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225)

이때 존 스쿼드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음, 호주의 골드러시에 편승해서 한국 시민권을 취득한 자들을 그저 비난할 수만은 없소. 돈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자유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메리카로 이주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윌리엄 브래드퍼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영국계의 대다수는 이미 시민권 선서를 했습니다.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위그노들도 국왕 앞에서 시민권 선서를 하겠다고 준비중이구요... 사실 우리가 위그노와 달랐던 점은 본국(영국)이 신교도 국가라는 것이었는데... 최근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만간 청교도를 대상으로 종교박해가 일어날지 어찌 알겠습니까?”

“...”

“...”

곧이어 존 스쿼드는 좌중의 분위기가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표결합시다! 찬성하는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드르륵.

사방 곳곳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 스쿼드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후, 좋습니다! 만장일치군요. 곧 새로운 충성 서약을 준비하겠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요구사항도 함께 정리하지요.” 

...

같은 시각, 오도리족 김추성의 집

김공선은 고심 끝에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김자점 의원님의 최근 행보가 걱정입니다.” 

“무엇이 말이냐?”

“음,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김추성의 아들 김공선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군 장교로 임관한 이래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오도리족과 아버지를 따라 북아메리카 서부총독부로 보직을 옮겼다. 또한 북아메리카 서부전쟁에서도 아버지 김추성을 따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런 김공선이 북아메리카 횡단에 아버지 김추성과 함께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는 북아메리카 횡단에서도 탐험대를 이끌며 나체스 족을 격멸하는 대공을 이뤘다. 그의 출세는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탁.

김추성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침음했다.

‘나 역시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오도리족이 마치 김자점 의원님의 사병(私兵)이나 마찬가지로 인식되고 있으니...’ 

아들의 우려는 일리가 있었다. 김공선의 말은 김추성의 평소 생각과 일치했다.

“아버님! 우리 오도리족이 김자점 의원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한국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도리족 역시 조선, 한국과 남이 아닙니다. 굳이 김자점 의원님의 사병취급을 받으며 폐하의 의심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으음...” 

오도리, 아니 여진족의 오랜 관행은 세력에 따른 이합집산이었다. 자연스레 힘 있는 자에게 세력이 몰렸다. 다시 말해, 여진족의 오랜 관행에 따르면 사병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히 죄(罪)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과 한국의 법령에 따르면 무거운 죄였다.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사병혁파를 국시(國是)로 삼았고, 한국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김공선은 사관학교 정규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의 기본정책이 ‘사병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추성이 여진족의 오랜 관행을 버팀목삼아 한국의 기본정책에 역행하는 잘못을 저지를까 우려했던 것이다.

김추성의 머릿속은 점차 명료해졌다.

‘그래 맞아! 우리 오도리족이 새로운 조선, 한국에서 번듯하게 살 수 있게 인도해준 것은 당연히 김자점 의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다. 하지만 한국의 국시와 어긋난다면 언제까지 김자점 의원님께 맹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아들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조선 함경도 온성의 오도리족 번호였던 시절부터... 오직 아들바라기, 김추성의 결정이었다.

잠시 후.

김추성의 집 뒤채에선 작은 잔치가 열렸다.

“하하, 아저씨! 손자 득남을 축하드립니다!”

김공선은 호르킨족 ‘작은 돌기둥’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같은 호르킨족 ‘말없는 새’도 술잔을 들이키며 축하했다.

“흐흐, 자네도 이제 할아버지가 됐군.”

작은 돌기둥은 두 사람의 축하주를 받으며 기꺼워했다.

“고맙네! 나도 이제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었어.”

작은 돌기둥은 과거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었다.

북아메리카 서부, 호르킨족의 두 사람은 북아메리카 횡단 탐험대에 지원해서 머나먼 동부까지 왔다. 탐험 중간에 나체스 족의 간악한 협잡질에 죽을 뻔했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북아메리카 대륙의 최초 횡단자로 이름을 올렸다.

작은 돌기둥은 지난 ‘서부 전쟁’ 당시 아들의 결혼을 위해 어포(魚脯)를 팔러 나섰다가 쑤우족 추장 ‘성난 들소’의 음모를 확인했었다. 그리고 간신히 호르킨족 마을에 돌아와 쑤우족의 침입을 경고하고 맞서 싸웠다.

‘정말 그때가 엊그제 같구먼!’

탁.

그때 말없는 새가 그의 상념을 깼다. 

“참! 호아탄 그 친구 참 대견하지 않나? 젊은 나이에 추장에 오른 것도 대단한데 생각이 깨어 있으니 말이야.”

작은 돌기동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코노이족은 호아탄같은 영리한 추장이 있으니 앞으로 크게 번성할 거야.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알고, 아주 예의가 발라.”

김공선은 영문을 몰라 서운한 말투로 물었다.

“음, 저만 모르는 이야기네요?”

두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각자 대답했다.

