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3화 (2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23화

    7. 5살, 위대한 도약(5)

    “왜요?”

    “도빈 군의 악보는 알아보기 너무 어려워. 이번에는 직접 와서 그것을 수정하고 미팅을 통해 오류를 줄였지만 다음에도 이럴 수 있다는 보장 은 없지 않은가.”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악보에도 감정을 담아야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어요.”

    “그건.”

    이 부분은 사카모토 료이치도 생각 지 못했던 일이었는지 잠시 고민하 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좋은 일이군. 그럼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 감정을 담아 열정적으로 쓰되 남이 알아볼 수 있도록 쓸 수 있게 노력해 보게. 내가 도와주지.”

    이번에는 내가 당황했다.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악필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 악보가 그렇게 보기 어려워요?”

    “음. 어렵지.”

    “실은 자네가 사인을 해준 것도 한국인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무슨 글씨인지 못 알아보더군.”

    료이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그런가 싶어 나는 고뇌에 빠졌다.

    확실히 타인의 악보를 보면서 깔끔 하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발군이었던 것은 ‘프란 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 bert)’.

    그의 악보는 수정이 거의 없었는 데, 알아보기도 쉬웠다.

    안젤름 휘텐브렌너는 그가 너무 가 난했기 때문에 악보를 살 돈마저 부족했던 터라, 조심스레 사용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죽기 얼마 전에 그의 악보를 처음 보곤 조금이라도 일찍 그를 만났더라면 하고 아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옛 생각이 떠올랐지만,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시폰 케이크를 먹었다.

    “도빈아, 더 줄까?”

    “네.”

    시폰 케이크는 맛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연주회를 들으며 즐거운 날을 보내다 보니 어 느새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 왔다.

    “그럼 잘 부탁하네, 토마스 필스 경.”

    “걱정 말게. 마음 같아서는 이 어 린 천재와 함께 있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내 힘 닿는 데까지 해보겠네.”

    사카모토 료이치와 인사를 나눈 토 마스 필스(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지휘자)가 자세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 쳤다.

    경험상,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주는 사람은 믿을 만하다.

    “도빈 군, 자네의 곡을 연습하면서 크게 감명 받았네. 이 곡은 반드시 완벽히 녹음하겠어. 내 기사작위를 걸고 맹세하지.”

    굳이 통역을 듣지 않아도 그의 표 정과 목소리 그리고 그간 볼 수 있

    었던 그의 지휘자로서의 능력만으로 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기사작위라니.

    지금은 신분제가 폐지된 줄 알았더 니 아직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럼 다음에 보세.”

    “다음에 봐요, 필스.”

    “하하! 암. 그래야지! 기대하겠네.”

    * * *

    미국에서 나는 4일 동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연주를 마음껏 듣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die meiste HoffnimgC가장 큰 희 망)’을 연주하는 것도 그러했으며, 자체적인 정기 연주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영적 충족감을 느낄 정 도였다.

    그러나 아쉽지만 그들의 일정도 있었기에 ‘die meiste Hoffnung(가장 큰 희망)’의 녹음이 마치는 순간까 지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들의 연주를 직접 확인했기에 큰 걱정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큰 산이 하나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로 돌아온 뒤로 사카모토 료이치가 내준 숙제를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

    사카모토 료이치는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었다.

    그의 말은 대체로 옳았기에, 나 역시 문제점을 인지하고 노력했지만.

    “하하하. 아직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그럴 거야.”

    내 글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히무라는 내게 컴퓨터로 악보를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도빈아, 예전에 인터넷에 올렸던 것처럼 컴퓨터로 만들어보는 건 어때?”

    “컴퓨터?”

    히무라는 정해진 것을 활용하기에 아무리 악필(나는 절대로 악필이 아 니다)이라도 정확한 악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고.

    그 말에 나는 용기를 얻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컴퓨터라고는 사촌형 배영빈의 것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배영빈이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통에 활용할 수 없었다.

    저축액이 있긴 하지만 어머니, 아 버지께 집을 장만해 드리는 게 최우선이었기에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듣자 하니 보통 비싼 물건이 아니 기 때문이었다.

    “배울래요.”

    “정말? 한번 배워볼래?”

    “네. 그러니까 컴퓨터 사 주세요.”

    “커, 컴퓨터를?”

    착한 엑스톤은 그날로 그들이 마련

    해 준 내 녹음실에 컴퓨터를 설치해 주었다.

    듣기로는 안 그래도 비싼 컴퓨터 중에서도 어마어마한 가격의 물건이 라고 하던데.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계약금이라며 돈도 주고, 음악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해 준 데다 가 사카모토 료이치와 같은 음악 친 구들도 소개해 준 것은 물론.

    피아노와 컴퓨터까지 사 주니 말이다.

    ‘아주 기특한 사람들이야.’

    엑스톤이, 아니, 히무라와 나카무라 가 내게 신경 써주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에 대한 보답을 해줄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그 날 이후 나는 프로듀서 히무라 에게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는데, 히무라 본인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 이라 어느 정도 말이 통할 거라 생 각한 게 오산이었다.

