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버지와 가토 요시아키는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은혜를 입었던 자였기에 항상 의심을 받았었다. 특히 에도 막부의 노중(老中, 막부의 최고 원로가신)이었던 안도 시게노부의 불신이 치명타였다. 이를 간신히 틀어막은 것이 조선과의 밀무역개시였다. 또 그 이후에 막부에 끌어다 바친 뇌물이 수십, 아니 수백만 냥이었다.
다다유키의 가신 중 하나가 감격한 투로 말했다.
“드디어 막부의 진정한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마모토 번에는 막부의 지원군을 보내주지만 저희에게는 알아서 대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막부의 사자도 이번엔 보내지 않겠답니다. 막부에서는 이와미 은광(과거 조슈번의 소유지, 조슈번의 모리가문은 오우치가문이 소유했던 이와미 은광을 탈취함-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막부직할령이 됨)에 임시로 본진을 마련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제 조슈 번이 빠져나갈 곳은 규슈 북단밖에 없으니... 이미 끝난 겁니다.”
*연재 하단 지도 참고.
다다유키는 탁자 위의 지도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와미 은광은 모리가문의 역린이었다. 막부는 동해안에 인접한 이와미 은광에 본진을 마련했고, 남쪽 해협에서는 수군을 통해 바닷길을 틀어막았다. 혼슈(本州)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조슈 번의 영지였기에, 이제 도주로는 규슈만 남았다. 그리고 규슈 북단에는 후쿠오카 번이 있었다.
막부의 명령은 분명했다.
[후쿠오카 번이 피해를 감수하고 조슈 번을 막아서라는 것!]
그리고 그 대가는 영지추가와 후다이 다이묘(측근 가신)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다다유키는 물론이고 그의 가신들에게... 후쿠오카 번과 영지민들에게 돌아올 큰 피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 후, 조선 한양.
인정전(仁政殿), 내각 대회의실.
“... 따라서 명나라의 정세가 무척 혼란합니다. 그동안 부정부패는 있을지언정 대규모 반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전과 동전발행 이후에는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시중에 금과 은은 씨가 말랐고, 지전이나 동전 등 화폐가치가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화폐가치가 아주 바닥이다 보니 명 잠상(潛商)들은 물건 대금을 금, 은 또는 식량 같은 현물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명나라 시장상황은 비단, 차 등 사치품가격은 폭락했고 반대로 식량처럼 필수품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상무부장의 이 같은 보고에 수상 이원익이 말했다.
“명은 내부문제가 크니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후금과의 밀약이 굳건한 것과 별개로 말입니다.”
부수상 박승종도 이에 동의했다.
“수상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명은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그 국운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 역시 내부문제 아닙니까? 저는 두 달 전부터 베개를 높이 하고, 잠을 푹 잡니다. 하하하!”
국방부장 이완이 거기에 말을 더했다.
“모두 오늘자 보고서를 확인하셨을 겁니다. 일본 막부는 이미 토벌작전에 돌입했습니다. 해군과 특전여단이 그들을 힘껏 도울 겁니다. 기존 작전계획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때 이원익이 말했다.
“정보부장의 보고에 따르면 규슈의 기리시탄들이 최소 수만에서 최대 이십만으로 추산된다고 했습니다. 포르투갈, 기리시탄, 도자마 다이묘들의 관계는 만들어내기 나름이니까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인데... 기리시탄 중에 은밀히 배를 타고 나와 망명을 요청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이완이 이에 대답했다.
“수상각하의 말씀대로 우리 해군전함을 포르투갈(예수회) 전함으로 오인한 자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망명을 신청한 기리시탄은 벌써 2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망명신청자가 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전투가 시작되면 망명을 유도하라고 명하셨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원익은 이완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 막부에게 우리가 도와준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는 것이 되겠습니다. 외교부장과 상무부장은 기유약조의 전면적인 개정작업에 즉시 착수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그동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무역선이 전담했던 부분들을 우리가 받아와야 합니다. 특히 은 무역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일본에 보다 유리하게 그 운송이익을 나눠 주어야 하겠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일본은 은을 제외하더라도 큰 시장입니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세부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유의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외교부장과 상무부장의 답변과 함께 내각회의가 끝났다.
각료들은 할 일이 많이 남았기에 모두 한숨을 쉬며 각자의 부서로 떠났다.
