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225)

네덜란드 총독 관저의 응접실.

탁!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하하! 서로 만족할만한 조건에 합의했으니 이대로 조약을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저희는 당장 550만 굴덴을 지불하려고 했는데, 귀국에서 달리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해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겠지요. 그럼 기존 약속대로 뉴네덜란드와 뉴암스테르담 할양에 250만 굴덴, 프랑스의 퀘벡과 아카디아 할양에 150만 굴덴, 나머지 200만 굴덴은 한국이 프랑스에 지불할 대가를 네덜란드가 대신 지불한다는 것으로 최종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에 네덜란드가 각종 물자는 물론이고 기술이전을 성실하게 지원할 것임을 확약합니다.”

함께 배석한 런던공사 신준묵도 만족스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하하하! 먼저 네덜란드 공화국의 영명하신 총독각하께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한국은 오랜 시간동안 네덜란드 공화국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와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우의를 다져 왔습니다. 이번 조약을 통해 북아메리카의 상호이익이 완벽하게 보장되고 증진될 것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는 우리 4개국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 한국은 귀국에 군수물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교역과 산업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등 귀국의 상인과 기업들을 우대할 것입니다.”

프레데릭 헨드린과 신준묵을 서로 칭찬하며 한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 등 모두 삼국이 포함된 '암스테르담 조약'의 성립을 축하했다. 그들의 내심은 서로 달랐지만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동맹이자 친구였다. 

어쨌든 암스테르담 조약은 대(對)스페인 4국 동맹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이 주도한 암스테르담 조약으로 네덜란드, 프랑스가 뭉쳤다. 그리고 영국이 함께 하고 있었다. 영국와 프랑스는 비록 영국이 은밀히 위그노들을 지원하는 등 서로 다투는 중이었지만 스페인에 대해서는 힘을 합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이중책략

1628년 12월 말, 호주 서울.

내각 대회의실.

수상은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하! 런던 조약에 이어 암스테르담 조약까지... 이제 당분간 우리의 북아메리카 진출은 탄탄대로입니다!”

외교부장도 수상의 말에 화답했다.

“두 개의 조약으로 네 나라가 실질적인 대(對)스페인 동맹국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턴 북아메리카에 해군을 대거 주둔시키더라도 그들의 의심을 사거나 다른 견제를 받지 않을 겁니다. 만약 스페인이 알게 된다면 발끈하겠지만 말입니다.”

국방부장이 외교부장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해군 기동함대가 북아메리카의 방어에만 전념하는 것 아닙니까? 아직은 스페인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국방부장님의 말씀에 저도 동감입니다. 스페인이 지난 수십 년간 치른 수많은 전쟁들을 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대체 얼마나 부유하면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도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겁니까? 그러니 스페인이 유럽의 전쟁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게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법무부장은 국방부장의 외교적 현실에 대해서 동의하며 기존 외교정책을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수상이 말했다.

“국방부장과 법무부장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린 아직 힘을 길러야 합니다. 한국이 단독으로 스페인을 상대할 수 있다면 어찌 4국 동맹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해도 전비를 아끼려면 동맹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그 후로도 한동안 각료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그때, 상무부장이 화제를 전환했다.

“북아메리카 서부에서는 연어가, 북아메리카 동부에서는 연어와 대구가 아주 큰 몫을 할 겁니다. 북아메리카 수산업은 네덜란드가 오랜 동안 큰 재미를 본 청어산업보다 그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상도 상무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무부장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첫 시작은 수산업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네덜란드의 물자와 기술지원을 바탕으로 북아메리카 동부의 산업을 먼저 일으켜야 합니다. 영국,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대륙이 척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인디언들까지 그들에게 이를 갈고 있으니 말 다했습니다. 그래서 모피와 담배 등 자신들의 이권을 보장해준다는 말에 북아메리카 땅을 잠시 한국에 맡겨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언제든 힘을 모아 한국에게서 도로 빼앗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이권을 보장해준다고 언급한 것은 그들의 음흉한 속내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보다 손쉽게 넘길 수 있도록 우리가 일부러 유도한 겁니다. 이렇게 강대국들과의 외교란 맹수들의 아귀다툼과 다름이 없습니다.”

