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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1화 (1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11화

    4. 4살, 천재 작곡가(6)

    첼리스트 이승희가 자아내는 음율은 내가 상상한 그대로였다.

    첼로의 음역 폭은 악기 중에서도 넓은 편에 속하는데, ‘부활’을 쓸 때 나는 중요한 감정 표현을 첼로로 표 현하려 했다.

    바로크 이전만 해도 첼로 연주 기술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는 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기에 여러 가능성을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내가 죽은 뒤에 발전한 첼로곡을 들으며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

    첼로의 음색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관련한 곡을 여럿 만들었는데, 과연 이후의 음악을 들으니 영감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여 피아노 3중주곡인 ‘부활’은 피아노로 멜로디를 이끌고 첼로의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내 가 강조하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피아노와 첼로 말고도 바이올린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한 번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 협주곡을 쓴 적이 있었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기에 이번에는 욕심을 덜어내고 피아노와 첼로를 이용한 협주곡을 써 내렸다.

    그것이 ‘부활’.

    그런데 정작 첼로와 조화를 이뤄야 할 피아노가 말썽이었다.

    “아저씨, 잠깐만요.”

    연주 중단을 요청하자, 프로듀서가 무엇인가를 누르고 ‘녹음실’이라는 곳 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달했다.

    프로듀서 히무라가 나를 이끌고 녹음실로 들어갔다.

    “도빈 군이 할 말이 있나 봅니다.”

    시선이 집중되었고, 나는 얌전하게 생긴 여성 피아니스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는데 그 래도 싱긋 웃으며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히무라가 통역을 해준 덕분에 대화는 더디지만 진행될 수 있었다.

    “손 좀 보여주세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내 앞에 손을 펼쳐보였다.

    육안으로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녀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잡고 안쪽으로 밀어, 구부려보았다.

    “아앗.”

    역시나.

    “아키 씨?”

    히무라 프로듀서와 이승희 그리고 중년 바이올리니스트가 놀라서 다가

    왔다.

    “무슨 일입니까?”

    “이 누나 손목 아픈가 봐요.”

    내 말을 들은 히무라와 이승희가 놀라 ‘아키’라는 피아니스트를 보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네. 죄송합니다.”

    다쳐도 그냥 다친 게 아닌 듯했다.

    기본적으로 부활은 상당한 분량이었는데, 연주 시간 자체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격정적인 음 변화를 주면서 혼란했던 시기를 표현하기 위해 연주 속도를 빠르게 설정하였는데, ‘아키’라는 여자는 연주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그 속도에 못 미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실은 어제저녁에 샤워하다 그 만……

    “감춰서 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병원은 다녀오셨습니까?”

    “……네. 진통제를 맞고 왔어요. ……죄송합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녹음 일정은 다 시 잡도록 하겠습니다. 아키 씨는 잠시 이야기 좀 나눴으면 합니다.”

    프로듀서와 아키라는 여자가 녹음 실에서 나갔고 나는 근사한 피아노를 구경하며 입맛을 다셨다.

    ‘제대로 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볼수록 괜찮은 물건이라 나는 더욱 애가 타기 시작했다.

    손이 어느 정도 자라고 힘이 붙기 까지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 시간을 기다리기가 참 어렵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의자 위로 기 어 올라갔다.

    "응."

    역시 건반까지 너무 멀다.

    “누나.”

    "응? 나?”

    프로듀서와 피아니스트가 나간 곳을 걱정스레 보고 있던 이승희가 손 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이가 많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는 ‘누나’일 텐데 굳이 되묻는 걸 보니 아무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네. 의자 좀 당겨주세요.”

    “아하하. 그래. 그래.”

    건반이 눈앞에 왔다.

    의자가 아키라는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 매우 불편한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누나.”

    “너 정말 뭐 좀 아는 애구나? 그 래. 누나가 조절해 줄게. 잠깐 내려 와 봐.”

