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9화 (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09화

4. 4살, 천재 작곡가(4)

“세상에.”

“나카무라 씨, 이게 정말 4살 먹은 아이가 만든 곡이라고요?”

“네. 사실입니다.”

엑스톤 소속 연주자들을 상대로, 총괄 매니저 나카무라와 배도빈의

전담 프로듀서 ‘히무라’가 자리를 마련했다.

배도빈과 계약을 했던 8곡 중에서 단 하나의 악보만이 완성되어 있었는데, 기존 인터넷에 올라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완성도였다.

녹음을 하기 전.

4살 아이가 만든 그 악보를 보며 곡의 전반적인 해석을 함께하고 작곡가의 코멘트를 전해주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Auferstehung (부활)’이라는 피아노 3중주곡이 4살 꼬마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지저분한 악보는 그야말로 ‘완 벽’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모든 정보가 상세히 나타나 있었고 심지어는 메트로놈의 박자 수까지 일일이 적 혀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처음 올라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곡이었다.

“……농담이죠?”

“하하하.”

연주자들이 악보를 보며 작게 감탄 하는 모습을 보며, 나카무라는 내심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일본 굴지의 레이블, 엑스톤은 몇 개월 전 한 사원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보컬라이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몇몇 개의 곡을 올린 ‘YEAN’.

닉네임 ‘YBEAN’은 단기간에 8개 의 곡을 니코동이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존의 창작곡과는 다른 클래식한, 아니, 클래식 그 자체의 음악이었으나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좀처럼 다른 장르의 음악이었기에 그 반응은 더욱 부각되었다.

‘YBEAN’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탄했던 점은 선율로 전 해지는 ‘감성’이었다.

‘부활’은 지독한 절망을 광기 어린 감성으로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인트로부터 과감하게 나서는 선율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게 했다.

그 알 수 없는 ‘전율’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 순식간에 ‘YBEAN’은 화두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배영빈이 본인 아이디로 올렸던 니코동의 게시글이 대한민국 의 게시판에 역수출되는 일까지 생겨났다.

ㄴ 이거 누구임?

ㄴ 모름. 프로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다 카더라임.

ㄴ 프로는 무슨. 뭐 베낀 거 아니냐? 3달 동안 8곡이 말이 안 되잖아.

ㄴ 아님 ㅇㅇ 다 찾아봤는데 오리지 널 맞음. 뭐 일본 쪽 음반사 신곡 아닐까? 반응 보려고.

ㄴ 어떤 미친놈이 반응 보려고 8곡 씩이나 올려.

ㄴ ㅇㅇ. 같은 생각.

ㄴ 그나저나 8곡 전부 조회 수 100 만 넘는 거 레알이냐?

가사도 없는 곡이 이만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에 의아했던 엑스톤의 직원은 해당 곡을 확인, 망설이지 않고 팀 회의에 제출하였다.

결론은, 믿을 수 없다.

초기 몇 곡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혹시나 싶어 표절곡인지에 대해 철저히 알아봤으나 완벽한 오리지널 곡이란 사실만 확실시 되었다.

“분명 프로입니다.”

“잡아야만 합니다. 요새 이런 클래식한 곡을 이만한 퀄리티로 뽑아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계적으로도 클래식 음악 소비량이 높은 일본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마땅 한 인재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과거 수많은 천재가 만들어온 곡들 이 있었지만 새로운 음악이 나타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수명이 다할 터.

신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엑스톤으로서는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알아본 결과.

나카무라와 히무라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저희도 무척 놀랐습니다.”

나카무라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말았다.

‘YBEAN’의 정체가 많이 쳐줘야 두세 살 정도 되는 아이였던 것.

한국 나이로 네 살이라고 했던가?

믿을 수 없었다.

혹시나 이 아이의 아버지가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정도였다.

그러나.

‘이럴 수가.’

본인의 눈앞에서 빈 오선지를 채워 나가는 ‘배도빈’을 보며 나카무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침내 하늘이 새로운 천재를 내린 것이라고.

다만.

