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독일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게오르크 빌헬름 폰 브란덴부르크’로 프로이센 공작을 겸하고 있었다.
‘게오르크 빌헬름 폰 브란덴부르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평화협상을 통해 우리가 얻을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독일이 더 이상 신성로마제국의 거수기여선 안 됩니다. 또 우리 독일이 프랑스의 저열한 분열책동에 휘둘려선 안 됩니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독일의 분열을 획책한 진짜 원흉은 덴마크나 스웨덴이 아니라 프랑스입니다. 네덜란드의 유대인 놈들이 프랑스의 뒷배를 믿고 덴마크와 스웨덴에 전비를 조달했다는 물증도 있답니다. 나중에 좀 더 확실한 증거를 확인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여간, 종교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어요!”
그는 ‘우리 독일’을 특히 힘주어 강조했다.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폰 팔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어차피 아메리카의 상실로 합스부르크 왕가는 지는 해와 같습니다. 마지막 불꽃을 피워보려고 프랑스 전쟁에 우릴 써 먹으려나 본데... 그러려면 두 가지 선결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독일 선제후들의 영지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 둘째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영토와 전리품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이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명시적이며 명백한 약속이어야 합니다.”
작센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도 맞장구쳤다.
“크흠, 작센도 찬성입니다.”
세 명의 독일 선제후는 서로 눈짓으로 대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 마무리 발언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게오르크 빌헬름 폰 브란덴부르크’가 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지금 오스나브뤼크 대성당에서는 평화협상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신성로마제국 전권대사인 막시밀리안.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아마 프랑스의 포위일 겁니다. 그래야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에서 그나마 유지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도 원하는 바입니다. 우리 독일의 통일을 위해선 신성로마제국은 물론이고 프랑스의 간섭도 단호하게 뿌리쳐야 합니다. 특히 독일 분열의 진짜 원흉 프랑스는 반드시 벌해야 합니다...”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 왕국을 지배하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게오르크 빌헬름 폰 브란덴부르크’는 그의 평소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러나 작센과 팔츠, 다른 두 선제후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예의상 고개만 끄덕였다.
두 선제후의 머릿속엔 ‘독일의 통일’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 이미 수백 개의 영지로 산산조각난 독일의 현실이 너무나 빤히 보였던 것이다.
또한 두 선제후에겐 프랑스의 독일 분열책동 주장(?)도 관심 밖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의 영지 재건과 확장에 정신이 팔려있었으니까.
그들에게 독일의 통일은 너무 아득한 일이고, 프랑스의 독일 분열책동은 너무 막연한 주장이었다.
...
같은 시각, 오스나브뤼크 대성당.
평화협상 회의장.
“오늘 전체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참가국마다 개별적인 협상은 별도 장소에서 계속 진행합시다.”
웅성웅성.
신성로마제국 전권대사 막시밀리안은 평화협상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종교의 자유를 전면 허용한 것으로 평화협상의 물꼬를 트셨다. 독일의 영지까지 양보한 이상... 어려울 것은 없다.’
곧이어 막시밀리안은 회의장을 빠져나와 오스나브뤼크 대성당의 별채로 향했다.
잠시 후.
“모두 모였군요!”
막시밀리안은 참가자의 면면을 하나씩 확인했다.
첫째 영국은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 둘째 네덜란드는 나사우디츠 백작 에른스트 카시미르, 셋째 독일은 작센, 브란덴부르크, 팔츠 등 세 명의 선제후 대리인들이었다.
막시밀리안에게, 여기 모인 각국 대사 5명은 이번 평화회담의 핵심당사자였다.
“우리 시간낭비하지 맙시다! 서로 원하는 것을 다 아는 처지 아닙니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후, 신성로마제국에서 먼저 제안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흥! 협상조건이 뭔지,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
막시밀리안은 사전에 조사한 각국 대사의 성향과 각국의 목적을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자 여기를 보시지요!”
툭.
막시밀리안은 말과 동시에 탁자에 지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프랑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함께 쪼개서 나눠가집시다!”
쿵.
모두의 심장이 멎는 분위기였다.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이었지만... 실제 들어보니 이보다 더한 충격은 없었다.
그들이 짐작한 대로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를 포위·격멸한 다음, 영토를 분할하고자 했다. 다만 여기엔 처치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프랑스가 이대로 몰락하면 누가 합스부르크 왕가를 견제할까?’
