 깊게 받았네.”

“들어볼래요?”

“좋지.”

히무라가 사준 바이올린을 들고 자 세를 잡자 사카모토 료이치는 어린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나를 응시했다.

내 악보를 볼 때도,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도 저랬는데 참으로 솔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소풍’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풍은 4악장으로 구성했으며 하나 의 악기만 사용하는 만큼 단조로울 수 있는 것을 의식해 변화를 많이 준 곡이었다.

후대의 음악을 들으면서 바이올린 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내게 있어서는 새로운 시도.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들려줄 것은 3 악장.

내 기쁨을 나타낸 정수다.

연주를 마치고 눈을 뜨자 그것이 성공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여운을 즐기듯 눈을 감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려 주자 이윽고 사카모토가 박수를 보냈다.

“대단해. 악보만 봤을 때보다도 훨 씬 와닿는군. 도빈 군이 바이올리니 스트로서도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구만. 이만하면 당장 연주자로 활동 해도 되겠어. 하하하!”

사카모토 료이치의 진심 어린 말에 나 역시 웃을 수 있었다.

“그럼요.”

“그러고 보니 이전에 이승희 양이 바이올리니스트를 찾는 것 같던데. 흠. 한번 물어봐야겠군.”

“이승희?”

“아아. 자네도 알고 있겠군. 부활의 녹음을 함께했다지?”

“네.”

“바이올린 연주자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서 말이야. 늙어 서 그런지 잘 기억나질 않는군.”

사카모토 료이치는 고민을 하다 싶더니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곤 쓸데없는 말을 꺼냈다.

“아무튼 유치원 입원을 한다고 하니 축하하네. 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사카모토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한국에 남은 며칠간, 그는 내 바이올린 연주에 영감을 얻어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바로 그와 함께 협주를 하는 것.

그가 고른 악기가 클래식 기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 신선한 조 합에 흥미를 느껴 곧장 즉석해서 곡을 만들었고.

사카모토와 함께 조율한 끝에.

첫 앨범의 여덟 번째 곡으로 삼았다.

해가 바뀌어 2011년 봄.

사카모토 료이치와 바이올린과 기 타를 위한 현악 협주곡 두 곡을 만 드는 사이에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우리 도빈이 너무 귀엽다.”

“도빈아, 아빠 봐봐. 사진 한번 찍자.”

“싫어.”

“응?”

“아빠 싫어요.”

“도, 도빈아.”

아버지께는 다시는 애교를 부려드 리지 않는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결국에 울먹이는 아버지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 포기할 수밖 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노란색 가방을 메고 있는 나를 끌어안으셨고, 아버지께 서는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찍기 위 해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셨다.

그간 유치원에 가기 싫어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결국엔 현대 대한민국 에서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환경 은 접해야 한다고 내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슬프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 보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는 버스보다는 조금 작은 차에 타 유치원이라는 곳으로 끌려 갔다.

“안녕? 넌 누구야?”

“이름이 모야?”

차에 올라타자마자 어린아이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

한숨을 푹 내쉬자 이내 내게 관심을 끊고 저들끼리 놀기 시작한다.

고통 받을 것 같다.

“어린이 여러분, 자기소개 시간이 에요. 다들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자기 이름과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해보는 시간이 에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방금 설명 들었잖아.’

그러나 유치원 교사는 꽤 능숙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한심한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선생님을 잘 따라해 보세요. 저는 김다래입니다. 행운동에 살고요.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어때요. 잘할 수 있겠죠?”

“네!”

유치원 교사 김다래 씨의 설명 뒤로 한 사람씩 일어서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다들 꺄르륵, 꺄르륵 웃어 댔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이들에 맞춰 웃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 그럼 다음은 우리 친구. 소개해 볼까요?”

“저요?”

“네. 친구요.”

김다래 씨와 유치원생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섰다.

“이름은 배도빈입니다. 행운동에 살고 음악을 좋아합니다.”

“와, 도빈이는 말투가 엄청 어른스 럽구나?”

“선생님! 음악이 뭐예요?”

“음악? 도빈아, 음악이 뭔지 친구 들에게 알려줄 수 있니?”

김다래 씨의 말을 듣곤 주변을 둘 러보았다.

코를 찔찔 흘리고 있는 친구도 있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보는 애도 있고.

기껏 음악이 뭐냐고 물어본 아이는 옆에 있는 애랑 손장난을 치고 있다.

“……무리예요.”

무리다.

“자, 어린이 여러분. 오늘은 동요를 배워볼 거예요. 선생님을 따라서 율 동을 하며 즐겁게 불러 봐요.”

“네!”

MM

단조로운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어 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유치원 교사 김다래(29세) 씨가 따라 부른다.

엉덩이를 씰룩이면서.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4분의 4박자. 음 변화가 많지는 않지만 쉬운 멜로디에, 반복이 되어 아이들이 기억하기에도 좋다.

동요라는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잘 만든 곡인데, 문제는 전생과 이생을 합쳐 육십 먹은 내가 그걸 부르면서 엉덩이를 씰룩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선생님! 도빈이가 안 하고 가만있어요!”

“도빈아 왜 그래?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다, 이 아가씨야.

“그냥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 그리 답 했거늘, 김다래 씨는 흔히 듣는 투 정으로 보였던 것 같다.

“노래 부르는 게 얼마나 재밌는 일 인데. 같이 해보자. 친구들도 같이하잖아. 친구들, 도빈이 친구한테 같이 하자고 해볼까요?”

“같이하자〜”

정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씰룩씰룩.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꽃동산.”

씰룩씰룩.

* * *

“아아아악!”

저녁 시간에 퇴근한 배영준은 아들 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처음 보고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물었다.

“도빈이 무슨 일 있었어?”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아요.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선생님에게 물어도 며칠간 잘 지냈다는 이야기밖에 없고요.”

“흐음.”

아기 때도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법이 거의 없었던 배도빈이었기에 배영준은 뭔가 일이 있었으리라 확 신했다.

그 이야기를 유진희에게 하자 그녀 역시 남편과 같은 생각이었다.

“친구하고 싸웠을까요?”

“글쎄. 그래도 우리 도빈이 어른스 럽잖아. 우선 진정하고 물어보면 이야기해 줄 거야.”

배영준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유치원에 다닌 지 이제 일주일이 된 어린 아들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도빈아, 아빠 왔다.”

생전 그런 법이 없었거늘.

아빠 왔다는 말에도 악보나 들여다 보고 있던 배도빈이 그날 처음으로 고개를 벌떡 들어 배영준을 본 뒤에 달려들었다.

그러곤 배영준에게 꽉 안기며 외쳤다.

“아빠, 나 유치원 진짜 싫어요. 가 기 싫어.”

최근 전과 달리 냉랭해진 아들이

이렇게나 간절히 말하자, 배영준은 아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고 안심하면서도.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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