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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10화 (1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10화

    4. 4살, 천재 작곡가(5)

    “엄마, 엄마!”

    어머니! 이건 아니오! 이건 정말 아니 될 일이오!

    부모님께서 분명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의 다리를 붙잡고 안간힘을 써 말리려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하하하. 도빈이가 비행기 처음 타서 무서운 거구나?”

    좋게 봐줬더만, 히무라라는 자식은 사기꾼이 틀림없다.

    어찌 쇳덩이가 하늘을 난단 말인가!

    또 멀쩡하신 부모님은 저 미친 소리를 왜 믿고 계신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빈아, 자.”

    아버지께선 내가 안기지 않으려 하면 금방 속상해하시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식 된 도리로써 안아주게 해드

    리지만.

    이런 상황에까지 요구할 줄은 몰랐다.

    “안 돼! 죽어! 죽는단 말이야!”

    부족한 내 어휘력으로는 이들을 설 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통탄할 지 경이다.

    “이걸 어쩌죠? 하하하.”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 나카무라.

    저놈은 필시 내가 그동안 작곡한 것을 독차지하기 위해 우리 일가족을 죽이려 드는 것이리라.

    “괜찮습니다. 제가 안고 타면 되니 까요. 도빈아, 고집 그만 부리고 아빠한테 와.”

    “빼애애액!”

    볼썽사나운 것은 안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지만 기적을 통해 만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을 순 없는 일이다.

    더욱이 다시 찾아올 수 없는 ‘귀가 들리는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슬슬 난감하 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나 역시 필사적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죠.”

    이이이익!

    아등바등 댔지만 아버지의 공사판에서 다져진 아버지의 억센 팔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지쳐 잠든 모양이네요.”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왜 그러 는지 모르겠네요.”

    “무서웠던 모양이죠. 하하하. 그래 도 도빈 군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 은 몰랐습니다. 아이치고는 너무 어 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귀엽네요.”

    “하하하.”

    도쿄행 비행기에 오른 엑스톤 프로 듀서 히무라와 배영준, 유진희 부부는 울다 지쳐 잠든 배도빈을 보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럼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선은 도착한 뒤 숙소에서 이틀 간 휴식을 취하시면 됩니다. 모든 경비는 엑스톤에서 부담하니 관광을 원하신다면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히무라는 도쿄 인근에 있는 관광 명소에 대한 팜플렛을 꺼내 들어 부 부에게 전달했다.

    관광객을 위해 번역된 것이었기에 배영준, 유진희 부부는 관심을 가지 고 살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브리 미술관을 추 천해 드립니다. 도빈 군이 좋아할 겁니다.”

    배도빈이 좋아할 거란 말을 들은 부부는 내심 가고 싶어 하면서도 어 렵게 입을 뗐다.

    “아무리 경비를 부담해 주신다고 해도……

    “걱정 마십시오. 저희로서는 꼭 모 시고 싶습니다. 이 역시 도빈 군의 음악 활동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정서는 음악에 큰 영 향을 미치니까요. 도빈 군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시고 모쪼록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히무라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그제 야 부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간 형편이 좋지 못하여 가족 여 행다운 일 하나 없었던 것을 미안해 했던 배영준, 유진희 부부로서는 고 마운 일이었다.

    “고맙습니다.”

    히무라가 싱긋 웃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풀기 시작했다.

    “삼 일째부터는 엑스톤 소속의 연주자들이 녹음을 합니다. 그곳에 방문하여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벌써 녹음을 하나요?”

    “네. 이번 겨울에 도빈 군의 ‘부활’을 싱글 앨범으로 제작, 본 앨범 출시 전 홍보용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시장 반응을 보기에도 필요한 절차니까요. 마지막 날 인터뷰 역시 그것을 위한 준비고요.”

    “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빈 군의 재능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완 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영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듣기엔 좋지만, 저는 도빈이에게 부담이 될 것이 걱정입니다. 어려서부터 다른 것엔 조금도 관심이 없고 음악에만 몰두하니.”

    “장담합니다. 도빈 군은 아시아를, 아니, 인류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 하하••••••

    히무라의 걱정과 달리.

    배영준, 유진희 부부가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어린 아들이 주변의 기대 속에서 압 박을 받아 또래와 다른 삶을 살까 봐.

    그리하여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놓칠 것이 두려운 것이었으나.

    배도빈의 재능에 매료된 히무라는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의 장소였다.

