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225)

신준묵은 암브로시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답입니다!”

너무나도 당당한 답변에 암브로시오는 혀를 내둘렀다. 그가 예상한 바와 같이 한국의 진정한 의도는 역시 유럽의 분열이었다.

암브로시오는 확신할 수 있었다.

‘프랑스 전선이 불승불패(不勝不敗)의 국면을 유지하려면... 역시 독일이 답이군. 최소한 독일이, 전열에서 힘을 쓰지 못해야 프랑스의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덴마크와 스웨덴의 개입이 있어야 상호 견제가 가능할 텐데?’

그때 신준묵이 다시 말했다.

“뭐,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것들이 있으니까요. 자 여기를 보시면...”

“...”

“...”

두 사람의 대화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그럼 계약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하하! 귀하의 명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한국은 천군만마를 얻었습니다. 제노바는 저희 한국과 함께 세세토록 영화를 누릴 겁니다. 물론 그 중심은 귀하와 스피놀라 가문입니다.”

두 개의 디아스포라

1631년 2월 2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유대가문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이어갔다.

“흥! 우리가 차별받은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이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니! 좋다고 받아 쳐 먹을 땐 언제고...”

베어링 가문의 말에는 기나긴 세월의 한(恨)이 묻어 있었다. 

유대인의 역사는 디아스포라, 그 자체였다. 

그들은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이집트, 로마 등 세계를 지배한 제국들에 의해 강제로 흩뿌려졌다. 무려 천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예로부터 세상 어느 곳도 이방인을 반기는 곳은 없었다. 

또한 유럽은 기독교 세상!

유럽인들에게 유대인은 낯선 이방인이었고, 동시에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증오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대체로 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유럽에서 유대인은 토지소유가 금지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길드(조합)가입도 불가능하여 일반적인 상공업에 종사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리대금업뿐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했기에 유대인이 더욱 미움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예컨대, 십자군전쟁 때에는 내부정화라는 미명하에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을 태워죽이기도 했으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샤일록(고리대금업자)’은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의 증오를 상징했다. 

오죽하면 중세 유럽의 유대인들이 뾰족한 모자를 유대인이라는 징표로 쓰고 다니도록 강제되었을까!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1290년 영국 에드워드 1세의 유대인 추방령.

1492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유대인 추방(알함브라 칙령).

영국과 스페인이 국가단위로 유대인을 추방했던 진짜 이유는 돈이었다. 

돈은 국가경제의 피(血)고 혈관인데, 한번 유대인에게 들어간 돈은 다시 돌아 나오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해 유대자본이 영국과 스페인을 잠식하고 경제권을 좌지우지하자 강제로 쫓아낸 것이었다.

이방인 문제, 유대교와 기독교의 충돌, 천년이 넘도록 유럽에 동화되기는커녕 유대인 게토(ghetto)에 집단거주하며 고리대금업을 영위하는 등...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언제 어디서나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들이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네덜란드에 모인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쾅!

리카도 가문도 울분을 드러냈다.

“흐흑, 그동안 네덜란드 공화국을 키워준 것이 얼만데? 프랑스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반역누명을 씌워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프레데릭 헨드릭... 네 놈을 갈아 마셔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이때 호프 가문이 나서며 두 가문을 달랬다.

“자자 진정하시고, 오늘 모인 이유가 뭔지 생각합시다. 어차피 돈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합시다. 유럽 곳곳에 위장 개종해서 흩어지던지, 아예 새로운 나라로 집단이주하던지... 이제는 결정해야 합니다.”

베어링 가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동감입니다. 지금 반역누명이니 추방이유니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서 논의를 시작합시다. 우선 위장 개종해서 흩어지는 것은 최악의 경우니까 나중으로 미룹시다. 금융업의 특성상 집단이주가 좋습니다. 아무래도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니까요. 제 생각엔 스웨덴이 적당해 보입니다. 구교도 국가는 우리 유대교를 너무 백안시하니 젖혀두고, 신교도 국가 중에서 종교적으로 관대한 곳은 스웨덴이에요. 지금도 위장 개종한 형제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리카도 가문이 반대했다.

