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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7월 어느 날, 호주 서울.
왕궁 집무실.
“폐하! 네덜란드가 스헤르토헨보스 공략에 나섰다고 합니다.”
나는 ‘네덜란드가 드디어 거병했다!’는 소식에 크게 한숨을 쉬며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았다. 지난 2월에 네덜란드가 곧 대군을 이끌고 스헤르토헨보스를 공략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지난 4월에 출격했다는 급보가 도착했다.
북아메리카 서부전쟁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혹시라도 스페인의 또 다른 음모가 한국을 향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나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나는 반색을 하며 수상에게 말했다.
“이제야 한숨 돌렸습니다.”
“이 모두가 폐하의 현명한 결단이자 홍복(洪福)입니다. 지금 대서양에서는 마탄사스 해전에 대한 대대적인 복수전이 전개 중입니다. 스페인이 보통 약이 오른 것이 아닌 듯합니다. 만약 일본이나 명을 직접 공격했다면 양면전쟁의 위험이... 정말 모골이 송연합니다.”
나는 수상의 공치사에 쓰게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면전쟁의 위험만은 분명 사실이었다. 수상은 잠시 내 말을 기다리다가 보고를 이어갔다.
“... 임진년에 대한 일본 막부의 공식 유감표명은 국서(國書)로 접수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이를 전국 관공서에 공보로 게시했습니다. 호주에서도 당시의 참화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전국 관공서에 게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또한 기유약조, 한일 외교협정 및 상호불가침 맹약의 외교협상단을 조직했습니다. 한국과 조선의 외교부장 이하 50명의 실무단입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수상의 보고가 끝나자 찻잔을 들어 잠시 목을 축였다. 그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대로 시행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에 기존 화폐수요와 화폐주조능력을 재검토해서 후금 시장규모에 맞게 우리 화폐를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고하도록 명령하세요. 만약 후금이 이를 거부하면 화폐주조를 대신해 주겠다고 수정해서 제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후금의 시장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니 조선과 하나로 묶어도 큰 탈이 없을 겁니다.”
이에 수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후금 상인들의 거래는 상당부분 우리 화폐를 매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후금 상인들이 주로 은(銀)을 고집하고 있긴 합니다만... 제가 받은 보고에서도 후금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주조하려고 준비 중인 듯합니다. 일단 후금 화폐주조를 도와준 후에 우리 화폐가 그 대체품으로 인식되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나는 잠시 다이샨과의 정주성 비밀회담을 떠올렸다.
누르하치의 자식들은 모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엔 홍타이지만 걱정했었는데 다이샨, 도르곤 등도 만만치 않았다. 나의 후궁이 된 ‘화석공주 송고도’도 마찬가지였다.
송고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밝고 친절했다. 비록 한국과 후금의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비(妃)가 되진 못했다. 그래서 후궁으로 빈(嬪)의 자리에 올라 잠시 실망한 듯 보였으나 크게 내색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후사는 없을 것이기에 마음 편히 지내게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각설하고,
나는 후금에 지불할 대가를 정말 후하게 쳐주고 난 후에야 동북아시아 문제에 대해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 명은 내부혼란으로 외부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거기에 후금이 산해관 밖에서 명을 견제했다. 또 일본은 임진년의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상호불가침 맹약을 맺은 상태였다. 유구국은 한국과 일본의 전쟁을 부추기는 등 얄미운 행동을 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집중할 때였다. 나는 이를 '유럽-북아메리카 대전략'으로 명명했다.
내게는 '유럽-북아메리카 대전략'의 출발점들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스헤르토헨보스 공방전, 포토시 은광 쟁탈전이었다.
은(銀)의 도시, 포토시
인간의 탐욕에는 끝이 없다.
아즈텍과 잉카는 무제한으로 금은보화가 나오는 창고가 아니었다. 넘쳐나던 금과 은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금과 은이 넘쳐난다는 시볼라(Sibola) 신의 도시와 엘도라도(El Dorado)에 대한 전설을 믿게 되었다.
시볼라의 도시는 멕시코시티 북쪽 어딘가에 있다고 했으며, 엘도라도는 멕시코 남쪽 어딘가에 있다고 전했다.
이윽고 무자비한 스페인 정복자들의 대규모 추적과 탐험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시볼라, 멕시코 북쪽이었다.
먼저 멕시코의 몇몇 강에서 사금(砂金)이 발견되었고 곳곳에서 금과 은의 광산이 발견되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채취한 금과 은을 유럽 본토로 들여오도록 했다. 1540년대에 스페인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가문 황제 카를 5세에겐, 그의 대제국을 유지하고도 남을 금은보화가 세비야 항을 통해 연이어 들어왔다.
그리고 엘도라도는 멕시코 남쪽이었다.
잉카 제국이 멸망한 페루 지역에서도 곳곳에서 금과 은이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세계 최대 포토시 은광이 발견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포토시 은광을 엘로라도라며 환호했다.
