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225)

런던공사의 보고서는 훌륭, 아니 완벽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전쟁은 또 다른 전쟁’으로 막는다.]

그는 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상상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유럽30년전쟁의 평화협상 문제, 스페인 왕위계승문제, 대(對)프랑스 비밀동맹, 이탈리아의 이합집산 등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자의든 타의든 곧 전쟁에 돌입할 것이다. 정말 등골이 오싹할 정도야! 이제 당분간 북아메리카에 집중할 수 있겠다.’

나는 고심 끝에 내각의 반발을 일축하고 ‘6천만 굴덴 지불보증’의 사후승인을 지시했다. 또한 런던공사도 불문(不問)에 붙였다.

어차피 런던공사에게 유럽정책을 일임했던 나의 책임이고, 6천만 굴덴으로 유럽의 간섭을 따돌릴 수 있다면 그리 아깝지 않았다.

다만 ‘일임에 대한 문제점’은 고스란히 남았다. 

런던공사, 정충신, 개노미, 조선부왕 등...

나는 유럽과 호주, 아메리카와 호주, 조선과 호주의 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임했었다. 너무 먼 거리, 그에 따라 의사결정의 속도가 가장 큰 문제이기에 내린 결단이었다. 그들이 국왕과 본국의 명령만 기다리다가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었으니까.

결국 일임은 불가피했고, 분명 옳은 결단이었다. 하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위성통신, 최소한 전신(電信, electrical telegraph)과 전신부호(모스 부호)라도 발명되면 모를까? 아직은 어렵다.’

나는 북아메리카가 완전히 손에 들어올 때까지 잠시 미루기로 결심했다. 대신 일임에 대한 법적 책임과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하도록 내각에 명령을 내렸다. 

일임(一任)은 한 사람에게 모조리 맡긴다는 의미이고 그 극단은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였다. 

절대왕정은 극단적 인치의 사례. 

사실 건국 국왕인 나의 위상이 바로 그러했다. 그런 내가 일임했으니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일임, 인치의 문제점은 아주 뻔했다.

유능한 절대군주가 계속 나온다는 보장이 없고 유능한 절대군주의 결정이 항상 옳다는 법도 없었다. 위대한 로마제국조차 오현제(五賢帝)의 시대가 지나고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고려와 조선의 암군들은 말할 것도 없다. 

헌법과 권리장전, 내각과 의회, 법원과 사법절차, 국민교육과 대학설립, 관료조직의 근대화, 근대시민권제도 도입 등... 

모두 인치가 아닌 법치를 공고화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조선의 만기친람(萬機親覽)’과 유럽 절대왕정은 어떤 면에서 비효율의 극단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세종 등 조선 역대 임금처럼 일만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문득 해군장교시절의 작전지휘통제가 떠올랐다.

용어의 정의상 일임(一任)은 한 사람에게 모조리 맡기는 것이고 위임(委任)은 일의 처리를 타인에게 법적 책임을 지워 맡긴다는 의미였다. 

두 가지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나는 내 시대가 저물기 전에 ‘일임에서 위임으로’, ‘인치에서 법치로’ 반드시 전환하겠다고 결심했다. 사람에 의한 자의적인 지배보다는 법과 제도에 의한 지배가 보다 오래도록 공고하게 유지될 테니까.

해질녘.

“휴우, 할 일이 산더미로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쓰윽.

하지만 나는 가득 쌓인 결재서류들을 밀어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제적 인간, 김자점... 그에 대한 판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톡톡.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래, 보고서만으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둘 다 직접 만나야겠어. 또 필요하다면 그 누구든 불러야겠지.’

잠시 후, 비서관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김자점을 불러들여라! 내일 일찍...”

나는 오래 끌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오직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이었다. 

‘역사는 내가 틀어버린 것, 내가 시작했으니 끝내는 것도 나여야 한다.’

그때...

불현 듯 알렉산더 대왕과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떠올랐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온 이야기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고르디온에 있었다는 전설의 매듭이었다.

전설과 신탁은 다음과 같았다.

-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면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

전설과 신탁에 호기롭게 도전한 알렉산더 대왕은 곧 난관에 빠졌다. 워낙 매듭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묶여져 있어서 도무지 풀 수 없었다.

화난 알렉산더 대왕은 단칼에 매듭을 끊어버렸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 승전을 거듭하고 아시아의 왕이 되었다.

그야말로 서양식의 쾌도난마(快刀亂麻), 발상의 대전환 사례였다.

또 다른 사례,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도 마찬가지다.

알렉산더 대왕과 콜럼버스, 나는 그들의 지혜가 부러웠다.

지금 북아메리카의 난맥상은 단순히 김자점과 개노미의 대립문제가 아니었다. 북아메리카의 완전한 통합과 연결된 중대사였다. 시간이 흐르고 한국인의 인구비중이 절대적이게 된다면 풀릴 문제였지만, 경착륙보다는 연착륙이 훨씬 낫다.

