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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5화 (1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15화

    5. 5살, 현대의 천재를 만나다(3)

    “끄으으으.”

    입을 틀어막고 주변을 둘러보았지 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급한 대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가니 화장실이 보였다.

    “도빈아? 도빈아!”

    어머니께서 놀라셔서 나를 부르셨지만 더 이상은 한계다.

    콰당!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를 보자마자.

    “꾸웨엑.”

    속을 잔뜩 게워내었다.

    그리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아이고.”

    뒤늦게 히무라가 들어와서 내가 토 하는 것을 보곤 등을 두들겨 주는 데, 정말이지 이런 치욕이 없다.

    “우엑.”

    그러나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에 또 다시 속을 비워낼 수밖에 없었다.

    사카모토 료이치라는 사람을 만나 기 위해 다시 한번 일본을 찾았다.

    그간 비행기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꺼림칙하나 이번에는 군말 없이 어머니와 함께 앉았는데.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구역질을 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그 럴 수는 없었기에 간신히 참았지만 땅에 내리고 나서는 무리였다.

    “하아•…”

    “도빈아, 괜찮니?”

    어머니께서 걱정스럽게 물어보시는 데 나는 고개를 살짝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기분이다.

    “도빈이가 정말 비행기를 싫어하는 것 같군요.”

    “멀미를 할 줄은 몰랐네요. 얼마 안 걸려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우읍.”

    “어머.”

    빌어먹을.

    또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결국 한차례 더 속을 비워낸 나는 탈 진해서 어머니에게 업혀 이동하였다.

    4살(만)이나 먹었으면서 어머니께 이런 불효를 저지르다니.

    연약한 내 몸을 원망하는 것과 동 시에 나는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히무라 씨, 죄송하지만 오늘은……

    “아아,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번과 같이 이틀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왔으니 오늘은 도빈이와 함께 호텔에서 푹 쉬시죠.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호텔에 도착하곤 어머니께선 내게 한숨 자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힘이 없어서 누워 있었더 니 금방 잠에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일어나니 어머니께서도 옆에서 주 무시고 계셨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토해내서 그런지 제법 시장했다.

    몸도 확실히 괜찮아진 느낌이라 어 머니와 함께 ‘카레’를 먹으러 가고 싶었지만 너무 곤히 주무시고 계셨기에 나는 며칠간 머물 방을 둘러보았다.

    저번과는 다른 느낌이다.

    엄청나게 넓은 집이었고, 여러 개 의 방이 있었다.

    신기한 것들이 많아 여기저기 둘러 보는데, 내 눈을 사로잡는 물건이 있었다.

    ‘이건 뭐지?’

    마치 침대처럼 생긴 가구였다.

    어머니와 내가 있던 방과는 달리 둥글다.

    만져 보니 쑤욱 하고 들어가 나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깜짝 놀 라고 말았다.

    뭔가 신기하여 낑낑대면서 겨우 올 라가니 몸이 푹 침대 속으로 들어가 는데.

    ‘오오. 오오?’

    좋은 느낌이다.

    이렇게나 안락한 침대가 있을 줄이야.

    어머니께서 깨어나시면 꼭 한번 누 워보시라 말씀드려야겠다.

    ‘이건••••••

    한참을 그렇게 안락하게 보내고 있자니, 머리맡에 ‘버튼’이 보였다.

    우리 집에 있는 오디오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역시나 지금은 없는 게 없는 모양.

    자기 전에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이런 것까지 배치해 두었나 싶었다.

    툭_ 툭_

    그러나 버튼을 눌러도 마땅히 음악 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장 난 건가 싶어서 포기를 하려 고 할 때, 마지막으로 눌러본 버튼에서 드디어 반응이 나타났다.

    띠로리리 띠리리-

    ‘ 으음?’

    무척 요염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

    뭔가 내 취향이 아니라 다른 버튼을 누르자.

    스윽 _

    ‘ 음?’

    뭔가 침대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 설마.’

    착각이겠거니 싶었는데 착각이 아 니었다. 묘한 소리와 함께 침대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 가.’

    멈춰, 멈춰라.

    버튼을 몇 번 더 누르자.

    "끄악!”

    자칫 잘못했다간 침대 밖으로 튕겨 져 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에, 시트를 죽기 살기로 쥐었다.

    침대가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기에 나는 살아남기 위해 가운데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Hilf mir! Hilf mir!”

    살려달란 말이 절로 나왔다.

    “우웁

    기껏 안정되었던 속이 다시 뒤집어 지기 시작.

    “Mutter! Mutter!”

    어머니를 불렀으나 반응이 없다.

    [19세기의 독일어를 회복했음을 확 인하였습니다.]

    [봉인되었던 능력치, ‘작사’를 모두 얻었습니다.]

    꺼져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정신 사납게 뭐 하는 짓이냐!

    당장 치우지 못할까!

    내가 계속해서 소리를 치니 드디어 어머니께서도 잠에서 깨어나셔서 이 쪽으로 오셨다.

    “어머, 도빈아 너 뭐 하는 거니?”

    “Hilf mir! Hilf mir!!”

    “뭐라고? 응? 도와달라고?”

    어머니께선 황급히 오디오 부근을 찾으시면서 내게 물었고 나는 그제 야 우리나라(한국) 말을 떠올렸다.

    “살려주…… 웨에엑.”

    다시는.

    다시는 현대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 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동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 만 현대 물건은 편리한 만큼 위험할 수도, 특히 이 작은 몸뚱어리에겐 더욱 그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이신 뒤 내 가 정신이 들자 깔깔 웃으셨는데, 나중에 아버지에게 말해드려야겠다 면서 다시 한번 웃으셨다.

