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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2화 (2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22화

    7. 5살, 위대한 도약(4)

    다음 날 이른 저녁.

    존 리처드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한참을 이동하고 차에서 내리니 이 상하게 생긴 건축물이 보였다.

    벽면이 휘어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각자 자기 멋대로 있는 건물을 보며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 은빛 건축물은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었다.

    “모던하네요. 정말 멋있어요.”

    어머니께서 입을 떼셨다. 당연하게 도 영어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하하. 아직 감탄하시기엔 미릅니다. 시간이 있으시다면 따로 예약을 해드리겠습니다. 도슨트 리드 투어 라고 점심시간에 마련된 가이드가 있으니까요.”

    “도빈이가 좋아하겠네요.”

    존 리처드가 뭐라 뭐라 답하고 어 머니께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즐거우신 듯하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존 리처드는 그 은색의 곡선 벽면 가운데 뚫린 길로 나와 어머니 그리고 사카모토 료이치를 안내했다.

    “멋지지? 프랭크란 친구가 디자인 했단다.”

    존 리처드가 이번에는 내게 뭐라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서 무시했다.

    ‘사람 정말 많네.’

    서울에도 사람이 많다고는 생각했는데 이곳은 더욱 북적인다.

    서둘러 걷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 등등 모든 사람이 머리색과 피부색도 달랐고 정말로 다양했기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빈아, 손.”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는데 어머니 께서 손을 내미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복잡해졌기에 나도 혹시나 미아가 되진 않을까 싶어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

    인파를 헤치고 지나자 곧 넓은,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크기의 홀이 나왔다.

    내가 고개를 들어 사카모토 료이치를 올려다보니, 그가 싱긋 웃으며 말해주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콘서트에 초대 받은 걸세.”

    “초대?”

    사카모토의 말 중에 초대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되묻자 그가 짐짓 놀란 듯했다.

    그러나 이내 평소대로 대답을 했고, 그것을 통역가 누나가 전달해 주었다.

    “곧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콘서트가 시작되는데, 존 리차드가 힘을 써주었지. ‘가장 큰 희망’을 연주해 줄 사람들이니 기대해도 좋네.”

    사카모토의 말을 전해 들은 뒤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정말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을 다시 옮겼는데.

    “와.”

    “어머나.”

    나와 어머니 그리고 통역을 위해 함께한 아가씨도 내부에 들어서고 놀라고 말았다.

    정말 휘황찬란했기 때문이다.

    잘린 구 형태의 홀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카모토 료이치가 제작자 신분으로 온 덕분에 좋은 좌석에 자리할 수 있었다.

    현대의 ‘Orchester(관현악단)’ 연주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잔뜩 기대를 하였다.

    이들이 ‘die meiste Hoffnung(가장 큰 희망)’을 연주해 줄 사람들이라 고 하니 콘서트에 더욱 집중할 수밖 에 없었다.

    연주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고 잠시 뒤 지휘자로 보이는 남자가 단상 에 서서 인사를 했다.

    그는 오케스트라 구성원들과 시선을 교환한 뒤 마지막으로 악장을 보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손을 올렸다.

    ‘만프레드 서곡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선율이다.

    슈만은 그 풍부한 수직적 음 배치 뿐만이 아니라 전개에 있어서도 번 민하는 감성을 놀랍도록 잘 풀어나 갔다.

    그의 관현악을 들었을 때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그가 나와 상 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연주 그리고 지휘자의 곡 해석과 지휘.

    JU》

    역시나.

    사카모토 료이치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라고 설명해 주었던 것처럼 모두 상당한 실력자다.

    모두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면서 발생하는 시너지는 마치 음표들이 모인 악보와 같았다.

    조금의 엇나감조차 없다.

    만프레드 서곡의 악보를 보지 못했기에 확신할 순 없지만 지휘자의 곡 해석 역시 마음에 든다.

    그는 슈만이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 변화를 상당히 강조하였는데, 내가 들었던 녹음본과는 달랐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도 뛰어난 음악가가 많다는 것 에 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첫 연주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차 분해져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들의 실력을 확인한 덕분이다.

    ‘이건 처음 듣는 곡이군.’

    다음은 다단조(C minor), 알레그로 (Allegro)로 시작하는, 처음부터 팀 파니가 앞서는 곡이었다.

    그러나 이내 밀려드는 압도적인 선 율의 파도에 나는 압도되었다.

    그렇게 음들이 여럿 함께하는데도 소리가 깔끔한 것을 보면 확실히 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수준이 뛰어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앙상블이라면 그 음이 조금 이라도 틀렸다간 금방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조화로운 연주가 깨지는 일은 없었다.

    이런 곡이라면 어지간한 오케스트라는 연주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기에.

    나는 이 곡을 연주하는 저들에게 감탄하며 동시에 이 훌륭한 곡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완벽했다.

    “두 번째 곡은 뭐였어요?”

    “아아. 브람스 말이로군.”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라고 한다네. 위 대한 음악가지.”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을 전해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음악을 찾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행과 저녁을 먹은 뒤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

    ‘가장 큰 희망’의 녹음을 듣기 위 해, 나와 사카모토 료이치는 존 리처드의 안내를 받아 다시 한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찾았다.

