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국왕의 집무실.
“후우, 그나저나 프랑스어는 너무 힘들군.”
프랑스 위그노와 영국 청교도들의 시민권 선서식을 연달아 참석하고는, 아예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그들의 환심을 사고자 프랑스어와 영어로, 위그노 칙령과 청교도 칙령을 직접 공포했다. 영어는 대학원과 미국 생활 중에 익혀서 유창했지만 프랑스어는 형편없었다. 정말 힘겹게 외우고 연습해서 해낸 것이다.
위그노 칙령과 청교도 칙령은 ‘맞춤형’ 칙령이었다.
만약 위그노 칙령을 일반칙령으로 공포하면 구교도, 유대교와 이슬람에게도 한국의 문호를 개방해야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목표, 한국의 건국이념과 국시(國是)에 잘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여도 나의 목표, 한국의 건국이념, 국시에 맞지 않는 자는 절대사절이다. 또 한국에 동화되지 않고 따로 노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관용에도 명백히 한계가 있으니까.’
나의 궁극적 목표는 북아메리카의 완전한 통합과 강대국이었다.
언제나 문제는 ‘사람’
호주초기부터 각종 산업, 교역, 개척을 이끌 우수한 인재들이 절실했다. 그래서 한국인을 우수한 인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유럽유학, 대학설립, 박람회와 각종 대회는 오직 인재육성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그 일을 해야 할 우수한 인재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우수한 인재를 외부에서 끌어들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외부 인재 영입전략!
참 좋았지만 이것도 문제였다.
이런 전략이 성공하려면 한국인들이 외부인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관용의 정신, 바로 ‘열린 마음’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과거의 조선은 성리학과 해금령 등으로 유명한, 그야말로 ‘닫힌 사회’였다.
나는 고심했었다.
- 한국인의 열린 마음, 과연 가능할까?
물론 고심은 잠시였다. 나는 관용을 국시로 내걸었다. 관용이 한국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과거 채금열풍(골드러시)을 유도한 것도, 외국어 교육을 강제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골드러시로 호주에 건너온 유럽(주로 영국)인, 프랑스 위그노, 영국 청교도 등을 끌어들인 것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이었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대성공이다! 앞으로도 위그노와 청교도, 유럽의 우수한 인재들이 마음 놓고 북아메리카로 올 수 있게 계속 당근을 주면 돼. 우수한 인재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니까. 후우, 이제는 인디언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겠군. 이거 어쩐다? 확 저지를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려볼까?’
...
다음 날, 내각 대회의실.
“아니, 대체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한답니까?”
법무부장의 노호성(怒號聲)에 각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각료들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특히 조선 사대부 출신 각료들은 수염까지 부들거리며 격분했다. 법무부장도 조선 사대부 출신이었다.
어제부터 퍼진 헛소문은 그야말로 일파만파, 순식간에 수도 전역에 퍼졌다. 헛소문의 진원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왕궁 내에서 최초로 흘러나왔다는 말이 떠돌았다. 법무부장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소문대로라면... 지금 왕궁 내에 불순분자, 아니 불순한 세력이 준동하고 있는 듯합니다. 당장 잡아서 물고를 내야 합니다.”
그 헛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단군의 아들딸이다.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이 곰을 어머니, 자신의 조상이라고 믿고 숭배하는데 이것이 그 증거다. 우리 역시 단군의 아들딸이고 웅녀가 어머니 아닌가?
- 또 인디언 마을 입구에는 우리와 비슷한 장승이 세워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까마귀를 대단한 영물로 취급하고 믿어왔었는데, 인디언들도 똑같이 믿고 있다.
- 인디언들이 우리와 흡사한 얼굴, 외양을 가진 것도 단군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한다.
뿌드득.
법무부장은 이를 갈았다.
“폐하께서 오시면 이를 고하고 반드시 붙잡아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허튼 소리를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조선 사대부 출신들은 단군설화를 헛소리로 치부해왔다.
우선 단군설화에 대한 첫 기록인 ‘일연의 삼국유사’를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여, 고조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단군왕검의 존재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단군설화 부정의 근거는 삼국유사가 고조선이 멸망한지 1500여년이 지난 후에 뒤늦게 기록된 점, 풍백 등의 여러 용어들이 고조선 멸망 이후에 등장한 도교적인 용어로써 고조선 시대의 신화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였다. 또한 성리학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도 일맥상통했다.
법무부장을 비롯한 조선 사대부 출신 각료들은 한국의 국시에 따라 사대부라는 신분을 잊고 버렸다. 한국의 국시는 노예제를 배격하며 억압적 신분제도를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대부, 양민, 노비 등 억압적 신분제도를 잊고 버린 것이지 과거에 그들이 옳다고 믿던 것들까지 잊거나 버리진 않았다. 단군설화나 괴력난신이 바로 그러했다.
쾅!
법무부장이 다시 외쳤다.
“이건 단순히 헛소리로 치부할 정도가 아니라 망언(妄言)입니다. 반드시 잡아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이에 각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법무부장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대체 어떤 놈이 그런 망언(妄言)을...”
그 소리는 너무 커서 내각 대회의실 바깥까지 울려 퍼질 정도였다.
그때...
“이런, 망언을 한 그 놈이 바로 짐입니다.”
순간 내각 대회의실이 싸늘하게 식었다. 법무부장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털썩.
나는 각료들의 시선을 즐기며 국왕의 자리에 앉았다.
“자! 오늘은 할 말이 많습니다. 우선 그 망언부터 시작해볼까요?”
