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03화
1. 생후 30일(2)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목을 움직 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내가 보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이 방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좁다.
‘내 방인가?’
처음에는 내게 주어진 방이라고 생 각했는데, 부모님이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보면 그건 또 아닌 듯하다.
‘내 생각보다 가난한 곳인가? 아 니, 그렇다면 그 많은 연주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은 또 하나 있다.
문이 하나 있었는데, 가끔 그것이 열리면 더 넓은 공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좀처럼 알 수 없어졌다.
매일매일 다른 연주자들이 새로운 음악을 연주해 주는, 분명 귀족 집안일 터인데.
‘유모는커녕 사용인도 보이지 않고.’
유모가 없는 것으로 보아 동양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함께 생활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나는 하루 빨리 성장해 이 집안에 있는 악기들을 직접 다루고 싶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집에 없는 악기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피아노, 때로는 바이올린 또 때때로 합주곡이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는 여 건으로는 최상이었기에 나는 이 행복한 기다림을 버틸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어머니께 연주자들에게 악기를 켜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꺄! 꺄우아!”
“왜? 우리 도빈이 뭐가 그렇게 기 분이 좋을까?”
음악! 음악을 들려주시오, 어머니!
“꺄으아우! 꺄우!”
이 빌어먹을 성대! 어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할까!
“그래그래. 음악 좀 들을까?”
어머니께서 나를 품에 안아 드시곤 천천히 움직이셨다.
이 포근함도 좋지만 내 갈증을 달 래줄 것은 오로지 음악뿐이다.
“자~ 오늘은 뭘 들을까?”
어머니께선 납작하고 둥근 무엇인 가를 손에 드셨고, 그것을 검은색 상자에 넣으셨다. 무슨 일을 하시는 지는 모르겠다만.
순간, 어디선가 충격적인 선율이 들려왔다.
디디리디딩-
“꺄아. 꺄아!”
아아! 이 무슨 곡이란 말인가!
나는 방 안을 날아다니는 선율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나비처럼, 때로는 참새처럼 또는 산속의 요정처럼 움직이는 선 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던 시절에는 들어본 적이 없던 곡이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다.
“꺄아! 꺄아!”
“어머, 우리 도빈이가 왜 이렇게 신이 났을까?”
어머니 조용! 잠시만 가만히 있어 주시오!
나는 이 곡을 감상해야만 하오!
아아아.
아쉽게도 시간이 흘러 강한 충격을 준 곡이 끝나고야 말았다.
가능하다면 이 훌륭한 곡을 작곡하 고 연주하는 이를 만나보고 싶으나, 어머니께선 그자를 내가 있는 이 방 에 들일 생각이 없으신 듯하다.
아쉬운 대로 어머니께 다시 한번 들려주실 것을 청하였으나 칭얼거림으로만 들릴 것 같다.
역시나, 어머니께선 나를 안아 드 시고 등을 토닥여주실 뿐이다.
계속 울면 어머니를 괴롭히는 행동 일 뿐이니 잠자코 있겠다만, 꼭 다시 듣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또 다른 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내 새로운 음악에 취해 버렸다.
디디디딩디딩.
하루하루 믿을 수 없는 놀라움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전개다.
‘Lento’로 시작한 곡은 중간중간 조가 바뀌면서 마무리까지 정말로 아름답게 이어졌다.
나는 어머니 품에서 간신히 고개를 돌려 음이 나는 방향을 보았는데.
‘••••••상자?’
조금 전, 어머니께서 납작하고 둥 근 무엇인가를 넣었던 상자에서 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건 뭐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음은 필시 저 상자에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꺄우?”
어머니, 저것은 무엇입니까?
“응? 이건 마음에 안 드니? 그럼 다시.”
어머니께서 상자의 어떤 한 부분을 누르시니.
디디리디딩-
순식간에 처음 들었던 그 충격적인 선율이 다시금 나왔다.
그것도 저 작은 상자에서!
‘아니, 이건 대체.’
그것도, 조금 전 연주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야말로 ‘재현’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같은 감 성으로 똑같은 음을 내기란 쉬운 일 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하여 같은 연주자의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공연마다 참석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한데, 음을 이렇게나 똑같이 낼 수 있다니.
이토록 매력적인 음을 재현할 수 있다니.
이것은 혁명이나 다름없다.
누굴까?
‘아아. 혹시.’
그 친구인가.
