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2/225)

2. 건국왕의 비망기(備忘記), 김자점과 김구.

건국왕 우진은 당대 조선, 호주, 북아메리카 인들의 엄청난 존경을 받았다. 또 신성시되는 경향이 심했다.

그래서 건국왕의 생전기록은 순차적으로 역사에 실려 대중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비망기(備忘記, 왕의 밀서 등)와 일기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상 송시열은 건국왕의 승하 직후에 이렇게 말했다.

“비망기를 보고 싶은 자는 먼저 승하하신 선왕폐하께 직접 허락을 득하라!”

그건 불경이었다. 비록 왕일지라도 건국왕의 비망기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니까.

허나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1930년 어느 날, 반역자로 생을 마감한 김자점 공의 14대 방계후손 ‘김구’가 왕립문서보관소에서 의문의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김구는 김자점의 반역죄에 의문을 품고 역사학자로써 노력하던 찰나였다.

김구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는 언론인들을 불러 이렇게 주장했다.

“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김자점 공의 누명을 벗기는 것이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김자점 공은 반역이 아니라...”

놀라운 발표에 한국 전역이 술렁였다.

김자점은 공과가 너무나도 뚜렷한 사람이었다.

조선과 아메리카까지 그가 이룬 공적이 아주 거대했지만, 말년에는 유대인과 결탁하여 막대한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

당시 법원은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했으나 건국왕에 의해 감형되었다. 그리고 김자점은 대서양 섬에서 무기징역으로 수형 중 사망했다.

김구에 따르면 김자점은 유대인에 접근해 모종의 비밀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그가 내민 근거는 건국왕의 친필 일기였다. 대부분 소실되어 불과 반장짜리에 정말 놀라운 기록이 있었다.

- 김자점은 청나라와 결탁하여...

김구는 이렇게 주장했다.

“당시 청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는 나랍니다. 저는 청나라가 유대인이 세우려는 유대국가라고 확신합니다. 이는 건국왕께서 김자점 공에게 청나라, 아니 유대국가를 세우려는 유대인에게 접근해 반역음모를 알아내라는 명령이셨을 겁니다. 김자점 공은 폐하의 밀명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무슨 문제가 발생해서 중도에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김자점 공 처벌로 꼬리를 자른 건국왕께서도 곧 풀어주려 하신 것이 분명하구요. 여기엔 김희두(개노미) 공과 송시열 수상도 함께였습니다. 두 분께서는 김자점 공의 사면을 탄원하기도 했습니다. 건국왕께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주신 이유도 마찬가지로 유력한 근거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관련 논란들은 금세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론 그 후에도 김구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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