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26화
8. 6살, 첫 친구(2)
깜짝 놀라 뒤집어질 뻔했다.
어머니께서 내 마음을 정확히 읽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히무라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히무라 역시 놀란 눈치다.
“도빈아, 엄마야. 도빈이가 하는 생 각 엄마가 모를 것 같아?”
‘무서운데.’
어머니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하는가.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미 확신하고 계신 듯하니까.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인연이 닿겠죠. 무리해서 갈 필요 없어요.”
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히무라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으이구.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었니?”
어머니께서 나를 꼭 안으시곤 시간을 확인하셨다.
“아,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일은 도빈이 아빠랑 이야기해 볼 게요. 아직 두 달이나 남았으니 곧 장 정하지 않아도 되죠?”
“그럼요. 괜찮습니다.”
“네. 그럼 오늘도 도빈이 잘 부탁 드려요. 도빈아, 엄마 일하러 갈게. 오늘도 음악 재밌게 해.”
“네. 다녀오세요.”
다시금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나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배도빈과 유진희가 이메일을 확인 하고 나간 뒤 배영빈은 다시 자리를 차지하곤 인터넷을 하는 중이었다.
일요일이겠다, 학원을 갈 필요도 없으니 오늘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실컷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 기사란에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여섯 살 천재 음악가……? 도빈이 이야긴가? 도빈이 다섯 살 아니었나?”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의 유물: 1 부’에 사촌동생이 만든 곡이 수록되었기에 배영빈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도리어 좀 늦은 편이지.’
학교 친구들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봤자 다들 거짓말로 생각할 뿐이 라 억울했던 배영빈은 서둘러 기사 제목을 클릭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잔뜩 기대하고 있던 배영빈은 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거짓말쟁이라고 자기를 무시했던 반 친구들에게 증거를 보여주려 했는데 잔뜩 실망할 뿐이었다.
“뭐야. 도빈이 이야기 아니잖아? 최지훈?”
인터넷 기사의 내용은 최지훈이란 여섯 살 난 아이가 전국 학생 음악 경연대회 유치부에서 우승했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최지훈은 벌써부터 작곡을 하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아 여러 곳에서 음반 작업 제의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소개되었다.
“왜 이런 애 기사는 나는데 우리 도빈이 기사는 없는 거야?”
음악에는 아는 것이 없었던 배영빈 이었지만, 척 봐도 비슷한 나이의 사촌동생 배도빈이 훨씬 더 대단하 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시리즈 영화의 테마곡도 내지 않았는가.
아직 음악을 발표조차 못한 아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닌가? 얘도 잘하는 건가?”
배영빈은 의아해하며 배도빈의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 있다. ……아니잖아.”
그러나 동명의 다른 사람의 기사였고 음악가도 아니었다.
어디를 봐도 다섯 살 음악가 배도빈에 관한 이야기를 찾을 순 없었다.
“왜 없어? 우리 도빈이가 얼마나 대단한데?”
배영빈이 그렇게 씩씩대고 있을 때.
“영빈아! 주말이라고 그렇게 자꾸 게임만 할 거야? 엄마랑 교회 가야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 진짜 싫은데. 교회는 왜 자꾸 가자는 거야.”
배영빈은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껐다.
“ 나갈게요.”
“늦었다. 서둘러!”
“가요! 간다고요!”
녹음실에서 바이올린을 연습하다가 돌아오자 어머니께서 밥을 차리고 계셨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포함해 여 섯 식구가 오랜만에 같이하는 저녁 식사 자리다.
“그랬어?”
“네. 당신도 일 빠지기 어려울 텐 데. 어쩌죠?”
“음. 도빈이가 가고 싶다면야 어떻게든 해야겠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시는 중이다.
굳이 또 내가 괜찮다고 하면 여린 아버지는 가슴 아파하실 것이 뻔해서 묵묵히 밥이나 먹고 있는데, 배 영빈이 입을 열었다.
“작은엄마, 도빈이 기사는 왜 안 떠요?”
“기사? 무슨 기사?”
“네. 도빈이랑 비슷한 나이인 애는 대회 입상했다는 것으로도 소개되던데.”
“그러니?”
“네. 여기.”
배영빈이 핸드폰을 만지더니 그것을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어머, 어린데도 기특하네.”
“그러게.”
어머니와 아버지께선 또 그것을 유심히 보신다.
신문에 나든, 그러지 않든 중요한 일은 아닌데 말이다.
“얘는. 신문에 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니? 뭘 했다고 그런 데 소개되겠어.”
‘저 아줌마가.’
그러나 큰어머니가 내뱉은 무례한 말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꽤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내 음악이 팔리는 곳이 그쪽이라곤 해도 말이다.
어머니와 함께 보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은 어린 천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
수학 천재, 미술 천재, 노래 천재 등등 TV에 소개되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던 탓에 나는 그걸 신기하게 보곤 했다.
‘어린데도 산수를 저렇게 잘하네’ 라든지 말이다.
“아이, 그건 엄마가 몰라서 하는 말이고. 도빈이가 한 게 얼마나 대단한 데요. 영화 음악도 만들었잖아요.”
“그냥 적당히 넣었겠지. 그거 가지고 뭐.”
