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225)

이때 김추성의 눈빛이 따스해졌다.

“아들아! 이제 우리 오도리 기병도 정식으로 한국군에 편성되었다. 아비는 여한이 없어. 그저 네가 승승장구하기만을 바란다. 오도리 기병연대는 나로 끝날 것이지만, 네가 오도리 기병연대의 명예로운 이름을 기병여단, 아니 기병사단까지 드높여주길 바란다. 잘 알겠느냐?”

김공선은 가슴이 울컥했다. 또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 아버님! 우리 오도리 족은 어엿한 한국인이고, 자랑스러운 한국군입니다. 또 저는 아버님의 아들이고 오도리 족이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장군이 되어 아버님의 바람에 보답하겠습니다.”

라스트 모히칸 3

1631년 5월 13일, 뉴암스테르담 근처.

나소 요새(Fort Nassau).

섬(현대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뉴암스테르담과 달리, 바로 강 건너 북아메리카 내륙에 위치한 ‘나소 요새’는 네덜란드 모피 무역의 전초기지이자 총본산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근 ‘뉴네덜란드회사’로 분할 및 회사명을 변경했다. 다시 말해, ‘뉴네덜란드회사’는 북아메리카의 모피 무역을 전담하기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분할한 자(子)회사였다.

현재 뉴네덜란드회사의 대표이며, 네덜란드 총독 및 참사관까지 겸하고 있는 얀센 미누이트는 체구가 장대한 영국인을 접견하고 있었다.

얀센 총독은 우선 칭찬했다.

“그대의 말이 맞았어. 솔직히 난 믿지 않았지만 버지니아 담배가 뉴네덜란드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자라는군. 정확히 말하면 온도차이 때문에 4월이 아니라 5월에 담배모종을 옮겨 심어야 한다는 것만 달랐어. 좋다! 정식으로 계약하지.”

체구가 장대한 영국인은 한껏 고개를 숙였다.

“훌륭하십니다! 저희는 수년 간 버지니아 일대에서 담배농장을 성공적으로 경영했습니다.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하! 믿어 보겠네. 이미 말했지만 인디언 노예는 차차 준비하면 될 거야. 일단 모히칸 족부터 시작하고 부족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모호크 족이 있으니 내게 말만 하게. 모피 무역도 중요하지만 담배사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니까. 또 모호크 족은 언제든 대체할 수 있어.”

“올해 농사는 지금 숫자로 넘칩니다. 남는 인력으로 담배농장을 확장하고, 내년에는 대규모로 증원해야 할 테니...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얀센 총독은 만족스럽게 웃다가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참! 다시 강조하지만 북아메리카는 한국 영토다. 만에 하나 담배농장이 발각되면 어떡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체구가 장대한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북아메리카에서 한국인 숫자는 아직 20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당분간, 아니 최소 수십 년 안에는 발각될 염려가 없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얀센 총독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한번 믿어 보도록 하지. 참! 며칠 전, 모히칸 족 문제로 아주 성가신 일이 생겼어. 내 기억엔 그대들이 동원한 인디언 부족이 문제였던 것 같군. 아마 코노이 족이라고 했지? 쯧쯧.”

“네, 맞습니다. 어차피 곧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별 탈 없도록 꼬리를 자르겠습니다.”

“좋다! 이만 가 보게.”

“네 알겠습니다.”

얀센 총독은 체구가 장대한 영국인을 내보내고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곧 ‘네덜란드 참사관’ 자격으로 자신의 수하들을 구하러 가야 했으니까. 한편으론 치욕적이지만 다른 편으론 암스테르담조약에 명기된 면책특권이었다.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혼잣말했다.

“흐흐, 암스테르담조약이 참 마음에 들어. 어차피 고국은 네덜란드 통일전쟁 때문에 경황이 없어 나를 견제할 수 없다. 그러니 암스테르담조약에 근거해서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야겠지. 최소 수십 년, 북아메리카 담배농장이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아메리카 항해조례]는 모피 무역 상선으로 우회할 수 있으니 유럽 밀수출도 지금까지처럼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한국이 담배를 독점하면 할수록 나에겐 이익이지. 여기엔 인디언 노예들도 지천으로 깔려 있지 않은가? 크하핫!”

...

같은 시각, 북아메리카 수도.

왕궁 뒤뜰.

멍멍!

왈왈!

“1번 탐지견 담배상자 확인, 합격!”

