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시간, 포토시 임시방벽 위.
“하하하! 이제 끝났다.”
잉굴다이는 포토시 주둔군 병사들이 임시방벽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혹시라도 적이 대포의 사각지대에서 거리만 유지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는데... 그 걱정이 사라졌다.
“오이라! 적이 방벽에 붙으면 일제히 화염병을 던져라. 그리고 적이 화염병에 놀라 당황할 때를 노려 일제사격을 가한다. 그동안 좀이 쑤셨겠지? 흐흐, 잘들 참았다.”
“네! 한, 알겠습니다!”
잠시 후, 임시방벽 주위는 포토시 주둔군 병사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화르르.
으아악.
탕탕.
이곳이야말로 아수라장.
오직 높이 울리는 비명과 고함만이 죽은 자와 산자를 구분하는 유일한 잣대였다. 누가 누구를 돌본다거나 생각할 여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처참함은 사람의 상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이곳에서 웃는 자는 미친 자였고, 우는 자는 살아남은 자였다.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춘복은 입술을 질끈 문 채, 전장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체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잉굴다이가 그의 얼굴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춰 위로했다.
“우리 여진족은 항상 생과 사를 가르는 삶을 살아왔다. 만주의 척박한 환경에서는 약탈하지 않으면 죽으니까. 또 약탈당해도 죽기 십상이다. 이렇게 생과 사는...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아. 그리고 죽음은 숙명이지. 혹시 저들에게 얕은 동정심을 가진 것이라면 그만두어라. 그럴수록 저들의 목숨 값도 하찮아질 테니! 그건 모욕이야. 그러니 저들을 전사의 예로 보내줘. 여진의 전사도 들판에 버려져 늑대 먹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
춘복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빛 잃은 눈으로 가만히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잉굴다이의 시선은 다시 전장을 향했다. 그리고 오이라에게 신호연을 올리도록 명령했다.
“오이라! 드디어 때가 됐다. 신호연을 올려라!”
“네 한!”
펑.
슈우욱.
임시방벽 위에서는 오이라가 피운 하얀 연기가 불꽃과 함께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협곡 바깥쪽과 포토시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또한 협곡 양 옆에 숨어있던 자들이 서로 눈짓하며 이동했다.
...
한밤중, 임시방벽 아래.
“와아아!”
사방이 포위된 상태, 거기에 압도적인 병력차이까지...
세계최강 스페인 테르시오도 어쩔 수 없었다.
포토시 주둔군 병사들이 하나, 둘 죽어갔다. 쌓이는 시신들 사이에서 사령관의 부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자신의 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부관은 지금이라도 주저앉을 듯했지만 오직 하나만을 노려보았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외눈에 시퍼런 광망이 줄기줄기 흘렀다. 저것을 치지 않고는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하리라.
그의 시선은 임시방벽 위의 어느 조총 병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곧 부관의 몸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는 사령관이 고통에 헐떡거리고 있었다.
“끄으...”
사령관은 신음을 쥐어짜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부관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고 있었다. 간신히 치켜 뜬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다시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사령관은 조용히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내... 최강의 군대가... 모두 가 버렸군... 모두.”
해질녘부터 시작된 전투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무심한 밤하늘 조각달만이 조용히 이 참상을 비추었다.
이렇게, 포토시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
1630년 2월 21일, 포토시.
늦은 오후, 포토시 총독 관저.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포토시 전투의 승전국과 승전부족 대표들이 모두 모였다.
어제 전투의 핵심 당사자들은 한국, 잉굴다이,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 포토시 거주 원주민은 물론이고 칠레 방면의 마푸체족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마땅히 승전의 과실을 나눠야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한국 정보국 이만복 과장이었다.
“이제 포토시 남쪽으로는 스페인의 세력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 다음은 쿠스코 지역입니다. 기존의 약속대로 잉카 4대부족은 쿠스코 인근지역,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은 포토시 인근지역, 마푸체족도 각자의 영역을 서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또한 포토시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잉굴다이 한의 영역은 페루 부왕령 직할지와 인접한 영역을 인정하는 겁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으십니까?”
웅성웅성.
잉굴다이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고,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푸체족의 롱코(우두머리) 체퉁카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우리 마푸체족은 잉카제국의 침입 전에는 아주 평화롭게 살았소. 그 다음 스페인도 마찬가지였으나 우릴 굴복시키진 못했지.”
체퉁카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스페인을 완전히 몰아내고 나서 제2의 잉카제국이 들어설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요. 스페인 이전에 잉카제국은 창카족,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 등 여러 부족들을 강제로 굴복시켰소.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있어선 안 됩니다!”
케추아족 족장도 체퉁카의 말에 찬성했다.
“저희 케추아족도 마푸체족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케추아족도 창카족과 잉카제국, 스페인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정말 반대할 이유가 없군요.”
그때 포토시 원주민 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포토시에는 잉카 4대부족과 창카족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포토시만큼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쾅!
그 말이 끝나자마자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이 반발했다. 포토시를 포함한 주변 지역은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포토시 은광은 100년도 전에 케추아족 목동이 발견한 곳이요! 포토시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당연한 것 아니오?”
“아이마라족도 케추아족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어요. 그럼 미타요의 대부분이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이니까 우리 것이 된답니까?”