“스웨덴은 종교적으로 관대하지만 자체 시장이 너무 작습니다. 네덜란드 시장의 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요. 게다가 너무 외진 곳 아닙니까?”

호프 가문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럼 리카도 가문에서는 스웨덴 말고 따로 생각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호프 가문의 질문에 리카도 가문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크흠, 한국이 괜찮지 않을까요? 종교가 자유롭고 국왕도 외국인에 관대합니다... 또 일본과 아메리카의 은 무역을 완전히 거머쥐었으니 우리가 들어가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기도 보다 쉬울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이 유대인을 잘 모른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유럽과 달리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없을 테니, 우리의 정체를 숨기고 힘을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국은 누가 뭐래도 변방의 소국이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의 상층부로 진입한 다음 마음대로 조종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물론 처음엔 달콤한 꿀부터 내주어야겠지요.”

“...”

“...”

베어링 가문과 호프 가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언제까지 침묵할 순 없는 사안이었다.

결국 베어링 가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긴,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북아메리카로 수도도 옮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번 긍정적으로 검토해볼만 하겠습니다.”

호프 가문도 동의했다.

“오히려 잘됐습니다. 종교전쟁이 끝나면 어쩌나 했었는데, 이제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재미를 보려면 전쟁이 필요하니까요. 솔직히 한국의 군수산업은 네덜란드 이상입니다. 먼저 한국의 금융업을 장악하고 서서히 뿌리를 내립시다. 이미 지적하신대로 한국 국왕도 우리에 대한 경계심이 없을 테니 아주 쉽겠습니다. 그리고 이젠... 돈에만 관심을 기울일 게 아니라 한국의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야합니다! 우리의 운명을 언제까지고 남에게 맡길 순 없지 않습니까? 하하!”

...

같은 시각, 독일 오스나브뤼크.

한국의 안가(安家).

“네덜란드 총독이 유대인에게 최후통첩을 전했습니다.”

런던공사 신준묵은 수하의 보고에 피식 웃었다.

“훗! 남부 네덜란드를 두고 프랑스와 싸우게 된 이상, 유대인은 골칫덩이다. 어느 나라건 자국 내에 적국을 지원하는 세력을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지.”

이때 수하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유대인들이 아예 프랑스로 가버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신준묵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해. 종교와 경제문제 때문에... 첫째 프랑스는 명백히 구교도 국가이고 자국민인 위그노까지 개종하도록 탄압했을 정도다. 천년이 넘게 박해를 견뎌온 유대인이 과연 유대교를 버리고 구교도로 개종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둘째 프랑스는 종교적 이유로 고리대금업과 은행업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이자 자체를 금지하진 않지만 여전히 자유롭게 돈을 빌리고 빌려줄 수 없으니... 그래서 우습게도 자금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이자가 더 낮은 유대인에게 돈을 빌렸다. 고리대금업을 천시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은 아주 달라. 종교문제는 위장 개종으로 빗겨나갈 수 있어도 경제문제는 그럴 수 없으니까.”

수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물었다.

“폐하께서 저축을 강조하시고 은행을 설립하신 것도 같은 이유일까요?”

