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공사의 말마따나 남부 네덜란드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오랜 영지... 그걸 네덜란드 공화국, 또는 신성로마제국에 넘길 수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싸움을 붙이고 흥정은 말린다! 그거 참 좋은 말이야...’
이날, 알바 공작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진실을 찾아
1631년 1월 30일, 프랑스 파리.
루이 13세의 집무실.
“허허, 알바 공작의 배포가 이리도 작았던가?”
루이 13세는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리슐리외 추기경도 뜻밖의 사태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스페인 알바 공작이 카를로스 왕자와 프랑스의 엘리자베트(루이 13세의 친누이)를 죽이지 않은 것, 둘째 펠리페4세가 패전과 신병을 이유로 퇴위하고 카를로스 왕자(카를로스 2세)가 즉위했다는 것이었다.
그 외의 소소한 것들은 무시해도 좋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엘리자베트가 반역죄로 궁정 깊숙이 유폐되었다거나 알바 공작이 호국경(Lord Protector)에 올라 오랜 관례상 적법한 섭정인 왕비를 제치고 스페인의 섭정이 되었다는 것들 말이다.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의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이었다.
“추기경! 이럴 수는 없다. 어째서...”
모든 과정이 너무 매끄러웠다.
프랑스가 스페인 왕위계승에 당장 개입할 수 없도록 말이다.
펠리페4세가 죽임을 당하거나 강제퇴위를 당했나? 그렇지 않았다. 그는 형식적으로나마 스스로 물러났다.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가 죽임을 당하거나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나? 이것도 그렇지 않았다. 그 역시 카를로스 2세, 스페인 왕으로 즉위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스페인 왕비,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그녀라도 통쾌하게 죽였다면 개입의 정당한 명분이라도 되건만... 반역죄를 뒤집어씌우고서 고작 스페인 궁정에 유폐라니?
쾅!
루이 13세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런 그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빌어먹을! 이래서야 스위스, 덴마크와 스웨덴에 그 많은 자금지원을 한 보람이 없지 않은가?”
놀랍게도 루이 13세의 입에서 나온 스위스, 덴마크 및 스웨덴은 유럽30년전쟁에서 구교도의 맹주인 합스부르크 왕가에 반기를 든 신교도 국가였다.
만약 루이 13세의 말대로라면, 같은 구교도 국가인 프랑스가 유럽 종교전쟁의 흑막(黑幕)이란 의미 아닌가?
누가 뭐래도,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는 외형상 혼인동맹이었다.
안 도트리슈는 프랑스의 왕비로, 프랑스의 엘리자베트는 스페인의 왕비로... 두 왕가의 상호 분쟁을 그만두자는 의미로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먼저 뒤통수를 친 것이다. 유럽30년전쟁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반대진영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그러자 리슐리외 추기경이 위로하듯 말했다.
“폐하! 아직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그동안 우리 프랑스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교도 편에 서서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해왔고, 커다란 성과를 이뤘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양면 포위를 크게 약화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입니다.”
그러나 루이 13세는 만족하지 않았다.
“흥! 겨우 그거로는 안 돼. 여전히 합스부르크 왕가가 프랑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프랑스 내의 3개 주교령(메스, 투르, 베르됭)과 알자스-로렌이 합스부르크의 손아귀에 있는 한, 내 목에 칼날이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스페인이 우리 뒤통수를 노리고 있다. 합스부르크의 양면 포위가 약해졌다고? 내가 보기엔 어떤 변화도 없어! 리슐리외 추기경! 당장 대책을 마련해. 무슨 이유를 대든, 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
그날 저녁.
리슐리외 추기경의 집무실.
“뭐, 평화협상이 시작되었다고?”
순간 리슐리외 추기경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수하의 보고는 잔인하게 이어졌다.
“네 그렇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전권대사인 막시밀리안의 입을 빌어 종교의 자유를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라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와 독일의 선제후들에게도 평화협상을 개시하자는 페르디난트 2세의 칙서를 보냈답니다.”
쨍그랑.
그때, 리슐리외 추기경의 손을 떠난 찻잔이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그가 평소 아끼던 것이었는데...
리슐리외 추기경은 깨진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치 홀린 듯 혼잣말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군... 합스부르크의 양면포위를 벗어나기는커녕, 이젠 독일까지... 사방이 적이다. 평화협상이 끝나는 즉시 전쟁이다. 아니 그 전일 수도 있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잠시 후, 리슐리외 추기경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는 굳은 얼굴로 고심을 거듭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물론이고, 독일, 네덜란드, 영국까지... 평화협상이 끝나기 전에 유럽의 시선을 돌려야 해! 그럼 어디를 먼저...’
그의 눈은 점차 남쪽, 스페인을 향했다.
**
같은 시각, 영국 런던.
런던공사의 집무실.
“후우, 알바 공작에겐 너무 미안하군.”
런던공사 신준묵의 탄식에 수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설마, 진심이십니까?”
신준묵은 눈을 몇 차례 깜박이다 말했다.
“나도 피와 눈물이 있는 사람이다! 알바 공작이 날 믿는 만큼 가슴이 아리다...”
수하는 신준묵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신준묵이야말로 알바 공작의 뒤통수를 치려고 준비 중인 까닭이었다.