    그의 말은 사카모토 료이치와 달리 이해하기 어려웠고, 곡을 만드는 방식 역시 하늘과 땅 차이였다.

    히무라는 음악을 코드라는 것으로 만들었는데, 화성악도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에 나는 크게 놀랐다.

    180년의 시간 차이로 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사카모토 료이치는 그러 지 않은 걸 보면 히무라가 바보가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에 차 이가 있는 와중, 거기에 컴퓨터까지 끼니 나는 도무지 히무라의 설명에 따라갈 수 없었다.

    그나마 보컬라이드를 사용하면서 마우스를 움직이는 법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컴퓨터로 악보를 만드는 데 그리 큰 도움은 되지는 않았다.

    “자, 도빈아 이게 여기에 있으니까 마우스를 움직여서 클릭하고. 저장은 이렇게 하는 거야. 단축키는……. 아, 혹시 실수를 해서 돌이키고 싶을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단다. 쉽지?”

    쉽긴 뭐가 쉽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배영빈도 마찬가지였지만 히무라도 남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일에는 영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저번에 지니위즈 시리즈의 스토리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걸 생각해 보면 확실하다.

    “처음이라 그래. 자, 천천히 다시 해보자. 음표는 여기에 있고.”

    “오선지라 생각하면 편할 거야. 도빈이가 연필로 그리는 걸 여기서 선 택해서 옮기면 되는데, 반복되는 게 있잖니? 그때는 편하게 이렇게 복사를 해서.”

    “아, 그렇게 하면 안 돼. 앞에 작 업해 둔 게 망가지잖니. 중간중간 저장을 해두는 것도 좋지만 방금 설 명해 줬지? 이럴 때는 이렇게 이거랑 이거, 이거를 한 번에 누르면 바 로 전 상황으로 돌아올 수 있어.”

    “기존에 있던 멜로디를 따오려면 여기를 눌러서 예전에 저장했던 파 일을 끌어오거나 하면 돼. 여기서는 음정을 조절할 수 있는데.”

    “한 가지씩 좀 말해요! 한 개도 모르겠네!”

    기껏 의욕을 냈건만.

    요즘 한글을 배우는 것도 벅찬데 이해하기 힘든 것까지 배우려고 하 니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히무라는 자기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줄로 착각하는데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나하나 차근히 알려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있는 대로 많은 이야기를 해대니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 억에 남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엔 폭발하여 차라리 남들이 말 하는 내 ‘악필’을 고치는 게 더 쉽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으응..."

    고민하던 히무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건 어때? 봐.”

    •W J)

    “어?"

    신시사이저 앞에 앉은 히무라가 연주를 시작하니 컴퓨터 화면에 악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서 화면과 히무라를 번갈 아 보니 히무라가 웃으며 연주를 멈추곤 마우스를 움직이자.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왔다.

    정신이 번쩍 뜨였다.

    연주와 악보를 보고 눈치챘지만 방 금 히무라의 연주가 정확히 반복되는 것이었다.

    조금의 차이도 없이!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앞으로 도빈이가 이걸로 연주를 하면 자동으로 악보로 저장을 할 수 있을 거란다. 조작만 하면 바이올린 이든 피아노든 무슨 악기든 악보화 하는 게 가능하지.”

    “왜 이걸 지금 알려줘요!”

    “하하. 그러게. 조금만 생각하면 이런 방법이 있었는데. 앞으로 세부적 인 조작도 할 줄 알아야겠지만 일단 은 이걸로 괜찮지 않을까?”

    “히무라 천재야!”

    이런 좋은 게 있었으면 진즉에 내 놓을 것이지!

    귀찮게, 아니, 감정을 불어넣은 걸 굳이 기호를 정자로 적지 않아도.

    그렇다고 어려운 컴퓨터 조작법을 익히지 않아도 된다니 더할 나위 없었다.

    환영, 대환영이다.

    더군다나 연주가 그대로 녹음되고 악보가 되니 수정을 할 때도 편리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거라면 나라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의자에 앉아 신시사이저에 손을 뻗었는데, 일반 피아노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했다.

    “히무라 아저씨.”

    “응?”

    “이거 바이올린이랑 연결해도 된다 고 했죠?”

    “아아. 그럼.”

    “바이올린 사 주세요.”

    “……어? 바이올린도 켤 줄 알아?”

    고개를 끄덕이니 히무라가 황당하 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악기는 5살 때부터 익혀왔다는 걸 알면 까무러칠 것만 같은 얼굴이다.

    “그런데 바이올린은 갑자기 왜?”

    “아, 이거 신시사이저 조금 불편해서요.”

    “아, 그거라면 네 피아노에 연결할 수도 있어. 내일 연결해 줄게. 신시 로 하는 것과 달리 소리 인식이라 부정확하긴 해도 수정하는 법만 배 우면 수월할 거야.”

    “정말요?”

    “그럼.”

    “아, 근데 바이올린은 사 주세요.”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