신준묵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무역상단 시절, 매달 월급을 받으면 개인통장에 월급금액을 기록하시고는 강제로 맡아두셨었지. 그렇게 축적한 돈으로 재투자하시고 각자에게 이자를 주셨다. 우리들도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은행에 보관하니까 편했어. 또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에겐 낮은 이율로 대출도 해주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은행의 필요성을 깨달았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땐 너무나 생소했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허허, 곰곰이 생각해보니 폐하께서는 우리를 천천히 길들이신 것 같구나. 조선에서는 그저 땅에 얽매여있던 우리였다. 그때 양반에게 한해 소출의 5할을 주고 나면 어찌 살았더냐? 춘궁기가 되면 살아남기 위해 그 양반에게 다시 손을 벌리기 일쑤였다. 그것도 다시 5할의 이자... 그야말로 빈곤의 악순환이었지. 하지만 폐하께서는 은행을 설립해서 국민이나 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낮은 이율로 빌려주셨다. 게다가 각자 땅까지 나눠주시고 소출이 나면 천천히 갚도록 하셨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을 어린 아이가 밥 먹듯 연습한 셈이야. 지금 한국인 중에 은행의 필요성을 모르는 자가 있을까? 아! 폐하께서는 이 모두를 미리 안배하신 듯하다.”

곧이어 신준묵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내 걱정이 기우(杞憂)였구나. 폐하께선 은행, 주식회사까지 만들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신 분 아닌가? 폐하의 배포에 6천만 굴덴 쯤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좀 더 과감하게 써도 되겠어.”

수하는 경악했다.

“공사님! 그게 어찌 그렇게 연결됩니까? 지금 6천만 굴덴 지불보증 건도 폐하의 사후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선 폐하께 복죄(服罪)하고 사후승인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납니다. 당장 목이 달아나도...”

신준묵은 수하의 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노래만 흥얼거렸다. 이윽고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흐흐, 딱 좋아! 이제 프랑스의 돈줄이 절반쯤 막힌 셈이다. 암스테르담 상관에도 거듭 재촉해! 폐하의 명대로 은행영업 개시는 빠를수록 좋다. 유대인의 빈자리는 반드시 우리 차지가 되어야 하니까. 전쟁특수를 톡톡히 누리려면 말이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도 이번 기회에 전주(錢主)를 갈아타야하지 않겠나?” 

...

다음 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한국 상관 사무실.

“얀! 이러다가 진짜 과로로 죽겠다. 왜 하필이면 은행이냐? 네덜란드 금융업은 유대인이 절반 이상 독식하고 있는데... 보나마나 망할 거다. 그 놈들이 좀 독하냐?”

한국인 얀은 친구 핀케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핀케의 말대로 15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유대인의 네덜란드 금융업 독식은 마치 철옹성과 같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핀케 정말 미안하다! 넌 아직 한국인이 아니라 말해줄 수 없어.’

이달 초, 얀은 런던공사의 밀서를 받고 기겁했었다.

- 폐하의 칙령에 따라 한국은행 암스테르담 지점을 설립한다. 지점설립자금은 군수품 판매대금을 전용하고, 필요인력은 한국은행 런던지점에서 차출하라! (후략) 런던공사 신준묵.

‘이건 유대인들과의 기존 거래관계를 아예 끊겠다는 것 아닌가?’

얀의 생각대로였다.

지난 수년 간 한국의 네덜란드 무역거래대금은 온전히 유대인의 자금으로 집행·결제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특혜였다.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는 한국은행 런던지점이 무역거래대금 집행과 결제를 전담했으니까.

한국은 유대인의 협조로 필요한 돈을 손쉽게 융통할 수 있었고, 유대인은 한국의 무역거래에 편승해 엄청난 이자수익을 얻었다.

명백한 특혜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이익도 작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에 이어 아메리카까지... 세계 은 무역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무역거래도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금융거래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큰 이익이 난다. 한국의 자본력이 충분해졌으니 더 이상 유대인에 기댈 필요가 없지.’

그러나 생각과 달리 얀의 얼굴은 어두웠다.

유대인의 집단반발과 텃세를 이겨낼 묘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현재 네덜란드 전역은 유대인의 금융거래, 영업망이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쳐져있었다. 과연 한국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런던공사의 급보가 도착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국외로 추방될 것이다. (중략) 유대인들의 각종 자산을 헐값에 매입할 절호의 기회이니 절대 놓치지 말라! 런던공사 신준묵.

순간 얀은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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