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5세기 들어 뒤통수를 맞았다.
레콩키스타가 승리로 끝나고, 아메리카에서 막대한 금과 은이 유입되자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스페인 왕은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더 이상 귀족이나 의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스페인 왕은 기본세금 외에 따로 의회 결의가 필요한 세금(=전쟁비용)을 걷지 않았다. 오직 카스티야(왕의 직할영지에 해당)에서만 전비를 거두었던 것이다.
당연히 의회는 거수기였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잃고 재정이 파탄나자 어쩔 수 없이 의회를 소집해야 했다.
올리바레스 공작은 고심 끝에 카스티야 이외의 지역에도 특별세금을 부과했는데 여기에 의회가 반기를 들었다.
그 선두는 알바 공작이었다.
의회를 앞세운 알바 공작의 거병은 신속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수도 마드리드와 스페인 궁정을 손에 거머쥐었다.
올리바레스 공작을 위시한 왕당파는 속수무책이었다.
...
의회의 격론이 이어졌다.
“흥! 아메리카의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입니까? 백년 넘게 오직 전쟁뿐이었습니다. 재정이 남아날 리가 없어요. 이젠 정말 질렸습니다!”
“그뿐입니까? 페루 부왕령과 포토시 은광을 되찾기는커녕 멕시코까지..., 아메리카를 전부 잃었습니다.”
“더 이상 국정을 폐하께 맡겨둘 수가 없어요! 어딜 뻔뻔하게 의회를 소집하고, 특별세금을 부과합니까? 국정과 재정파탄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먼저에요. 그렇지 않으면 단 한 푼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올리바레스 공작도 국정파탄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알바 공작각하를 호국경(Lord Protector, 섭정)으로 모시고 국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음, 아무리 그래도 섭정은 오랜 관례에 따라 왕비께서 하셔야...”
웅성웅성.
알바 공작은 의회 논의를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미소를 지었을 뿐.
결국, 쉽게 답이 나오지 않자 알바 공작이 결단을 내렸다. 그가 먼저 왕비를 섭정으로 모시자는 제안을 했고,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보기 드문, 정말 아름다운 양보였다.
...
다음 날.
의회는 발칵 뒤집혔다.
- 왕비가 카를로스, 페르난도와 결탁해 알바 공작을 암살하려 했다.
카를로스와 페르난도는 선왕인 펠리페3세의 아들이자 펠리페4세의 두 남동생이었다. 모두 20대 성년이고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른 왕당파 귀족과 달리 카를로스와 페르난도는 궁정에 유폐되지 않았었다.
충격적인 소식에 의원들이 격분했다.
“알바 공작께서는 호국경(섭정)까지 마다하고 양보하셨는데...”
“허허,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성난 의원들은 왕비를 섭정에서 끌어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왕비는 다시 궁정에 유폐되었고 카를로스와 페르난도는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역시 호국경에는 알바 공작이 적임자입니다.”
...
한밤중, 스페인 궁정.
호국경의 집무실.
알바 공작은 작게 혼잣말했다.
“후후, 광녀(狂女) ‘후아나’의 저주 때문이라 해두지.”
실권이 없는 명목상의 여왕으로, 또 광녀라 불린 후아나.
그녀는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 1세의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16살 때인 1496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필리프 공작과 결혼했다.
그 후, 뜻밖에 위의 다른 형제가 모두 사망하여 후아나가 카스티야의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또한 페르난도 2세의 아라곤 왕위까지 후아나에게 돌아갔다.
결국 후아나는 카스티야와 아라곤 연합왕국의 여왕이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 필리프 공작 역시 카스티야 의회에게 ‘펠리페1세’로 인정받았다.
후아나와 펠리페1세의 아들인 카를 5세(=카를로스1세)가 뒤를 이었고, 그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첫 시작이었다.
카를 5세는 그의 아들 펠리페2세에게 스페인을 물려주며 합스부르크의 영원불멸을 꿈꿨다.
그러나 지금...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선왕 펠리페3세의 후손은 모두 5명.
남자는 적장자 펠리페4세부터 카를로스와 페르난도까지 3명, 여자는 안 도트리슈(프랑스 왕비)와 마리아 안나(신성로마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 3세의 부인, 황태자비)까지 2명이었다.
