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07화
4. 4살, 천재 작곡가(2)
대체 뭐라는 거야.
일주일 뒤.
나는 아버지, 배영빈과 함께 일본이 란 곳에서 찾아온 두 사람을 만났다.
아버지께선 일본어를 할 줄 모르시 기에 사촌형을 굳이 같이 데리고 왔는데, 배영빈이 의외로 일본어를 잘 하는 듯했다.
일본이란 곳의 언어에 관한 자격증 이라는 게 있는 모양인데 꽤 놀랐다.
그러나 저쪽에서 통역사를 데리고 왔기에 배영빈은 할 일 없이 그냥 나와 파르페라는 어마어마하게 단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
파르페는 꽤 먹을 만했다.
“이거 저희도 무척 놀랐습니다.”
엑스톤이라는 곳은 아마도 출판사 인 듯.
출판사 직원으로 보이는 ‘나카무 라’라는 일본인은 통역을 통해 놀라움을 표현했다.
“저희는 분명 재야에서 지내는 전 프로라고 생각했건만, 2006년생이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군요.”
나카무라가 나를 지긋이 보았다.
파르페라는 것에 심취해 있던 나는 그 시선을 느끼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 올곧은 눈빛을 보면 사기꾼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아직은 모르는 법이다.
사람은 믿어선 안 될 일.
과거 몇 차례 내게 사기를 치려던 사람들을 겪어왔기에 나는 장사꾼은 좋아할지언정 장사치에 대해서는 혐 오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나카무라가 싱 긋 웃은 뒤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형아.”
귓속말로 배영빈에게 말을 걸었다.
“저 두 사람이 다른 이야기 꺼내면 아빠한테 다 알려줘야 해. 꼭. 알았지?”
“그래. 알겠어.”
조금 이상한 놈이긴 해도 어린 나이에 용케 외국어(일본어)를 할 줄 아는 배영빈이 있어 다행이었다.
적어도 쉽게 사기를 당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저로서도 조금 당황스럽 습니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바로 계 약을 부탁드리고 싶겠지만, 아무래 도……
“우리 아이가 만든 곡이 아니라고 의심하시는 거군요.”
아버지의 말을 전해들은 나카무라는 손사래를 치며 애써 부정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다만 의심이 아니라 확인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아버지께서 뜸을 들이자 나카무라는 조금 난감한 듯했다.
저 남자들이 계약서상으로 장난을 치지 않는다면 협상 테이블은 아버 지께 맡겨도 될 듯하다.
비록 가난하지만 아버지께선 학업 에 충실하셨다고 들었다.
어머니 역시 학벌이 좋으시다니, 나는 두 분이 왜 가난한지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우선.”
아버지가 상당히 진지해 보였다.
평소에도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만 제외하면 신중한 편이시니 굳이 나 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는 도빈이에게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 왔습니다. 지금도 도빈이가 좀 더 자란 뒤에 이런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라, 믿지 못하시겠다면 없던 일로 하고 싶군요.”
전언 취소.
1억 원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런 식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아버 지! 더 받을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역시나 아버지의 말을 전해들은 나카무라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지금 엑스톤이란 곳과 아버지 사이 의 간극은 내가 정말 그만한 작곡력을 갖췄는가.
그것을 증명하면 좁혀질 일이다.
‘어쩔 수 없지. 이보다 좋은 제안 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돈이 급하니까.’
“아저씨, 종이랑 펜 좀 줘요.”
“ 도빈아?”
“심심해요.”
걱정스레 나를 부르는 아버지에게는 심심하다는 핑계를 대었다.
통역사가 허겁지겁 가방에서 종이 와 펜을 꺼내주었고 나는 거기에 이 번에 완성하려 했던 곡을 적어 나가 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군.”
나카무라가 뭔가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통역사가 굳이 그 말까지는 통역하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 감탄이라든가 하는 종 류의 말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음악에 교양이 있는 자라면 내가 지금 써 내리는 곡을 머릿속으로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을 터.
이 완벽하게 조율된 악보를 알아볼 수 없다면 나와 계약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 점에선 나 역시 나카무라라는 사람을 시험해 본 것이다.