삼총사
1631년 3월 3일, 북아메리카 수도.
국왕의 집무실.
“어차피 힘세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누가 그랬더라?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 보다는 큰 거짓말에 속고,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었는데... 당최 기억나지 않는군.”
어제는 참 힘든 하루였다.
내가 절대군주의 참된 면모(?)를 보여준 날이었고, 논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어 오직 힘으로 밀어붙였다.
- 폐하! 삼국유사는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잡서이옵니다. 고조선의 존재는 타국의 사서와 교차검증이 되므로 어렵사리 인정할 수 있습니다. 허나 단군왕검은 그저 일연이란 자의 상상 속 인물일 뿐,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 이제까지 그토록 토론을 중시하던 폐하셨습니다. 각료들을 이리 압박하시다니, 폐하답지 않습니다. 단군왕검의 존재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더군다나 폐하의 명의로, 국서(國書)에 이를 명기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됩니다. 내각 명의로도 불가한 것을 어찌 폐하의 명의로 한단 말입니까? 국서는 소설이 아닙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
- ...
조선 사대부 출신 각료들은 그 누구보다 대의명분에 밝은 사람들... ‘북아메리카 인디언을 단군왕검의 자손’이라 주장한 나의 진짜 의도를 모를 수 없었다.
그러나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단군왕검의 자손’이라는 나의 주장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오직 삼국유사와 단군왕검의 실존여부에 대해서만 물고 늘어졌다.
만약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런 주장을 한 국왕을 비난하는 셈이니까 에둘러 단군왕검의 실존을 부정한 것이었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현대에선 ‘답정너’라고 했던가?
나는 국왕의 칙령으로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단군왕검의 자손’이라는 국서를 공포하며 이를 공식화했다.
탁.
오늘따라 커피 맛이 무척 썼다.
‘후우...’
나는 오랜 로마 격언을 떠올렸다.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Rome wasn't built in a day.)
로마제국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의미였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세대가 오랜 세월을 바쳐 이뤄낸 제국이란 뜻이었다. 이처럼 로마제국의 건설에는 수십, 아니 수백 년의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 긴 세월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는 단연코 ‘시작’,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제국은 시조인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로마를 세운 시점에 대제국의 첫걸음을 떼었다. 마찬가지로 고조선은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고, 단군왕검이 평양에 도읍을 정한 뒤 첫걸음을 내딛었다.
말 그대로 신화(神話),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세계 어느 국가, 민족이 모두 그러하듯이... 한국과 한민족의 시초(始初)인 고조선(古朝鮮)과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역사와 신화의 경계에 있는 국가이며 인물이었다. 무릇 신화가 고대인의 사유와 상징을 반영하는 것처럼 단군신화도 그러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신화는 물론이고 로마제국의 역사에서 로마인들이 로물루스의 건국신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사유와 상징 역시 한결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예컨대 고구려는 하백의 자손, 신라는 알에서 태어난 아이, 로마제국은 양치기 우두머리 로물루스의 아버지가 전쟁의 신 마르스라는 등...
범상(凡常)치 않은 존재로 태어나 주위에서 신성시되는 인물이, 그 신화적인 능력으로 숱한 역경을 헤치고 끝내 사람들을 이끌어 위대한 국가를 세운다는 이야기였다.
단군신화도 똑같았다.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고조선 건국과 최초의 왕인 단군왕검... 멋모를 어린이에게는 너무 흥미진진해서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겠지만, 머리 굳은 어른에게는 하품 날 정도로 진부하고 허황된 이야기였다.
솔직히 나도 못 믿는다. 아니 안 믿는다.
그런데 지금은...
단군신화, 그 진부하고 허황된 이야기에 ‘옛날엔 그렇다고 하더군!’ 쯤으로 그럴 듯하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했다.
-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단군왕검의 자손이며 고조선부터 이어온 한민족의 한 갈래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북아메리카의 통합을 위한 ‘시작’이자 ‘첫걸음’, 또 ‘대의명분’이었다.
분명 역사의 거짓말쟁이로, 오랫동안 숱한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DNA검사법이 나오면 조금 괜찮아 지겠지.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동북아시아에서 기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먼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을 생각했다.
‘황건적도 [창천이 죽고 황천이 일어난다]는 말 몇 마디로 천하를 뒤덮었다. 사람들 귀는 원체 얄팍하니 쉽게 넘어가는 사람도 많을 터. 유능한 인재를 선전선동에 투입하고 사통팔달의 길을 뚫어 빠르게 전파시키면 될 것이다. 그 길로 정복과 통합을 가속화해야지. 그럼 먼저 유능한 인재부터 선발해볼까?’
...
다음 날, 수도 광장.
수도가 술렁였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단군의 아들딸이라는... 그저 헛소문으로만 치부되던 것이 국왕의 칙령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전격 공포된 까닭이었다.
광장 곳곳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개중 몇몇은 멱살을 잡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비등비등했던 반발세력의 기세는 곧 누그러졌다.
국왕의 칙령, 거기에 담긴 건국왕의 이름값은 그만큼 무거웠다.
송준길은 혀를 찼다.
“쯧쯧, 폐하의 권도(權道, 목적달성을 위해 임기응변으로 취하는 방편-바람직하지 않아 경계해야 할 일을 뜻함)가 상상이상이군. 대체 나중에 어쩌시려고... 결국 폐하의 영명에 먹칠을 하는 셈이 아닌가?”
그는 동의를 구하듯 송시열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송시열은 가만히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