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225)

막사 안의 동료들은 한심한 표정으로 산초를 노려보았다. 스페인 장교 역시 한숨을 쉬며 산초를 타일렀다.

“산초! 여기는 군대다. 또 고양이는 군함에서 쥐를 잡을 목적으로 탑재가 허용된 ‘군용물건’이다. 알겠나? 내일 오전까지 시간을 줄 테니 배에 가져다 놓도록...”

다른 동료도 거들었다.

“그래 산초! 장교님 말씀대로 해라. 막사 안에서 털 날리지, 냄새 나지... 고양이 때문에 이게 뭐냐?”

하지만 산초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저 로시난테의 식사하는 모습을 황홀하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장교는 이마에 손을 얹고 말았다.

‘젠장, 산초 저 녀석... 사령관님 먼 친척만 아니었어도... 저 빌어먹을 고양이 털 때문인지 코까지 간지럽군. 말세야 말세.’

**

같은 날, 한밤중.

서울 방벽 어느 곳.

덜컹.

끼이익.

목조궤도(木造軌度)를 달리던 화물마차가 멈춰 섰다. 동시에 화물마차 위에서 내린 여러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신기전은 화약이 너무 많이 들어서 문제였지 않나?”

“그렇긴 하지. 그런데 비싼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제작부터 운용까지 복잡한 과정이 선행되어야 했잖아. 게다가 명중률도 아주 낮고 말이야. 그래서 소신기전(小神機箭)은 화차(火車)와 묶어서 한꺼번에 발사하고 대신기전(大神機箭)은 기선제압용으로 사용하고...”

“맞아! 신기전은 장점이 아주 많지만 단점도 명확하지. 그래서 총하고 대포에 밀렸어. 그래도 폐하께서 신호탄이나 연막탄으로 개량해서 잘 쓰셨잖아? 이번에 개량한 신형은 사정거리도 더 길어지고 제압능력도 크게 향상되었어.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그런데 말이야! 폐하께선 나우루에서 초석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는 걸 어떻게 아셨을까? 이젠 화약 걱정 없이 마음껏 쓰잖아. 우리 같은 화약장인한테는 지금이 천국이지. 진짜 옛날 생각하면..., 흐흐흐.”

웅성웅성.

그때,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엄히 다그쳤다.

“네 놈들 여기에 한가로이 노닥거리라고 나왔나?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잊은 게야?”

“네 알겠습니다!”

그의 다그침에 모두 잡담을 멈추고 빠르게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끼익.

화약장인들은 설탕과 초석의 비율을 맞춰 제작한 탄두를, 조심스럽게 대(大), 중(中), 소(小) 신기전의 앞머리에 추가로 덧붙였다.

특히 대신기전은 아주 크고 아름다웠다. 

과거 조선에서도 전용 발사대를 세워 발사해야 할 만큼 거대했던 무기였다. 그 길이가 무려 3미터가 넘는...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욱 거대했다. 그래서 더욱 거대한 전용 발사대가 설치되었고, 더욱 더 많은 화약이 들었다.

대신, 사정거리가 보다 늘어났고 폭발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우두머리는 매서운 눈길로 화약장인들의 작업을 감독했다. 반면 그는 심장이 격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아아! 정말 크고 아름답구나. 저 녀석이 밀집한 적진에 떨어진다면... 꿀꺽.’

예정된 승리

1630년 10월 11일, 호주 서울.

한밤중, 서울 방벽 어느 곳.

“시간이 없다! 모두 서둘러.”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이때, 서울 방벽 근처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대낮 전투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 모두 코와 입을 천으로 막고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을 밖으로 내놓고 번뜩이면서 말이다.

쓱싹.

촤악.

그들은 방벽 바깥쪽으로 나가서 인화물질이 될 만한 것들을 치우거나 여의치 않으면 땅속에 묻었다. 또 방벽에서 직선 약20미터 거리를 화재차단구역으로 설정한 다음, 구역 내의 흙을 갈아엎고 그 위에 물을 흠뻑 뿌렸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멸화군(滅火軍)이 고생이 많군.” 

“예끼 이 사람아! 저들은 이제 멸화군이 아니라 소방관이야. 그리고 소방관이라 명칭만 바뀐 게 아니라 소속까지 금화도감(禁火都監)에서 소방청으로 바뀌었지.”

“아차! 그렇지. 그런데 평소보다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데?”

“아마 의용소방관들이겠지. 평시에도 대화재가 발생하면 곧잘 소집했으니... 더구나 지금은 전시상황 아닌가? 폐하의 명으로 시민군들도 대거 포함되었을 것이고...”

과거 1426년(세종 8년)에 발생한 ‘한양 대화재’의 재발을 막기 위해, 금화도감이 설치되었었다. 그리고 금화도감과 멸화군은 각각 소방청과 소방관으로 그 소속과 직책이 변경되었다.

지금 멸화군, 아니 소방관들은 잠시도 쉴 틈 없이 일했다.

끼이익.