나카무라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 나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아마 거꾸로 보고 있던 것을 바로 보고 싶은 것이리라.
“아, 아버님. 이건 혹시 도빈 군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카무라의 말이 통역되어 전달되었고,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곤 기분이 상하신 듯 퉁명스럽게 답했다.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도빈아, 지 금 이건 예전에 만들었던 곳이니?”
“머리로 정리하다가 다 생각나서 옮겨 적는 거예요. 아,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이게 낫겠다.”
나카무라는 통역사를 재촉하였다.
아마 나와 아버지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알려달라는 듯했다.
통역사가 나카무라에게 몇 마디 전 달하자 그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무 말도 없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악보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흠.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면 이 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나카무라는 일어서려는 아버지를 몸으로 막아 세웠고, 아버지는 이게 무슨 짓이냐며 조금 화를 내었다.
그러자 나카무라가 고개를 깊게 숙 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댁의 자녀분은 천 년에 한 번 나 올 천재입니다. 부디 엑스톤과 함께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당황한 통역사가 나카무라의 말을 뒤늦게 전달하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고민에 빠지셨다.
‘녀석, 사람 보는 눈은 있구먼.’
나카무라라는 사람은 제법 안목을 갖춘 듯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 사람이라니.
썩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우리 도빈이가.”
그때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적의가 없는 목소리를 내셨다.
“우리 도빈이가 정말 그렇게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껏 이런 사람을 본 적 없습니다. 원석, 아니, 이미 완성된 보석입니다. 세상 그 어떤 다이아몬드보다 크고 아름다운 재능입니다.”
나카무라의 눈은 더없이 진지했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지긋이 보더니 이내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서 물었다.
“도빈아, 음악이 좋니?”
“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계약이 어떻게 진행된다 하셨죠?”
아버지께서 다시 자리에 앉으시며 입을 여셨고, 나카무라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제 알아서 잘 조율하시겠지.’
지금부터는 ‘어린애’가 나설 자리 가 아니기에 나는 종이에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다.
[새로운 곡을 만들었습니다. 하나 의 곡을 완성할 때마다 일정 경험치 가 누적됩니다.]
[‘väterliche Liebe(부성애)’-신규]
[총평: B+]
[완성도: 91, 예술성: 94, 대중성: 71]
마지막 음을 적었을 때, 알림창이 라고 이름 지은 ‘글자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기에 점수를 확인했는데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수준이다.
‘완성도와 예술성은 그렇다 쳐도 대중성은 대체 뭐야?’
감히 이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곡을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21점이 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역시 이 ‘신의 장난’은 볼 가치가 없다.
“••••••그럼?”
“네. 제작비를 포함한 모든 제반 비용은 엑스톤에서 부담하겠습니다. 도빈 군은 지금까지처럼 작곡을 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요청해 주신 대로 도빈 군이 아직 어리기에 필요 하다면 한국으로 와 작업을 진행하 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계약 기간이 3년이라고요.”
“그렇습니다. 3년간 모든 수입은 순 수 음반 제작비를 제한 수익에 2할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말씀 해 주신 대로 계약금을 높여 1,500 만 엔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아버님께 선 적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아아, 그 설명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정산을 1년에 네 번 한다고요?”
“네. 이것은 회사 방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만, 원하신다면 그 달에는 나눠 지불해 드리기도 합니다.”
“정산 자료는 모두 첨부해 주시고요.”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선 고심하시는 듯하다가.
“그리고 우리 아이가 만약 배우고 싶은 것이 있거나. ……도빈이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입을 떼셨다.
“도리어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특약 사항에 명시하겠습니다.”
나카무라라는 남자의 대답이 마음 에 드시는지 아닌지 모르게.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평소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단어가 아니었기에, 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 하기 힘들었지만.
아버지께서 꼼꼼히 무엇인가를 챙기 고 있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곤 이내 눈을 뜨시더니.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아버지께서 무겁게 입을 여셨다.
그 목소리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생각 끝에 결정하신지 알 수 있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요한’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
‘……반드시 성공해서 이분을 행복 하게 해드려야겠다.’
다짐. 또 다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곡을 써주면 되고, 그걸 ‘음반’이라는 것으로 만 드는 모양이다.