수상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다시 말했다.

“지금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동맹국들이 유럽의 거대한 전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기회에 북아메리카 동부에 한국의 산업기반을 확고하게 다져야 합니다. 그 시작이 상무부장께서 말씀하신 연어와 대구, 또 담배와 모피산업입니다. 연어와 대구는 먹거리로 우리들을 배불리 먹여줄 것이고 북아메리카 인디언과의 교역을 열어줄 겁니다. 담배와 모피는 유럽에 팔아서 북아메리카 개발자금을 얻어줄 겁니다. 그걸 바탕으로 북아메리카 산업의 초석을 닦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네덜란드의 물자와 기술지원으로 네덜란드를 능가하는 산업을 일으켜야만 합니다. 그래야 북아메리카 이주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향후 20년간 북아메리카 동부에 우리 한국과 조선의 국민 최소 100만 이상을 이주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유럽이주민들까지 먹이고 입히며 일자리까지 마련해줘야 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남아 있습니다.”

외교부장이 여기에 말을 보탰다.

“저는 처음에 영국이 넘겨준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정중앙에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뉴네덜란드와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여간 이제 북아메리카 식민지 영토가 하나로 통합되었으니 당분간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다행입니다. 현재 북아메리카 동부에서는 대구와 연어잡이로 짭짤한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과 교역에 물꼬가 트였습니다. 우리는 대구와 연어를 가지고 인디언들의 식량, 모피로 교환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인디언들을 설득해서 담배농장을 다시 열기 위해 협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구, 연어, 옷감, 농기구 등을 제공하고 그들은 땅과 인력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거기에 담배는 전량수매해서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해주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북아메리카 산업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장도 외교부장 발언에 한마디 더했다.

“국방부도 예전에 북아메리카에 군수산업 인력들을 선발대로 보냈습니다. 머지않아 공장이 완공되면 유럽에 팔아먹을 무기들을 대량생산할 예정입니다. 전쟁 중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큰 이득이 생기는 것은 군수산업일 겁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 군수산업의 기반을 빨리 다지기 위해서 박리다매로 판매할 예정입니다.”

상무부장도 국방부장의 말에 동의했다.

“상무부도 국방부와 같은 생각입니다. 유럽이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해도 커피, 홍차, 도자기, 향신료, 의복 등이 필요합니다. 꼭 필요한데도 비싸기 때문에 못 사는 것들이 많지요. 우리는 최소한의 이익을 붙여서 많이 파는 것이 목표입니다. 먼저 박리대매로 유럽 시장을 장악해서 우리 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솔직히 스페인이 망해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마땅한 산업기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은이 아무리 들어오면 뭐합니까? 죄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로 빠져나가는데?”

짝짝짝!

상무부장이 마지막에 스페인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수상을 비롯한 각료들은 박수를 치며 크게 웃었다.

같은 시각, 호주 서울 왕궁 집무실.

나는 해군사령관이 제출한 남아메리카 정책보고서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그는 누르하치의 아들이자 원래 역사에서는 실질적으로 산해관을 넘어 명을 접수한 다음, 청을 일으켜 세운 위인이었다. 그만큼 능력이 탁월(?)한 자였다. 하지만 정묘호란에서 홍타이지가 죽은 이후, 다이샨이 후금의 새로운 한이 되었다. 그 결과 다이샨의 심복지환이 될 수 있는 반대파는 모조리 호주로 끌려왔다. 

이것은 나와 다이샨이 정주성에서 맺은 밀약의 결과물이다. 

도르곤과 잉굴다이는 안해(安海) 해전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웠다. 나는 그 대가로 후한 상을 내리려고 했는데 도르곤이 먼저 사양했다. 그리고 울면서 고향에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 도르곤 정도의 머리라면 본인이 후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를 간보면서 더 큰 이득을 얻어내려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거기에 화석공주 송도고와 은밀히 만난 적이 있다는 것도 정보부의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 

다이샨과의 밀약은 조선과 후금의 향후 질서를 규정한 주춧돌이었다. 

