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
졸업생들의 늠름한 열병과 분열을 끝으로 모든 졸업행사가 끝났다. 나는 이대길 소위에게 화환과 계급장을 달아주며 졸업 및 임관을 축하해줬다.
그들은 곧 해군에 배속되어 태평양, 대서양 및 인도양을 누빌 것이다. 과거 내가 해군장교 시절, 한반도 반쪽 바다만을 항해했던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해군사관학교 제10기 졸업생들의 무운장구를 빌었다.
...
덜컹덜컹.
나는 왕궁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때, 내가 바다를 건너지 않았다면 한국의 운명은 과연 어땠을까?
...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은 바다를 주름잡으며 세계를 쥐락펴락했다.
그들은 뛰어난 항해술과 모험정신, 끊임없는 욕망을 통해 식민지를 정복하고 금은보화를 빼앗았다. 그것이 14세기부터 이어져 현재까지 이어진 역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극심한 격차였다.
처음은 해상 항로를 통한 교역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는 점차 신대륙의 식민화, 약탈과 지배 그리고 노예 획득으로 전환되었다. 이처럼 대항해시대는 철저하게 지배자, 정복자의 입장에서 쓰인 역사였다.
현재 신대륙의 대명사는 아메리카였다.
내가 배운 바로는 북아메리카만 해도 조선 전체 면적의 약 100배 정도이고, 호주는 약 35배였다. 처음 호주의 엄청난 국토와 자연환경을 보며 느낀 것은 오직 아쉬움이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왜 아메리카와 호주 개척을 꿈도 꾸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
그러나 지금은 원래 역사와는 완전히 다르다.
목숨을 걸고 태평양을 건너 항해를 하고 개척한 우리들은 호주와 북아메리카 등을 ‘선점’했다. 그 결과 더 넓은 땅에서 정말 풍요롭게 살고 있다. 이제 후손들도 더 이상 협소한 조선 땅에서 아웅다웅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 누구든 호주, 아메리카, 조선을 선택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현재의 풍요로움과 자유를 획득한 근본적 차이는 무엇일까?
예송논쟁 따위로 날을 지새우고, 삼강오륜을 잘 터득하며, 인의예지신을 잘 지킨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는가. 아니면 용감하게 신대륙을 찾아 도전하고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모험을 감행한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는가.
나는 그 답에, 주저 없이 ‘선점’과 ‘용감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
사실 북아메리카의 선점은 유럽에 비해 많이 늦었다. 하지만 스페인과의 밀실협상, 런던조약과 암스테르담조약을 통해 선점의 효과를 얻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어제 수상에게 북아메리카로의 천도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북아메리카의 천도, 그것은 한국이 북아메리카를 영구히 소유하겠다는 엄숙한 선언이었다. 유럽 각국은 잠시 맡겨두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결국 북아메리카 쟁탈전은 전쟁으로 끝날 것이 분명했다.
세계의 역사는 항상 전쟁으로 시작되고 전쟁으로 끝났다.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과연 어느 나라와 맞붙게 될까?
나는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내 예상과 달리 너무도 빨랐다.
새로운 구심점
1630년 1월 첫째 날, 페루 리마 인근 해상.
철썩.
쏴아아.
펄럭.
해질 녘.
승리호 고길동 함장은 망원경을 들어 리마 주변을 세심히 살폈다. 그리고 풍향을 확인했다. 페루 리마 해안은 해안선을 따라 불어오는 항상 불어오는 남동무역풍이 첫 번째, 바다와 육지의 온도차에 따른 국지적 해륙풍이 두 번째였다.
[스페인 리마 적함의 시선을 끌어 1월 7일 정오까지 작전해역으로 유인하라! - 사령관.]
간단히 말해서, 이번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기습적인 리마 항구 진입, 둘째 적함에 함포사격으로 적당히 피해를 준 다음, 마지막으로 해안포대의 대응사격을 피해 남쪽 작전해역으로 도주한다. 물론 적함 3척을 승리호 뒤에 달고서 말이다.
고길동 함장은 이광상 사령관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사령관님! 아예 한꺼번에 들이쳐서 요새를 무력화 시키고 적함을 깨부수면 쉽지 않습니까?
- 안 돼! 적이 네덜란드 사략선의 공격으로 오해함과 동시에 아군 기동함대의 규모를 감춰야 한다. 때문에 반드시 적을 바깥으로 유인해서 처리해야 한다. 고 함장은 콘셉시온에 6척을 투입한 것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콘셉시온은 리마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들킬 염려가 적다. 또 마푸체족이 나서서 모두 정리할 것이니 상관없다. 리마에는 적의 눈이 너무도 많다. 단번에 들이치면 반드시 들통 나고 말 것이야.
- 네 알겠습니다.