카를 체르니.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아무 말도 않고 울기만 했었던 아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울어버려 그저 그런, 한심한 놈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던 또 한 명의 천재.
그리고 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했던 남자.
방금 들었던 곡은 그 친구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카를 체르니 그 친구의 능력이라면 이러한 연주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천 번의 연습을 통해 하나의 ‘완성’을 추구했던 음악가였으니까.
아마, 내가 죽은 뒤로도 열심히 노력한 모양이다.
‘그럼 내가 죽은 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다행일 것이다.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그리 달라지지 않은, 그리운 본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어버이 라인강을 찾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다시 연주가 끝이 났다.
아아, 음악은 내가 죽은 뒤로도 이 토록 발전했던 것인가!
“꺄아! 꺄아!”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더 듣고 싶다.
정말이지 다시 태어나지 못했더라 면 너무도 억울했을 터였다.
체르니, 그 친구가 이런 곡을 썼다니.
타인을 칭찬하는 편은 아니다만 만일 카를 체르니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이 곡을 함께 연주해 보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꺄아!”
“도빈이가 이 곡이 좋은가 보구나? 이건 헝가리안 랩소디라고 한단다.”
헝가리안 랩소디?
앞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 머니께서 뭔가 알 듯한 말을 하셨다.
확실히, 뭔가 헝가리의 집시들이
춤을 추던 선율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묘하게 전혀 다른 형식의 이 곡은 그런 풍경을 자아내었다.
“꺄아?”
“그래 헝가리안 랩소디 2번. 프란 츠 리스트라는 사람이 만든 곡이 야.”
순간 어머니가 말씀하신 6음절만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억양은 조금 이상하지만 분명 어머니께선 독일어를 하셨다.
‘독일어를 할 줄 아시는 건가?’
그러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나저나 프란츠.
프란츠 리스트라.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나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내 고향 독일식 이름 이다.
그렇다는 것은 체르니의 곡이 아니 라 프란츠 리스트란 자의 곡이란 말 인가?
방금 전 내가 들었던 곡은 믿을 수 없는 발상에, 믿을 수 없는 전개를 이어나갔다.
세상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생겨났단 말인가.
필시 모차르트 그자도 나와 같은 기적을 누렸더라면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으리라.
‘프란츠 리스트.’
나는 그 이름을 기억에 담았다.
아아, 만나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슈베르트, 뒤늦게 그 친구의 악보를 보았을 때 느꼈던 아쉬움과 같았다.
“이번엔…… 이걸 한번 들어볼까?”
그때, 어머니의 말씀 뒤에.
잔잔하게.
익숙한 음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 으음?’
나의 1번 교향곡, 다 장조.
분명 내가 작곡한 곡인데, 피아노로 연주가 되고 있었다.
‘어느 놈이 감히 내 곡에 손을 대었느……
딩디디디 딩디디디.
‘……이럴 수가.’
인정하기 싫었으나 놀라운 편곡이었다.
나의 1번 교향곡을 연주하는 이 피아니스트는, 아니,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이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죽고 난 뒤의 세상에는 어쩜 이리 놀라운 일만 가득하단 말인가!
“꺄아! 꺄아!”
어머니! 이것은! 이것은 누구의 짓입니까!
“도빈이가 리스트의 곡이 좋나 보구나? 이건 베트호펜이란 사람의 1 번 교향곡을 리츠트가 편곡한 거란다. ……맞나?”
여전히 어머니의 말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또다시, 리스트란 그 이름만은 확 실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나의 성 베트호펜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으로 보아 나는 어머니 께서 꽤 음악에 대해 교양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리스트, 그자는 대체 누구기에 이러한 능력을 가졌단 말인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반드시 그를 만나볼 것이다.
그가 어디에 있더라도 말이다.
“꺄아! 꺄아!”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이만 코 자야지?”
어머니께서 토닥토닥 내 배를 다독여 주시는데 그 때문에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이 어린 몸뚱아리는 그저 잠을 자는 데 귀중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만. 그만!’
“꺄아!”
나는 이 음악을 끝까지 들어야만 한다.
감히 건방지게 내 곡을 편곡한 프란츠 리스트란 놈이 이것을 끝까지 제대로 완성했나, 이 두 귀로 확인 해야 한다.
“꺄아.”
확인해야.....
“꺄아••••••
확인.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해…… 이:.
“우리 도빈이는 자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예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