1545년 4월 한 원주민 목동이 라마 떼를 이끌고 약 4천 미터 높이의 산에 올라갔다. 그 원주민 목동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불을 지폈는데 주변 땅이 갑자기 반짝이며 빛이 났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돌을 몇 조각 주워서 내려왔다.
놀랍게도 그 돌은 은 광석이었고, 이윽고 탐광사가 대규모의 은광임을 확인했다. 이 사실은 곧바로 카를 5세에게 보고되었다. 곧이어 엘도라도로 여긴 은(銀)의 도시, 포토시 은광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포토시 은광이 발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포토시는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 전체 은 생산량의 두 배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에 임시 야영지가 만들어지고 인구가 10만 명 넘게 늘어났다. 유럽의 대도시 인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4천 미터 높이의 황량한 고원지대로 몰려들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최대의 인구가 이 광산 일대에 집결되었다.
포토시 은광에서 채굴된 은(銀)은 스페인을 살찌웠다. 그 은의 경로는 태평양 해안 도시 ‘리마’를 거쳐 멕시코 ‘아카풀코 항’으로, 다시 ‘멕시코시티’를 거쳐 대서양 해안도시 ‘탐피코 항’으로 옮겨졌다. 그런 연후에야 스페인 수송선단으로 유럽 본토까지 실어 날랐다.
이처럼 포토시 은광과 그 은의 운송로는 스페인의 목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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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 7월 어느 날, 페루 리마 어느 곳.
페루 리마는 스페인이 중시하는 도시였다. 스페인은 멕시코시티에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을 둔 것과 마찬가지로 리마에는 페루 부왕령을 설치했다. 과거 잉카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건설한 태평양 해안도시였다.
지금은 따사로운, 아니 뜨거운 햇살을 식혀주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정오.
리마의 한구석에 위치한 스페인 지중해 양식의 집에선 고성이 오고갔다.
“저는 못 갑니다. 아니 안 갑니다.”
놀랍게도 그는 잉굴다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은 도르곤이었다. 또한 그들은 리마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처럼 차려 입고 있었다. 도르곤은 빙글거리며 말했다.
“이제 고산병에 적응도 다 했겠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잉굴다이는 비웃는 투로 빙글거리는 도르곤의 말에 기가 막혔다. 그래도 단호하게 말해야했다.
“제발 정보국 직원 말대로 합시다! 이번엔 해적 털었던 것과 다르다니까요? 여기 리마만 해도 인구가 3만이나 되고, 포토시는 무려 15만이나 됩니다. 포토시에 미타요(Mitayo, 원주민 강제노동자를 뜻함.)가 얼마가 있든 쉽게 봐서는 안 됩니다.”
도르곤은 잉굴다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타요는 말이 부역민이지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과거 잉카제국은 미타(Mita)라는 노동부역제도를 운용했었다. 스페인은 여기에 착안해서 값싼 비용으로 정기적으로 은을 채굴하고자 잉카의 미타제도를 포토시 은광에 적용했다.
그에 따라 포토시 은광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강제 노동을 하러 끌려갔다. 이들은 하루에 많게는 수십 킬로가 넘는 은 광석 포대를 25개씩 옮겨야 했다. 월요일에 건강한 원주민 20명이 새로 들어오면 토요일에는 절반이 몸을 다쳐 일하지 못할 지경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불과 수백으로 이뤄낸 일이다! 아버지 한(누르하치)께서는 불과 십여 명으로 시작해서 만주를 일통했다. 내가 원주민들을 복속시켜 아메리카를 차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 스페인을 능가하는, 정말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다면... 곧 내 그늘 아래로 모여들 것이 분명하다. 믿어라!”
도르곤의 얼굴엔 여유가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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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리마 시내 한국 정보국 안가(安家).
정보국 이만복 과장은 생글거리며 말했다.
“어이구야 우리 춘복이 어느새 원주민이 다 됐구나!”
“흥! 과장님 자꾸 그러시면 저도 못 참습니다.”
춘복이라 불린 자는 발끈했다. 놀랍게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춘복의 모습은 잉카 원주민들의 복색 그 자체였다. 얼굴도 고산지대의 햇볕에 잘 타서 그런지 어지간해서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리마 시내에서 활보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만복 과장은 춘복의 반발에도 웃으며 말했다.
“크흐흐,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놀리는 재미가 없어요. 그래 주변에 접촉한 원주민들은?”
춘복은 먼저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후 대답했다.
“좀 힘들겠습니다. 과거 잉카가 망할 때도 스페인 갑옷을 뚫지 못했지 않습니까? 불과 수백을 두고 십만이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몇 명 죽이지도 못하고 잉카 전사 수천이 죽었으니... 원주민들의 좌절도 이해하지 못할 게 아닙니다. 스페인은 우리와 달리 아직도 테르시오를 고집하고, 철제갑옷으로 무장합니다. 원주민들이 이를 극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만복 과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외부의 조력과 무기지원이냐?”
