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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화 (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05화

    3. 3살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선 이곳이 대한민국, 내 고향 독 일과는 지구 정반대편에 가까운 곳 에 위치한 동양의 나라라는 점이 그 러했고, 지금이 2008년이라는 게 두 번째 충격이었다.

    내가 죽은 해가 1827년의 아직 추 운 봄이었으니 무려 약 180년이나 미래로 온 것이었다.

    ‘장난이 지나친 신이로군.’

    정말 신기한 것, 모르는 것투성이였으나.

    이제야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조 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 부모님은 내 예상과 달 리 상당히 가난한 축에 속했다.

    월세가 부담스러웠기에 우리 가족 은 ‘큰아버지’의 집에 살고 있었는 데, 어머니는 종종 큰어머니께 핀잔을 들으시는 듯했다.

    큰아버지는 심성이 착한 것 같은데 큰어머니만 유독 그러는 듯.

    나로서는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린 나로서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동서. 내가 빨래 좀 해두라 고 했잖아. 도대체 이게 뭐야?”

    “죄송해요, 형님. 한다고 하는데 시 간이……. 금방 마저 할게요.”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 집안일 문제라고 이해했다) 어 머니의 태도를 보았을 때 어린아이를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닌 듯했다.

    이러한 가난은 사실 이미 그보다 지독한 환경을 겪었기에 그리 큰 충 격은 아니었다.

    간혹 나를 속물이라 칭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내 마음 속의 것이 밖으로 나와야만 했기에.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 해. 그리고 내 가족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좋은 상황.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사랑하 시고 나에 대해선 그보다 애틋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참. 그리고.

    그나마 14살로 나이 차가 많은 사 촌형이 있었는데, 이상하지만 착한 녀석이었다.

    “헤헤. 미키 쨩 너무 좋아.”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가끔씩 내게 간식을 주는 것으로 보아 착한 녀석이긴 하다.

    녀석의 방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아, 최근 나는 사촌형 ‘배영빈’의 방 에 놀러가곤 했다.

    오늘도 열심히 사촌형의 방으로 걸어갔는데, 안에서 ‘미키 쨩 너무 좋아’라는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형아. 형아.”

    문을 두드리며 형을 불렀다.

    “도빈이야? 들어와.”

    배영빈이 문을 열어주며 ‘망가뜨리 면 안 돼’라고 주의를 준 뒤 ‘컴퓨 터’라는 것 앞에 앉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오디오’의 발 전된 물품인 듯했다.

    배영빈이 가끔 저걸로 내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배영빈은 항상 조심하라고 하지만 나는 이 신기한 물건이 가득한 방에 오는 것이 즐겁다.

    요란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일들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사촌형 배영빈의 방을 둘러보며 오늘도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아아. 미키 미키.”

    오늘은 증상이 좀 더 심한 듯했다.

    배영빈은 귀에 무엇인가를 꽂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징그러 운,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에게 다가가 툭툭 치니 배영빈이 귀에 꽂은 것 중 한쪽을 내 귀에 옮겨주었다.

    그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뭐라는 거지.’

    어떤 여자아이가 뭐라 뭐라 노래를 부르는데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멜로디는 있으나 비교적 조잡. 화성학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르는 느 낌이었다.

    아마도 어린아이가 연습 삼아 작곡한 곡인 듯하다.

    “어때? 어때? 진짜 명곡이지? 딱 들어도 느낌 있지?”

    명곡은 개뿔.

    조금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동요’를 시작으로 이 시대의 ‘노래’라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없었던 전혀 다른 음악.

    가사를 붙인다는 것은 여전히 망설 여지는 부분이지만, 확실히 그 나름 의 울림을 가진 곡들이 많았기에 나는 이 역시 음악의 한 장르로 받아 들였다.

    확실히 제법 괜찮은 수준의 동요도 있었기에 한때는 심취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명백히 수준 이하의 곡이다.

    “이거 보여? 보컬라이드라는 건데, 이걸로 이렇게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게 해줄 수 있어. 봐봐. 소 리 나지?”

    “……어? 오또케?”

    작곡을 하면 바로 연주가 된다고?

    게다가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컴퓨터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만, 그런 것까지 가능하다

    는 말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신이 나서 설명을 시작한 배영빈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 ‘보컬라이드’란 것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우리 집에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에 불만이었던 나는 배영빈이 직접 ‘마우스’라는 것을 움직이면서 건드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정말 마우스로 찍은 오선지 그대로 실제 소리가 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기다려왔던, 머리로만 만들어 냈던 새로운 음악을 쏟아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형아! 형아! 나 이거! 이거 할래!”

    “응? 안 돼. 안 돼. 도빈이한테는 아직 너무 어려워.”

    “할래! 할래! 하게 해주세요!”

    “ 으음••••••

    이익, 이 치사한 놈.

    어서 빨리 자리를 비키지 못할까!

    그런데, 때마침.

    “영빈아! 저녁 먹으러 나가자! 늦었어!”

    못된 큰어머니께서 마침 외식을 나가려 배영빈을 불렀다.

    “아, 지금 가요! 도빈아, 이거 건드리면 안 돼? 꼭! 중요한 거 다운받 고 있으니까.”

    안 되기는. 알 수 없는 말 그만하고 빨리 나가기나 해라.

    “응, 형아.”

    배영빈이 후다닥 방을 벗어났고, 나는 배영빈의 방에 혼자 남게 되었다.

    “엄마? 도빈이는 혼자 두고 가요?”

    “밥 줬잖아. 잠깐 나갔다 오는 건 데 뭐 문제 있으려고. 그리고 영빈 이 너, 엄마가 컴퓨터 오래 하지 말

    랬지!”