    회전하는 ‘물침대’라는 곳에서 멀 미가 날 때까지 버티고 있던 것을 떠올리니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스 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렇게 늦은 시간, 어머니와 카레를 먹은 나는 그나마 최악의 하루를 훌륭한 디너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호호호. 정말 그랬다니까요. 당신 도 보셨어야 했는데. 네. 다치진 않았어요. 좀 놀랐나 봐요. 네. 당신도 잘 자요. 아이참.”

    이이는 옆에 도빈이가 있는데도 자 꾸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

    자꾸 재족하기에.

    “그래요. 저도 사랑해요.”

    사랑을 말해주자 크게 웃으며 쪽 하고 소리를 냈다.

    정말 주책이지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전화요금 많이 나오겠어요. 이만 끊어요. 네. 네.”

    전화를 끊고 몸을 돌리니 도빈이가 색색 잘 자고 있었다.

    내 보물.

    오후에 소리를 지르며 살려 달라 하던 것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조금 웃고 말았다.

    “우웅.”

    도빈이가 살짝 깨는 것 같기에 얼른 등을 토닥여주며 나도 잠을 청했다.

    침대에 누워 잠시 가만있는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도빈이 분명 독일어를 했었지.’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우리 도빈이가 독일어를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립네, 독일.’

    그렇게 잠시 추억에 잠기자 곧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은 어머니와 함께 온천이라는 곳에 갔는데, 과연 대한민국과 인접한 나라답게 이곳에도 ‘목욕’이 라는 문화가 있는 모양이다.

    매일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일은 내게도 즐거운 일이라 따뜻한 물에 몸을 풀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가족 온천’이라 하여 꽤 넓은 온천을 어머니와 단둘이 쓸 수 있어 더욱 편했다.

    목욕탕이 외부에 있는 것도 신기하고 말이다.

    그리고 삼 일째.

    히무라와 나카무라 안내를 받아 건방지게도 이 몸을 지도하고 싶다고 나선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라고 합니다.”

    료이치라는 나이 지긋한 남자(내가 죽기 전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는 정중하게 어머니께 인사했고, 그 것은 내게 환심을 사기에 충분한 행 동이었다.

    “그리고…… 이쪽이 배도빈 군이겠군. 반갑네. 사카모토 료이치라고 하네.”

    “안녕하세요.”

    오늘 당장 통역을 맡은 히무라는 사카모토 료이치의 말을 듣곤 잠시 고개를 그에게 무엇인가를 물었다.

    일본의 말이라 이해할 순 없었지만 히무라의 말을 듣지 않고도 저 사람이 나를 마냥 하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첫인상은 무척 괜찮은 신사다.

    “도빈아, 이분은 골든글러브와 그 래미 어워드를 받으신 분이란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셨지.”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내가 눈썹을 좁히며 히무라와 료이치라는 사람을 번갈아 보자, 노신사가 껄껄 웃었다.

    “히무라 군, 그렇게 말한다고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료이치는 자세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머니와 아버지 이후로 ‘어른’이 나와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은 이번 이 처음이었다.

    항상 목이 아프게 들고 있었어야 했는데, 확실히 매너가 있는 사람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빈 군, 사인 하나 해주겠나?”

    료이치가 내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내 싱글 앨범인 ‘부활’이었다.

    나는 웃어보이곤 그것을 받아 어머 니께 배운 ‘배도빈’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고맙네. 껄껄.”

    그것을 받아든 료이치는 내 손을 잡고 피아노 앞으로 향했다.

    “답례로 들어주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그 자태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연주하는 곡은 절제된 음으로 그 애절한 감성을 너무도 잘 표현하였다.

    세련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의 연주 역시 수준급.

    내가 살던 시대의 '연주가'와 비교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주였다.

    그가 건반에서 손을 떼었을 때.

    나는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히무라가 내게 살짝 방금 전 곡이 ‘비’라는 제목을 가졌다고 귀띔해 주었다.

    ‘비라. 과연.’

    노신사는 자리에서 벗어나 내게도 연주를 권했다.

    그의 그랜드 피아노를 올려다보며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그 뒤에, 히무라가 내게 선물한 것과 똑같은 피아노가 한 대 더 있었다.

    이만한 연주를 듣고 답이 없다면 실례일 터.

    건반을 앞에 두고 눈을 감았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내게 자신의 곡을 들려준 것은 필시 ‘나는 이런 음악을 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나 역시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을 들려주는 것이 옳다.

    D 단조.

    초반부터 빠른 주제를 제시하고 이 어나가는 17번 소나타 d minor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오로지 집중하여.

    음 하나하나를 소중히 하며 나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주를 이어나갔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내 귀와 사랑을 떠나보낸 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이 곡이 나를 말 해주는 가장 좋은 곡이라 생각한다.

    20분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르고.

    연주를 끝내고 차분히 손을 내렸을 때 사카모토 료이치가 박수를 보내 왔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내게 다가 와 물었다.

    “아쉽지 않나?”

    히무라가 전해준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자네는 더욱 발전할 수 있어. 피아니스트로든, 작곡가로든. 나는 자 네 안에 있는 놀라움을 알 수 있네.

    그건…… 자네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겠지.”

    그 말을 듣곤 나는 사카모토 료이치 라는 남자를 빤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 연주를 듣곤 내가 아쉬워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로 수 준 있는 음악가였다.

    그가 피아노곡을 들려주었을 때부 터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는 내 의지가 현실에 부딪쳐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의 곧은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자아냈던 음율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나와 함께 음악을 해주겠나?”

    히무라가 전해준 말에 나는, 굳이 히무라를 통해서 전달되지 않아도 되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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