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1화 (2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21화

    7. 5살, 위대한 도약(3)

    히무라가 통역해 준 미국이란 나라 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뭔가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는 와 중에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인데.

    영어를 쓰는 곳이라는 히무라 프로 듀서의 부연 설명에 나는 예전 영국 의 식민지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독립을 했다는 건 들어본 것 같은데.

    그곳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비록 형식은 가장 ‘고전 스러운’, 내가 살던 시대의 빈의 느낌이지만 현대에 맞게 맞춘 나의 새 교향곡이 어떻게 연주되는 것이다.

    잔뜩 기대될 수밖에 없없다.

    “이거 아버님과 서류 좀 만들어야겠는데.”

    “아, 여행 비자?”

    “응. 도빈이가 있을 것 같진 않고. 아, 이번에도 어머님께서 함께 가시려나?”

    나카무라와 히무라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카모토 료이치와 피아노를 함께 치며 시간을 보냈다.

    “모차르트의 D장조 소나타라. 어 지간히 좋은가 보구나. 하하!”

    역시, 좋은 음악 친구다.

    *

    나는 내 귀가 다시 잘못된 줄 알았다.

    비행기를 타는 것에 이제 크게 거 부감은 없지만 멀미마저 극복한 것 은 아니었는데.

    히무라 프로듀서가 한 말은 너무도 충격이었다.

    “몇 시간이라고요?”

    “11시간 30분 정도 걸릴 거야.”

    이 여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듯싶다.

    일본으로 가는 1시간 남짓도 버티기 어려운데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괜찮을 거란다. 푹 자고 일어나면 비행기가 흔들리는 곳보다 높이 있을 거야.”

    ‘가장 큰 희망’가 녹음되는 현장을 반드시 봐야만 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무더운 8월.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제 공항으로 향했다.

    “환영합니다, 료이치 사카모토.”

    “반갑습니다, 존 리처드.”

    이 역시 나이깨나 먹은 남자가 사카모토 료이치를 환영하였다.

    원래 미국에서 살았다고 하더니, 사카모토 료이치는 영어를 꽤 능숙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영국에는 공연 여행이라든 지 그런 이유로 몇 번 다녔기에 글은 조금 읽을 수 있지만.

    들어본 적은 많지 않아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메슥거려.’

    속이 울렁거려 어머니에 이끌려 걷고 있었는데, 존 리처드란 남자가 어머니께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존 리처드 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진희입니다. 도빈이 엄마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께서는 유창하게 영어로 대 화를 나누셨는데, 독일어를 알고 계신 것도 그렇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존 리처드가 싱긋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Auferstehung(부활)’을 작곡한 친구로구나.”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 왔다.

    “안녕하세요. 배도빈이에요.”

    통역가 누나가 존 리처드의 말을 전 해주었고, 내 말을 그에게 전달했다.

    엑스톤의 공식 일정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나카무라와 히무라는 함께 오지 않았다.

    대신 엑스톤에서 비자라는 통행증 비슷한 것을 발급받는 걸 도와준다 든지, 우리나라 말, 일본어 그리고 영어까지 능통한 통역가를 붙여주는 등 여러 면에서 배려해 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뭐, 어머니께서 영어를 하시는 걸 보니 통역은 크게 필요없는 것처럼 보였다만.

    아무튼 존 리처드가 내민 손을 잡 자 그가 몇 번 위아래로 흔들며 나를 환영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뒤 길쭉한 자동차에 나와 어머니 그리고 료이치와 통역가를 태웠다.

    ‘신기하게 생긴 차네.’

    이렇게 생긴 자동차는 처음이었기 에 나는 꽤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 차보다 내부가 훨씬 넓고 안 락했기 때문이다.

    “밀크 소다 한잔할래?”

    “네.”

    존 리처드가 뭔가 내게 음료를 권 했기에 그것을 받아 마셨는데, 입안이 톡톡 튀면서 생전 처음 먹어보는 기분이 들었다.

    ‘맛있어.’

    “이게 뭐예요?”

    “탄산음료라고 하는 거야. 많이 마 시면 이 상하니까 조금만 마셔야 한다?”

    어머니께선 ‘탄산 일부러 안 주고 있었는데’라는 조금 서운한 말을 덧 붙여 중얼거리셨다.

    이렇게나 놀랍도록 맛있는 음료를 지금까지 안 주셨다니.

    밀크 소다라는 것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자동차가 멈추었다.

    호텔 앞이다.

