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8화 (8/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008화

4. 4살, 천재 작곡가(3)

“와아.”

“어때, 마음에 드니?”

프로듀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가 내게 소개해 준 장소는 방음이 완벽하게 되어 있는 공간이었는데, 좁긴 해도 내가 그토록 가 지고 싶었던 피아노가 있었다.

오랜 시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작곡을 해왔던 터라 익숙 해지긴 했지만.

피아노로 음을 들어가며 곡을 만드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클래식 컬렉션에 많은 곡 이 있다지만 내가 작곡했던 모든 곡 이 있지는 않았기에.

나는 아직 내가 만들어 놓고도 듣지 못한 곡이 많았다. 아니, 내 곡 의 대부분이 귀가 들리지 않고 나서

만든 음악이었다.

다시 태어난 뒤.

한 번 만든 곡은 전부 기억하기에 피아노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왔었다.

더욱이 기왕에 청력을 되찾았으니 새로운 곡을 쓰는 데에도 악기를 사 용해 보고 싶던 차였다.

피아노가 없어도 작곡을 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영역.

물론 소리를 듣는 것은 보컬라이드 로도 가능했지만, 그래서 그것을 몇 번 만져보긴 했지만.

여전히 내가 바라는 음을 정확히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아마 내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컴퓨터로 곡을 만드는 것은 불편했던 터라 피아노를 마주 하여 정말로 기뻤다.

“응?”

근데 뭔가 이상하다.

피아노처럼 건반은 있는데 건반을 누 르면 작용해야 할 망치와 줄이 없다.

“아저씨, 이거 이상해요.”

내가 피아노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물으니, 프로듀서가 크게 웃었다.

이 젊은 놈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었다.

대답을 재촉하자 프로듀서가 피아노처럼 생긴 것 앞에 서서 그것에 손을 얹었다.

“이건 신시사이저라는 거란다.”

딩딩딩-

‘신시사이저’라는 물건을 소개하면 서 프로듀서는 ‘신시’의 몇몇 기능을 내게 알려주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평균율을 바탕으로 조율한 피아노 와 달리, 자기 멋대로 조작하면서 다채로운 음을 낼 수 있다는 것에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마술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아노의 소리가 아닌 것도 낼 수 있었다.

이 괴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이렇게……

끄덕끄덕.

“이건 요렇게……

끄덕끄덕.

“저건 저렇게 하는 거란다.”

이해할 수 있을까 보냐!

“너무 어려워요.”

“아, 미안. 내가 너무 신을 냈구나. 하하하.”

MIDI라는 이상한 것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만 해 대고, 신시사이저라는 괴물 같은 물 건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

컴퓨터라는 것만큼이나 어려웠기에 잔뜩 인상을 쓰자.

“역시 4살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 이건 천천히 배우도록 하자.”

라는 말을 하면서 내게 한 번 더 상처를 주었다.

이런 기기에 대해 익숙한 지금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좀처럼 이런 전자기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 에 컴퓨터 같은 것에 익숙해지기 어 려웠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적응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것.

“혹시 도빈이 피아노 필요하니?”

“네! 필요해요!”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다.

뭔가 방법이 있는 듯.

프로듀서는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나를 ‘차’라는 곳에 태우고 어디론가 다시 이동했다.

얼마 후.

나는 좀처럼 뛰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내가 알던 그 형태의 피아노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가 나를 데려온 장소는 그 전보다 좀 더 넓은 곳이었으며 아름

다운 형태의 피아노가 고고히 자리 잡은 방음실이었다.

그러나.

빠빠빠 빰! 빠빠빠 빰!

피아노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머릿 속에 내 다섯 번째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정말이지 내가 당시 느꼈던 그 절 망감과 너무도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끄아앙!”

피아노를 앞에 두고도, 의자에 앉았음에도!

태어나고 3년 만에 겨우 마주했는데!

매일 밤 그리워하며 만나기만을 기 다렸건만!

“아하하. 이거 참......

“손이 작잖아!”

이런 미칠 노릇이 있나!

빌어먹게 고사리 같은 내 손이 너 무 작아 피아노를 제대로 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도, 허리도 짧으니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짧아!”

게다가 다리도 짧다!

의자에 앉아 페달을 밟기는커녕 의 자에 올라서 앉는 것도 기어오르다 시피 해야만 했다.

등산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안간힘을 써야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끄아앙!”

성질이 뻗쳐서 악보를 패대기쳐 버렸다.

이 빌어먹을 신 같으니!

“내 손 발 내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프, 프로듀서 님? 우리 도빈이가 왜 이러는 건가요? 무슨 일 있었나요?”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는 나를 보셨다.

평소라면 뭐라도 반응을 보여드렸을 텐데 지금은 그럴 힘이 조금도 없다.

“아…… 그게. 아무래도 손이 작아 서 피아노를 못 친다는 것이 충격이었나 봅니다. 오는 내내 저렇게 멍 하니 있네요.”

“하. 하하하하.”

“도, 도빈아?”

어이가 없이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걱정스레 내게 다가오는 어머니를 안아드릴 생각도 나질 않는다.

그저 서러울 뿐이다.

누군가 내 처지를 안다면 나이 먹 고 무슨 추태냐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겠으나,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다.

소리를 잃고 난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내 곡을 연주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요한’ 때문에 부수려 했던 적도 있었으나 동시에 가장 사랑하는 악기, 피아노.

피아노가 없는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소리를 잃은 뒤 너무도 큰 절망에 빠졌었다.

한데, 이번에 다시 한번 그 느낌을 받은 것이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고 몸뚱아리 가 작아서 제대로 칠 수 없다고 하니 그간의 서러움이 폭발하고 말았다.

“도빈아, 금방 클 거야. 도빈이 얼 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못 걸었던 기 억 안 나?”

어머니께서 달래주시려고 말씀하신 내용이 나를 더욱 서글프게 한다.

앞으로 대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저…… 도빈이가 바라기도 해서 장소를 섭외해 봤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이른 듯합니다. 컴퓨터 프로그 램을 이용하는 것도 도빈이에겐 아 직 어려운 듯하니. 지금까지처럼 부 탁드리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죠. 오늘 고생하셨어요.”

“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도빈아, 아저씨 가시는데 인사해 야지?”

"..."

“떽. 엄마는 예의 없는 도빈이 싫어요?”

“……안녕히 가세요.”

할 수 없이 인사를 하자 프로듀서 가 웃으며 집을 나섰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돌에 걸려 넘어지니 도무지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오늘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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