유럽인의 이주는 오히려 단순했다. 

우선 북아메리카는 유럽인의 땅이 아니고, 유럽인의 정치·종교·경제적 자유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그 해결방법이 뚜렷했으니까. 다시 말해, 유럽 이주민에 대한 포용과 관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반면, 인디언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판박이였다. 

북아메리카는 인디언의 고향이자 땅이고 인디언의 정치·종교·경제적 자유에 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 답이 없었다.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는 판국에, 침략자인 한국인이 어찌 포용과 관용을 논할 수 있을까? 

지금 내게 알렉산더 대왕과 콜럼버스의 지혜가 절실한 이유였다. 

‘쾌도난마, 발상의 대전환...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의 고심은 밤새 이어졌다.

...

다음 날, 국왕의 집무실.

“폐하! 김자점 의원이 알현을 청합니다.”

“오! 어서 들라 하라.”

잠시 후.

탁.

나는 김자점의 보고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치하했다.

“그대의 공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서부전쟁과 대륙횡단, 수도건설까지... 짐은 그대에게 공에 걸맞은 상을 내리고자 한다. 쾌히 받들라!”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김자점은 조선 사대부 방식으로 감읍했다.

신상필벌(信賞必罰)... 공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상과 벌이 공정, 명확하지 않으면 국가와 조직은 바로설 수 없었다.

나의 선택은 먼저 신상이었다.

그러나 김자점은 문제적 남자, 신상만큼 필벌해야 할 의혹도 적지 않았다.

나는 돌려서 말할 재주가 없었다. 오직 직구였다.

“시시콜콜한 과거 이야기는 필요 없다. 예컨대 개노미의 사적 복수를 위해 둘이서 공모했다는 사실 말이다. 짐은 이미 알고 있으니... 짐이 알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그대가 오도리족을 사병으로 부렸다는 의혹, 둘째 인디언 분열을 임의로 선동·조장했다는 의혹이다. 한 치의 가감 없이 사실대로 고하라!”

순간 거센 한파가 몰아닥쳤다. 

허나 이상하게도 김자점은 사뭇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스레 대답했다.

“폐하! 제기된 의혹은 모두 사실입니다. 소신은 오도리족을 사병으로 부렸습니다. 또 인디언 분열을 선동·조장했습니다. 더하고 덜할 것이 없습니다.”

김자점은 그 말을 끝으로 복죄(服罪)하듯 고개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었다.

역시...

김자점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는 분명한 까닭이 있었다. 

런던공사의 6천만 굴덴 사례와 동일한 이유였다. 

김자점은 북아메리카의 통합에 대한 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상상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스스로 강변한 것이다. 거기에는 개노미 등에게 북아메리카를 일임한 나의 결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김자점에 대한 평가를 최소 한 단계는 더 올려야겠군.’

잠시 후,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 근신하며 수도건설 사업에 더욱 힘을 쏟아라! 짐이 곧, 다시 부르겠다.”

“네, 폐하!”

나는 흡족하게 웃었고 김자점도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이것이 김자점과의 첫 면담이었다.

...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개노미, 그의 처 김세연, 오도리족 김추성과 그의 아들 김공선, 개노미의 수하는 물론이고 영국 버지니아 총독 로크 남작까지... 나는 그들과의 면담을 통해, 북아메리카의 다양한 현안들을 점차 파악할 수 있었다.

“김자점의 말이 거짓은 아니군. 개노미 역시 진실이고. 음..., 둘의 불협화음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북아메리카의 통합, 포용과 관용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해석 차이는 어쩔 수 없으니까. 오히려 기존의 판을 송두리째 바꿀 대의, 발상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나는 깊이 탄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의 대의는 간단명료했다.

처음 바다로 나간 것은 노비를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호주의 건국도 그 연장선이었다. 자유가 송두리째 억압된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일념이었으니까.

그 다음 남아메리카 대륙의 독립도 스페인의 식민통치, 노예상태를 반대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한국은 노예제를 배격해서 일어난 나라였고 이는 남아메리카 독립의 대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남아메리카 여러 부족들은 한국의 참전을 두 손 들어 환영했고, 곧 아메리카 연합회의를 발족시켰다. 그 후는 불문가지였다. 한국이 주도한 아메리카 연합군은 결국 스페인을 완전히 축출했으니까.

그러나 북아메리카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내 생각이 너무 짧았어. 인디언의 인구수를 감안하면 호주에서처럼 먼 섬으로 쫓아낼 수도 없다. 노예제를 반대해서 일어난 우리가 그들을 학살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야! 물론 시간이 흘러 한국인의 압도적 다수로 어찌되었든 통합되겠지. 하지만 이는 차선책도 되지 못한다. 모순이다. 정말 모순이야!’

바로 그랬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의 입장에서 한국인과 유럽인은 침략자였다. 다시 말해 인디언의 입장에서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당연히 한국의 북아메리카 통합정책은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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