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16화 (1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16화

6. 5살, 음악이 필요한 곳(1)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고생은 무슨.”

배도빈 모자가 돌아가고 사카모토 료이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파에 앉은 그에게 엑스톤의 총 매니저 나카무라가 와인 잔을 채워 넘겨주었다.

“아, 고맙네.”

“어떠셨습니까?”

“무엇이?”

“도빈 군 말입니다.”

“아아.”

나카무라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사카모토 료이치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틀렸어.”

“네?”

의외의 대답에 나카무라가 놀라고 말았다.

배도빈이라면 현대 음악의 천재라는 사카모토 료이치에게도 좋은 평을 받을 거라 확신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는 달리 정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나는 그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더군. 그저 함께 음악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부활을 듣고 느꼈지. 이미 도빈 군의 음악은 완성되어 있다네. 내가 감히 참견할 여지는 없지. 오늘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네. 자네도 도빈 군의 연주를 듣지 않았나?”

나카무라는 대음악가 사카모토 료이치에게서 이러한 평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좋은 평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에게 배도빈은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그에게 동등하 게 인정받고 있는 듯했다.

멍하니 있는 나카무라에게 료이치 가 재차 물었다.

“자네는 연주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리퀘스트가 뭐라 생각하나.”

“글쎄요.”

“바로 베토벤이라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본 료이치는 껄껄 웃은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잘해봐야 본전. 베토벤의 곡은 전 부 그러하네. 도대체 어떻게 연주해 야 좋을지 좀처럼 알 수 없지. 그런 데, 도빈 군은 내 연주에 대한 대답으로 서슴없이 베토벤의 d 단조를 연주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자네는 알고 있나?”

나카무라는 고개를 저었고.

“무슨 뜻입니까?”

“자신이 있는 거지 자신의 음악에. 자신의 연주에. 베토벤이 가장 힘들었을 때를 이겨내고 작곡했던 템페 스트라네. 그보다 베토벤을 잘 나타 내는 곡이 또 있을까? 그런 곡을 자신을 드러내는 곡으로 선택한 거 야. 하하하.”

“내 역할은 그 천재에게 음악이 필 요한 곳을 알려주는 것뿐일세. 가르 치다니, 가당치도 않군.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일본의 대음악가 사카모토 료이치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카무라는 그런 그를 보며 알 수 없는 희망에 찼다.

나흘째.

사카모토 료이치는 다시 한번 나를 자신의 작업실로 초청했다.

갑작스레 통역을 맡은 히무라 프로 듀서는 바쁜 와중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아가씨 한 명을 통역 대리로 두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것저것 신기해 보이는 물건들이 많았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악 기들이 있어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아저씨, 이건 뭐예요?”

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악기인 데, 마치 류트처럼 생겼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통역원으로부 터 말을 전해 들은 사마코토 료이치 가 그것을 ‘스피커’라는 소리를 내는 물건에 이은 다음 ‘묘한 류트’, 또는 기타 같은 것을 들었다.

지이이잉-

그가 현을 손으로 잡고 중심부를 뜯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이렇게나 힘 있는 연주도 가능하구 나, 하는 생각에 나는 사카모토 료이치의 시연을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가슴을 울리는 그 마성(魔聲)에 나는 크나큰 충 격을 받았다.

“Smoke on the Water. Deep Pur pie의 명곡이지. 전자기타 소리는 처음 듣는 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묵중한 주제로 시작한 ‘스모크 온 더 워터’라는 곡은 순식간에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생전 이러한 무게감을 느껴보지 못 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이 자유로운 곡을 연주해 주길 부탁했다.

“기왕이면 원곡을 듣는 게 좋겠지.”

사카모토 료이치가 오디오에 CD를 넣고 ‘Smoke on the Water’> 틀어주었다.

‘ 아아.’

그 6분 정도에 달하는 시간은 다 시 태어난 이래 가장 충격적인 시간 이었다.

[새로운 장르를 열람하였습니다.]

[성명: 배도빈] [Ludwig van Beethoven]

[연령: 4세] [56세]

[칭호: 악성(樂聖)]

[능력치]

[작곡: 99(완성)][작사:17(초보)]

[편곡: 96(완성)][음감:84(전문): 페널티

[장르]

[클래식: 91(자유 단계)]

[동요: 59(연합 단계)]

[팝: 03(인지 단계)]

[록: 01(인지 단계)]

[대분류 장르 열람: 4개]

귀찮게 자꾸 이상한 글자들이 떠오 르는데, 이제는 반응하기도 귀찮아 치워버리고 말았다.

“허허. 도빈 군이 많이 놀란 모양 이구나.”

“네. 엄청나요.”

실로 대범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알고 있었던, 지향했었던 음악과는 다른 독특함이 묻어 있었고 그럼에도 음악의 형태를 제대로 갖춘 곡이었다.

“도빈 군은 클래식만 들었나? 드문 경우로군. ……아, 모친께서 클래식을 즐겨 들었다고 했었지.”

“네. 그치만 동요도 들었어요.”

이제 현대의 사람들이 말하는 클래식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신기한 노릇이군.”

사카모토 료이치가 뭐라 하든 나는 조금 전 곡을 듣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

료이치가 나를 위해 마련한 미니 피아노에 앉아, 방금 느꼈던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디리리링 디리리링-

감정이 가는 대로 음을 뽑아내 화 성을 이룬다.

그 작업이 즉흥이라 해도 가장 순 결한 형태임에는 틀림없다.

대략 4, 5분 정도 흘렀을까.