“3번 탐지견 설탕상자 확인, 합격!”

“...” 

나는 왕궁 뒤뜰에 나가 담배와 설탕 탐지견 훈련성과를 확인하고는 탐지견 훈련사들을 치하했다.

“정말 고생이 많았네. 다시 강조하지만 담배와 설탕 등 아메리카 특산품의 유럽밀수출을 막는 것에 [한국-아메리카 항해조례]의 사활이 걸려있다. 탐지견의 대우는 할 수 있는 한 최상으로, 자식처럼 애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훈육하도록 하게. 참! 그대가 강형욱 탐지관인가?”

“네 폐하! 소신이옵니다.”

“음, 그대는 호주에서 목양견(牧羊犬, 양치는 개)을 대규모로 육성하고 보급하는 것에도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다. 그때 짐이 그대의 직급을 높이도록 농업부에 명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고위직을 마다한 이유가 따로 있는가? 혹시 농업부 내의 문제라면 사실대로 말하도록.”

강형욱 탐지관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폐하! 소신은 폐하께도, 농업부 내에서도 넘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마땅히 농업부 내에서 소신을 시기하거나 푸대접하는 일은 전혀 없었사옵니다. 오히려 소신이 개를 좋아해서 자원했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도 목양견과 탐지견을 육성하는 것이 그저 재미있고 좋았을 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전환할 겸 다시 물었다.

“잘 알겠네. 그럼 짐이 하나 더 묻겠다. 일전에 짐이 말한 [자극-반응] 조건훈련의 성과는 어떤가?”

“네 폐하! 먼저 소신은 폐하께서 제안하신 것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소신이 오랫동안 목양견을 훈련시키면서 경험적으로 모호하게 알고 있던 것이었는데, 폐하께서 말씀하신 이후로 보다 구체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담배와 설탕 탐지견 훈련은 그 결과입니다. 앞으로 군견(軍犬) 육성에서도 큰 성과가 예상됩니다.”

“아주 좋군. 그럼 탐지견 배치는 언제부터 가능한가?”

강형욱 탐지관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벌써 지난주부터 해군 기동함대에 일부 배치했습니다. 탐지사와 탐지견은 같은 동료로 하나처럼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해군병사들을 훈련시키느라 다소 늦었습니다. 늦어도 가을까지는 모두 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 보고에 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잠시 후, 국왕의 집무실.

“휴, 잠시도 쉴 틈이 없군.”

나는 [인디언 천연두 발병현황 및 대책 보고서]를 확인하고, [인디언 가축보급현황 보고서]를 병행해서 재확인했다.

두 개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 인근에 소와 말, 양과 돼지 등을 보급한 인디언 부족에게서 최초로 천연두가 발병하고 그 주위 인디언 부족으로 조금씩 확산되는 중이었다.

내가 알기로 천연두는 주로 입이나 코를 통한 감염, 천연두감염자에게서 비감염자에게로 옮아간다. 다시 말해, 감염된 사람과의 지속적인 대면접촉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된다고 알고 있었다.

‘인디언과 대면접촉이 늘어나는 곳부터 천연두가 발병하는군.’

역시 내 계획대로였다.

결국엔 유럽인을 포함한 한국인과 인디언의 대면접촉이 점차 늘어나면서 천연두 또한 조금씩 전파될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것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유럽인에게 먼저 천연두 예방접종을 전격 시행했었다.

‘이젠 인디언들에게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행할 차례다.’

처음에 나는 조선의 민심을 사로잡은 방법 그대로, 천연두 예방접종을 시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디언들은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없고, 인디언 고유의 샤머니즘 등 조선과 비슷한 이유로 무척 어려웠다.

또한 인디언들이 부족단위로 집단 생활하는 것도 전염병에 대해서 몹시 취약한 부분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승부를 걸기로 했다.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또 사람이란 귀가 얇아. 천연두는 우리가 오기 전부터 유럽인들에게서 전염되었을 것이고 인디언에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터. 다소의 반발이 있더라도 강행한다. 우선 천연두 치료와 예방접종 효과에 대한 입소문부터 돌려야겠지.’

...

같은 시각, 수도의 어느 관청.

김자점이 송시열의 복장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흉물스럽군.”

반면 송시열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게 뭐 어때서요? 제 복장을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십니까?”

말이 끝나자 송시열은 몸을 빙그르르 돌면서 자랑하듯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 모습에 개노미까지 한마디 했다.