포토시 원주민 대표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잉굴다이가 재빨리 손을 들며 말했다.
“크흠. 저 잉굴다이가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스페인을 완전히 몰아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끼리 이렇게 싸운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서로 이견이 있다면 천천히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큰 틀에서 합의를 하고 세세한 조건들은 차후에 결정을 하지죠. 조만간 리마에서 큰 전투가 있을 겁니다. 이번 전투처럼 저희 모두가 거기에 참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권리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좌중은 잉굴다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포토시 전투의 최고지휘관은 잉굴다이였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잉굴다이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이만복이 주변 분위기를 감지하고 말을 꺼냈다.
“하하! 역시 잉굴다이 한께서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서 쿠스코로 진격해서 스페인 잔존병력을 일소한 다음, 리마에서 스페인 본토 지원군을 맞아 싸워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권리를 주장할 순 없지요. 당연합니다.”
“...”
“...”
결국 케추아족 족장의 제안대로 포토시의 임시처분이 내려졌다. 여기엔 달리 반대가 없었다.
“우리 케추아족은 포토시 은광을 당분간 한국과 잉굴다이 한께서 공동관리 했으면 합니다. 대신 포토시에서 몰수한 무기와 재산은 포토시 전투의 공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만복은 크게 웃으며 화답했다.
“하하하! 그럼 쿠스코와 리마 진공작전을 논의합시다!”
가장 더러운 죽음
1630년 3월 1일,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
잉카제국의 중심지였던 쿠스코가 되살아났다.
쿠스코는 스페인에 의해 1536년 식민지가 된 후에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오죽하면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마저도 페루 리마에 새로운 수도를 지었을까! 그렇게 거의 1백년 가까이 방치되다시피 했다.
또한 잉카제국의 몇몇 궁궐들까지 스페인 성당과 수녀원을 건설하기 위해 허물어졌다. 그뿐인가! 얼마 전, 포토시 주둔군의 잉카 4대 부족 대학살이 있었고 당연히 쿠스코는 텅 비었었다.
그러나 잉굴다이와 남아메리카 원주민 연합군이 진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소수의 스페인 군대와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그리고 그 자리는 각자 독립을 염원하는 자들이 차지했다.
쿠스코 전역에는 연합군과 잉카 4대 부족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
쿠스코 요새 집무실.
“모두들 수고하셨소! 다음 회의는 내일 오전에 속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웅성웅성.
회의는 끝났지만 한국 정보국 이만복 과장과 잉굴다이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좀 더 논의할 것들이 남아 있었다. 이만복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난 달 24일에 스페인 본토 지원군이 페루 영내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에콰도르에서 리마까지 이르는 전 지역을 싹 비울 모양입니다. 스페인 본토 지원군의 진격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겠지요.”
잉굴다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스페인이 너무 여유를 부리는 듯합니다. 진격을 늦출수록 상대가 준비할 시간이 많아지는데... 아마 넘치는 자신이 있어서겠지요. 그럼 3월 중순 쯤 도착하겠습니까?”
“저도 3월 중순 경이라 생각합니다. 피사로 후작은 리마 인근에서 결전을 준비 중이고 몽둥이라도 들 수 있는 자라면 그게 누구든 모조리 끌어 들였습니다. 크리욜이건 원주민이건... 그래서 3만이 넘는 병력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께서는 어찌 하실 요량이십니까?”
잉굴다이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피사로 후작과 사전에 약속한대로 할 생각입니다. 포토시 주둔군은 우리가 맡고 스페인 본토 지원군은 피사로 후작이 맡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만복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말했다.
“저 역시 피사로 후작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스페인에 패할 경우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사로 후작이 스페인 본토 지원군에 패한다... 만약 그렇다면 리마에서 쿠스코에 이르는 카팍냔을 엄중히 지켜내면 됩니다. 물론 피사로 후작과 스페인 본토 지원군이 공멸하는 것이 가장 상책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리마 인근에서 어부지리를 기대해 볼까요?”
“하하하! 역시 한께서는 저와 생각이 통하시는군요! 그럼 우선 피사로 후작에게는 우리 병력이 포토시 전투에서 크게 꺾였다고 전하겠습니다. 상대의 경계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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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3월 7일, 페루 리마.
리마 요새(레알 펠리페).
페루 부왕령의 수도 리마는 수많은 사람들로 들끓었다.
리마는 칠레 콘셉시온 항에서 멕시코 아카풀코를 연결하는 해로, 칠레에서 에콰도르를 연결하는 육로(카팍냔)의 중심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평소에도 1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려 5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그 중 대부분은 피사로 후작을 비롯한 엔코멘데로들이 거느린 사병들이었다. 피사로 후작은 지난 한 달여 동안 닥치는 대로 사람을 모집했다.
결국 거병 당시 6천이었던 병력은 그 다섯 배인 3만을 넘겼다. 하지만 급조한 병력은 오합지졸이었고, 지급할 무기 또한 부족했다.
게다가 엔코미엔다 대농장의 원주민 노예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그런 엔코미엔다 원주민 노예들과 급히 모집한 원주민 사병들에게는 스페인 본토 지원군을 맞아 목숨을 걸고 싸워야할 이유가 마땅히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피사로 후작이 가장 고심하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