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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화 (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004화

    2.첫돌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도 조금은 알 아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확실히 다른 언어체계라 그런지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언어임에는 확실했다.

    부모님은 정말 다양한 발음을 낼 수 있었고, 확실히 그것은 이 언어 가 가진 큰 장점이라 생각했다.

    일단 그건 그렇고, 최근 나는 ‘오 디오’라는 놀라운 상자에 심취한 상 태였다.

    지난 시간 나는 내 귀와 영혼을 즐겁게 해주었던 수많은 곡과 연주 가들이 사실 저 검은 상자 안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묘한 일이다.

    둥글고 납작한 물건을 상자 안에 넣고 툭 하고 튀어나온 것을 누르면 상자 안에 갇힌 이들이 그제야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는 그 놀라운 사실을 마침내 깨 달은 것이다.

    “우아!”

    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하루는 상 자의 ‘버튼’이라는 것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디리디리리링-

    오, 이번에는 바다(meer). 바흐(Ba ch: 개천)의 음악이다.

    바흐. 그의 음악은 놀랍도록 정교 하면서도 웅장하기에 나는 마치 그 가 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저음부를 확실하게 맡은 통주저음 위로 정교하고도 화려하게 쌓아진 성과 같은 음악을 들으니, 그 남자 의 위대함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긴 해도 역시 ‘바다’의 음악은 사랑받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사람들도 나처럼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사 뭇 뛰는 모양이다.

    ‘암. 그래야지.’

    나는 개인적으로 반주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전의 음악들은 그런 개념이 없었기에 참으로 심심

    했을 뿐이었으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온 이 바로크 의 음악, 특히 이 바흐의 음악은 언 제 들어도 감수성을 자극해 준다.

    나이를 먹은 뒤 그의 대위법을 제대로 연구한 적이 있었으니 나로서 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 기 어렵다.

    바흐는 그 천재 모차르트 역시 인정하는, 그야말로 음악의 아버지인 것이다.

    딸칵.

    한참 음악에 심취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고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우리 도빈이 또 음악 틀었어?”

    어머니는 다 좋으시지만 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것만큼은 매너가 없으신 듯하다.

    이렇게 소중한 음을 듣는 데 소홀 할 수 있다니.

    한 음이라도 놓치면 어떡한단 말인가.

    “음악은 언제라도 들을 수 있으니 이만 맘마 먹고 코 자야지? 그래야 건강할 수 있단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머니.

    음악을 언제라도 들을 수 있다니.

    어머니의 말을 아직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무슨 뜻인지 모호하게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의 소중함은 일회성에 있다.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서, 당시 그 사람의 기분 에 따라서 또는 무대에 따라서 수많은 요소로 단 한 번의 연주는 달라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전에 들었던 곡이 정말 똑같은 느낌으로 들린 적 이 있었다.

    아니, 착각은 아니다.

    실제로 기교에 있어 놀랍도록 집착 했던 카를 체르니의 연주로 착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설마 하고 넘어갔지만 어머니의 말 씀을 들으니 음악 한 곡을 듣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이 때 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볼까.’

    꾹_ 꾹_

    나는 다시 한번 바흐의 미사곡을 듣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이건 아니고.’

    꾹_ 꾹_

    ‘이것도 아니고.’

    그런데 순간.

    내 귀를 꿰뚫는 듯한 음악이 들려 왔다.

    ‘누구의 연주인가.’

    믿을 수 없었다.

    바이올린 곡은 정말 많이 들어왔는 데, 이 사람의 연주만큼은 정말이지 수준이 달랐다.

    ‘믿을 수 없다. 이건 혁명이야.’

    바이올린을 잘 켜는 사람은 정말 많이 봤지만, 나를 포함해 그들 모 두 바이올린을 집어 던져 박살 내야

    할 듯했다.

    “자아, 도빈아. 그러면 안 돼. 망가 지잖니?”

    ‘ 앗.’

    어머니께서 날 안으면서 ‘오디오’ 와 멀어지고 말았다.

