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내려놔, 호세! 이건 스페인 제국의 전함이지 매음굴이 아니다.”
몇몇 항해사관들은 선원들을 엄격히 통제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대다수는 선원들의 고달픔을 잘 알기에 적당히 눈감아주고 있었다.
“이놈들아 좀 적당히 즐겨!”
선원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좁은 섬을 활보했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고 해도, 좁은 전함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들의 관심사는 별 것 없었다.
“빌어먹을 쉽비스킷(Ship Biscuit)에 질렸어. 정말 토할 거 같아.”
“나도, 한국 놈들은 맛있는 병조림을 먹는다고 하는데 우리도 줬으면 좋겠다.”
“난 한국산 시계를 얻어 올 거야. 그걸로 마리아나와 결혼할거니까.”
“임마! 시계를 가진 사람이면 최소 고위 장교나 큰 부자일거야. 우리가 만나볼 일이나 있을까?”
“무슨 소리야? 서울에 상륙하면 마음껏 약탈하게 해준다잖아! 우린 모두 부자가 될 거야!”
“...”
“...”
웅성웅성.
...
기함 산타 테레사.
“방금 식수 보급을 완료했습니다. 식량은 별로 없었고, 소량의 과일과 말린 물고기를 물물 교환했습니다.”
사령관 안토니오 오켄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희망봉과 아프리카 동부해안에서 적절한 보급을 기대할 수 있었다. 또한 인도 무굴제국과 아체 술탄국 등에서도 적당한 대가로 식량과 식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 동부해안 항구들은 식량이 없거나 항구 자체가 폐쇄됐다. 또 무굴제국과 아체 술탄국은 스페인 함대의 입항과 정박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무굴제국과 아체술탄국의 한적한 항구를 약탈해서 식량과 식수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스페인 고위 귀족이자 함대 사령관인 그에겐 크나큰 불명예였다.
‘나중에 귀국하면서 정중히 사과하고 충분히 보상 해야겠어.’
오켄도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곤 부관에게 지시했다.
“보급이 끝나는 대로 곧 출항해!”
...
이틀 후, 같은 섬.
승리호.
“함장님! 이틀 전에 여길 떠났답니다.”
뿌드득.
승리호 고길동 함장은 수하의 보고에 이를 갈았다.
“흐흐흐, 드디어 따라 잡았군. 장루원, 모두 돛을 올려라! 네 놈들 손수건, 아니 속옷이라도 올려!”
“네 알겠습니다!”
“어서 서둘러! 예상되는 적 항로는 남남동이다.”
“알겠습니다! 이 굼벵이들아! 엉덩이에 불나기 싫으면 빨리 움직여.”
탕탕!
쉬이익.
동시에 붉은 신호탄 두 발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주변 해역을 수색하던 한국 기동함대도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무 척이 넘었던 함대가... 불과 여섯 척만 살아남았다.
고길동은 전의를 다지며 외쳤다.
“조국이 우리의 귀환을 기다린다! 우리가 적을 먼저 발견해야 한다. 하루 먼저,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먼저 발견하고 이를 알려야 해. 그만큼 조국의 희생이 덜어질 터! 귀관들의 노고에 조국의 운명이 달려있다. 승리호! 전속력으로!”
“승리! 승리! 승리!”
선원들의 우렁찬 구호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
그로부터 열흘 후, 호주 서해안 어느 곳.
한국 기동함대의 정예 프리깃함, 승리호의 시야에 스페인 무적함대 후미가 포착되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무적함대도 승리호를 시야에 담았다.
고길동 함장은 망원경을 들어 가장 뒤에 선 적함을 노려보았다. 그때 스페인 돌리호 함장 ‘도너’ 역시 승리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동시에 느꼈다.
잠시 후, 승리호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우현으로 과감하게 돌진했다. 그것도 전속력, 포격의 사정거리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채로...
고통스러운 결정
1630년 9월 15일, 호주 서울.
왕궁 집무실.
“뭐라? 나의 기동함대가...”
털썩.
나는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폐, 폐하! 뭣들 하는가? 어서 폐하를 뫼셔라!”
탁탁.
고대하던 희망봉 연락선은 오늘에서야 충격적인 비보를 전했다. 희망봉에 배치했던 기동함대 23척이, 불과 6척만 남기고 장렬히 산화되었다는...
비록 허리케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건국 이래 최악의 참사였다.
호주 전역은 커다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나는 장병들의 희생을 애도함과 동시에, 다가올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도록 명령했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준비해야 하니까.