진정한 승자는?
1629년 5월 마지막 날, 규슈 북단 후쿠오카 번.
-후쿠오카 번과 조슈 번.
-구로다 가문 다다유키와 모리 가문 히데나리.
두 원수 가문은 지난 열흘 동안 격전에 격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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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 번주 모리 히데나리는 에도 막부의 본군이 육로로는 이와미 은광 동쪽에서, 바다로는 기다랗고 좁은 해협을 막아 진군해오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졌다. 조선 동해로 빠져 나가기에는 대양을 항해할 수단인 큰 배가 없었다. 결국 남은 퇴로는 혼슈섬과 규슈섬을 잇는 시모노세키 해협을 건너는 방법뿐이었다.
잠시 오고쇼 앞으로 가서 당당하게 할복이라도 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리 가문의 당주인 자신이 할복하면 남은 사람들의 운명도 불을 보듯 뻔했다. 또한 에도 막부의 본진 앞으로 군대를 보내도 막부에 대항한다는 이유로 개역(멸문)당할 것이 분명했다.
모리 가문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결국 모리 히데나리는 고심 끝에 후쿠오카 번을 멸하고 쾌히 죽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야음을 틈타 시모노세키 해협을 기습적으로 건넜다. 밤새 달리고 달려 후쿠오카 본성에서 불과 10킬로미터 떨어진 다자후이 성을 기적적으로 차지했다.
그 후로는 서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후쿠오카 번의 구로다 가문이 승세를 점차 굳히고 있었다. 조슈 번주 모리 히데나리는 첫 번째 기습이 실패한 이후부터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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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본성, 구로다 다다유키의 집무실.
구로다 다다유키는 전장의 분위기가 점점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다자이후 성을 빼앗길 때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었다. 시모노세키 해협에 척후를 빽빽이 세워놓고 경계를 했었는데... 조슈 번의 군대는 불과 두어 시간 만에 다자이후 성까지 급속 진군했고 성을 함락시켰다.
다다유키는 배를 타고 후퇴할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조슈 번의 대대적인 첫 번째 기습을 막아냈다. 그 이후는 탄탄대로였다. 서로 일진일퇴를 거듭하긴 했지만, 전세의 유불리는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다다유키는 아버지 구로다 나가마사의 유언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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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잊지마라! 조슈 번의 모리 가문은 모략(謀略)과 암살로 전국제일이다. 과거 모리 모토나리[모신(謀神) 또는 서국 제일의 다이묘(西国一の大名)로 불렸음.]는 평생 모략과 암살을 자주 행했다. 당장 모리 데루모토도 그의 피를 받았다. 그 데루모토가 숙청, 암살한 인물은 적게 잡아도 수십이 넘는다. 그 피를 이은 자식들도 역시 모리 가문 사람이다. 너는 항상 갑옷을 입고 지낼 것이며 호위 없이는 함부로 바깥으로 나가지 마라. 조슈 번을 멸문시키기 전에는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한다.
► 작가 주 : 모리 가문의 숙청과 암살은 실제로 유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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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가 당신의 유언을 지켰습니다. 이제 모리 가문을 멸하고 당신의 영전에 그들의 목을 바치겠습니다. 크하핫!’
다다유키는 나가사마의 유언대로 항상 ‘오매동구족(갑옷의 일종)’을 단단히 입고 뛰어난 호위 8명의 경호를 받았다. 지금도 후쿠오카 본성에 있었지만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급보입니다! 모리 히데모토가 조슈 번주 모리 히데나리의 목을 가지고 항복하러 왔습니다.”
“뭣이?”
구로다 다다유키의 앞날에 서광(瑞光)이 비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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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 다자후이 성 내실.
“흐흑, 형님! 여봐라...가...가주님께서 암습을 당하셨다. 흉수를 찾아라 어서! 흐흐흑...”
조슈 번주 모리 히데나리의 동생 모리 나리타카는 목이 없는 히데나리의 시신을 보고 오열했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함께 식사를 했던 조슈 번주였다. 나리타카는 믿어지지 않는 끔찍한 현실에 눈을 부릅 떠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탁탁탁.
덜컥.
으아악.
-이쪽이다! 여기야 여기!
다자후이 성 곳곳에서 경비병들이 수색하는 소리, 흉수를 쫓아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 모리 나리타카에게 말했다.