촤악.

“모두 힘을 내라! 자정까지는 모두 끝내야 한다.”

“어이! 신형 왓슨 양수기 이쪽으로도 보내.”

과거 조선의 멸화군에게는 도끼와 동아줄, 쇠갈고리 등이 지급되었지만 현재의 소방관들에게는 거기에 각종 소방장비와 신형 왓슨 양수기까지 추가되었다.

꿀꺽꿀꺽.

그때 소방관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한껏 물을 들이키더니 혼잣말했다.

“하늘도 땅도 바짝 말랐군. 숨 쉴 때마다 혀와 목구멍까지 바싹 마르는 기분이야!”

잠시 후, 소방관 우두머리는 다시 목이 쉬도록 외쳤다.

“불의 3요소를 항상 머리에 떠올리면서 일해! 각자 ‘연료! 열! 공기!’ 말이다. 당장 최선은 불에 탈 연료를 미리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화재차단구역을 사수한다. 한양처럼 생각하면서 엉성하게 일하면 혼쭐이 날 것이야! 의용소방관과 시민군도 함께 보고 있다. 모두 힘을 내라!”

...

자정 무렵, 서울 어느 곳.

히이잉.

수천이 넘어 보이는 인마(人馬)가 두 눈을 빛내며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나직하게 물었다.

“밥은 배불리 잘 먹었느냐?”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수천 마리의 말들이 내는 거친 숨소리가 간혹 들려올 뿐이었다. 

누군가는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아마도 침묵이 긍정의 답변인 듯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군에는 '천일양병 일일용병(千日養兵 一日用兵)'이란 금언이 있다. 하루 써먹기 위해 천 날 동안 훈련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강한 군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일반 병사들도 그리 어려운데... 그 중에 기병은 더 더욱 그렇다.”

푸릉.

그는 잠시 말의 목을 쓰다듬고는 가슴 속 깊이 담아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나는 조선 무과시험에 입격해 관직에 나서면서 푸른 꿈을 꾸었다! 저 너른 만주를 마음껏 달려보겠다는 꿈 말이다. 그런데 바다 건너 더 넓은 땅, 더 많은 세상이 있었다. 또 총과 대포가 갈수록 빛을 발해, 기병의 쓰임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챙!

한국 기병의 제식 칼을 빼어든 그가 다시 말했다.

“몇몇 아둔한 자들은 아예 기병을 없애자고 극언을 퍼부었지. 돈이 많이 드는데다가, 이젠 총과 대포가 충분히 있으니 필요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기병을 아끼셨다. 분에 넘치도록 지원해 주셨지.”

그는 칼을 들어 적군이 위치한 진을 가리켰다.

“정예군이 원정을 떠난 지금, 또 기동함대의 생사가 불명한 상황이다. 그래, 바로 오늘이 우리가 쓰일 하루다. 오늘 단 하루를 위해 우리는 천일동안 칼을 갈았다. 오늘 새벽, 마음껏 달리자꾸나!”

수천 기병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불꽃이 어둠을 가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기병대장은 칼을 높이 들고 외쳤다. 

“전진하라! 저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라! 적에게 죽음을! 대한의 후예들이여, 돌격!”

와아아.

두두두.

...

자정 무렵.

연일 맑은 날씨에 서울 밤하늘의 별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그 중 한국 국기에 새겨진 남십자성이 또렷이 그 자태를 자랑했다.

“폐하! 곧 자정입니다.”

한 시간 전부터 가장 높은 망루에 올라 적 진영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곧 자정’이라는 비서관의 보고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깃발을 주시했다.

펄럭.

역시, 바람의 방향은 바다를 향했다. 낮에 부는 해풍에 비해선 미약하지만 말이다. 서울 항구는 해안이기에 해륙풍의 영향권이었다.

나는 문득 삼국지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혹시 제갈공명이 예언했던 동남풍도 이와 비슷할까?’

과거 조조의 침략을 분쇄한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결국 황개의 사항계와 연환계, 또 주유의 화공계였다.

그러나 동남풍이 없었다면, 적벽대전의 결과는 사뭇 달랐으리라.

‘아마 동정호 근처의 계절풍이겠지... 지금도 때에 따라 부는 바람.’

나는 해륙풍은 물론이고, 편서풍과 무역풍 등 다양한 바람을 소개하고 가르쳤었다. 모두가 경탄했고 나의 가르침을 따랐다. 물론 조금만 항해를 하다보면 결국 알게 될 일이었지만, 미리 알고 대비한다는 것은 그 차원이 달랐다.

당시 나는 초보 무역상단주였고 박연은 일개 선원이었다.

- 혹시 단주님께서는 옥황상제님이십니까?

- 글쎄, 그대의 눈엔 그리 보이나?

- ...

- ...

그때 박연은 본인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꺼렸었다. 또한 싸움에서는 냉혹하고 잔인한 성격, 평소 말이 없고 차가운 심성을 유지한 박연이었다.

처음 박연은 나에게도 차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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