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25)

“그러게 말이야. 대충 서른 정도는 넘겠는데?”

“이번 거래 역시 꽤 짭짤하겠군! 괜히 밥 주러 오고가기 귀찮으니... 그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

그들은 나체스족이 분명했다. 

나체스족 몇몇은 작은 바위섬 곳곳을 누비며 생존자 모두를 일일이 확인했다. 눈을 까뒤집고, 입을 강제로 열어 이까지... 아마도 노예로써의 상품가치를 판별하는 듯 말이다. 멀쩡히 살아있어야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천인공노할 놈들...’ 

김자점이 속으로 이를 갈며 욕하고 있을 때, 호르킨족 ‘말없는 새’가 몸을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났다.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나는 호르킨족 말없는 새요! 내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이름을 걸고 말합니다. 나체스족은 어찌 이렇게 무례입니까? 손님의 음식에... 커억!”

퍽퍽.

순간 나체스족 남자 하나가 다가와 말없는 새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세차게 후려쳤다. 호르킨족 말없는 새는 격한 신음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빙글빙글 두어 바퀴 돌다가... 그대로 혼절했다. 

나체스족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누구였고, 어떤 부족인지는 전혀 상관없다. 너는 이곳에서 우리의 포로가 되었고 곧 노예로 팔려나갈 것이다. 그동안 내 말을 잘 듣는다면... 아주 조금은 편할 것이다. 크하핫!”

김자점은 그 모습에 욕지기가 났다. 하지만 나체스족 남자들이 떠날 때까지 그저 잠자코 있었다. 

사흘 후, 김자점 일행 모두 정신을 차렸다. 

“젠장, 이 섬엔 정말 아무 것도 없군!”

꼬르륵.

“그러게 말입니다. 배가 너무 고파 힘이... 그 놈들이 묶어놓지 않은 이유가...”

김자점과 김추성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힘없이 말했다. 

살아남은 선발대원들은 바위섬 이곳저곳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선발대 100명 중, 현재 생존자는 겨우 32명이었다. 미시시피강 하류, 마지막 야영지에 86명이 도착했었는데... 결국 54명이 나체스족의 독에 희생되고 말았다. 

으드득.

김자점은 이를 갈며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나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굳이 인생에서 배운 교훈이 아니라도, 그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같은 시각, 나체스족 마을.

“우리 나체스는 여행자와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부족이요! 항상 먹을 것과 잠 잘 곳을 아낌없이 베풀었지. 걱정 말고 돌아가시오. 올해는 식량이 풍족합니다. 그대들에게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나눠줄테니 야영지에서 기다리시오. 오랜 친구의 예로 대접하겠소!”

나체스족 추장 ‘날카로운 물갈퀴’는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 전에 1백에 가까운 김자점 무리를 거하게 털어먹었는데... 같은 일행으로 보이는 자들이 비슷한 숫자로 똑같은 장소에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똑같이 사람을 보내 식량을 구하러 왔다. 날카로운 물갈퀴는 즉시 승낙했다.

그런데 낭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1백 명 신규 여행자들을 위한, 치명적인 음식대접을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 새로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스페인 상선이 인근 해상에 정박했습니다. 어제는 촉토족, 오늘은 칙소족이 그들과 거래를 마쳤답니다. 내일은 우리와 거래를 하고 싶답니다...”

날카로운 물갈퀴는 크게 기뻐하며 명령했다.

“허허! 이거 바빠도 너무 바쁘구나. 오늘 밤은 물론이고 내일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겠어.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오늘 저녁접대는 물론이고 내일 교역도 문제없이 진행해야 한다. 스페인 상선에 우리 거래품목에는 노예가 있으니 내일 하루로는 어렵다고 말해! 저들에게도 노예들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누에바에스파냐는 어디서나 노예가 부족하니 이번에도 비싸게 팔아먹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나체스족 마을은 격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

같은 날 저녁, 미시시피강 하류 김련의 야영지.

싸악.

끄아악.

털썩.

김련의 거침없는 공격에 나체스족 전사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투는 이미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곳곳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김련은 비릿하게 웃으며 거친 숨을 골랐다.

...

불과 반시간 전.

약속대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야영지에 찾아온 나체스족 무리는 100명 정도였다. 그 많은 음식을, 급히 마련해서 가져오느라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 그 음식은 나체스족이 정성들여 준비했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수하를 시켜 몰래 은 젓가락을 찔러보니 독이 확실했다. 그 수하가 음식에 독이 섞였음을 눈짓으로 알렸다. 이에 김련은 덕담을 하던 와중에 약속한 신호를 했고, 불문곡직(不問曲直)하며 공격했던 것이다.