장자인 펠리페4세의 서거는 거의 확정적인 상황, 거기에 카를로스와 페르난도까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이제 유일한 상속자로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만이 살아남았다. ‘살리카 법’에 따른 적법한 남성 후계자가 끊길 위기였다.(완독한 후에, 연재 맨 끝의 작가 주를 확인해주세요!)
그때였다.
똑똑.
“들어와!”
알바 공작의 말에 수하가 들어와 밀서를 올렸다.
“방금 런던에서 도착했습니다.”
밀서의 발신인은 한국 런던공사였다.
“음, 이제 나가 봐!”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알바 공작은 밀서를 태우며 말했다.
화르르.
“후후,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나도 그 ‘조조(曹操)’처럼 할 수 있다. 시간은 나의 편이니까...”
알바 공작은 작년에 있었던 한국 런던공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공작각하! 세 나라는 서로 원하는 것이 다릅니다.
- 런던공사께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오?
- 네 각하! 세 나라가 각자 어부지리를 꾀한다는 겁니다. 네덜란드는 남부 네덜란드를 통합하기 위해 프랑스가 영국과 스페인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영국은 그 반대고, 스페인은 또 그 반대지요.
- ... 계속 말해 보시오.
- 각하께는 죄송하오나... 스페인의 형세가 가장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전쟁으로 재정과 병력이 손실되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에게는 확실한 개입 명분이 있습니다. 스페인 왕위계승문제로 말입니다.
- 흥! 그쯤이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소.
- 각하! 물론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타국의 개입과 왕위계승문제를 벗어나,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또한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가 영국과 네덜란드에 집중하게요.
- ... 흠, 일단 들어 보겠소.
- 네 각하! 오래 전, 동아시아에 ‘한(漢)’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큰 난리가 나서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자 서로 왕이 되려고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 ‘조조(曹操)’라는 제후가...
알바 공작은 조조의 능력과 심계에 크게 감탄했다.
“어차피 스페인 안에서도 나에게 대적할 귀족들이 많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도 역시 골칫거리지. 모두 스페인 왕위를 노릴 것이니 말이야. ‘합스부르크 왕가를 보호함’과 동시에 ‘스페인의 안정과 부흥’을 기치로 삼는다... 후후, 아주 좋아! 귀족들은 몰라도,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 개입할 명분은 없겠어.”
...
다음 날.
스페인 전역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첫째, ‘스페인 대헌장’이 정식 공포되었다.
놀랍게도 사경을 헤매던 펠리페4세가 잠시 깨어나, ‘스페인 대헌장’에 정식 서명했다는 말이 돌았다. 스페인 대헌장은 의회가 세금부과의 전권을 가지고, 행정의 수반으로는 ‘호국경’을 두어 국정을 수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둘째, 펠리페4세가 아메리카 상실과 신병 등을 이유로 정식 퇴위했다.
그 뒤로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가 즉위함과 동시에 호국경인 알바 공작에게 섭정을 맡겼다.
셋째, 호국경 알바 공작은 스페인 의회와 함께 성실하게 국정을 수행할 것이며 스페인 왕가를 보호함과 동시에 스페인의 안정과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와아아!”
“국왕폐하 만세! 호국경 만세!”
숨죽이던 마드리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며 만세를 불렀다.
왕위 계승 과정에서 으레 보이던.... 잔혹한 피의 향연, 치열한 세력다툼이 없었으니까.
스페인은 언뜻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
같은 시각, 신성로마제국 수도 빈.
페르디난트 2세의 집무실.
쾅!
“뭐! 프랑스 따위가 감히 스페인을 넘봐?”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격노했다.
그의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는 광녀 후아나와 펠리페1세(필리프 대공)의 차남이었다. 또한 카를 5세의 친동생이었다.
페르디난트 1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과 ‘살리카 법’에 따라 장남 카를 5세에 밀렸다. 다시 말해, 카를 5세가 남자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기 전에는 그저 그런 왕족으로 생을 마쳐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을 모두 통치하던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은 친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스페인은 아들 펠리페2세에게 물려주었다.
카를 5세가 독차지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적통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스페인 합스부르크로 나뉜 시초였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대표하는 페르디난트 2세는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부들부들.
페르디난트 2세는 다시 소리쳤다.
“당장 내 아들, 페르디난트 3세를 불러라! 마리아 안나(스페인 펠리페3세의 딸)도 함께...”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