“내가 보기에도 이상하긴 해! 대체 그게 뭔가? 분홍색이나 빨간색 옷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토끼 귀 모양 머리띠는 정말 역겹군. 아예 갓을 쓰고 다니게. 그런 건 공연마차 광대아이들에게나 씌우는 게 좋겠어.”

송시열은 빙그레 웃으며 개노미의 말을 정정했다.

“하하! 공연마차 광대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은 문화부에 소속된 정식 배우(俳優)입니다!”

김자점이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쯧쯧, 나 김자점도 사대부는 개나 주라는 위인이지만 저건 너무 나갔어. 사대부 출신이 토끼 귀 모양 머리띠라니?”

그 말에 송시열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모두 폐하께서 저를 불러 특별히 명하신 겁니다. 공연마차에 분홍색, 파란색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칠해라! 공연배우는 물론이고 공연마차 직원들도 곰, 여우, 늑대, 토끼 등 연극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입고 장식해라! 사탕이나 초콜릿, 인형이나 장난감을 나눠줘라! 앞으로는 남사당패를 소집해서 곡예단(일명 서커스)을 만들어 널리 공연해라! 등등 저는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송시열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한다면... 그 누구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공연마차가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우스꽝스런 모습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저뿐이겠습니까? 공연마차 1호부터 10호까지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요!”

김자점은 헛웃음을 쳤다.

“허허! 열사 나셨군. 하여간 자네 부친께서 보시면 자칫 졸도하실 수 있으니 항시 조심하게. 참! 희두, 자네는 잘 되어가나?”

“흐흐, 이 개노미가 누군가? 조선에서 이민 지부장까지 했던 사람일세. 오페칸카누도 지금쯤 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고 느낄 거야. 인디언 부족연합에 속했던 부족들 대부분이 우리에게 합류했다네. 토지반환과 식량 등 각종 지원이 좀 달콤한가? 아버지의 땅과 자신들의 삶, 특히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최근 오페칸카누 일족 중에도 제임스타운 근처 자신의 땅으로 이주한 자들이 있어. 지금은 5월, 봄에 씨를 뿌려야 올 가을에 풍족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김자점은 개노미의 으쓱거리는 모습에 함께 맞장구쳤다.

“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자네는 착한 놈들을 맡았고 난 착한 놈과 이상한 놈을 구분하는 것을 맡았지. 나 역시 이번에 큰 수확이 있었네. 곧 폐하께 보고를 드릴 예정이고. 참 세상에 알다가도 모를 일인데... 위선자들은 세상 어디에나 항상 있더군. 오페칸카누도 참 힘들었겠어. 아니 너무 불쌍해. 오랫동안 자식처럼 아끼던 자가 오히려 그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었거든.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내 짐작이지만 그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참 비참한 일이지...”

...

다음 날, 수도 근처 쇼니 족의 마을.

쇼니 족장은 진정 무서운 표정이었다.

“다시 묻지. 자네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이름에 맹세코 그게 사실인가?”

허나 상대는 굳건했고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께 맹세코 사실입니다. 영국인 담배농장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감시가 삼엄해서 가까이 다가서진 못했지만...”

쇼니 족장은 탄식했다.

“음, 어찌 이런 일이...”

인디언들도 오페칸카누가 담배를 금지하기 전에는 소량의 담배를 개별적으로 키우고 애용해 왔었다. 오히려 영국인들이 돈 욕심에 땅을 빼앗아 대규모로 재배하고 인디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것이 문제였다.

사실 지금도 인디언들은 개인적으로 소량의 버지니아 담배를 키우고 각자 돌려가며 피웠다. 오페칸카누나 쇼니 족장도 그것까지 틀어막을 순 없었다. 

바로 그랬다. 

분명 인디언에게 담배는 평화의 상징이고 여전히 기호품이었다.

반면, 영국인이 운영하는 대규모 담배농장, 또 인디언이 노예처럼 강제당하는 담배농장은 북아메리카 동부 인디언의 역린, 그 자체였다.

쇼니 족장은 상대에게 말했다.

“좋아! 일단 입단속하게. 내가 처리하지.”

“네 알겠습니다.”

상대가 떠나고 쇼니 족장의 고심이 이어졌다.

‘하필이면 부족연합을 탈퇴하고 이런 소문이 확인되다니... 오페칸카누 대족장께는 어찌 말씀드릴지... 아니다! 그건 아니야. 아예 한국정부에 알리는 것이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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