불의의 공격을 받은 나체스족은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

김련은 야영지 전투가 정리되자 즉시 명령했다.

“이 놈들 전부 옷 벗기고 입에다 음식을 쳐 넣어! 먹지 않으면 그냥 죽인다.”

끄아악.

싫어.

으윽.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나체스족의 무리가 모두 처리됐다. 그들은 음식 먹기를 한사코 거부했기에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김련은 냉혹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명령했다.

“흥! 모두 옷을 갈아입고 적 마을로 출발한다. 김공선 부대에도 전령을 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김련은 미시시피강 인근 인디언 부족들의 후한 인심을 떠올렸다. 그들은 여행자들과 손님에게 정성껏 식사를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했다. 아낌없이 베푸는 그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푸근했던가! 

아마 아버지도 인디언 부족들의 후한 인심에 마음이 풀어졌던 것이리라!

후처의 서찰내용은...

- 세상에 거저는 없습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

김련은 모골이 송연했다. 

**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나체스족 마을 부근.

뿌드득.

김추성의 아들 김공선은 선발대와 함께 실종된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군 장교로 임관한 이래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오도리족과 아버지를 따라 북아메리카 서부총독부로 보직을 옮겼다. 또한 북아메리카 서부전쟁에서도 아버지 김추성을 따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북아메리카 대륙횡단 탐험대는 총 3개의 제대로 구성되었다. 김련과 김공선의 후발대는 선발대와 달리 대부분 군인이었고 정규보병 무장을 완비했다. 그 지휘는 당연히 사관학교를 졸업한 수재, 김공선이 맡았다.

후발대의 보병은 350명으로, 병력숫자로는 정규 보병중대 이상이었다. 

그때 야영지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야영지 본대가 출발했습니다. 전투가 개시되면, 비표는 왼쪽 어깨에 흰 띠를 두르기로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김공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출진을 명령했다.

“본대가 적 마을을 기습함과 동시에 전력으로 돌격한다. 총기에 착검하고 은밀하게 접근한다. 모두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이윽고 김공선 부대는 예기를 감추며 은밀히 나체스족 마을로 진군했다.

**

잠시 후, 나체스족 마을.

화르르.

탕탕탕.

으아악.

나체스족 추장 ‘날카로운 물갈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음식대접을 나간 자들이 돌아오면, 적이 중독될 시점에 출발하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자들 중에 낯익은 사람이 없었다. 만약 한밤중이 아니었다면 마을에 들이지도 않았을 것인데...

...

김련의 본대는 나체스족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화염병을 던졌다. 

나체스족 마을의 구조도 다른 북아메리카 인디언 마을들과 비슷했다. 마을 광장을 가운데에 두고 티피(tepee 원뿔형 천막)와 집이 방벽처럼 들어섰다. 거기에 사람 허리높이의 목책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무와 가죽은 화염병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겨우 정신 차리고 반격하려는 찰나, 마을 외곽에서 ‘일제사격 후 돌격’이란 함성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들렸다. 마을 내부의 혼란과 마을 외곽의 침입이 합해지자 나체스족 전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김공선의 부대는 속보로 빠르게 이동 중임에도, 3열 횡대를 제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괴성과 함께 불길이 타오르자 주저 없이 돌격명령을 내렸다. 

“일제사격 후 돌격!”

탕탕탕.

일제 조준사격에 나체스족 전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3열이 각각 사격을 끝내고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곧이어 김공선의 부대가 마을로 진입했고, 김련의 본대와 합류했다. 대세는 확연히 기울었다. 

그렇게 전투는 싱겁게 끝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자들이 나타났다.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멀리서 들려온 총성에, 네덜란드 사략선 함장 ‘마르턴 트롬프’는 무척 당황했다. 인디언 부족인 나체스족 마을에서 총성이, 그것도 숙련된 일제사격 총성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저하는 것도 잠시, 마르턴은 그들이 스페인 군대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그들의 배후로 접근했다. 그리고 적들이 싸우는 사이 뒤를 기습한다면 스페인 군대와 나체스족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르턴이 마을 근처에 도착해서 전황을 살펴보니, 방금 전의 총성은 스페인 군대가 분명해 보였다. 질서정연한 돌격대형, 일관된 사격과 지휘는 유럽의 정규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는 이미 스페인이 잡았다. 

‘만약 지금 기습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마르턴은 마른 침을 삼키며 고심 끝에 명령했다.

“즉시 마을에 진입한다! 적들을 해치우고 배를 빼앗아 고국으로 돌아간다.”

우와아!

네덜란드 사략함대원들은 함성과 함께 돌격했다.

마르턴의 어부지리(漁父之利)는 성공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김자점의 북아메리카 대륙횡단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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