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0화 (2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20화

7. 5살, 위대한 도약(2)

문득 옛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은 180년 전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빈.

빈 필하모닉이라는 곳은 어떤 연주를 할지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다시 공부를 해야 했기에 고개를 흔들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이제 DVD를 틀어보는 데 익숙해 진 만큼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카무 라가 구해준 빈 필하모닉의 영상을 시청하였다.

‘ 역시.’

확실히 내 예상이 옳았다.

예전에 비해 연주의 수준이 탁월하 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청력을 잃고 나서는 정확히 그 당시의 연주 실력을 평가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스킬이나 개념 에 있어서는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

었다고 인정해야 했다.

그것이 곧 연주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최고의 곡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오케스트라의 공 연을 듣고 싶었는데.

영상이 끝이 나버렸다.

아쉬워하며 또 다른 CD를 넣으려고 할 때, 히무라가 들어왔다.

“도빈아, 잘 보고 있니?”

“네.”

“아, 그건 공연 영상은 아니란다.”

“그럼요?”

“베토벤의 교향곡을 녹음한 건데, 정말 잘된 것만을 음원을 복원하기 도, 재 연주를 하기도 해서 만든 거 란다. 오, 드물게도 바그너의 수정본을 그대로 연주한 거로구나.”

이건 또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말인가.

혹시나 싶어 다시 물었다.

“수정본이 뭐예요?”

“아아, 고쳤다는 뜻이란다. 도빈이는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9 번 교향곡은 당시에는 연주하기 버 거울 정도로 어려웠단다. 뭐,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하하.”

“그걸 바그너가 ‘베토벤이 살아 있다면 그리하여 발전한 악기를 접했다면 이렇게 작곡했을 거다’라며 수 정을 했었지. 아아, 도빈이라면 이미 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유명하니까. 베토벤의 곡뿐만이 아니라 그런 곡 이 꽤 있단다.”

다시 태어난 뒤, 나의 다른 곡은 들었지만 라단조만큼은 들은 적 없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내 후대 음악에 심취하여, 특히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빠졌기 때문 이다.

청각을 잃은 뒤 작곡했던 것 중 듣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의 콜렉션 에 있는 것이나 아니면 내가 직접 피아노로 연주한 것이 전부였기에.

라단조를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나저나.

바그너 쳐죽일 놈이 내 악보에 손을 댔단 말인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더욱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대단하지. 그전까지만 해도 연주 가 너무 어려워 묻히다시피 했던 합 창을 세상에 다시 알려주었으니까 말이야. 자, 들어보자.”

좋다.

그 말 뼈다귀 같은 놈이 감히 내 곡 에 무슨 짓을 했는지 들어봐야겠다.

‘ 음.’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나는 생각보다 녀석이 괜찮게 수정을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어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정 말이지 완벽하다는 말이외에는 표 현할 길이 없구나.”

이것은 내가 작곡, 지휘했었던 라단조라고 할 순 없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굳이 바그너가 수정한 부분이 아니 더라도, 연주 시간부터 내가 의도한 것보다 길다.

‘뭐 지휘자들마다 해석은 다를 수 야 있겠지만. ……확실히 10번을 만 들기 전의 실험작이라 수정의 여지 가 있긴 했지.’

라단조는 내가 준비하고 있었던 열 번째 교향곡을 만들기 위한 실험작 이었다.

그러나 분명 당시에 사력을 다해 만든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 소리를 찾았고 변화하고 발 전한 지금의 음악을 들었기에 수정 하고 싶은 부분이 몇몇 있는데.

문제는 ‘곡 해석이 다르다’라는 영 역을 넘어서 뭔가 내가 죽은 뒤 무 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 원곡과 다르다는 점이었다.

분명 바뀐 것도 좋다만.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

“하하! 도빈이가 감동했나 보구나. 어때? 이런 곡 만들 수 있겠니?”

“조용히 좀 해봐요.”

고민 중인데 옆에서 자꾸 시끄럽게 구는 터라 구박을 해주었다.

그리고 잠시간 시간을 두고 고민 끝에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으, 응?”

히무라가 불쌍하게 풀이 죽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2010년 겨울에 개봉할 영화의 테마곡을 오케스트라로, 현대에 맞춰 작곡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거 악보 좀 구해다 주세요. 가장 많이 연주된 걸로요. 아니다. 루 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교향곡이면 전부 다요. 녹음된 것도 다 구해주세요.”

“ 다?”

“다.”

* * *

빠빠빠빰— 빠빠빠빰— 빰빰빰빰! 빰빰빰빰!

빠바바바 빠바바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나카무라가 구해다 준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은 5번 교향곡 C단조였다.

5번 교향곡만 무려 70개가 넘었는 데, 나는 그것들을 들으면서 하나같이 다른 1악장 테마에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휘자에 따라 곡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연주는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한 번의 연주가 소중한 법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가 바라던 1 악장을 연주하지 않았다.

아니, 1악장뿐만이 아니다.

비단 C단조만이 아니라 내 곡을 정확히 연주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나는 이러한 의문을 히무라에게 전달.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물었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껄껄 웃으며 답을 전해주었다는데, 히무라는 그의 흉내까지 내면서 내게 실감 나게 답변을 통역해 주었다.

