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002화
1. 생후 30일(1)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눈부신 조명 아래서 다시 눈을 떴고, 한 가정집에 옮겨져 있었다.
지난 며칠간의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아마도 나는 이 젊은 부부의 아이가 된 듯하다.
“도빈아, 아빠. 아빠 해봐.”
이 동양인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가장 많이 말한 ‘도빈’ 이라는 말이 아마도 내 이름이라 생각했다.
‘아빠’라는 것은 아마도 ‘Vati(파파)’를 말하는 것 같은데 도통 확실히 알 길이 없었다.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몇 번 시도해 보았다.
“아우. 아우아.”
그러나 아쉽게도 갓난아기라 그런지 발성 기관이 발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직은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이이도 참. 벌써부터 어떻게 말을 해요. 그렇지, 도빈아?”
아아.
이 젊은 여자의 말 역시 무슨 뜻 인지 알 수 없으나 단언한다.
그녀, 아니,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그 어떤 현악기보다도 아름답다.
내 기억 속의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사랑스러운 소리.
어머니가 자식을 부를 때 담긴 그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이러한 소리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되다니.
이 두 분에게는 정말이지 크나큰 은혜를 받았다.
소리를 다시 들을 수만 있다면.
다시금 음을 느낄 수 있다면 악마와도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진심으로 나의 새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건 그렇고…….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이상한 것이 눈앞에 서성인다.
독일어로 되어 있어 알아보긴 쉽다 만, 어째서 나에 대한 정보가 이런 식으로 보이는지 알 수 없다.
다시 태어난 곳은 원래 이러한가?
손을 뻗어보지만 잡히지도 않는 것 이, 보기 싫어지면 또 사라지고 만다.
편리하다면 편리하지만, 이 역시 신의 장난인가?
[성명: 배도빈] [Ludwig van Beethoven]
[연령: 0세][56세]
[칭호: 악성(樂聖)]
[능력치]
[작곡: 99(완성)] [작사:-(—): 페널티]
[편곡:96(완성)][음감:67(능숙): 페널티]
[장르][클래식: 86(자유 단계)]
[교향곡(+스케르초), 발라드, 오케스트라, 세레나데, 소나타, 현악 4중주, 피아노 3중주, 레퀴엠 등 외 27건이 상위 단계 ‘클래식’에 묶입니다.]
[대분류 장르 열람:1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보니 궁금한 것도 많았다.
우선은 칭호라는 말인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뒤에 붙은 ‘악성’이란 단어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내게 이런 이명이 붙어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아래 ‘능력’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심히 불만이 많았는데, 감히 나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편곡 능력이 96이라니.
믿을 수 없다.
작곡에 해당하는 수치가 99, 완성이라 했으니 아마 이것이 최고치일 터.
나의 편곡 능력은 그 ‘천재’보다도 뛰어나다 자부할 수 있는데, 누군가 의 질 나쁜 장난이란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음감 역시 매우 불만이 크나, 이것이 만약 실제로 소리를 듣는 능력이 라면 조금은 납득이 가는 셈.
이전 삶에서 청력을 잃었으며, 지금은 귀가 덜 발달한 시기이니 예전 의 음감을 되찾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그나저나 작사라니.
이것은 노랫말을 적는다는 뜻일 텐데 듣는 이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음’에 어찌 말을 달아 그 감정을 고정할까.
그런 일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뛰어난 문학 작품을 가사로 활용하거나, 한 적은 있으나 직접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
오페라나 성가 역시 몇 차례 시도해 본 적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언어는 음을 따라갈 수 없는 법.
나를 완벽히 충족시키는 가사를 만들 순 없었다.
기악을 하는 데 이 능력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괘씸하기도, 나름 납득을 하기도 했건만.
‘장르’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클래식이란 뭐지?’
소나타라든지 양식에 관련한 것은 알겠다만 어찌 이를 한데 묶는단 말 인가.
이 ‘신의 장난’은 확실히 질 나쁜 신의 소행이 틀림없다.
삐 이이 익 —
잠시 생각에 빠진 와중, 갑작스레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나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신기한 소리마저 자 극적이니, 몸을 가눌 수 없다는 것 과 이 ‘신의 장난’만 제외하면 너무 도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이전 삶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그야말로 따스한 온기다.
“여보, 물 다 끓었나 봐요. 차 좀 타다 줄래요?”
“그래. 녹차로 할까?”
“좋아요. 참, 음악 좀 틀어주세요. 아기 정서에 그렇게 좋대요.”
두 분이 무슨 말을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일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딩디디 딩딩 딩디디 딩딩.
음악이 들렸다.
“아우! 아우아!”
너무도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를 소름 돋게 했었던, 그 남자의 곡이 방 안에 울려 퍼진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11번 K.331.
요하네스 크뤼조스토무스 볼프강 고틀리프 모차르트.
스스로 ‘아마데’라 칭했던 불세출의 천재, 모차르트의 곡이 틀림없었다.
나는 내 새로운 부모님이 소리를 되찾아 준 고마운 분들인 것뿐만이 아니라, 교양마저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현재의 나는 갓 태어난 아이.
그런 자식에게 들려줄 음악으로 이만한 곡도 없을 것이다.
이 안정된 음율에서 전해지는 안도 감은 필시 다른 신생아에게도 아주 효과적이리라.
부모가 이러한 안목을 갖췄으며, 이 정도로 깔끔한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를 저택에 데리고 있으니 필 시 나는 동양의 어느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하아암.”
이런, 실례.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있자니 이 작은 몸이 금세 나른해진다.
연주자의 실력도 제법인데 꽤 이름 있는 연주자인 듯했다.
“아우우.”
……조금씩 졸음이 몰려온다.
“여보, 여기. 나는 일 나가볼게.”
“벌써요?”
“열심히 일해야지. 도빈이 조금 큰 뒤에 방이라도 얻어주려면 일단 독 립부터 해야지. 요즘 형수님이 눈치 주시잖아.”
“……조심해요. 잘 다녀오고요.”
“걱정 마. 도빈아, 아빠 일하러 갈게.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으음.
두 분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를 대하는 소리들 이 상냥하다.
아마 서로를 지극히 아끼기 때문일 듯.
부유한 집안에 교양 있고 서로를 아끼는 가정이라.
게다가 소리까지 되찾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운명 이상의 무엇이 있다.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