- 설령 실패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게! 적의 심기를 흩트리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나 다름없으니... 우리의 최종목표는 해상봉쇄지 적 격파가 아니야...
- ...
- ...
“역시 가장 큰 문제는 해안포대야!”
한참 고심하던 고길동 함장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
리마 요새의 정식 이름은 ‘레알 펠리페’였다.
1537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2년에 걸쳐 직접 건설한 해안요새로 무척 견고했다. 아주 작은 곶을 왼편에 두고, 북서쪽 태평양을 마주보고 있었다. 레알 펠리페의 시야는 태평양 쪽으로 탁 트여 있어 은밀한 접근이 정말 어려웠다.
또한 북쪽에서 리마에 접근할 때는 풍하(風下, 바람을 안는 방향)의 위치를 점유하기에 배의 운용에 무척 불리했다. 거기에 리마 남쪽에 위치한 작전해역으로 배를 돌려 도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국지풍인 해륙풍(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을 이용할 수 있겠지만 강력한 항상풍인 남동무역풍에 쉽사리 희석되고 말았다. 그래도 쾌속 프리깃함인 승리호의 도주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적함보다 아주 빨랐으니까.
사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째 속도가 느린 적함들이 승리호 추격을 포기하고 리마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스페인 군함은 횡범(가로 돛) 위주였기에 풍하(風下, 바람을 안는 방향)의 위치에서 추격하기는 무척 고단했기 때문이다.
둘째 리마 요새의 강력한 해안포대였다. 대낮 시야가 탁 트인 시점에, 그것도 바람을 안고 느린 속도로 리마 항구에 접근한다면, 해안포대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수십 문의 해안포대는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했다.
리마 항에 정박한 적 전함들은 해안포대의 든든한 엄호를 받고 있었다.
...
결국...
“이래서야 야간 기습밖엔 답이 없군. 치고 빠지기 외엔 말이야... 조타수! 배를 돌려라.”
고길동 함장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리고 선실로 내려갔다. 수하들에게 지시할 것들이 많았으니까...
**
다음 날 새벽, 리마 항.
리마 요새(레알 펠리페).
새벽녘, 요새 망루에 위치한 견시수(見視手)가 바다에서 희미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설마하고 눈을 비비며 지켜보다, 깜짝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비상종을 거칠게 두드렸다.
“어어... 해, 해적이다! 네덜란드 반역자다!”
땡땡땡.
땡땡땡.
그러나 이미 늦고 말았다. 반역자들의 배에서 거친 포격이 시작되었다.
쾅쾅.
우지끈.
으아악.
“젠장... 포수들은 즉시 대응사격을 준비해! 어차피 한 두 척일 테니 두려워할 것 없다. 임시부왕께도 금방 쫓아낼 것이니 걱정하실 것 없다고 말씀드려라!”
스페인 장교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
같은 시각, 승리호 갑판.
고길동 함장은 리마 요새의 빠른 대응에 혀를 찼다. 겨우 세 번의 포격을 가했을 뿐인데... 잠시 후면 해안포대의 대응사격이 예상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퇴각을 명령했다.
“조타수 그대로 반전한다! 모두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라!”
함장의 명령에 갑판 위의 선원들이 네덜란드 말로 크게 복창했다.
“반전, 반전, 반전!”
“꽉 잡아!”
끼이익.
조타수와 부조타수 4명은 이중 타륜을 있는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승리호는 한껏 기울어지고 다시 반대로 그러더니... 이내 평형을 되찾았다. 이윽고 승리호는 타륜과 종범(세로돛)을 능숙하게 조정하며 급반전에 성공했다.
바람은 아까와 달리 육풍(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이라 풍상(風上)의 위치였다.
한시름 놓은 고길동 함장의 지시가 또 이어졌다.
“전속력으로 도주한다!”
그때, 리마 요새 해안포대의 대응사격이 시작되었다.
쾅쾅쾅!
갑작스러운 포격에 승리호 갑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머리, 머리 숙여!”
1등 항해사관이 소리치는 동안 고길동 함장이 침착하게 명령했다.
“위치를 지켜!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조타수는 즉시 좌현 30도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라. 전속력으로 현 위치를 이탈한다.”
이윽고 승리호는 고길동 함장의 지휘 하에 빠른 속도로 해안포대의 포격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한숨을 돌린 승리호는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함장님! 피탄 4발에 1명 사망, 4명 부상입니다.”
“파손상태는?”
“함교 바닥에 일부 손상이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예비부품으로 교체하겠습니다. 다른 파손부위는 전투임무에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좋아! 부상자 응급치료를 빨리 끝내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 날, 스페인 전함의 추격은 없었다.
고길동 함장은 다음 기습을 생각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
1630년 1월 3일, 콘셉시온 요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