“껄껄. 악보가 그렇게 알아보기 힘 드니 당연하지 않겠나. 본인이 아니 고서야 완벽하게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뭐, 이건 반은 농담이네만. 아무래도 곡의 깊이가 있으면 해 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네. 무엇보다, 당시에 비해 연주법과 곡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졌으니 여러 요인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게지. 아마 베토벤 본인이 의도한 대로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듣고 싶군. ……이건 그리 중요한 말은 아니네. 아무튼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다른 대답은 이미 나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마지막에 사족처럼 붙은 ‘베토벤 본인이 의도한 대로 연주’라는 말에는 본래 욕심을 내고 있던 일이 라 공감했다.

‘언젠간 내 곡을 직접 지휘해 보고 싶긴 한데. 오케스트라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그러나 악보를 알아보기 힘들다니.

내가 무엇을 위해 악보를 필사하는 사람을 구했단 말인가.

내게 돈을 받아가며 필사를 한 녀 석들을 잡아다가 흠씬 혼을 내주고 싶었다.

“도빈아, 그런데 영화 테마곡은 좀 어떠니? 이렇게 음악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사카모토 선생님께서 진척 상황을 궁금해하신단다.”

“이제 만들 거예요.”

“이, 이제?”

내 곡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관심 있게 찾아 듣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지만.

덕분에 현대의 오케스트라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꼭 내 곡을 내가 지휘해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세상에 들려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영화 주제곡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다섯 달이 흘렀다.

지난 5개월 동안 첫 앨범의 세 번 째 곡, ‘Freund(벗)’과 네 번째 곡인 ‘im Dunkeln(어둠 속에서)’를 완성 하였다.

더불어.

다시 태어난 뒤 만든 곡 중 가장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죽음의 유물’에 사용될 테마곡.

‘die meiste Hoffnung’을 완성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 차 한국에 들린 사카모토 료이치는 때마침 완성된 내 악보를 보 곤 벌써 한 시간째 감탄을 흘리고 있었다.

‘die meiste HoffnungC가장 큰 희 망)’의 구성은 기본에 충실했다.

1악장을 바단조 (F Minor) 로 시작 하여 긴장감을 주었고.

2악장에서는 1악장에서 제시한 테 마를 길게 늘였다. 비올라, 제2바이올린, 첼로, 제1바이올린, 콘트라베 이스 등을 대위법에 맞추었다.

그에 따라 위기 전 고요함을 표현 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으며.

3악장은 내가 으레 그러했듯 3박

자의 스케르초를 이용했다.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으로, 위기 감을 조성하는 데 음 변화를 격렬하 게 배치하였다.

마지막 4악장은 전혀 다른 주제를 제시하며 다시 한번 1악장에서 사용 했던 주제를 환기.

내가 즐겨 사용했던 론도 형식을 따랐다.

집중하여 악보를 살핀 사카모토 료이치가 크게 웃으며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하하하! 이거, 믿을 수가 없군.”

히무라가 료이치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나카무라 군, 자네도 이 악보를 보았는가? 대단해. 정말 대단해! 하 하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선생 님께서도 좋게 보시는군요.”

“그럴 수밖에! 연주를 들어봐야겠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네. 아니, 믿을 수 없어. 정말 믿을 수 가 없군그래!”

나카무라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던 사카모토 료이치가 다시 한번 악보를 훑고는 말했다.

“흐음. 도빈 군이 확실히 베토벤을 좋아하긴 하나 보군. 스케르초와 론 도라.”

역시 귀신같은 친구다.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을 가장 좋아 하는 사람은 바로 나 배도빈이다.

“무엇보다 테마가 인상 깊구나. ……그런데 이 표시는 악센트인가?”

사카모토 료이치가 한 곳을 가리키 며 물었다.

나는 그가 지목한 부분을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데크레센도예요.”

“음?”

사카모토 료이치가 악보를 가까이 했다가, 팔을 쭉 펴 멀리하면서 그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뭔가 신통치 않은 표정이다.

“이건 체크를 해두는 게 좋겠구나. 혹시 이건?”

“누가 봐도 테누토잖아요.”

“……그렇구나.”

료이치가 내 답을 들으니 슬그머니 빨간색 볼펜으로 그 부분에 짧게 작 대기를 그었다.

악보를 보다 고개를 들어 사카모토 료이치를 불만스럽게 보니.

“아아, 이게 좀 길어서 말이지. 보 렴. 약간 휘었는데 삐져나와 헷갈릴 수 있잖니.”

악보를 쓸 때는 항상 그 음을 상 상하면서 그 감정을 녹아내야 하는 법인데.

나의 그 표현을 알아주지 못하다니.

사카모토 료이치라면 나를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건만 안타까운 일이다.

“으음. 지우고 다시 쓴 부분이 많아 헷갈리는 부분이 조금 있군. 아 무래도 이거 녹음하는 데 도빈 군도 함께 가야 할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도빈 군.”

당연한 일이다.

내 곡을 연주하는데 내가 들어야 지, 누가 듣는단 말인가.

앞서 내 곡이 내 의도와 작게, 크 게 달리 연주되는 것을 확인한 만큼 반드시 확인할 생각이다.

“갈래요.”

“하하. 좋지. 도빈 군은 이번에 미 국이 처음일 듯하군. 아마 로스앤젤 레스 필하모닉이라면 자네의 마음에 쏙 드는 연주를 해줄 것일세.”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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