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225)

두 사람이 함께 물었다.

“어떻게?” 

송시열은 씨익 웃었다.

“어느 나라든 충신에게는 그의 충심을 갉아먹는 간신들이 있었습니다. 징비록과 난중일기를 보면 다 나오지 않습니까?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공의 앞길을 막은 자가 진정 누구였습니까? 제가 보기엔 충무공 이순신 공의 진짜 적은 왜적이 아니라 선조와 원균이었습니다. 왜적과 싸우려는 충신을 돕기는커녕 왕인 선조는 의심하고, 함께 싸워야할 원균은 공을 질투하며 헐뜯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공께서도 난중일기에 소상히 밝히셨지요. 오페칸카누도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솔깃했는지 동시에 물었다.

“그...그럼?”

“네 맞습니다! 우리 기준에서 ‘착한 놈’은 오페칸카누에게도 선량한 인디언들입니다. 오페칸카누 역시 그들의 한국 귀순을 차마 비난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 기준에서 ‘이상한 놈’은 오페칸카누에게는 선조와 원균 같은 자가 아닐까요? 바로 그 점에 착안해서 일을 벌이자는 겁니다. ‘이상한 놈’을 솎아내서 오페칸카누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자는 거지요. 충무공 이순신 공께서도 선조는 차치하더라도 원균에게 얼마나 시달렸습니까? 최소한 오페칸카누의 속이라도 시원하게 달래줘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조금씩 신뢰할 수 있게요. 그래야 오페칸카누의 귀순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송시열의 말이 끝나자 김자점과 개노미가 서로 마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김자점이 선뜻 동의했다.

“하긴 어딜 가나 뒤통수치는 놈들은 있는 법이지. ‘이상한 놈’을 식별하는 것은 나의 전문분야니까 내가 맡겠네.”

그 다음은 개노미였다.

“난 ‘착한 놈’들을 맡도록 하지. 그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토지반환이 첫 단추가 되겠군. 하지만 ‘착한 놈’과 ‘이상한 놈’을 명확히 구분하는 건 담배사업 재개 이후에나 가능하겠어.”

마지막은 송시열이었다.

“저는 동부 인디언 부족들을 차례로 방문해서 선전선동에 힘쓰겠습니다. 우선 국왕폐하의 칙령과 토지반환 등에 대한 소식과 당위성을 알리고, 각 부족별 정세를 면밀히 파악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식량 등 물자지원과 함께 우리와 인디언이 한 핏줄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게 이동공연을 개최할 겁니다. 마침 인디언 전통설화인 ‘착한 곰 여인’ 극본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단군설화를 은근슬쩍 끼워 넣었지요. 제가 알아보니 동부 인디언들은 영국인과 싸우던 와중에도 어린 아이들은 절대 해치지 않았답니다. 문화부 이동공연도 용모가 단정한 한국과 인디언, 위그노와 영국계 어린 아이들을 모집해서 제가 직접 인솔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다음 날, 북아메리카 수도.

위그노 교회.

“흥! 지금 싸우자는 건가?”

위그노 지도자 장 귀통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이제는 영국계 한국인이자 청교도 지도자 존 스쿼드를 압박했다.

프랑스 위그노와 영국 청교도!

각자의 세력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수도건설사업부터 사사건건 날 선 공방을 벌여왔다.

존 스쿼드 역시 차갑게 말했다.

“흥! 나도 마찬가지야. 담배사업자 신규모집공고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어.”

장 귀통은 비릿하게 웃었다.

“흐흐, 누가 뭐래도 담뱃잎 가공과 담배파이프제조는 우리 위그노의 기술력이 세계최고지! 솔직히 스페인 세비야 담배업자들도 담뱃잎 독점만 아니었다면 우리보다 한참 떨어져. 이제 담배사업은 우리 위그노의 것이야. 안 그래?”

탁.

그때 존 스쿼드가 담배사업자 신규모집공고문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하하! 눈이 제대로 달렸으면 공고문을 잘 살펴봐야지. 아래 유의사항을 자세히 봐! 담배사업의 독과점을 방지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어. 그 누구도 세비야 담배업자들처럼 독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순간 장 귀통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잠시 후.

장 귀통은 크게 당황했다.

