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12화
4. 4살, 천재 작곡가(7)
일본에서 돌아와서 두 번째 곡을 쓰고 있자니 겨울이 왔다.
날은 점점 더 추워졌고 어머니와 가끔 산책을 나가면 거리마다 신기 한 불빛이 반짝였다.
“엄마, 저게 뭐예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달아놨나 봐. 예쁘네. 그치?”
아아, 벌써 성탄절이 다가온 모양 이다.
종교에 관심은 없다만 슈톨렌(독일 전통 빵)은 제법 좋아했기에 슈가 파우더를 잔뜩 뿌린 그것이 생각났다.
며칠 뒤.
히무라 프로듀서가 최종 녹음본을 가져와 들려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는 게 몹 시 꺼려졌기에 히무라가 몇 번 수고 해 주면서 수정한 ‘Auferstehung(부
활)’이 마침내 내 마음에 쏙 들게 연주된 것이다.
“좋아. 다행히 크리스마스이브 전 에는 맞출 수 있겠어. 수고했다, 도빈아.”
“뭘요. 고마워요.”
돈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자꾸 울먹이면서 귀찮게 굴기에 ‘싱글 앨범’이라는 것이 팔 리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나카무라 씨, 히무라 씨. 부활 첫 날 집계 완료되었습니다.”
나카무라와 히무라는 엑스톤 사무 실에서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할 때, 엑스톤의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배도빈의 전담 매니저인 나카무라 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떤가.”
“2,400장입니다.”
“으음.”
나카무라와 히무라 그리고 엑스톤 의 전 직원이 기대했던 수치와 전혀 다른 판매량이었다.
아직 판단을 하기엔 이르긴 해도 배도빈의 천재적인 예술성을 담은 ‘부활’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아쉬 울 수밖에 없었다.
“뭔가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 필요 한데.”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이승희를 초 빙하면서까지 ‘부활’에 투자했던 엑 스톤으로서는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홍보는 이승희를 내세웠어야 했나……
많은 반대에도 배도빈을 메인으로 내세웠던 나카무라는 후회 아닌 후 회를 하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음반이 잘 팔리면 배도빈 역시 인정을 받게 될 터.
그러나 그의 ‘촉’이 그래선 안 된 다고 했기에 신념대로 일을 추진했던 그로서는 특히 책임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어차피 신인 이야 첫 날 집계가 의미 없지 않은 가.”
그나마 직접 작업에 참여했던 히무라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에 낙관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누적 집계량은 점차 오 르기 시작했다.
삼 일째 5,000장을 돌파하여.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1만 장 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를 3일 앞둔 날 아사히 신문 연예란에 하나의 칼럼 기사가 올라왔다.
연예부, 특히 클래식계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시하라 린의 기사였다.
그녀의 글은 차분한 문장으로 시작 되었다.
11월 어느 이른 오후.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하루 일찍 약 속장소로 향했다.
이번 인터뷰 대상은 3살 아이. 한 국에서 온 귀여운 소년이었다.
소년은 크고 맑은 눈으로 나를 올 곧게 보았다.
티끌조차 없는 그 청명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던 소년은, 결국 내게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가감을 더하지 않기 위해 당시의 대화를 첨부한다.
Q. 음악은 어떻게 시작했나.
A.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들려줬어요. 음악 좋아해요. 많이 좋아해요.
Q. 곧 싱글 앨범이 제작된다고 들었다. 기분이 어떤가.
A. 돈을 벌 수 있다니 다행이에요.
Q. 무슨 뜻인가. 돈을 좋아하는가.
A. 네. 좋아해요.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음악을 더 배우려면 돈이 필요해요. 알고 싶은 음악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엄마가 큰엄마한테 혼나는 것도 싫어요.
나는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통역을 하던 유키 씨도, 나도 3살 먹은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곤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소년이 떠난 뒤 나는 그가 만들었다는 ‘부활’이란 곡의 샘플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 여운이 남았던 탓일까.
나는 어떻게 그 어린아이가 이렇게 격정적인 음으로 절망 속의 고뇌를 표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의 불우함 때문일까.
그 때문에 이런 곡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하늘은 한 명의 천재를 탄생시키기 위해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너무도 큰 시련을 내린 것 이다.
나는 오는 크리스마스, 예수의 부 활을 축복하며.
나의 소중한 이에게 다시 태어나고 싶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배도빈 군의 ‘부활’을 선물할 것이다.
해당 칼럼기사는 인쇄 매체 및 온 라인 기사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일본인은 다양한 계층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ㄴ 가식적인 기사. 읽을 가치가 없는 신파극.
ㄴ 너 이분 모르냐? 이시하라 린 클래식 관련한 기사는 전문가급으로 알려진 사람임. 그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거짓말을 하냐? 자기 이름 값 떨어지게.
ㄴ WWW아무 것도 모르는 히키코모 리가 또WWW
ㄴ 나 이거 들어본 적 있음. 우리 교 회 목사님이 틀어줬는데 나랑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들 다들 울컥했음.
