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함 산타 테레사 선실.
“...수송선 2척이 침몰하고 다른 7척도 항해가 불가능할 만큼 크게 손상됐습니다. 수리에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전열함 1척이 침몰하고, 돌리 호와 도너 함장이 실종...”
오켄도는 부관의 보고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고에 따르면, 적 함대와 특공대는 완전히 격멸되었다. 그런데 아군 피해상황과 나중을 생각해 보면, 기쁘기는커녕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게 되면... 늦어도 너무 늦어. 적의 의표를 찌르기는커녕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준 셈이다. 이를 어찌해야... 곧 식량도 떨어질 것인데...’
오켄도는 올리바레스 공작의 당부를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 사령관... 그럼 하나만 약속해 주시오! 꼭 이기고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만약에... 혹시라도 불리한 상황이라면... 가능한 많은 병력을 데리고 귀환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맨 앞에 서야 할 이유
1930년 10월 1일, 호주 서울.
서울 광장 한복판.
광장의 연단에서는 한 연사가 웅변 중이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는 쟁기를 들었던 손에 총과 칼을 들어야 합니다. 그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섭니다. 우리의 자유, 생명과 재산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든, 어떤 곳에서 왔든, 모두가 자신의 고향과 가족, 자유,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며 분연히 떨쳐 일어난 생활인이고 자유인입니다. 저는 죽을 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입니다. 다만 나이를 헛먹지 않았는지 이 모든 것에 공짜가 없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자명한 이치를 잊는다면, 자유도! 생명도! 재산도!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스페인! 저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호주와 서울에서 싸울 것입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시민여러분! 후대를 생각하십시오! 만약 한국과 조선이 앞으로 수백 년, 아니 천년 그 이상을 이어간다면... 후대의 자손들은 우리가 여기에 선, 바로 지금을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세! 만세! 대한(大韓)만세!”
짝짝.
와아
“만세! 만세! 대한(大韓)만세!”
광장의 군중들은 연사의 만세 삼창을 따라하며 다시금 전의를 다졌다. 지금 서울, 아니 호주 전역은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있었다.
시민들의 사기만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
“후우!”
한고립은 왼쪽 팔꿈치에 연결된 금속제 의수(義手)를 ‘딸깍’ 소리 나게 시험해보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북아메리카 서부전쟁에서 왼팔을 잃고 나서 생긴 버릇이었다.
과거 송시열 형제에게 ‘내 실력에 팔 한 짝 없다고 생채기도 나지 않아! 왼팔이 없으니까 오히려 시원하군.’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그때도 뒤로 돌아서서는 정말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무인에게 한 팔이란... 당시 끔찍한 상실감에 몸서리를 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에서 너무나도 서럽고 안타까웠다.
- 하하! 전(前)호위대장님께서는 이제 사관학교 교관으로 가셔도 되겠습니다...
- 한형께서는 이만 쉬시는 것이...
- 앞으로의 전장은 포병과 총병이 주축이니...
- 크흠, 자네는 후방에 배속될 것이네.
뿌드득.
한고립은 이를 갈았다.
‘흥! 조선의 호랑이 한고립에게 쉬라니? 뭐, 후방이라고? 어림도 없지. 차라리 날 죽여라! 내 반드시...’
그때였다.
똑똑.
“한 형! 안에 계십니까?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안 돼! 잠깐만 기다...”
벌컥.
우당탕 쿵쾅.
“...”
송시열이 들어간 방 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한고립은, 미처 치우지 못한 총을 들고는 멋쩍게 웃고 있었다.
...
잠시 후.
쪼르르.
송시열은 찻잔을 들어 그 향을 즐겼다. 그때 한고립이 잠시도 못 참고, 되는대로 막 둘러대기 시작했다.
“나 한고립이야 한고립! 칼이나 총은 다 무기야, 다 하나라고. 만류귀종이라는 말 알아? 결국 칼 잘 쓰는 사람이 총도 잘 쓴다니까!”
“누가 뭐라 그랬습니까?”
“그, 그렇지? 하하...”
한고립은 찔끔했다.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듯, 유리알처럼 투명한 송시열의 눈빛에 그저 압도되고 말았다.
송시열은 평소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형께 온 것은 용건이 있어섭니다.”
...
다음 날, 왕궁 집무실.
송시열은 당돌하게도 한고립이라는 비선을 통해 내게 상소문(?)을 올렸다. 나는 송시열의 상소문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탁!
“종군(從軍)을 허락해 달라고 했느냐?”
“네 폐하! 그렇사옵니다.”
법에 의해 진즉 사라진 ‘상소문’이었다.
이제는 헌법과 권리장전에 명시된 대로, 국민청원이라고 해서 정부, 의회와 법원 등에 자유로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송시열은, 아직 조선 사대부 물이 다 빠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짐짓 미간을 좁히곤 엄히 말했다.