담배사업자 신규모집공고문의 하단에 작게 기재된 ‘담배사업신청자 유의사항’을 살펴보니 존 스쿼드의 주장이 옳았다. 유의사항에는 담뱃잎 생산부터 가공·제조는 물론이고 운송과 판매까지 전체과정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 말은 담배사업 전체과정을 하나의 일관사업으로써 개별기업이 독점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달리 말하면 담배사업의 이익을 담배농장의 담뱃잎 생산부터 최종판매자까지 각 단계별로 적정하게 분배해야 했다. 

존 스쿼드는 다시 말했다.

“독과점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이익이야! 그리고 일정부분 독과점을 회피할 방법이 있지. 이제 대화할 기분이 드나?”

“크흠, 어서 자리에 앉게! 커피 한잔 하겠나?”

쪼르륵.

존 스쿼드는 커피 향을 음미하며 제안했다.

“유럽에서 담배는 금값이나 마찬가지지. 국법에 따라 담배농장을 직접 경영할 순 없겠지만 담배의 가공과 제조, 운송과 판매는 각각 독점할 수 있어. 그만큼 이익이 극대화 되는 셈이야! 어떤가? 위그노가 가공과 제조를, 우리 영국계 청교도가 운송과 판매를 책임지는 것이... 최종 판매이익은 각종 비용과 세금을 공제한 다음, 공평하게 배분하기로 하세.”

장 귀통은 찻잔을 코밑에 갖다 대고 빙그르르 돌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존 스쿼드의 제안은 아주 합리적이었다. 위그노는 가공과 제조 기술이 최고였고, 영국계 청교도는 운송과 판매에 장점이 있었다. 영국인들이 항해에 능숙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장 귀통은 고심 끝에 존 스쿼드의 제안을 승낙했다. 대신 꼬리표가 붙었다.

“좋아! 승낙하지. 하지만 최소 5년, 최대 10년 단위로 연장할지 여부를 각자 이사회 결의로 결정하도록 하자고.”

존 스쿼드도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 모두 실망하진 않을 거야! 동업 세부사항은 실무진을 붙여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지. 참! 문화부의 요구사항은 어쩔 건가? 일단 극장부터 런던 대극장만큼 큰 규모로 짓는다고 해서 솔깃하긴 한데... 어린 아이들을 차출한다니 좀 꺼려지기도 하거든.” 

존 스쿼드의 질문은 다소 친근한 어조였다. 이제는 서로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공유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장 귀통은 외면했다.

“우리 위그노는 문화부 요구사항에 적극 동참할 것이네. 극장은 우리 위그노가 설계와 시공을 전부 맡았지. 아, 이거 참!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뭐, 런던 대극장? 푸하핫! 하여튼 우리 위그노 아이들의 아름다움과 재능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어. 자네 아이들이 좀 부족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진 말게.”

“...”

존 스쿼드는 대답 없이 이를 갈았다. 

담배동업을 계기로 앙숙인 관계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했는데... 담배는 담배고, 앙숙은 앙숙이었다.

두 사람의 날 선 눈빛은 여전했다. 

...

같은 시각, 세인트 어거스틴(플로리다) 요새.

다음 주, 세인트 어거스틴 요새를 포함한 스페인령 북아메리카 영토 전체가 한국으로 정식 할양될 예정이었다. 

당연히 요새 전체가 술렁였다.

그때 두 스페인 병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봐 후안! 난 물귀신이 될지언정 마드리드 빈민가로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너는 번듯한 귀족가문이라도 있으니...”

“페드로, 무슨 소리? 그동안 차마 말은 못했지만 나도 귀족가문의 사생아야. 아버님께서 성을 쓰도록 허락했지만 유산은 모두 장남에게 가겠지. 나도 너와 마찬가지야.”

두 병사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페드로란 병사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근데 그거 진짜 믿을 수 있을까? 한국이 우리들의 자유와 재산을 보장해준다는 거 말이야! 한국에 귀화하고 일정기간 군복무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면 그렇게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솔직히 여기에서 일군 작은 담배농장이 내 전재산이야. 이거 없으면 난 죽는다고.”