ㄴ 거짓말하지 마
ㄴ 위에 댓글 단 사람 말에 동의. 3 살 먹은 애가 만든 곡이 퍽이나 그 러겠다.
ㄴ 어? 이거 그거 아니냐? 니코동에 올라왔던?
ㄴ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듣냐, 바보야.
ㄴ 링크 올림. http7/www.nicoxxxx.jp/ybean
ㄴ 아니잖아, 멍청아. 어떻게 저거랑 부활이랑 똑같냐?
ㄴ 와, 근데 이거 음원으로 미리듣기 하다가 바로 질러버림. 미쳤다. 이건 ‘진짜’야.
온라인 게시판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인기를 끌기 위한 자작극이다’, ‘거짓이다’라는 의견과 함께 곡 자 체에 매료되었단 반응도 다수 올라 왔다.
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동정론이 지배적이었다.
엑스톤과 사업적 제휴를 맺고 있는 아사히 신문은 음반 판매점 앞에서 배도빈의 ‘부활’을 사는 사람을 대 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했었다.
“아, 저도 봤어요. 3살 아이가 어 머니를 생각하는 게 마음이 너무 아 프고 기특하더라고요.”
34세 주부.
“인터넷에서 사서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소장용으로 하나 사려고 나 왔어요.”
22세 음대생.
“저는 눈물 났어요. 응원하고 싶어 서 사러 왔어요.”
17세 고등학생.
“배도빈 군의 내면엔 천사와 악마 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그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아이가 이처럼 격정적인 음악을 만들다니.”
27세 무직.
이시하라 린은 마지막 인터뷰 내용은 빼고 다시 한번 추가 기사를 등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배도빈의 첫 싱글 앨범 ‘부활’은 점차 판매량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마스이브.
SNS에 전설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료이치가 배도빈의 ‘부활’에 대한 짤막한 코멘트를 남겼다.
그의 음악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나는 오늘 역사적인 천재의 첫 앨 범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
단언컨대 ‘부활’은 부활한 아기 예 수의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사카모토 료이치의 트윗은 8만 번 이상 리트윗 되었고, 2009년의 마지막 날.
“나카무라 씨! 집계 결과 나왔습니다!”
엑스톤의 직원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그는 손에 잔뜩 구겨진 서류를 들고 있었고, 나카무라와 히무라가 동시에 일어나자.
그것을 두 사람 앞에 들이밀었다.
“5만 장! 5만 장입니다!”
직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추가 생산량까지 모두 팔렸습니다. 물량 독촉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고요!”
“좋았어!”
나카무라와 히무라가 동시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2009년.
과거와 달리 일본의 음반 판매량은 매우 줄어든 상태였다.
그나마 대중음악의 경우에는 싱글 앨범이 10만 장 단위로도 팔렸으나, 클래식 음반은 고전을 면하지 못하 고 있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온라인 판매가 많았기에 과거 일본의 클래식 전성기를 이끌었던 엑스톤으로서도 CD음 반 제작 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현 엑스톤을 이끄는 ‘나카무라’와 ‘히무라’로서는 책임감을 느낄 수밖 에 없었고.
그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준비한 것이 바로 ‘배도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 물량이 5만 장이나 팔렸다니.
기적에 가까운, 아니, 기적 그 자체였다.
아직 판매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고무적인 일이었다.
‘사카모토 선생께는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겠어.’
나카무라 매니저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했다.
한편 히무라 프로듀서는 이 기쁜 사실을 당장 한국에서 지금도 열심히 작곡하고 있을 배도빈에게 전하 고 싶어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음이 몇 번 가고, 배도빈의 부친 배영준이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히무라입니다. 실례지만 도빈 군 좀 바꿔주시겠습니까?”
-아, 네. 잠시만요.
잠시 후, 너무도 사랑스러운 목소 리가 전해졌다.
엑스톤에 온 보물 같은 아이, 배도빈이었다.
- 안녕하세요.
“도빈아, 판매량이 나왔단다! 5만 장이야! 추가로 더 만들고, 온라인 집계는 포함하지 않았으니.”
흥분하여 이리저리 말하던 히무라는 순간 배도빈이 이 말을 이해할까 싶어서 말을 바꾸었다.
“부활이 엄청 많이 팔렸어!”
- 정말요?
“그래! 모레 한국으로 갈 테니 다음 곡 준비 서두르도록 하자.”
-돈은 얼마나 벌었어요?
“.어?”
-돈! 돈!
“어, 어! 많이! 많이 벌었단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뚜뚜뚜-
전화가 끊어지고 히무라는 핸드폰을 슬며시 내렸다. 그의 눈이 뭔가
복잡해 보였지만 잔뜩 흥분한 나카 무라에겐 보이지 않았다.
“뭐래? 도빈 군도 좋아하지?”
나카무라 매니저의 질문에 히무라는.
“그러게. 많이 좋아하는 거 같네.”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