    “오늘은 푹 쉬도록 하시죠. 녹음은 모레부터입니다. 내일 모시러 오죠.”

    “고맙습니다, 존 리처드.”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인사를 하시기에 나 역시 존이라는 남자에게 인사를 했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섰다.

    또 어머니와 단 둘이 있기엔 과분 할 정도로 화려한 방이었는데.

    그날 저녁 디저트로 나온 시폰 케 이크를 먹곤 악상이 번뜩여, 본래 카레를 생각하며 썼던 다섯 번째 곡 ‘Himmel(천국)’에 쓸 3악장을 다시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이거 맛있어요. 더 드세요.”

    “엄마 주는 거야?”

    “네. 맛있어요.”

    시폰 케이크가 너무도 맛있었기에 어머니께 그것을 권해드리기 위해 접시를 밀어내니, 통역하는 아가씨 가 ‘카와이’라고 하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귀엽다’라는 건 방진 발언일 것이다.

    일본에서 초콜릿을 주던 통영 누나가 몇 번이나 말했기에 기억하고 있다.

    “고마워. 엄마는 괜찮으니까 도빈이 많이 먹어.”

    어머니는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고.

    나는 이 천상의 맛을 어머니와 함께 나누길 바라여 몇 번 더 권해드렸다.

    그러더니 못 이기시는 척한 입 드신 뒤 내가 온전히 그것을 먹을 수 있게 하셨다.

    “음악만 아는 친군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효자구나. 하하.”

    “도빈 군이 효자라고 하시네요.”

    이렇게나 훌륭하신 부모님이 또 어디 계시다고.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빨리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 아버지께 근사한 집을 사드리고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자 이번 작업 에 대한 보상이 궁금해졌다.

    “료이치, 이거 돈은 얼마나 벌어요?”

    통역가에게 내 말을 전해 들은 료이치가 아 하는 감탄사를 낸 뒤 냅 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러고 보니 그걸 말해주지 않았구나. 내 정신 좀 보게. 하하.”

    ……이 친구 보게. 어디 잊을 게 없어서 그런 걸 잊는 겐가.

    “아마 나카무라를 통해 계약서가 전달될 테지만 궁금할 테니까 미리 말해주겠네. 우선 수당으로 100만 엔이 지불될 걸세. 이건 선불이 고…… 저작권은 도빈 군에게 있으니 ‘가장 큰 희망’의 추가적인 수입 은 분할을 해야 하는데, 5할로 책정 되었네.”

    ‘100만 엔이라면..

    계약금 1,000만 엔이 1억이었으니 천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역시 큰 금액이지만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집을 사려면 필요한 돈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2010년 3월과 6월에 각각 한 번씩 ‘부활’의 싱글 앨범 정산액을 받았는데.

    3월이 3천만 원. 6월이 350만 원 이었다.

    계약금 1억 5천만 원에 선불 100만 엔을 더하면 약 193,500,000원이니 아직은 멀었다.

    “도빈이 부자네?”

    어머니께서 살짝 웃으시며 내 입가를 닦아주셨다.

    “집 사려면 부족해요.”

    어머니께선 말을 잊으셨고, 사카모토 료이치는 통역가에게 무엇인가를 슬쩍 물었다.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물 어보는 걸 테다.

    “도빈아, 엄마랑 아빠는 괜찮아. 도빈이가 음악만 즐겁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야. 알았지?”

    “하하하. 이거, 인터뷰 기사를 보긴 했지만 정말 감동이군. 도빈 군, 만 일 이번 일로 큰돈을 벌어 어머님께 집을 사드리고도 돈이 남으면 어쩔 텐가?”

    사카모토의 말을 통역 아가씨가 전 달해 주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도 집 사서 나가야죠.”

    “••••••음?”

    “……아.”

    갑자기 찾아온 정적.

    통역가가 뒤늦게 의문을 품은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께서는 당황하 셔서 내게 물으셨다.

    “도빈아?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아 야지. 어딜 나가? 응?”

    아.

    곡이 잘 안 나올 때는 혼자 있고 싶기도 한데(예전에는 종종 소리를 지르기도, 컵 같은 것을 던지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계시기 에 아무래도 불편한 감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셨다간 놀라는 것은 물론, 당황하고 걱정하실 게 뻔한 일이니까.

    사실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 이지만 몸만 크면 독립은 되도록 빨 리 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말을 꺼내버렸다.

    어머니껜 너무 이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하하하! 이거, 벌써부터 독립을 꿈꾸고 있었구만!”

    어머니께서 무척 서운하다는 듯, 또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보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