    조금 늦은 아침,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는 들렸는데.

    어머니께서 존 리처드가 월트 디즈 니 콘서트홀을 안내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요상하게 생긴 건물 이곳저 곳을 구경하였는데 솔직히 조금도 관심이 없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왜, 도빈아? 재미없니?”

    “네.”

    가장 중요한 일을 두고 돌아가는 느낌이라 몸이 달아오를 뿐이라 결 국에는 30분쯤 흘렀을 때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사카모토 료이치가 기 다리고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그곳으로 때마침 한 남자가 나와 비슷하게 도착했다.

    어제 그의 지휘에서 상당한 인상을 받았기에 우리를 마중 나온 나이 많은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갑네, 료이치 사카모토.”

    “하하. 1년 만으로군. 건강해 보이 네, 토마스 필스 경.”

    사카모토 료이치와 인사를 나눈 로 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지휘자는 어 머니께도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환영합니다, 미시즈 유.”

    “안녕하세요, 토마스 필스 경. 초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배도빈 작곡가와 함께 할 수 있어 기쁠 뿐입니다.”

    그렇게 어머니와도 인사를 나눈 토 마스 필스라는 사람이 내게도 손을 내밀었다.

    “정말 반갑네. 토마스 필스라 하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지휘를 맡고 있지.”

    “안녕하세요.”

    그의 손을 잡자 그가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단원들을 소개해야 할 텐데, 시간이 부족하니 양해해 주게. 악보는 미리 전달 받았으니 미팅부터 바로 시작하지.”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가 2010년 11월에 개봉 예정이었는데,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 야 하고 홍보를 위한 영상에도 음악 이 필요한데.

    내 수정 작업이 길어졌기에 일정이 촉박하다고 사카모토 료이치가 말해 준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예고편에는 내 곡이 들 어가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도 함께.

    ‘예고편은 뭐지?’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과정에 대 해서는 모르지만.

    연주회가 있는 날까지 악보를 완성 하지 못해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던 경험이 많았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 한 오케스트라곡을 준비했으며, 영 화에도 많은 사람이 참여했을 것이 뻔했기에.

    나 역시 나름 서두른다고 했는데 그래도 늦은 모양이다.

    미팅실에 앉고선 곧장 내가 생각했던, 지휘자가 꼭 알고 있어야 한다

    고 생각하는 몇몇 부분을 집어 이야 기했다.

    “여기는 관악부가 강조되어야 해요.”

    “첼로가 한 대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음량이 커야 더 효과적 일 거예요.”

    “여기는 빠르게. 템포가 늦어지면 안 돼요.”

    20분 정도 흘렀을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중간에 통역을 하는 사람이 내 말을 이해하 지 못한 경우도 있어서(아마 내 어 휘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몇몇 부분은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지휘를 하고 싶지만 아마 그것은 어려울 거 라고 사카모토 료이치가 말했다.

    확실히 연주자들과의 호흡 문제부 터 ‘5살 아이’의 지휘를 제대로 들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어 그 마음을 잠시 접어둬야 할 듯 했다.

    “흐 ”

    그간 잠자코 내 말을 듣기만 했던 토마스 필스가 악보를 다시 한번 조 율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펜을 내려놓곤 사카모토 료이치를 보며 웃었다.

    “실은 자네가 담당한 곡 중에 하나를 아이에게 맡긴다고 해서 의심이 되었다만, 이거 내가 잘못 생각한 듯하네.”

    “하하하. 내가 뭐라 했는가.”

    “믿을 수가 없어. 작곡을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악보를 적고, 이 악보가 어떻게 연주될지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다니 말이야. 어쩌면 자네보다 나은 거 아닌가?”

    “이런. 들켰나보군. 하하하!”

    “하하하!”

    두 사람이 뭐라고 떠드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 보인다.

    “녹음은 3일간 진행할 걸세. 자유 롭게 들어도 좋지만 기왕이면 완성 한 것을 들려주고 싶군. 우리의 작은 음악가가 기뻐할 수 있게 말이 야.”

    토마스 필스의 말을 들은 사카모토 료이치가 통역가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더니 통역 아가씨가 내게 토마스 필스의 말을 전달해 주었다.

    믿을 만한 실력자인 것은 맞지만 내 곡을 어떻게 연주하는지는 꼭 한 번 확인하고 싶었기에 나는 내일 들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언제든지 환영하겠네.”

    토마스 필스가 다시 한번 내게 악 수를 청했다.

    내 교향곡들이 내 의도와 조금씩 다르게 연주되었기에 걱정했던 나로 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스엔젤로스 필하모닉의 연주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내가 의도한 모든 것을 지킨 것은 아니었지만 허용 범위 내에서 그들의 스타일에 맞게 정말 잘 연주를 하였다.

    하루 그들의 연주를 들었던 나는 이내 그 걱정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있었고.

    나중에 완성된 곡을 다시 한번 듣기로 약속한 뒤 어머니와 즐거운 시 간을 보냈다.

    단지 사카모토 료이치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놀랐을 뿐 이다.

    “도빈 군, 악보를 적는 법을 다시 익혀야 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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