“으음. 확실히 대단한 곡이지만 역 시 4살짜리 아이가 쓴 게 맞나 보네요.”

“그렇지.”

“제가 여길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문제는 악보가 매우 더럽다는 점은 문제였다.

악필도 이런 악필이 없었다.

과연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가진 것과는 별개인지 배도빈의 악보를 보는 일은 꽤나 곤욕이었다.

‘아직 어려서겠지.’

배도빈의 전담 프로듀서 히무라는 배도빈이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런..

히무라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악보에 사용되는 기호부터 적는 방식까지 휘갈겨 적혔기에 알아보기 힘들 뿐.

틀린 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총괄 매니저 나카무라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그녀의 부모 역시 배도빈 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고 하였기에.

히무라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유명세를 끌기 위해 사기 치는 거 아냐?’

그러나 일단 배도빈이 직접 악보를 써 내려가는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 했기에 의심을 더할 순 없었다.

더욱이.

“이거 엉망이니 다시 줄게요.”

첫 번째로 올라왔었던 ‘부활’을 다 시 적기 시작한 배도빈이 일주일 내 내 악보를 고쳐가며 주었는데.

그것은 ‘엑스톤’과 ‘세상’이 알고 있던 ‘부활’이 아니었다.

과연 사람이 이다지도 완벽을 추구 할 수 있는가?

정말 오래 걸리긴 했으나 배도빈은 연주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적어두었다.

아니, 마치 그 악보는 이렇게 연주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듯했다.

하여 그 완성된 악보를 들고 곧장 연주자들과 미팅을 잡은 것이었다.

“이거…… 너무 빠르지 않아요?”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살펴보더니 앓는 소리를 냈다.

피아노의 역할이 좀 더 큰 피아노 3중주였는데, 메트로놈으로 표현된 연주 속도가 너무도 빨라 피아니스트 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던 탓이었다.

히무라가 확인해 보니 확실히 어지 간한 피아니스트도 혀를 내두를 정 도의 빠르기였다.

“음……. 뭐, 실수로 적은 걸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네.”

“좋습니다. 일정은 다음 주로 잡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미팅을 마친 프로듀서 히무라는 다시 서둘러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네. 맞아요.”

으음.

내 악보를 보기 힘들어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악보에도 감정을 담아야 한다는 사 실을 대체 왜 이해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확인을 위해 이리 신경을 쓰는 건 무척 기특한 일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러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도빈아, 실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의 연주 속도가 너무 빠른 듯한 데. 어떻게 생각하니?”

두 눈을 깜빡이며 프로듀서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감히 나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곡에 이견을 두다니!

그러나 나도 이자의 무지함을 깨우쳐 줄 아량 정도는 있다.

“그렇게 표현해야 해요.”

“으으음. 혹시 수정의 여지는 없는 거니?”

“안 돼. 안 돼.”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들어주지.

프로듀서가 이상한 말을 하려 들기 에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다.

다른 일이야 관대해질 수 있어도 곡에 대한 것만큼은 조금도 양보해줄 생각이 없다.

‘부활’은 애초에 극적인 변화를 통 한 감정 표현을 중요시하는 곡이다.

연주 속도 역시 필히 표현의 한 부분.

프로듀서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단단히 말해두었다.

“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는 건.”

“안 돼! 안 돼!”

“……허허. 그래. 알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곡의 진행 상황에 대해 묻기 시작, 분명히 말해두었는데도 다음에도 이러면

단단히 혼을 내줄 것이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악보에 대한 설명이 끝 나자 프로듀서가 이상한 말을 했다.

“참, 다음 주에 일본으로 한번 가 보지 않을래?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녹음하는 거 구경하고 싶을 것 도 같고, 또 보도 자료로 쓸 인터뷰 도 해야 하는데.”

“보도? 인터뷰?”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물어보니 홍보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많은 사람이 도빈이의 음 반을 듣지?”

“그럼 돈 많이 벌어요?”

“돈? 하하하! 그래. 아마 도빈이라 면 순식간에 인기가 많아질 거야.”

그럼 당연히 해야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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