각국 대사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였다.
꿀꺽.
곳곳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표정관리에 힘쓰며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에 바빴다.
그때 막시밀리안이 몇 마디를 더 보탰다.
“여러분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몇 가지 안전장치를 두겠습니다. 첫째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다시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 겁니다. 둘째 황제께서는 어떤 명목으로든 더 이상 독일에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분할은 기존 합스부르크의 영지가 아닌 한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좌중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막시밀리안의 폭탄선언(?).
그것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이때 영국 버킹엄 공작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카를 5세께서 하신 약속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겁니까?”
막시밀리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합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두 개로 유지될 겁니다.”
과거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을 동시에 다스리던 카를 5세는... 스페인을 아들 펠리페2세에게, 신성로마제국을 동생 페르디난트1세에게 물려주면서 합스부르크 왕가를 두 개로 나눴다.
광대한 영토를 혼자 다스리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단일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유럽 제국(諸國)의 두려움을 감안한 선제적 조치였다.
당시 카를 5세의 결단에 유럽은 안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독일 선제후 대리자들도 물었다.
“황제폐하께서 독일에 개입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 믿어도 되겠습니까?”
막시밀리안은 또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 역시 물론입니다! 독일의 영지는 독일의 제후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 후는 정말 일사천리였다.
놀랍게도 막시밀리안은 영국, 네덜란드, 독일의 세 선제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흔쾌히 약속했으니까.
늦은 밤, 영국 등 5개국의 대사들은 본국으로 급보를 보냈다.
...
다음 날, 오스나브뤼크.
막시밀리안의 거처.
“프랑스와의 비밀동맹, 모른 척 해주겠습니다.”
막시밀리안의 제안에 덴마크와 스웨덴의 대사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지난 수년 간, 덴마크와 스웨덴은 프랑스의 은밀한 지원 하에 신성로마제국군을 맞아 싸웠다. 물론 명분은 신교도 옹호였다.
그러나 내면의 실질은 신성로마제국군의 발트해 위협과 독일 영토에 대한 끝없는 탐욕이었다.
프랑스는 ‘합스부르크의 약화와 독일의 분열’이라는 자국의 이해관계가 있었기에 두 나라를 지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황제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평화협상이 개시되면서, 덴마크와 스웨덴은 신교도 옹호라는 대의명분을 잃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발트해 위협과 독일의 영토 문제뿐이었다.
막시밀리안은 거듭 확약했다.
“첫째, 황제폐하께서는 더 이상 발트해를 넘보지 않을 겁니다. 둘째, 독일 영지는 독일의 제후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잠시 후.
스웨덴 대사는 고심 끝에 물었다.
“대체 누구요? 프랑스의 전비지원을 귀국에 알린 자가...”
덴마크 대사도 눈빛으로 막시밀리안의 해명을 요구했다.
막시밀리안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하하!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우리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 아닙니까? 세상에 비밀은 없다! 이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 대사는 서로 눈짓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좋소!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지. 황제폐하께서 발트해를 위협하지 않고 독일영토문제를 철저히 방관하신다면, 우리 두 나라도 프랑스와는 손을 끊겠소. 또 이자도 지불하지. 프랑스가 끝장나도 독일의 분열은 계속될 것이오. 아니, 프랑스를 끝장낸 다음 독일을 분열시켜야겠지. 귀국은 물론, 우리에게도 득이 되니까.”
...
같은 시각, 오스나브뤼크.
한국의 안가(安家).
“그대가 용병대장, 암브로시오 스피놀라요?”
“그렇소! 여기 제노바 도제(Doge, 최고 정치지도자)의 추천장입니다.”
탁.
암브로시오는 스피놀라 가문의 원수이자 현 제노바 도제인 ‘암브로조 도리아’의 추천장을 내밀었다.
그는 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더욱 굳건히 했다.
- 형님! (전략) 여기 ‘암브로조 도리아’의 추천장을 보냅니다. 스피놀라 가문의 부흥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동생 페데리코 올림.
‘아, 페데리코... 너에게 이런 치욕을 주어 미안하구나... 이 못난 형을 용서해다오.’
탁자에 놓인 추천장은 가문과 동생의 명예를 판 대가였다.
이때 추천장을 확인하던 사람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신준묵! 귀하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잠시 후.
“음, 그건 태업(怠業, 일을 게을리 해서 고용주에게 손해를 끼침)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