스페인 무적함대가 서울에 도착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것도 아무런 방해 없이...
...
해질녘.
탁.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기존 전략을 재검토했다.
기존 전략은 아주 단순명료했다.
그것은 바다에서 스페인의 보급로를 끊음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대전략이었다. 거기에 세부 작전들도 대전략에 맞춰 치밀하게 세워졌다.
첫 번째는 적이 희망봉을 점령하려는 경우를 상정했다. 그래서 희망봉을 모루로, 기동함대를 망치로 해서 포위·섬멸한다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는 적이 희망봉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를 상정했다. 그래서 기동함대를 이용해 적의 순항을 방해하고 보급로를 끊는 등 끊임없이 괴롭힌다는 계획이었다.
내 예상은 이랬었다.
첫 번째 계획으로는 희망봉과 이광상 사령관을 안시성과 양만춘 장군으로 만드는 것, 두 번째 계획으로는 적을 서울까지 끌어들여 옛 살수대첩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었다.
먼저 적을 지치게 만들고, 청야전술(淸野戰術)과 함께 극도로 길어진 보급로를 끊는다면 승리는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다.
이처럼 대전략을 위해 대서양의 인후부에 해당하는 희망봉을 요새화하고, 강력한 기동함대를 배치했었다. 그런데 모두 대실패로 끝났다.
기동함대의 손실은 정말 뼈아팠다.
적의 전략적 기동을 방해하고 강제할 수 있는 핵심전력이 오직 기동함대였기 때문이다. 지금 스페인 함대는 아무런 방해 없이, 호호탕탕 서울로 진격하고 있으리라!
나는 급변한 최악의 상황에 발맞춰, 새로운 작전수립에 골몰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큰 희생이 요구되는 계획이었다.
호주 시민군은 드높은 사기를 자랑하나 단련된 정예병은 아니었다. 또 스페인 함대의 기동을 제한할 수 있는 함대가 없다면, 적의 기동에 따라 수동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아예 두 팔을 묶어놓고 적과 싸우는 형국이었다.
나는 탄식했다.
‘나는 정말 최악의 암군이다. 내 군대, 시민들을 벌거벗긴 채 사지로 들이밀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열흘, 아니 단 일주일만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늘이여! 그들을, 그리고 한국과 조선을 보우하소서!’
쓱싹.
나는 밤늦게까지 작전계획을 고치고 또 고쳤다.
다음 날, 스쿠너와 클리퍼 등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척후선 수십 척을 띄웠다.
그들의 임무는 스페인 함대를 발견함과 동시에, 스페인 함대를 추격중인 잔존 기동함대 6척에 새로운 작전명령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호주 전역에서 모든 무장상선과 여객선 등을 징발하기 시작했다. 또한 어부나 나룻배 사공과 같이 조금이라도 물과 관련 있는 경험을 한 사람들을 모았다.
서울 항은 마치 거대한 조선소가 된 듯, 배가 모여들고 순식간에 개조되었다. 어떤 배는 군함으로, 또 다른 배는 수송선으로 말이다.
시민군은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모두 일어나라! 시민의 생명과 재산은 우리 스스로 지킨다! 나가 싸우자!”
내 생각과 달리 호주 전역은 뜨거운 용광로가 되었다.
**
1630년 9월 30일, 호주 남해안.
스페인 무적함대.
“이 쥐새끼들이...”
기함 산타 테레사 선실은 침묵에 빠졌다.
스페인 세비야를 출발해 호주 서해안까지는 아무런 방해 없이 순항했었다. 그런데 지난 9월 22일, 최초로 한국 전함과 조우한 이래 잠시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 쥐새끼들은 겨우 6척이었다.
사자의 한입꺼리 식사도 되지 못할...
처음엔 헛된 만용을 비웃으며 손쉽게 격파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웬걸? 그냥 단순한 쥐새끼들이 아니었다.
수시로 함대 전열을 흐트러뜨리며 순항을 방해했고, 간혹 대열을 이탈한 수송선단을 공격했다.
‘희망봉에 함대가 없어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나타나다니? 6척은 너무 적다... 혹시 다른 놈들이 더 있는 거 아닐까?’
사령관 안토니오 오켄도는 갈수록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호주 서울 항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전력을 기울여 격파하고 싶었지만 적함의 빠른 속도가 문제였다. 게다가 수송선단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여러 번의 매복 끝에 적함 3척을 수장시켰지만, 무적함대도 1척이 침몰되고 1척이 크게 파손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