“허, 당신은 그, 조카가 그런 일하면 칭찬 좀 하면 어디 덧나요? 그 밥상머리 앞에서 굳이 그렇게 쓸 데없는 말을 해야 하나.”
“왜 나한테 뭐라고 그러세요? 참 나. 그렇게 잘났으면 빨리 방이나 얻어서 나가지.”
‘저 아줌마가 미쳤나. 자꾸 짜증나게 하네.’
지금은 큰아버지와 배영빈을 봐서 참고 있지만 언젠가는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
최근 들어 더욱 우리 가족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는데, 아버지 께서 꾸준히 생활비를 드리고 있음 에도 저러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 후.
“도빈아, 정말 괜찮아?”
“네. 괜찮아요.”
저녁을 먹은 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곤란한 것이 싫어 미국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내 비쳤다.
그러나 두 분께선 여전히 내가 가 고 싶은데 억지로 참는 거라 생각하 시는 모양.
비행기를 타기 싫은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도빈이에게 좋은 기회일 텐데.”
“나중에 그 사람이 한국에 찾아오 게 하면 돼요.”
“아쉬운 사람이 오는 거잖아요. 그 사람이 아쉬우면 찾아올 거예요. 그럼 돼요.”
어머니께선 한동안 말을 못 하시더니 이내 웃으셨다.
“도빈이 요즘 말 많이 늘었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는 거니? 아빠 책에서 봤어?”
“……네.”
한국말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내 생각을 전달하는 일에도 익숙해졌는데,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아버지의 책을 통해 배웠다고 생각 하시는 모양이다.
뜻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말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편이 귀찮은 설명을 더는 일이다.
어머니께선 그래도 기특한지 내 뺨을 어루만지시는데, 문득 무엇인가를 떠올리신 것 같다.
“맞다. 도빈이도 이제 곧 유치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친구들 생기겠네?”
“유치원?”
“그래. 도빈이랑 비슷한 나이 친구 들이 모여서 동요도 부르고 춤도 배 우고 노는 곳이야.”
동요를 부르고 춤을 배우며 노는 곳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꼭 가야 해요?”
“그럼. 도빈이 친구 만들고 싶지 않아?”
“친구라면 사카모토 료이치 있어요.”
“사카모토 선생님도 좋은 친구지만 그래도 또래 친구 만들고 싶지 않아?”
또래라고 해봤자 다섯, 여섯 살 먹 은 젖먹이일 뿐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이성적 사고라고는 조금도 못 하는 미성숙자들과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관심 없어요.”
“도빈아, 친구라는 건 정말 좋은 거야.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 해 주고, 슬픈 일은 나눌 수 있고. 도빈이한테 큰 도움이 될 거란다. 도빈이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방금 지훈이라는 친구처럼 말이야.”
어머니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반드시 나를 유치원이라는 곳으로 보내시겠다는 생각이신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 아이들에게는 조 금도 관심이 없고 더욱이 내년 초에는 앨범을 완성하고 싶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다녀야 해요?”
“2년? 백 밤 자면 돼.”
어머니께서 나를 속이려 하신다. 1 년이 365일인데 어떻게 백 번 자면 된다고 하시는가.
너무 길다.
내가 놀라자 어머니께서 웃으신 뒤 나를 진정시키려 하셨다.
“걱정 마. 하루 종일 가 있는 게 아니고 아침에 가서 오후 3시까지만 다니면 돼. 도빈이 3시 알지?”
안다. 너무나 잘 안다.
아침에 가서 오후 3시까지 그런 쓸데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 다니, 더욱이 짧게도 아니고 몇 시 간이나.
진정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저 앨범 만들어야 해요. 너 무 길어요.”
“앨범도 중요하지만 엄마는 도빈이 가 친구도 사귀고, 공부도 했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맞는 벗이라면 나도 환영이다.
그것이 사카모토 료이치처럼 존경 할 만한 음악가라면 더욱 좋다.
코흘리개 꼬맹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공부는 할게요. 네?”
“도빈아, 자꾸 혼자만 지내면 외로울 텐데? 어른들하고만 놀면 나중에 도빈이 크면 친구 없어질 텐데 괜찮아?”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어린 아들의 사회성을 염려하시는 모양.
내가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교류관계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예전에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불같은 성정이었다.
그때는 여러 상황이 겹쳤기에 나 자신도 나의 분노와 화를 조절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나를 괴롭히는 요인은 조금도 없으며, 도리어 행복에 겨울 정도.
내가 얌전히 지내는 것도 모두 이 새로운 환경에 충분히 만족하고 안락함을 느끼는 덕분인데, 어머니의 눈에서는 다르게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친구를 만드는 게 싫은 것이 아니고.
코흘리개들을 상대하느라 음악을 할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은 거다.
“가기 싫어요.”
“그럼 엄마도 도빈이 음악 하는 거 싫어요.”
어머니를 설득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낯이 간지러워 잘은 하지 않지만 아버지를 공략하는 수밖에.
“아빠, 도빈이는 유치원 가기 싫어요."
아버지에게 안기며 고개를 들어 올 려다보자, 아버지께서는 난감하다는 듯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셨다.
그러더니.
“크, 크흠. 도빈아, 엄마 말씀 잘 들어야지?”
이제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려드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