“휴...흉수는 모리 히데모토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번주님의 목을 들고 성문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쾅!
모리 나리타카는 탁자를 발로 차며 말했다.
“닥쳐라! 내가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야지... 히데모토는 아버님께서 직접 양자로 삼은 다음에 6만석짜리 나가토 조후 번주로 삼으셨다. 그리고 조슈 번의 가신으로 정무를 총괄시켰다. 히데모토는 번주하고 나에게 친형제나 다름이 없는 사람이다. 확인해보고 아니라면 네 목을 베겠다.”
고성을 지르던 나리타카의 눈은 핏빛 광기가 번득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반역자 모리 히데모토가 조슈 번주 모리 히데나리의 목을 잘라 도주한 것이 확인되자 모리 나리타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끝내 의식을 잃었다. 조슈 번주의 공석은 서열상 모리 나리타카가 차선이었다.
새로운 조슈 번주이자 모리 가문의 당주인 모리 나리타카가 의식을 잃은 상태인데도, 모리 히데모토의 반역은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히데모토와 그의 조력자 셋이 다자이후 성을 벗어나 후쿠오카 본성으로 달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나가토 조후 번의 병력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주 히데나리는 반역자 히데모토에게 비참하게 죽고, 새로운 가주 역할을 맡아야 할 나리타카는 그 충격에 의식을 잃었다.
조슈 번, 모리 가문의 운명은 이제 끝장난 듯 했다.
**
후쿠오카 본성, 내성 본관 앞.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진 내성 본관 앞에서는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로다 다다유키는 오매동구족을 단단히 갖춰 입고 호위들로 하여금 사방을 엄하게 경계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단상 위에 편히 앉아 십여 미터가 떨어진 본관 앞마당에 작은 탁자를 놓았다. 그 탁자에는 모리 히데나리의 목을 올렸다.
또한 탁자 옆에는 모리 히데모토가 팔꿈치 아래로 오른 팔을 잃은 채, 땅 위에 직접 앉아 엎드려 절을 하는... 일본 ‘도게자’의 모양새를 취했다. 게다가 히데모토는 오른 팔을 잃고 홑바지만을 입은 상태여서 몹시 흉한 몰골이었다.
정상적인 다이묘였다면... 이런 경우 직접 히데모토의 두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구로다 다다유키는 일본 다이묘의 기본적 예의를 저버렸다. 또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더 해괴하고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원래 모리 히데나리를 본 적이 있는 자들이 속속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저 목은 모리 히데나리가 맞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저건 히데나립니다.
-악적 모리 히데나리로 보입니다.
...
그리고 그때였다. 전령 하나가 급히 들어와 급보를 전했다.
“방금 다자이후 성에 조기(弔旗)가 걸렸습니다. 모리 히데나리가 죽은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령이 도착해서 낭보(朗報)를 전했다.
“모리 가문의 새로운 당주인 나리타카가 항복과 동시에 할복하겠다고 합니다. 대신 모리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도록, 자식 2 명을 살려달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구로다 다다유키는 거듭 들려온, 정말 믿기 어려운 낭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나가마사로부터 받았던 유언을 이처럼 빨리 이룰 줄 몰랐던 것이다. 다다유키는 가슴이 벅차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격동하는 가슴을 움켜쥐고 간신히 말했다.
“조...조건을 수락한다. 조슈 번의 군사와 모리 가문의 일원들은 모두 무장을 해제하고 다자이후 성에서 대기한다. 그리고 모리 나리타카가 할복한 다음, 그 시신이 확인되면... 요구조건들은 즉시 이행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
몇 시간 후.
“모리 나리타카가 할복했습니다! 또 모든 군사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다자이후 성에서 대기 중입니다. 다자이후 성은 우리 군사들이 장악했습니다.”
구로다 다다유키는 반색했다. 그리고 비릿하게 웃으며 명령했다.
“조슈 번과 모리 가문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려라! 단 하나도 살려두면 안 된다. 본성의 병력도 데려가라.”
“... 그럼 모리 가문의 자식 2 명은 어찌...”
“허허! 난 약속한 기억이 없군. 어서 명을 따라라!”
“네 알겠습니다.”
후쿠오카 번의 군사들은 마치 바람처럼 다자이후 성으로 달려갔다. 이제 후쿠오카 본성에는 불과 수백의 병력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