나는 잊어버리기 전에 악보에 내가 연주한 즉흥곡의 테마를 적었다.

“방금 혹시……

사카모토 료이치가 말을 걸기에 고 개를 들어 보니 그는 조금 충격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혹시 즉홍해서 연주한 건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건반을 누르 며 테마를 이어나가는데 사카모토 료이치가 자꾸만 일본말로 시끄럽게 했다.

“믿을 수가 없군. 도대체 어떤 음 감을 가졌기에……. 아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만 음악을 오래 해온 사람만이, 그 틀이 확립된 사람만이 가능할 터인데.”

“아저씨, 쉿!”

“아아, 미안하네. 하하.”

다시 악보를 쓰는 데 집중했다.

그러곤.

내가 들었던 곡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것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을 하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껄껄. 아니, 즐거운 시간이었네.”

배도빈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을 배 웅한 사카모토 료이치는 엑스톤의 총 매니저 나카무라와 티타임을 가졌다.

나카무라로서는 일본, 아니, 현대 음악의 거장이라 불리는 사카모로 료이치가 배도빈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앞으로 위기의 엑스톤과 클래식 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일본 시장을 이끌 최고의 유망주였기 때문이었다.

“흠……. 이상한 일일세.”

“무엇이 이상하십니까?”

“도빈 군 말일세.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나는 이미 그를 한 사람의 음악가로 인정하고 있었네만.”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을 들은 나카 무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친구야. 오늘 내가 도빈 군과 무엇을 한 줄 아는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함께 있지 않고서야 믿을 수 없을 거라네. 록 음악을 처음 들은 아이가 그것을 피아노곡으로 편곡을 했다네. 전혀 다른 느낌, 아니, 주제조 차 다른데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곡이었다네. 이 악보를 한번 보시 게.”

비록 음악가로 활동하진 않지만, 음대생 출신인 나카무라가 보기에도 그것은 완벽할 따름이었다.

여전히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게 도빈 군이 오늘 쓴 곡입니까?”

“자네 반응을 보니 감이 많이 죽은 것 같으이. ……자네가 그 곡을 연주한다면 어떻게 칠 것 같은가.”

악보를 한참 바라보던 나카무라가 일어섰다.

“선생님 앞에서는 부끄럽지만 실례 좀 해봐도 괜찮겠습니까?”

사카모토 료이치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카무라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한때 피아노과를 졸업했던 그였기에 제법 괜찮은 연주였다.

나카무라가 연주를 끝내자, 료이치가 자리를 바꿀 것을 제안했다.

“자네가 연주한 것과 내 연주를 비교해 보게.”

“네.”

연주가 끝나고도 나카무라는 료이치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단 하나 나카무라의 곡 해 석과 사카모토 료이치의 곡 해석이 확연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료이치가 그 점을 언급하자 나카무 라가 의문점을 제시했다.

“그야 저보다 선생님께서 훨씬 뛰 어나시니 당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 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야. 그런 게 아닐세.”

다시 테이블로 돌아온 사카모토 료이치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과거와 지금의 음악에서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향유하는 계층이 다르다?”

“틀린 답은 아니네. 내 생각과 비슷하지. 고전 시대 이후로 음악은 상품이 되어왔어. 소수 귀족만이 즐 기던 시대를 지나, 음악이 대중에게 다가간 것이지.”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나카무라 역시 자리를 잡 고 앉았다.

“상품이 된 음악은 ‘일정성’을 가져야만 했네. 저장매체가 생겨나면 서 그것이 가능해졌고, 음악의 장르 가 갈리면서 현대의 음악은 보다 명확해졌네. 마치 상품처럼 말이야.”

나카무라는 료이치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아닌, 상업적 음악은 곡의 해석이 달라지는 일이 극히 적었다.

상품이란 일정성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클래식계에도 그런 신곡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도빈 군 의 악보에서 마치 낭만 시대, 아니, 고전과 낭만의 중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드네. 이 풍부한 감성과 형식미. 그러면서도 동시에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그런, 깊이가 있는 곡 말일세.”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 니야. 내 감상일 뿐이니 흘려듣게. ……음. 생각해 보니 중간에 있다고 할 수는 없을 듯하군.”

사카모토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부활과 부성애, 넘치는 기쁨 그리 고 오늘 도빈 군의 즉흥곡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은 확실히 고전적인 느 낌을 받네. 마치 낭만 시대를 지향 하는 고전주의자.”

“마치 베토벤에 대해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하하하! 말이 그렇게 되는가? 하 긴. 도빈 군의 음악적 재능은 놀랍 도록 그쪽에 치우쳐져 있네. 19세기 와 20세기의 클래식에 대해서도 일 가견이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그 런 주제에 또 새로운 음악에 대한 흡수력은 정말이지 기가 찰 정도로 빠르다네.”

배도빈에 대해 말하는 사카모토 료이치를 보며, 나카무라가 싱긋 웃었다.

“즐거워 보이시네요.”

“암. 암! 즐겁고말고. 껄껄!”

고개를 몇 번 끄덕인 사카모토 료이치는 혼잣말을 하듯 읊조렸다.

“이런 재능을 알리지 않는다면, 그 또한 죄악이겠지.”

“예? 잘 못 들었습니다만.”

“아닐세. 그냥 혼잣말이었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사카모토 료이치가 이제는 빈 나카무라의 찻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일세. 엑스톤에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네.”

“부탁이라 하시면?”

“이번에 내가 작업하게 될 영화의 주제곡을 도빈 군과 함께 작업하고 싶네. 도와주겠는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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