당연히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그 밀약에는 후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화석공주 송도고와 혼인을 하되 후금의 후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송도고의 후손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후금의 왕족들이 다시는 만주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도...

나는 당장 도르곤을 끌어내 목을 치려다 간신히 참았었다.

그런데...

수상, 외교부장, 국방부장, 해군사령관이 은밀히 모여 작성한 남아메리카 정책보고서를 받고 보니 기존 생각이 달라졌다. 

'남아메리카 독립전쟁이라... 스페인이 골치 좀 아프겠는 걸?'

북아메리카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남아메리카는 분열을 염두에 둔 독립전쟁 지원이라니... 이거 한국식 제국주의나 '혐성'으로 오래도록 까이는 거 아닐까... 수상과 내각이 제국주의(작가의 말 참고)에 눈을 뜬 것인지 의심되는 대목이었다.

나는 잠시 고심했지만 도르곤을 불러 들이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도르곤의 숙소.

도르곤의 제안을, 잉굴다이는 즉시 거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아메리카까지 가는 것은 꺼려집니다. 그냥 여기서 편히 지냅시다! 이제야 호주생활에 적응했는데... 또 배를 타고 그 먼 곳에 가서 싸움이나 하라니? 저는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도르곤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손끝으로 작은 화분을 톡톡 건드리다 천천히 말했다.

“돌려 말하지 않겠다. 너에겐 선택할 권리가 없어.”

잉굴다이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다시 힘주어 말했다.

“이인자고 뭐고 저한테는 다른 세상의 일입니다.”

도르곤은 잉굴다이의 단호한 태도에 실소했다. 

“훗, 나 또한 이인자였었다. 아버지 한(누르하치)의 아들이고 직계후계자였지만 홍타이지에게 빼앗겼다. 오랜 율법을 따지면 아버지 다음은 내게 왔어야 할 자리였어. 하지만 홍타이지가 어머니를 순장시켜버리고 힘으로 억눌렀다. 만일 내가 이어받았다면, 난 후금의 한으로서 벌써 명을 무너뜨리고 아버지 한의 숙원을 풀어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리를 빼앗긴 이인자였기 때문에 숨을 죽이며 살았다. 난 이인자에 만족하지 못했었고, 지금도 그래. 그래서 이인자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이처럼 노력하는 것이다. 뭔가 앞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인자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진 것이다. 너도 새로운 나라의 귀족으로, 이인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 않느냐? 내 다음가는 좋은 것들은 모두 네 것이다. 나를 따라라. 좋은 말로 할 때.”

하지만 잉굴다이는 지지 않고 말했다.

“흥! 죽는 날까지 이인자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도르곤은 잉굴다이의 도발에 미친 듯이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크하핫! 잉굴다이 네가 나를 도모하려는 것이냐? 그것도 좋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야. 하지만 한의 자리, 지존의 자리는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알고 있다면 충분하다. 너에게 도모될 정도라면 그대로 꺾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그릇이 너를 담을 수 없는데 어찌 깨지지 않겠느냐?”

잉굴다이는 잠시 고심하다 말했다.

“아예 한국 국왕을 도모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은밀히 형제들을 모아 왕을 사로잡으면...”

“어림없는 소리! 아무리 그래도 그에겐 안 된다.”

“어떻게 그것을 단정할 수 있습니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쯧쯧, 네놈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느냐? 내가 물밑의 이무기라면 그는 천상을 노니는 용이야! 그는 욕심의 크기 자체가 달라. 그래, 여기에 가만히 있다면 편하겠지.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에서 그를 흡족하게 해주고 나면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거다. 우린 그걸 노려야 해!”

도르곤은 잉굴다이를 다그치면서도 자신의 진정한 속마음을 말하진 않았다. 그저 남아메리카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잉굴다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우리가 지원받는 것은 얼마고 어디까지요?”