    이승희는 의자의 높이를 조절해 주 고 나를 들어다 앉혀주니 그제야 피아노 건반을 제 위치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여전히 불편하긴 해도.’

    손가락을 가져다 눌렀다.

    딩 _

    이 어찌 감격하지 아니할 수 있을까.

    어색하게나마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손을 놀리고 있을 때 이승희가 내게 슬며시 말을 걸었다.

    “도빈아.”

    “네.”

    “아키 씨 손목 다친 건 어떻게 알았어?”

    “자세가 이상했으니까.”

    “자세?”

    고개를 끄덕인 뒤 답했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손목을 내리고 있지 않아요.”

    “그렇지?”

    이승희가 계속 설명을 바라는 듯하 여 말을 계속하려는데, 역시나 이번 에도 어휘력이 부족했다.

    ‘처음에 곧잘 연주했는데 자세가 이상하고 갈수록 박자를 못 맞추니 아파서 그랬나 싶었지.’

    라는 말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싶다가 악보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메트로놈을 표시한 곳.

    “박자를 못 맞췄어?”

    이승희가 다시 물었다.

    그만한 연주 실력을 가지고도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싶어 올려다보니 그녀가 씩 하고 웃어보였다.

    뭔가 싫지 않은 사람이다.

    고개를 끄덕이니 다시 한번 묻는다.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느려졌어?”

    “여기.”

    아직 피아노 위에 펼쳐져 있는 악보의 지점을 가리켰다.

    연주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는 부분이었다.

    “도빈이 귀 엄청 좋구나? 아니, 박자감각이 좋다고 해야 하나?”

    “다 좋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기특하게도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이승희가 기특해 보인다. 역시 내가 인정한 연주자다.

    “세상에.”

    이승희가 옆에 있던 중년 남성을 돌아보며 일본의 말을 해댔다.

    “사부로 씨, 들으셨어요? 아니, 못 들으셨겠지. 도빈이랑 방금 이야기 했는데……

    조금 수다스럽게 말하는 이승희와 그것을 심각하게 듣고 놀라는 바이올리니스트.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믿을 수 없군.”

    “그렇죠? 저도 조금씩 느려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긴가민가했거든요. 얘는 정말 천재예요.”

    만족스럽게 칠 수도 없는 피아노를 건드는 것도 슬슬 지쳐가고, 배가 고파지는데 프로듀서는 언제쯤 돌아 올까.

    딩_ 동_ 딩_ 동_

    몇 번 더 건반을 눌러본 뒤 이승희에게 의자에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이승희가 나를 번쩍 들어 씩 하고 웃기에.

    화난 표정을 지었더니 귀엽다면서 볼을 비벼 짜증이 났다.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 후 돌아온 프로듀서가 내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그에게 나는 4살 먹은 아이일 뿐 인데, 이렇게까지 사과하는 것을 보 니 다시금 신뢰가 생겼다.

    “괜찮아요.”

    프로듀서는 고개를 들었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다른 연주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아, 도빈아. 많이 기대했을 텐데 미안해.”

    “네.”

    그의 태도가 진실된 만큼 나도 어느 정도의 아쉬움을 참아야 할 것 같았다.

    아키라는 연주자가 무슨 생각으로 녹음을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조치를 취한다면 문제없다.

    대기실에 계셨던 부모님 역시 정황을 전해 들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럼 오늘은 숙소로 돌아가면 되나요?”

    “네. 모쪼록 원하시는 대로.”

    “도빈이는 어떻게 하고 싶어?”

    어머니께서 나를 보며 물어보시기 에 나는 일본에 오기 전, 프로듀서 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인터뷰란 거 하면 안 돼요?”

    “아.”

    잠시 생각에 빠진 프로듀서는 ‘핸드폰’이라는 신기한 물건을 꺼냈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니. 정말 못 하는 일이 없는 세상 인 듯하다.