    ‘망가지다니. 그럼 안 되지만……

    꼭 한 번 확인하고 싶다. 대체 누구 의 연주인지, 그 사람의 이름이라도.

    “자, 내일은 우리 도빈이 첫 생일 이니까 일찍 자야지?”

    첫 생일?

    “아우?”

    “우리 도빈이가 태어나고 첫 생일 이야. 고맙게도 많이 도와주셨단다. 기대되지?”

    아아, 벌써 1년이 지난 것인가.

    그러고 보면 내가 이렇게 음악에 다시 한번 미칠 수 있었던 것도 다 어머니 덕분이지.

    확실히 어머니를 곤란하게 해드려 선 안 된다.

    아쉽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 저 상 자가 있는 한, 다시 들을 수 있을 테니.

    아쉬움은 뒤로하고 어머니의 젖을 먹은 뒤 오늘은 이만 자야 할 것 같다.

    쪽— 쪽—

    처음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게 민망했지만.

    이 어찌 고귀한 자애일까.

    이 또한 행운이리라.

    이건 또 무슨 짓이란 말인가.

    다음 날 나는 요란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어른들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신기하 게 생긴 옷이었는데 드문드문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곳의 전통 복장인 듯한 데, 너무 화려하여 내 취향은 아니었다.

    벗으려 하니 어머니께서 자꾸만 말 려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돌이라는 건가?’

    동양만의 생일 축하 양식인 듯하다. 유아세례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뭔가 신기하면서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였다.

    귀족 집안답게 참가해 준 사람이 많은데 다들 웃고 있었다.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의아하면서도 내게 향해 다가 오는 집안 어른들을 보았다.

    “어머, 어쩜 애가 이렇게 듬직해요?”

    “그러게. 우리 애 이만했을 때는 엄청 울었는데 말이야.”

    “의젓하니 멋있네, 우리 도빈이.”

    “어머, 눈이 너무 예쁘다, 얘.”

    아직 이곳 말에 익숙하지 않아 다양한 억양으로 들어오는 집안 어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들이 나를 적어도 미워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보면 두 분 부모님이 인간관계를 잘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귀족 가문도 서로 시기하는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가진 것이 있다 보니 남의 것도 탐하는 것.

    욕심은 욕심을 부르고 그 끝은 추 악함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그런 광경을 많이 보았던 나로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품에 다시 한번 감사하였다.

    저렇게 형제간에 싸울 거라면 차라 리 귀족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렇다고 가난 또한 사양이다.

    다정했던 조부님과 달리 부친이란 작자는 지독한 술주정뱅이였다.

    ‘그자’의 그릇된 욕심 때문에 흘렸던 눈물과 느꼈던 분노.

    그가 죽었을 때는 쓰레기가 죽었다는 생각에 비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거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지.’

    나는 진정으로 이 평화로움에 감사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지루한 행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기다리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내 앞에 여러 물건을 펼쳐놓았다.

    “도빈아, 자 쥐어 봐.”

    ‘쥐어? 잡으라는 말씀이신가.’

    물건들을 살펴보니 책으로 보이는 물건부터 만년필처럼 생긴 길쭉한 펜, 이곳의 주식인 밥이 익기 전의 모습, 초록색 종이, 실 등이 있었다.

    ‘저건 뭐지?’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초록색 종이.

    숫자로 10,000이라고 적혀 있고 수염 난 인물이 그려진 종이였다.

    제법 잘생긴 남자가 그려진 그것에 나는 나도 모르게 이끌리기 시작했다.

    “ 아우아.”

    작디작은 팔을 뻗어 그것을 쥐고 가져오자 뭔가 이상하지만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확실히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지만 자꾸만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었다.

    “어머, 어머.”

    “우리 도빈이가 부자 되려나 보네?”

    “하하하하! 그래! 돈이 최고지! 어? 돈이 최고야! 도빈아,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 호강시켜 드려야 한다?”

    뭔지 몰라도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 로 보이는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좋아한다.

    ‘돈? 이걸 돈이라고 하는 건가? 냄새가 좋군.’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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