“형, 음반이 뭐야?”
“CD 야.”
“CD?”
“CD 몰라? 이거, 이거.”
고개를 끄덕이자 배영빈이 책장에 꽂힌 ‘무엇’ 중에서 하나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자 둥글고 납작한 것이 보였다.
“아. 알아.”
어머니께서 항상 오디오로 음악을 들려주실 때 넣었던 것이었다.
이런 것에 연주된 곡을 넣어서 언 제나 똑같이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세상 신기한 일이다.
나카무라가 다녀간 이후.
나는 엑스톤인지 하는 곳에서 프로 듀서라는 사람과 만나 이것저것 대 화를 나누었다.
프로듀서는 내가 어리기에 그런 것 인지 큰 요구를 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고 싶어 했기에 물어보는 것에는 성실히 답해주었다.
다만 아는 단어가 많이 없어서 그 쪽이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든 돈을 주는 사람이니 잘해줘야지.’
예술가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사는 법이다.
알아준다 함은 역시 돈.
돈이 최고인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우리 가족은 매우 가난한 편이라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벗인 페르디난트 폰 발트슈타인이 나 막시밀리안 프란츠 대주교가 없었더라면 나는 없었지.’
그러니 내 곡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이상, 잘해줘야 한다는 거다.
원하는 곡이 있으면 만들어주는 것 역시 잠시간 해줄 용의가 있었다.
남의 취향에 맞춘 곡을 쓰는 것은 혐오한다만 돈이 급한 현재로서는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음..."
“왜요?”
“아, 아니야.”
다행히 프로듀서라는 사람은 한국 말을 할 줄 알아서 그나마 이야기가 쉽게 통했는데.
몇몇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자 뭔 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기분 나쁘게 왜 저러는 거야?’
“도빈아, 혹시 이거 누구한테 배운 거야?”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4살이 되도록 나 역시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온통 신기한 물건으로 가득한 대한 민국이지만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역시나 비현실적인 이야기.
내가 누구에게 사사를 받았고, 누 구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말했다간 정신 나간 꼬맹이 취급을 당할 게 뻔했다.
“바흐, 모차르트.”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여기까지.
자세히는 말할 수 없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에게는 직접 사사를 받았지만, 그건……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내게 영감을 주었던 두 위인을 언 급하는 정도가 전부이리라.
슬쩍 고개를 들자 프로듀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변변한 선생도 없이 그저 곡을 듣는 것만으로 이만큼이나 음악을 할 수 있다니.”
뭔가 오해가 생긴 듯하지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프로듀서는 다시 한번 내가 적은 답안지와 악보를 보면서.
“아무래도 베토벤이란 말이야.”
라고 말했다.
“베토벤?"
계속 궁금했던 이름이다.
나는 그가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베토벤. 혹시 베토벤을 좋아 하니?”
“베토벤이 누구에요?”
“음? 베토벤을 몰라?”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더니 나의 14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
연주 실력은 들어줄 만한 정도.
아직 배울 점은 많다.
“이거 만든 사람이잖아.”
“••••••네?”
이건 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
‘내가 만들었다!’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나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프 로듀서를 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애긴 애구나.”
하하 작게 웃은 프로듀서는 다시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베토벤이란 사람은 말이야, 정말 위대한 음악가야. 음악을 하는 사람 이라면, 아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
“그러니까 베토벤이 누군데요? 방 금 전의 곡 만든 사람은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이에요.”
“베트호펜?”
“베트호펜.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 아아아아.”
“응?”
“하하하. 도빈이가 독어 공부를 했나보구나. 그래 맞다. 그게 정확한 발음이지. 그래그래.”
"....?”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 네 곡이 꼭 그분의 느낌이 나서 그렇단다.”
아니. 이 사람들이.
무례에도 정도가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사람들은 죄다 나를 ‘베토벤’이라고 알고 있다고?
내가 묻자 프로듀서는 이에 관련해 서 설명해 주었다.
인정할 순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보 면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건 아닌 듯.
분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튼.
“제가 베토벤…… 이란 사람처럼 곡을 쓴다고요?”
“응. 엄청 닮았어. 아, 칭찬이니까.”
이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