“후, 나도 담배농장이 전재산이야. 그런데 말이야. 한국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멕시코시티에서 별다른 학살이 없었고, 북아메리카에서도 인디언을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잖아. 어차피 세인트 어거스틴에서는 인디언 강제노역도 그리 많지 않았어. 우리도 적당히 고개 숙이고 한국에 귀화하는 게 남는 장사일 거다. 스페인 가서 거지가 되느니 한국에 귀화해서 중간으로는 살아야하지 않겠어?”

그때 요새로 접근하는 전함 여러 척이 그들의 눈에 띄었다.

“후안! 저거 한국 전함 아니야?”

“이런 씨* 한국 전함인가보다! 저기 남십자성 깃발 보이지?”

후안이란 스페인 병사가 급히 비상종을 울렸다.

땡땡땡!

“한국 전함이다! 한국 전함이 나타났다!”

요새 전체는 더욱 뒤숭숭해졌다.

드디어 한국 전함이 나타났고, 그건 다음 주에 있을 정식 영토할양과 스페인 병사들의 선택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스페인령 서인도제도(쿠바)에서도 스페인령 세인트 어거스틴과 동일하게 스페인 병사들의 술렁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과 스페인의 기존 협약대로 1631년 3월 23일에 두 개의 아메리카 스페인령은 한국에 정식 할양될 것이다. 스페인이 이탈리아 은행에 진 악성 재정부채 6천만 굴덴을 한국이 지불보증 해준 대가였다.

라스트 모히칸 1

1631년 5월 10일, 오페칸카누 부족 마을.

마을의 가장 큰 티피(Tepee) 안은 격앙된 분위기였다.

“죄송합니다, 대족장! 우리 쇼니 족은 얼마 전 뜻을 함께하는 부족들과 인디언 부족연합 탈퇴를 결정했습니다.”

말을 끝낸 쇼니 족의 족장은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의 뒤쪽에 선 족장들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쾅!

부족연합의 몇몇 족장들이 격분했다.

“더러운 배신자들! 너희들은 저주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느냐?”

“대족장, 어서 명령을... 이 더러운 자들을 모조리 죽입시다.”

“...”

그러나 험악한 것은 오직 말뿐이었다.

솔직히 인디언 부족연합의 균열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의 성세는 이미 옛말이었다.

인디언 부족연합의 53개 부족 중에서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고작 17개... 다른 36개 부족들은 이미 탈퇴했거나 온갖 핑계로 회의에 불참했다. 오히려 쇼니 족장 등이 예의를 갖춘 셈이었다.

격앙된 분위기와 달리 오페칸카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따르느라 고생이 많았어. 참!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네. 탈퇴는 자유니까.”

이때 몇몇 족장들이 거칠게 나서려고 했지만 오페칸카누의 눈짓에 막혔다. 오페칸카누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한 핏줄이고 한 가족이며 한 친구라네. 언제든 환영이라는 뜻이야. 부디 내일의 해가 그대들의 땅에 더욱 밝게 떠오르길...”

쇼니 족장은 가슴 속으로 울고 탄식하며 고개를 숙였다. 온갖 회유와 모진 비난을 감수한 길이었는데 오히려 덕담만을 베풀었으니까.

잠시 후, 쇼니 족장 등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족장!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빕니다.”

오페칸카누는 그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쇼니 족장이 떠나고 족장 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우리 부족도 쇼니 족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이제 젊은 녀석들은 나아가 싸우려고 하지 않아요. 토지반환 이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족장도 맞장구쳤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이 올 봄부터 카누제작 등 여러 가지 일감을 줬습니다. 처음엔 부족한 봄철 식량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점차 일감이 늘어나고 수입이 쏠쏠하다보니 차츰 한국에 기대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또 젊은 층에서는 한국어 배우기가 인기고요. 아예 한국회사에 취업하겠다는 괘씸한 녀석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족장은 바닥에 여러 가지 물건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탁.

“다들 이걸 보세요! 이것들은 인형, 사탕, 초콜릿이고 다른 것들은 철로 만든 조리기구와 농기구들입니다. 인형과 사탕은 한국 공연마차가 아이들에게 나눠준 거고, 조리기구와 농기구는 한국의 도로공사에서 일한 삯으로 받아온 겁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성과급이라고 합니다.”

그 족장은 다시 걱정스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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