    밖에서 두 사람이 뭐라 그러는데 관심 밖이다.

    ‘……어떻게 했더라?’

    뭔가 알 수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시간 뒤.

    [곡이 완성되었습니다.]

    [제목을 정해주십시오.]

    제목을 지으라는 말에 나는 고민하 다가 ‘Auferstehung(부활)’이란 이름을 주었다.

    죽는 순간까지 비통함을 표현하였고 다시 태어난 순간, 어머니의 사 랑스러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지은 소나타였다.

    실은 전부터 머릿속으로 완성한 곡을 옮기는 데 지나지 않았지만, 키 보드와 마우스란 놈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참이나 걸린 것이다.

    어찌되었든 겨우 하나는 완성한 셈이다.

    비록 이미 만들어놓고 옮기기만 한 행위였지만, 그걸 소리로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른 일.

    나는 비로소 약 200년 만에 내가 작곡한 곡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야?”

    곡을 완성했는데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배영빈이 귀에 꽂고 있던 것을 빼었다 다시 꽂아봤지만 아무것도 안 들린다.

    “이게 모야!”

    내 곡! 내 곡 빨리 틀지 못할까, 이 빌어먹을 상자 같으니!

    이 몸이 얼마나 힘들여 만들었는 데! 이 답답한 고철덩어리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야!

    띠띠띠띠- 띠로리-

    분노에 차 컴퓨터란 것을 걷어차려 할 참에.

    때마침 외식을 나갔던 큰아버지네 가족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배영빈은 항상 그러하듯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고 내가 ‘컴퓨터’를 걷 어차려는 것을 보곤 화들짝 놀랐다.

    “아니? 왜 아직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잠깐! 잠깐!”

    “이 나쁜 컴퓨토!”

    좀 더 심한 말을 해주고 싶지만 알고 있는 어휘가 적어 더한 욕을 해줄 수 없는 게 한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러나 비통하게도 14살 어린아이 의 팔마저 내게는 억셌다.

    배영빈이 나를 말리곤 숨을 헐떡이 며 ‘무슨 애가 이렇게 괴팍해’라고 중얼거렸다.

    나 역시 일단 진정하고 컴퓨터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형아, 이거 틀어줘.”

    “그보다 뭐 만진 건 없지? 휴우. 일단 다운 다 받아졌는지부터 확인 해야지. 도빈아, 컴퓨터 막 만지면 안 돼!”

    “안 만져써. 이거 틀어줘. 빨리.”

    “아아. 다행이다. 잘 받아졌네.”

    “형아!”

    “아, 알겠다는. 대체 뭘 틀어달라는 거야?”

    “저거!”

    내가 재촉하자 배영빈이 못 이기겠다는 듯 마우스를 움직였다.

    ‘아, 저걸 누르면 되는구나.’

    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아.”

    이 보컬라이드라는 걸 조금만 더 잘 다룰 수 있었다면 이렇게 아쉬운 곡이 아닐 텐데.

    참으로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연주였다.

    내가 컴퓨터란 것에 입력한 것은 내가 생각했던 음이 아니었다.

    분명 내가 조작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어색하게나마 이렇게 음을 들을 수 있으니 더없이 감동이었다.

    “끅. 끄윽.”

    “와…… 이거 뭐냐는? 무슨 노래냐는?”

    “흐아아앙!”

    “가, 갑자기 왜 우냐는?”

    “이거, 이거 잘못되써! 이거 이 음 아냐! 이것도! 이것두! 끄아아앙!”

    이것에 익숙하지 않는 것이 한스럽다.

    잘만 다룰 수 있다면 이렇게 어색 한 부분이 너무도 많은, 미완성의 연주가 아니라 온전한 것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토록 염원하던 소리를 찾고도.

    그러나 2년이나 감상만 해야 했던 나로서는 그 기다림에 서러울 수밖 에 없었다.

    몸이 어리기 때문일까.

    예전이었다면 속으로 삭였을 감정 이 절로 눈물로 터져 나왔다.

    “아, 알겠어. 그만 뚝! 근데 이거 진짜 도빈이 네가 만든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하는 거 가르쳐 줄 거야?”

    “근데 나도 잘 몰라. 뭘 알아야 가 르쳐 주지.”

    “형아, 가르쳐 줄 거야?”

    가르쳐 줘야지!

    사내 녀석이 비겁하게 자꾸 변명이 나 늘어놓는 것이더냐!

    에잇.

    아직 2년밖에 안 되어 이 몸의 ‘한 국어’ 실력이 어린아이 수준인 것이 안타깝다.

    배영빈이 독일어만 알아듣는다면 윽박을 질러서라도, 아니면 달래서 라도 가르치게 할 텐데.

    “으음. 일단 여기서부터 한 번씩 보자. 이게 일단은 매뉴얼인데……

    “고마워, 형아!”

    음. 그래도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모양.

    역시 이상하긴 해도 착한 녀석이다.

    [성명: 배도빈] [Ludwig van Beethoven]

    [연령: 0세] [56세]

    [칭호: 악성(樂聖)]

    [능력치]

    [작곡:99(완성)][작사: 11(초보)페널티]

    [편곡:96(완성)][음감:74(•능숙): 페널티]

    [장르]

    [클래식: 86(자유 단계)]

    [동요: 59(연합 단계)]

    [팝: 03(인지 단계)]

    [대분류 장르 열람: 3개]

    [새로운 곡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곡을 완성할 때마다 일정 경험치가 누적됩니다.]

    [작곡]

    [‘Auferstehung(부활)’ - 신규]

    [총평: C+]

    [완성도: 51, 예술성: 81, 대중성: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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