“하하!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야. 호아탄이란 코노이족 추장이 서부이야기에 관심이 있더라고. 그래서 몇 번 만나서 말해줬어. 특히 서부의회하고 관개농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더라.”

“나도 마찬가지였어. 동부 형제들이 말하는 ‘이쿼로이 어’가 우리 서부와 많이 달라서 배우고 있었거든? 그때 호아탄이 나서서 흔쾌히 알려주더라고.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줬지. 나는 그에게 한국에 대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어.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식민통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한국은 노예제를 배격하는 것으로 일어난 나라니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우리가 산 증인 아닌가?”

...

같은 시각, 대서양 어느 곳.

한국 수송선.

“한 형! 제발 식사를 마치고 트림소리를 내지 마세요! 그건 방귀도 마찬가집니다. 이 좁은 선실에서 무슨 실롑니까?”

한고립은 송준길의 타박에 ‘어디서 개가 짖나?’는 식으로 귀를 후볐다. 그러자 송준길도 머리꼭지가 돌았다.

그리고...

툭.

그것은 갓끈이 아니라 송준길의 내면에서 ‘이성의 끈’이 끊기는 소리였다. 송준길이 사대부의 갓끈을 버린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으니.

“으아악!”

우당탕, 쿵쾅!

잠시 후.

한고립은 항복의 표시로 바닥을 두 번 내리쳤다. 외팔인 상태에서 오른 손으로.

탁탁.

“흐흑, 치사한 놈! 하필 의수(義手)를 빼놓았을 때 공격하다니. 이건 무효다!”

치욕적 눈물을 흘리는 한고립과 달리 송준길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흥! 고작 간지럼을 이기지 못해 항복해 놓고선 무슨 망발입니까? 그게 의수를 끼웠다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공격입니까? 패장이면 패장답게 무릎을 꿇으시지요!”

부들부들.

한고립은 간지럼에 취약한 자신의 몸이 한스러웠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킬레스의 발목’과 같았다. 

‘좁은 선실만 아니었어도 내 약점을 들키지 않는 건데...’

몇 달간 좁은 선실에서 세 사람이 부대끼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때 송시열이 말을 꺼냈다.

“두 분 그만 하세요! 형님께선 어찌 남의 약점을 골라 공격한단 말입니까?”

그 말에 한고립이 반색했다.

“그렇지? 역시 시열 동생이다... 흐흑.”

그러나 이어진 말은 달랐다.

“하지만 이번 사단의 원인제공자는 한 형 아닙니까? 곧 동부에 도착하면 호르킨족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한 형이야말로 위대한 무인이자 구원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형의 이런 모습을 보면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자중하세요!”

송준길은 키득거리며 혀를 내밀었다. 그와 반대로 한고립은 침울하게 고개를 떨궜다.

송시열은 두 사람의 상반된 모습에 쓰게 웃으며 입을 닫았다.

‘곧 북아메리카에 도착한다.’

적도(위도 0°)를 지난 것이 벌써 5일 전이었다. 빠르면 보름 안에 도착할 예정...

그는 백의종사(白衣從士)로 임명되던 당시, 국왕폐하의 말을 떠올렸다.

- 네가 올린 헌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마! 북아메리카 동부의 난맥상을 살피고 적절한 해결방안을 찾아라.

그때 송시열은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사내가 출사(出仕)하며 자신의 웅지(雄志)를 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폐하께서 나의 헌책을 받아들이신 만큼, 최선을 다해 이루고 말리라! 현실은 그 무엇보다 중한 법. 다양한 이해관계를 잇는 연결고리를 반드시 찾아내고 말 것이다.’

평화 없는 평화협상

1631년 2월 20일, 독일 오스나브뤼크.

작센 선제후의 집무실.

“우리 작센은 황제폐하의 결단을 받아들이겠소!”

작센 선제후(選帝侯,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거권을 가진 7명의 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의 말에 다른 두 선제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은 루터 파 신교도의 발원지로 신교도와 구교도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종교전쟁의 끔찍한 상흔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작센, 브란덴부르크, 팔츠.

독일의 세 선제후는 모두 루터 파 신교도였다. 당연히 구교도인 신성로마제국의 종교탄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때 ‘프리드리히 5세 폰 팔츠’, 팔츠의 선제후가 한껏 고무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하하, 좋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영국 찰스1세는 본인과 인척관계입니다. 우리 독일이 뭉치면, 영국도 힘껏 도울 겁니다.”

말 그대로 ‘프리드리히 5세 폰 팔츠’의 부인은 영국 제임스1세의 딸이며 찰스1세의 친누이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였다. 그는 영지 대부분을 덴마크와의 전쟁으로 상실했기에 영국의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영국과의 친밀을 강조하는 이유였다. 자신의 영지를 되찾으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오직 팔츠 선제후란 이름값 때문에 평화협상 자리에 낄 수 있었다.

팔츠 선제후의 말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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