“후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혹시 불쏘시개로 써먹히다가 버림받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여기에 대해 확실하게 약조를 받아야 합니다.”

“걱정할 것 없다! 일차 목표는 ‘포토시’라는 도시에 있는 거대한 은 광산이다. 그 주위엔 남아메리카의 여러 부족들이 있다. 그들을 들쑤셔서 스페인에 항거하도록 획책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만 거기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야. 한국 정보요원이 우리를 도울 거야. 또 군수물자 등 다양한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포토시 은광을 장악하면 된다.”

“스페인 군대는 한국처럼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그건 어쩌실 겁니까?”

“당장 다음 주부터 해군사관학교에서 기본군사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거기에 추가적인 전술훈련까지 계획했다고 하더라. 포토시를 수비하는 스페인 사람들과 그들의 병력은 모두 함쳐 5천 남짓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물며 주변 인디언 부족들과 합세하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도르곤은 이무기의 눈을 번뜩이며 씨익 웃었다. 

이제 남아메리카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시작은 도르곤이었다.

유럽과 아메리카 무역의 교두보 : 희망봉과 뉴욕

1629년 1월 어느 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한국인 ‘얀 얀스 벨테브레’는 네덜란드로 귀향하는 여정 중이었다. 

오랜 사략선 생활로 미래에 대한 불안, 또 안해해전에서 막연히 한국에 대한 동경을 느끼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퇴사한 얀은 안해(安海) 해전이 끝난 즉시, 한국 정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네덜란드 포르모사 요새의 총독은 물론이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략선장까지 얀을 만류했다. 얀은 사략선의 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무기와 선원관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왔다. 

사실 어디서나 얀처럼 유능한 인재는 대접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사략선 사관의 수입이란 약탈한 금은보화의 양에 좌우되었다. 얀은 네덜란드 사략선 ‘아우레르케르크 호’를 탑승한 3년 동안, 일확천금을 꿈꿨다. 그 일확천금을 통해 큰 부자가 되고, 엥겔과 결혼하는 달콤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얀의 나이는 벌써 34살! 이제는 안정을 찾고자 할 만한 시기였다.

얀은 한국 국왕과의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

- 자네가 네덜란드인 얀인가?

- 네 폐하! 제 이름은 얀 얀스 벨테브레로 네덜란드 알크마르의 마을인 더레이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직전까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이자 ‘아우레르케르크 호’의 사관으로 근무했습니다.

- 흠... 혹시 ‘아우레르케르크 호’가 주로 활동하던 곳이 어디였는가?

- 저희는 주로 포르모사 요새를 근거지로 명나라 남쪽 안해에서 유구국 사이 바다를 활동무대로 삼았습니다. 안해의 명나라 해적들을 소탕하는 임무에 주력했습니다.

- 자네가 잘하는 일이 무기관리라고 들었는데... 맞나?

- 네 폐하! 총기와 대포 등 화기는 물론이고 각종 물자의 관리업무를 담당했습니다.

- 오! 그럼 그대가 박연... 아니 얀이군. 그런데 한국에 귀화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

- 처음엔 한국 해군의 무기가 신기해서 이를 알아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무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개인적 욕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한국의 생활상이 제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 하는 것을 마음껏, 열심히 연구하면서 충분한 돈을 벌고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자 이민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음... 좋네! 자자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귀를 열고 들어야 합니다. ‘얀 얀스 벨테브레’는 이제부터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얀! 그대에게 해줄 말이 있네. 먼저 훌륭한 한국인이 되시게! 그것이야말로 현재 그대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라네. 하지만 한국과 네덜란드 두 국민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얀 그대가 네덜란드 출신임을 기억하시게나. 그것이 얀이라는 자네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두 나라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며 향후 평화를 보존하는 방법임을 명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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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은 기술자 이민으로 한국으로 정식 귀화한 다음, 국방부 소속의 군수산업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첫 부임지로 출발했다. 거기에 개인적인 신변정리를 위한 휴가를 받았다. 얀은 이 반가운 소식을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엥겔에게 편지를 써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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