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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요새, 페루 부왕의 집무실.
발도르 후작이 급히 보고했다.
“한국이 포토시 일대를 장악했다고 알려왔습니다. 혼전양상에서 간신히 이긴 터라 피해가 무척 심하다고 합니다. 제가 넌지시 물어보니 잉카 원주민들까지 수만을 동원했지만 불과 수천이 남았을 뿐이랍니다.”
피사로 후작은 오랜만의 낭보에 크게 기뻤지만 겉으론 담담한 척 말했다.
“그래, 포토시 주둔군은 7천이 넘는 정예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동맹의 피해가 크다니 걱정이구나. 심심한 위로를 전하도록 해! 참, 본토 지원군의 상황은 어떤가?”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본토 지원군은 이미 에콰도르 남단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리마까지... 빠르면 열흘 거립니다. 명령하신대로 사람들은 모두 피난시켰고, 먹을 것도 전부 치웠습니다. 우물과 강에도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시체와 독을 뿌렸습니다.”
“흠... 그래봤자 열흘 거리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또 할 말이 있나?”
발도르 후작은 잠시 우물쭈물 하다가 한국 전령의 말을 전했다.
“그...그게 한국 측에서 자신들도 힘껏 돕겠다고 합니다. 2천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벌써 리마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피사로 후작은 잠시 생각하다 시원하게 대답했다.
“하하! 한국이 다급하구나. 포토시를 장악했어도 병력이 죄다 꺾였으니 전후처리가 걱정이겠지. 내가 허락한다고 전해라! 지금은 어린애 손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니까. 그리고 가능하면 포토시에서 노획한 무기들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들을 어디에 배치할까요?”
피사로 후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흠... 좋다. 우선 배치 이전에 한국이 포토시 주둔군을 크게 이겼다고 소문을 내라! 그래야 원주민 사병들이 승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한국은 원주민 부대의 선두에 배치해.”
“가...각하! 원주민 부대는...”
“흥! 당장 한국 해군을 제외하곤 추가 지원군도 없다! 내가 포토시 은광을 주겠다고 제안했는데도 말이야. 사정이 이렇다면 승전 후에 그 과실을 나눠 줄 의리 같은 건 당연히 없지. 우리 정예부대는 엔코멘데로 직속부대 6천과 크리욜부대 3천뿐이다. 기존 계획에 변동은 없어. 원주민 부대는 한국을 추가해서, 함께 유인용으로 쓴다.”
그러나 며칠 후, 피사로 후작의 생각과 달리 한국의 본토 지원군이 대거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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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3월 13일, 페루 리마 항.
“어이 조심해! 내려간다.”
끼익.
쿵.
척척.
한국 본토 기동함대와 병력 수송함에서 병력과 물자들이 끊임없이 하역되고 있었다. 병력은 붉은 코트가 특징인 국왕 친위대와 정예여단 8천으로, 2개 기병중대와 4개 포병 중대가 포함된 제병합동부대였다.
리마 전역은 한국의 지원군이 도착하자마자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당장 피사로 후작부터 모든 엔코멘데로들이 직접 항구에 나와 열렬히 환영했다. 환영대열엔 한국 정보국 이만복 과장과 잉굴다이도 참석했다.
시끌벅적했던 환영식이 끝난 후, 한국군은 리마 외곽 들판에 단상과 함께 간소한 야외 연회장을 짓기 시작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피사로 후작을 비롯한 엔코멘데로들이 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한국 공병대는 특히 야외 연회장을 정성들여 만들었다. 국왕의 특별명령에 따라 서울에서 직접 공수한 자재를 마음껏 사용했다. 그 중에 특이한 것은 높이 2미터가 넘는 항아리들이었다. 서울에서는 배설물을 모으는 용도로 사용되는...
...
리마 요새, 페루 부왕의 집무실.