    건축 양식이 내가 살던 그때의 독 일과 비슷한 느낌의 방에서 깨어났 는데, 어머니께선 이곳이 일본이라 고 하셨다.

    “어때? 엄청 근사하지 않니?”

    어머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본이란 곳은 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응?”

    그러나 숙소에서 나와 보니 서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뭔가 꿈을 꾸는 듯한 기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상한 곳으로 ‘외출’을 하였다.

    정말 신기하게 생긴 건축물이 가득한, 마치 야코프 그림, 빌헬름 그림 두 형제의 이야기에서 나올 것만 같은 장소에 매료되어 일본이란 나라 가 대체 어떤 곳인지에 대해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 저거 보세요!”

    동화와만 같은 풍경에 놀라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며 외쳤다. 두 분은 행복해 보이셨다.

    이틀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 처음 보는 광경에 홀려 나름 즐겁게 보냈다.

    ‘사시미’라는 것은 비위가 상해서 잘 못 먹었지만 카레라는 스튜를 얹은 밥은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어머니께서도 할 줄 아신다고 하셨는데, 이 완벽한 음식을 그간 왜 안 해주셨는지 모를 일이다.

    혹시 비싼 음식인데 해달라고 부탁 드리면 가난한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니 더 이상 말하진 않았다.

    아무튼.

    호화로운 음식과 신비한 구경거리 도 지금 이 순간보다 들뜨게 하진 못했다.

    “안녕하세요.”

    “어머, 네가 도빈 군이구나? 반가워.”

    “인사드립니다. 엑스톤의 연주진입니다.”

    아직 추운 겨울, 독일에서 죽어갈 때의 심정과 다시 태어난 날의 환희를 표현한 ‘Auferstehung(부활)’의 연주는 직접 듣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연주자들의 첫인상은 각양각색이었다.

    얌전해 보이는 피아니스트, 조금 소란스러운 첼리스트 그리고 신사로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

    한국말도 들렸고, 일본의 말인 것 처럼 들리는 말도 들렸다.

    첼리스트가 누구보다도 먼저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성격은 방정맞으나,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은 뒤 내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기형적으로 휘어 있었고 왼손 손가락 끝은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었다.

    무엇보다.

    ‘저건 설마……

    그녀 뒤로 보이는 비올론첼로가 눈에 띄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어머. 알아보니?”

    알아보다마다.

    뒤포르 (Duport).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장 피에르 뒤포르(Jean Pierre Duport)가 썼던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역작이다 .

    그 교양 없고 살만 뒤룩뒤룩하게 찐 빌어먹을 독재자 놈이 남겼다는 흠집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 누나가 이렇게 보여도 엄청 잘 나가거든. 대여 받은 거야.”

    손을 보아 보통 이상의 노력가라곤 생각했지만 이만한 악기의 주인이 될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말이니 나는 새삼 이 정신 사나운 여자가 다

    시 보였다.

    내가 그녀와 뒤포르를 번갈아 가면 서 보자 그녀가 싱긋 웃더니 첼로 앞에 자세를 잡았다.

    그러곤.

    바흐의 첼로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록 저때만 해도, 아니, 내가 활 동했던 시기만 해도 첼로에 대한 연 구가 깊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기 교가 있는 곡은 아니었다만.

    바흐 특유의 절제미가 돋보인다.

    ‘잘해.’

    더군다나 저 첼리스트가 자아내는 감미로움.

    그녀는 내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도 천재라 하기에 충분했다.

    음을 표현하는 기교는 물론, 그녀에게선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 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모습에 나는 혼을 빼앗겨 버렸다.

    그녀의 짧은 연주가 끝나고.

    “난 배도빈. 누나 이름은?”

    존중할 만한 천재에게 내 이름을 밝혔다.

    “이승희야.”

    이 사람은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이승희 씨는 Berliner Philharmon iker 소속이기도 하지. 혹시 들어봤니?”

    Berliner Philharmoniker(베를린 필하모닉) 이라.

    혹시나 베를린을 연고지로 한 곳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 떤 곳인지는 모르나 그 이름만으로 도 정감이 간다.

    더군다나 이만한 연주자가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믿음이 갈 정도.

    이승희의 연주를 들어보니 나는 정말로 내 곡, ‘부활’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기대되었다.

    “자, 그럼 간단히 시작해 보도록 하지요.”

    저마다 악기를 조율하였고.

    준비를 마친 연주자들이 서로에게 눈신호를 보낸 뒤, ‘부활’이 연주되 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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