잠시 고심하던 수하가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추기경이 스페인을 먼저 칠까요?”
“그건 당연하다! 외형적인 명분이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니까. 특히 힘없는 자에게 명분은 독약이나 다름없다. 평화협상이 개시된 이상, 프랑스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다. 프랑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양면포위를 극복하고자 상호 혼인동맹을 맺었으면서도, 은밀히 신교도 국가들을 지원하지 않았느냐? 또한 독일의 분열을 그 누구보다 바란 것은 프랑스였다. 곧 전쟁이 종결되면서 자연스레 프랑스의 이간질이 수면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오랜 동맹, 신교도 국가들이 평화조약의 대가로 순순히 털어놓을 테니까... 신성로마제국, 독일 선제후들, 네덜란드까지... 모두 프랑스의 적이 될 것이다.”
신준묵은 피식 웃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후후, 세상에 비밀은 없다. 워낙 눈과 귀가 많으니... 신성로마제국도 이미 눈치 채고 있겠지. 우리 역시 프랑스의 이간질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프랑스의 돈이 어디로 향한지 안다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스페인의 돈이 신성로마제국을 살찌운 것처럼 말이야! 평화협상 진행 중에 종교전쟁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 상황에서 프랑스는 막다른 상황에 몰릴 것이다. 결국 프랑스가 선제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다간 사면초가에 빠져 금세 무너질 것이니...”
그럼에도 수하는 갸우뚱했다.
“그게 꼭 스페인을 먼저 칠 이유가 될까요? 왕위계승은 적법하게 카를로스 2세가 즉위했고, 스페인의 국세가 기울어 더 이상 프랑스의 적수가 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신준묵은 피식 웃었다.
“곧 드러날 종교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함이다. 프랑스는 종교전쟁에 편승해서 합스부르크의 약화와 독일분열을 위해 무진 애써왔다. 평화협상이 진전될수록 그 진실이 드러나고, 구교도들과 특히 통합을 열망하던 독일 제국(諸國)은 프랑스에 분노할 것이다. 결국 독일 제국은 프랑스에 대적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과 합세할 것이 분명해! 따라서 그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프랑스는 스페인을 쳐야 한다. 그래야 종교전쟁에서 왕위계승전쟁으로, 유럽의 모든 관심과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것이니... 다른 선택은 없다.”
그의 말이 무섭게 이어졌다.
“만약 프랑스가 먼저 나서지 않는다? 그럼 우리가 도와 줘야지. 그래서 알바 공작한테 미안하다는 말이다.”
**
같은 시각, 대서양 어느 곳.
국왕의 기함.
“폐하! 곧 적도(위도 0°)를 통과합니다.”
나는 선임 항해사관의 보고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봉을 출발한 지 15일째... 배를 정비하고 식량과 식수를 충분히 보급하고도, 일주일가량 푹 쉬고 출발했다.
나는 갑판 위에 우뚝 선 채, 사방으로 눈과 귀를 열어두었다.
철썩.
쏴아.
함대 주위로는 온통 바다, 푸른 세상이었다. 그저 망망대해(茫茫大海)였다.
뱃사람 아닌 보통 사람이라면 이처럼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선 순간,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충격을 받으리라!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때를 떠올리면... 순수한 의미로 다가서는 원초적인 두려움, 장엄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해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오직 육감뿐이었다. 또 매 순간 덜컥 겁이 나서 힘껏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흘러 능숙한 뱃사람이 되면서 사라졌던 느낌이었다.
그런데...
사라졌던 그 원초적인 두려움이 새삼 되살아났다. 물론 그 대상이 바다는 아니었다. 새로운 미지(未知), 북아메리카의 통합과 유럽의 도전이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우선 북아메리카 통합!
말은 쉬웠다.
호주는 원주민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처리가 간편했었다. 거기에 전염병도 창궐했고... 그래서 원주민들을 보호한다는 가당찮은 이유를 붙여 인근 섬(현대 뉴기니)으로 몰아냈었다.
따라서 현재 호주는 한국인 일색(一色)! 호주의 인구증가는 폭발적이며 앞으로 별다른 대사건이 없는 한, 한민족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 북아메리카는 복잡했다.
첫째, 서부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서부지역은 일조량과 강수량이 불일치해서 관개농업이 필수였다. 그런데 인디언들은 관개농업 기술이 없어 채집과 수렵으로 연명했다. 그만큼 인디언 숫자가 적은데다가, 때마침 발생한 북아메리카 서부전쟁으로 통합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제2차 골드러시 등 조선인의 대규모 이주로, 인구비중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했다는 것이다.
둘째, 중부는 김자점의 보고에 따라 파악한 것이 전부였다.
김자점의 탐사대는 중부를 가로지르는 미주리 강과 미시시피 강을 따라 멕시코 만까지 이르렀고, 탐사 과정에서 보고 들은 다양한 정보들을 상세히 보고했다.
또 중부는 서부총독 정충신이 ‘어머니의 강(현대 리오그란데 강)’을 경계로 멕시코와의 국경선을 그으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차지가 되었다.
앞으로 ‘미국 서부개척시대’처럼 서부와 동부에서 중부로 팽창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중부 역시 별 문제가 없었다.
셋째, 진짜 문제는 동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