“지금은 전시상태이고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또한 국왕의 자리는 그리 한가하지 않아.”
사실 너무 바빴다. 하지만 그의 상소문은 나를 움직였다.
송시열은 내게 본인의 종군을 청하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이는 송시열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5월, 능양군(인조)의 맏아들 이왕(작가 주 : 원래 역사 소현세자) 등 여러 명이 시민군에 자원입대를 신청했으나 격론 끝에 반려했었다.
다시 말해, 조선 왕실 종친과 사대부들이 그 반려대상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지난 6월 능양군의 역적모의(?) 사건까지 있지 않았는가?
나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고심했다.
그들은 인조(능양군)반정 이후, 내가 강제로 끌고 온 종친과 사대부들이었다. 조선을 그들과 분리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강행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의 권력은 한줌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었다. 또한 나는 나와 조선왕실의 관계까지 전면 부인했다.
능양군의 역적모의 사건이 없었다면 굳이 조선왕실과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왕위 계승의 문제로 결국 부인했을 것이지만.
또한 언젠가는... 호주 사회에서 ‘겉도는’ 종친과 사대부들을 끌어안아야했다.
현재 호주 국민 대부분은 조선의 노비, 양민, 상인 등 중인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종친과 사대부들을 백안시했다. 심지어 몇몇 폭행사건들도 있었다.
나는 다시 곰곰이 생각했다.
‘음, 능양군과 흥안군은 구아노(인광석, 남태평양 나우루섬)를 채취하느라 바쁘겠군. 그래, 반역모의 당사자가 아닌 자들이야 이제 풀어줘도 될 것이다. 적에게도 관용을 베푸는 마당에... 하물며 그들은 자국민이다... 한국이 개방성과 관용정신을 기치로 아메리카 연합회의를 이끄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니까. 만약 건국왕인 내가 풀어주지 않으면... 차후 누구라도 큰 부담이 되겠지. 송시열, 아주 영악하군. 영악해!’
그때였다.
“폐하께서 제 종군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송시열은 다시 이 말만을 마치고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지금은 전시,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할 때다. 이왕 풀어줄 것이라면 어린아이 손이라도 필요한 지금이 좋겠군. 나중에 그림도 잘 나오겠어.’
나는 결국 쓰게 웃으며 허락했다.
물론 분노한 척 화도 내고 말이다.
...
한밤중.
나의 고심은 정말 끊이지 않았다.
‘급조된 함대와 시민군으로는 결정적 한방이 부족해... 배든 사람이든 숫자는 차고 넘친다... 그저 스페인 정예군과 무적함대를 돌파할 힘이 모자랄 뿐.’
지상에서는 서울의 요새화, 또 충분한 대포와 기병을 믿었다. 반면 해상에서는 희망봉 기동함대가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지금 싸워도 이길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군의 드높은 사기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솔직히 시민군의 사기는 벌써 위험수위(?)를 한참 넘어섰다. 만약 내가 사관학교를 졸업한 직업군인이 아니었다면 마냥 기뻐했을 것이다.
시민군은 정예군과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드높은 사기로 적을 깨부술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러나 어떤 사소한 계기로, 그 사기가 무너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패배로 귀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류 역사가 증명해 왔다.
아마 스페인에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지휘관이 있다면, 아니 그 누구라도 단번에 알아채리라!
‘결국 내가 도망칠 기회는 없다. 시민군에게 사기의 구심점은 결국 나니까...’
나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로마군 정예 3개 군단을 통째로 잃고서 ‘바루스, 내 군단을 돌려다오!’라고 절규했던 이유를 말이다.
생도시절, 전쟁사 교관의 말이 또렷이 기억났다.
[... 사관생도 여러분!
당시 역사가인 벨레이우스는 “거의 마지막 병사까지 마치 가축을 도살하는 것처럼 잔인하게 적에게 전멸을 당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참패 소식을 들은 아우구스투스는 여러 달 동안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았고 머리를 문설주에 몇 번이고 쥐어박으면서 이렇게 절규했다고 합니다.
“바루스여! 바루스여! 내 군단을 돌려다오!”
이 전투 결과, 로마는 엘베강 서쪽의 게르마니아 공략을 단념했고, 로마의 대(對)게르만 정책은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바루스라는 단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 잘못된 성격 때문에 자신은 물론 부대 전체가 몰락의 길로 갔을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까지도 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리더의 성격은 아주 중요한 것이죠!
아무리 정예라고 해도 지휘관이 오만하고 조급하다면... 물론 역사는 바루스라는 지휘관의 오만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겁니다. 최종적인 지휘관이자 리더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죠! 결국 바루스를 탓하는 듯 말했지만, 사실은 자책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