    “시간이 된다네. 30분만 기다리면 온다니까 그럼 여기서 기다릴까?”

    “네.”

    인터뷰를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니까 기왕 일본에 온 김에 여러 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는 그 비행기라는 것에 타고 싶지 않으니까.

    20분 정도가 흐르고, 웬 젊은 여성 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아사히 신문 연예부 의 이시하라 린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녀가 부모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 리며 종이를 건넸다.

    내가 아는 한국의 돈은 아닌 걸 봐선 쓸모없는 듯하다.

    인터뷰는 통역과 부연을 위해 나와 통역사, 프로듀서, 방금 도착한 나카 무라 그리고 ‘린’이라는 사람이 하 게 되었다.

    “안녕, 도빈 군. 반가워.”

    인터뷰를 하기 전에 그녀가 내게 악수를 청했고 손을 마주 잡자 그녀 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주었다.

    돈도 많이 벌게 해주고 사탕까지 주다니.

    착한 사람이다.

    “그럼 시작할게. 편하게 대답하면 되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돼.”

    긴장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린은 탁상 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펜과 종이를 준비했다.

    “3살 천재라고 들었는데,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니?”

    린의 말을 통역사가 전달해 주었다.

    “4살인데?”

    “어? 여기엔 분명.”

    “하하. 한국 나이로는 4살입니다. 도빈아, 일본에서는 도빈이 아직 3 살이란다.”

    나카무라 매니저가 해주는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에서 나이를 세는 법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은 독일 과 같은 모양이다.

    “그럼 다시.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니?”

    돈에 환장한 주정뱅이 때문에 시작 했다고 말하려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지금 아버지의 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굳이 내가 다시 태어 났다는 것을 밝힐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 전에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

    “하하. 도빈아, 너무 긴장하지 않아 도 된단다.”

    나카무라가 나를 다독였다.

    긴장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하는데 왜 자꾸 긴장을 풀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들었어요. 좋아요.”

    “어릴 때?”

    린이라는 여자가 나를 훑어보는 듯 했다.

    “애기 때.”

    대답을 정정했다.

    “……이건 넘어가고. 이번 겨울에 싱글 앨범이 나온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린이란 여자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했다.

    “큭큭큭큭.”

    나카무라와 히무라(프로듀서)가 소리 죽여 웃었고, 린은 다시 한번 내 게 질문했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사람이라더니, 나카무라의 말과는 달리 능숙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래? 역시 좋지? 어떻게 좋아?”

    “많이 좋아요.”

    도대체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뭔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또 한 번 물었다.

    “왜 좋은지 말해줄 수 있니?”

    “돈 많이 버니까 좋아요.”

    순간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는지 조금씩 웃던 나카무라와 히무라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조금씩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린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들 이래?’

    “도, 도빈이는 돈이 좋니? 왜?”

    “배우고 싶으니까.”

    “세상에는 멋진 음악이 너무나 많아요. 쇼팽, 드보르자크, 드뷔시, 쇼 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알고 싶은 사람이, 곡이 너무 많아요.”

    린이란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음악을 더 배우고 싶구나? 그거랑 돈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니?”

    “우리 집 가난하니까요.”

    또다시 정적.

    도대체가 무슨 말을 못 하겠다.

    돈이 왜 좋은지 물었으니 거기에 대한 남은 답만 더 하고 카레나 먹 으러 가야겠다.

    “아버지, 어머니 좋아요. 돈 많이 벌어서 집 사드릴 거예요. 음악도 배울 거예요.”

    “••••••어쩜.”

    린이라는 여자와 통역을 하는 여자 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기에 나는 짐짓 놀랐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런……

    울먹이면서 일본말로 뭐라 뭐라 하 는데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이상한 처자들일세.’

    “매니저 아저씨, 나 갈래요. 카레 먹고 싶어요.”

    나카무라의 소매를 잡아당기자, 얼 씨구.

    그 역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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