발도르 후작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이건 아닙니다. 아니 절대로 안 됩니다. 유럽, 아니 프랑스라면 모를까! 한국 왕에게 충성서약이라니요?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옳소!”
엔코멘데로들은 한 목소리로 찬성했다. 하지만 피사로 후작만은 빙긋 웃으며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엔코멘데로들이 오히려 의아해했다. 결국 인내심이 적은 발도르 후작이 질문했다.
“어찌 그리 웃으십니까? 저희는 속이 타서 죽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스페인과 적이 되었다 한들... 우리 모두는 구교도입니다. 한국에 신종하겠다고 한 것은 그냥 말장난이었단 말입니다. 만약 이 일이 유럽에 퍼지기라도 하면...”
피사로 후작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그 소문은 절대 퍼지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한국에 충성서약을 하고 나면 이번 전투는 오롯이 한국의 책임이다. 우린 뒤로 물러서서 전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뒤를 치면 된다. 이것이야말로 총 한방으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것이 아니냐? 크하핫!”
...
리마 인근, 한국군 야영지.
한국군 사령관 막사.
“죄인 이만복은 함부로 적국과의 전쟁을 연 죄로 군법에 따라 총살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폐하께서 지극한 은혜를 베풀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백의종군을 명하셨다. 이를 충실히 따르라!”
박연 사령관은 성정 자체가 냉혹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과거 무역상단 시절부터 항상 전투에 앞장서서 나섰다. 그리고 전투 중이나 끝난 후에도 적에 대한 처분이 단호하다 못해 잔혹하기로 말이 많았다.
오죽하면 국왕까지 나서서 ‘박연 함장은 그 성정을 좀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했겠는가!
하지만 박연 사령관의 용맹과 작전역량은 조선부왕이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정묘호란 당시 의주전투에서 단독으로 지휘를 맡았었다. 그 후에는 호주 본토의 지상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박연은 이만복을 처분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분명 무역상단 시절부터 오랜 안면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만복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명을 받들었다.
“죄인 이만복! 폐하의 지극한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흥! 내가 그대를 지켜보겠다. 내일은 충성서약식과 더불어 조촐한 환영연회가 있을 것이다. 그대도 준비할 것이 있으니 거기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이만 물러가라.”
“네 사령관님! 감사합니다!”
박연은 이만복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갈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리마 외곽.
“모두 단상 아래에 서시오!”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충성서약식장에 마련된 자리에 피사로 후작을 비롯한 엔코멘데로들이 나란히 섰다. 역대에 없었던 큰 행사였으나 이상하게도 일반참석자들이 전혀 없었다.
피사로 후작은 충성서약식에 일반참석자의 참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각자의 군인들도 마찬가지로 하자고 요구했다. 박연 사령관은 흔쾌히 동의했다.
피사로 후작과 엔코멘데로들은 박연 사령관의 동의에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당장 충성서약식 소문이 나더라도 얼마든지 아니라고 둘러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가장 걱정하던 안전문제도 해결된 셈이었다. 거기에 충성서약식 장소는 넓은 평지여서 군대를 숨길 수 없었다.
먼저 충성서약식의 참석자는 한국 외교부장이 국왕을 대신해 단상 위에 섰다. 그 다음은 피사로 후작 등 엔코멘데로, 박연 사령관과 소수의 한국군악대, 이만복과 잉굴다이 뿐이었다.
박연 사령관 등은 단상에서 조금 떨어져서, 마치 남의 일인 듯 충성서약식의 진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충성서약식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끝이 났다.
한국 외교부장을 선두로 엔코멘데로들이 야외 연회장으로 입장했다. 연회장의 상석에는 외교부장, 박연 사령관, 피사로 후작과 발도르 후작, 이만복과 잉굴다이 등 여섯 명만이 자리했다. 나머지는 모두 엔코멘데로들의 자리였다.
한국 외교부장이 축배 제의를 했다.