“네 맞습니다. 기존 계획과 동일합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춘복은 조심스럽게 이만복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어떤 불호령이 떨어지더라도 감수할 것이라 각오했다. 그렇게 결국 내지르고 말았다.
“원주민들에게 개국(開國), 독립의 열망을 심어주는 겁니다.”
그러나, 춘복의 생각과 달리 이만복 과장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이만복 과장도 도르곤의 섣부른 야심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도르곤은 단 한 번의 결전으로 스페인 군대를 물리칠 속셈인 듯 했다. 그동안 몇 번의 협의를 진행했지만 원주민 군대를 양성하자는 정보국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
한국 정부의 기존 계획은 분명했다.
그것은 원주민들에게 외부의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조력이 있을 것임을 알리고, 스페인 군대에 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산악 등 지형을 이용한 특전교육까지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원주민들의 저항을 조직화하고 그 원주민 저항조직들이 자생능력을 가지도록 말이다.
물론 원주민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은 빠져 있었다. 한국의 약속은 도르곤에 대한 개국을 지원하는 것이지 원주민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춘복의 말은 도르곤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도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 이는 기존 계획과 달랐다.
도르곤은 당장 원주민 군대를 양성하자는 것도 반대했다.
그런데 도르곤의 귀에 이런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다면?
이만복 과장은 춘복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춘복아! 어디에나 야심을 가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원주민들도 당장 힘이 없어 스페인에게 저항하지 못할 뿐이다. 도르곤이 우리가 알려준 편한 길을 놔두고 저리 행동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스페인을 단숨에 제압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원주민에게 보여준다면... 원주민들이 스페인에 굴복하듯 도르곤 자신에게 굴복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나중을 생각해서 원주민들에게 헛된 기대를 주지 않으려고 한 것이지. 도르곤은 자신만만하다. 리마와 포토시에는 스페인 사람이 불과 1만이다. 군대는 총을 쏠 수 있는 자들을 모두 긁어모아야 6천 남짓... 물론 도르곤의 마음에는 뭔가 조급함이 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춘복은 이만복 과장이 말끝을 흐리자 곧바로 말을 이었다.
“도르곤의 독단적 행동을 본국에 보고해야 합니다. 원주민과 합세하면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독립하게 도운다면 더욱 쉬운 일입니다. 도르곤은 일을 망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만복 과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의 임무는 도르곤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폐하의 명령은 엄수되어야 한다.”
이만복 과장은 말을 마치고 입을 굳게 닫았다. 춘복은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방을 나섰다. 이만복 과장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춘복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본국의 비밀지령은 춘복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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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호주 서울.
나는 정보국의 비밀보고를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출발 전, 도르곤에게 해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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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는 너 자신의 뛰어남도 포함되겠지만, 너의 일행이 남아메리카 여러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거나, 남아메리카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등... 너의 지배가 남아메리카 여러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들 스스로 가지게 해야 한다.
만약 네가 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힘, 또는 세력 간의 분열 등을 이용해 그들을 억눌러야 할 것이다. 그들도 당장은 스페인의 압제를 벗어나고자 협력하겠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너 역시 스페인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다음이 없을 것이다.
이를 명심하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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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도르곤은 잠시 반발하는 듯 했지만 얌전히 들었다. 내 생각에는 도르곤을 걱정하면서 그의 남아메리카 개국을 진실로 지원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도르곤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그는 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보국 남아메리카 책임자인 이만복의 비밀보고에 따르면, 고산지대 적응훈련이 끝난 도르곤이 원주민 무기지원과 군사훈련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페루 부왕령이 설치된 리마와 포토시 은광의 주요 운송로를 정찰하고 나서, 기존 계획인 특수전 이나 유격전이 아닌 대규모 전투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도르곤의 작전계획은 먼저 페루 부왕령 리마를 기습점령한 다음, 포토시 은광에 배치된 스페인 주력군대를 리마 인근으로 유인해서 각개격파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포토시 은광을 차지하고 은을 본국에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나는 탄식했다.
‘어째 내 예상을 빗나가질 않는군.’
가장 먼저 도르곤, 그의 조급함이 일을 망치고 있었다. 스페인 군대의 테르시오는 도르곤의 후금 기병과 상극이었다. 거기에 남아메리카는 평원이 아니라 고산지대였다. 하다못해 도르곤 군대만으로 특수전이나 유격전을 벌이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또한 조급함에 이어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정복한 대제국이었다. 아즈텍과 잉카, 두 제국을 무너뜨린 전례가 있으며 현재까지 통치하고 있다. 그들은 후금 못지 않은 이이제이의 전문가였다. 코르테스와 피사로가 아즈텍과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철저한 분열정책, 이이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