“오늘부터 그대들은 아메리카의 제후임과 동시에 폐하의 신하요! 본 외교부장은 국왕폐하를 대신해 그대들을 환영합니다. 한국과 아메리카의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짝짝짝.
웅성웅성.
의미 없는 덕담이 곳곳에서 이어졌고 사방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의 얼굴에서 지루함이 드러날 즈음, 박연 사령관이 분노의 일성을 내질렀다.
“흥, 어림도 없는 소리요! 스페인과의 전투는 전적으로 제가 지휘합니다. 그대들은 이번 작전에서 아무런 명령권이 없소. 저는 폐하께 작전의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따라서 제 명을 거부하는 것은 불충이요!”
좌중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박연 사령관은 피사로 후작의 작전제안, 아니 실질적으로는 작전통보를 단숨에 거절한 것이었다. 피사로 후작은 한국군이 정면에서 맞서 싸우고 자신들은 예비대로 머물겠다고 통보했던 것이다.
피사로 후작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다. 연회장의 엔코멘데로들도 사령관을 노려보며 격앙했다. 피사로 후작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말했다.
“하하! 사령관께서는 이 아메리카의 사정을 잘 모르셔서 그러시는군요. 저희 의견을 따르지 않으시겠다면 연회는 이만 끝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피사로 후작의 말이 끝나자 엔코멘데로들도 ‘옳소!’를 외치며 함께 일어났다.
그때 박연 사령관은 오른 발로 상석 바닥을 힘차게 내리쳤다. 또 그와 동시에 칼을 뽑으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콰쾅.
우지끈.
으아악.
작지만 섬뜩한 폭발음과 함께 야외 연회장 바닥이 무너졌다.
한국 공병대가 공들여 설치한 바닥은 가느다란 철근으로 맨 아래를 받치고 그 위에 얇은 벽돌을 시공했다. 철근은 아주 얇은데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톱질이 되어 아주 작은 충격에도 부러지게 만들어놓았다.
결국 연회장에 설치한 소형 폭발에 상석 부분을 제외한 연회장 바닥이 완전히 무너졌다. 불과 수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야외 연회장 바닥 아래에는 커다란 항아리에 온갖 더러운 똥물이 가득 차 있었다.
엔코멘데로들은 똥물에 빠져서 괴로워했다.
어푸어푸.
“사람 살려!”
그때 박연 사령관이 피사로 후작의 목을 칼로 후려쳤다. 피사로 후작은 혼비백산한 상태여서 무기력하게 당했다.
싸악.
끄윽.
박연 사령관은 다시 명령했다.
“이놈들을 모두 정리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군악대, 요리사 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피사로 후작은 야외 연회장에서는 엔코멘데로들의 숫자만으로도 박연 일행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패착이었다.
군악대와 요리사들은 불과 30명 남짓이었지만 한국군 정예였다. 그들은 아직 똥통에 빠지지 않은 엔코멘데로 여러 명을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쓰는 자들을 장대로 밀어서 다시 떨어뜨렸다.
잠시 후.
피사로 후작과 엔코멘데로들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
박연 사령관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그날 밤으로 리마 요새를 포위한 다음, 엔코멘데로 직속부대 6천과 크리욜 3천을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 대부분이 원주민 출신이고 크리욜들도 엔코멘데로에게 큰 충성심이 없기에 가능했다.
또한 급조된 원주민 부대들은 달리 회유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이 반가운 소식은 곧바로 페루와 쿠스코 등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알려졌다.
아메리카 연합회의
1630년 3월 17일, 호주 서울.
내각 대회의실.
“북아메리카 서부총독부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한국과 조선인 40만, 북아메리카 인디언 52만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내후년이면 인구 구성비가 역전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반면 북아메리카 동부총독부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유럽계 한국인 1만 8천, 뉴암스테르담과 로드아일랜드 지역에 유럽계 한국인 5천 등이고 북아메리카 인디언 숫자는 미확인입니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