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25)

스페인 함대가 모두 잠에 들어 깨어나지도 않은 새벽에 피트 헤인이 이끄는 네덜란드 사략함대가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퇴각하는 체하면서 방향을 바꿔 새벽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던 스페인 함대를 은밀히 기습하고자 했다. 

그 선두엔 수십 척의 작은 배들이 소리를 죽여 항구를 향해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십여 척의 전함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작은 배들이 항구에 진입한 순간 피트 헤인의 기함에서 거대한 흰 깃발이 올랐다. 그와 함께 귀를 찢는 듯 격렬한 포성이, 조용한 마탄사스 항구에 3번 연속 울려 퍼졌다.

쾅쾅쾅!

와아아!

철썩철썩.

쏴아아.

작은 배에 탑승한 네덜란드 선원들은 전력을 다해 노를 저었다. 그들의 눈에는 포성에 놀라 당황한 스페인 병사들이 보였다. 이윽고 스페인 함대 갑판과 요새의 성벽 위엔 스페인 병사들이 자리해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선발대인 작은 배가 훨씬 빨랐다. 거기에 네덜란드 사략함대도 마탄사스 항구에 진입했다. 

잠시 후.

화르륵.

스페인 전함들은 작은 배에서 던져진 화염병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전함은 나무로 만들어 졌지만 화재를 방지하는 여러 대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실제로 웬만한 불은 금방 진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이 붙은 유리병이 깨지면서 흩어진 액체연료는 그렇지 않았다. 화염병이 깨지면서 전함의 갑판에 뿌려진 진득한 액체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물을 뿌리면 오히려 불이 더 크게 옮겨 붙었다. 

작은 배에 탑승했던 네덜란드 선원들은 화염병을 모조리 던진 다음에, 작은 배에 실린 인화물질에 불을 지르고 즉시 바다에 뛰어 내렸다. 스페인 전함에 가까이 붙어있던 작은 배에서는 곧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쾅.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전함에서는 신형 포도탄이 연신 발사됐다. 신형 포도탄 공격은 마탄사스 요새의 대포들에 집중됐다. 신형 포도탄의 산탄공격은 요새 성벽에 위치한 포병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이제 스페인에겐 더 이상 네덜란드 사략함대를 저지할 수단이 없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그리고 스페인 수송선단의 약탈이 모두 끝날 때까지 마탄사스 항구는 피트 헤인의 세상이었다.

마탄사스 만 해전은 네덜란드의 완전한 승리였다.

1628년 8월 초, 네덜란드 총독 집무실.

신교도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은 고심했다.

마탄사스 만 해전으로 호주머니에 들어온 은이 1150만 굴덴에 달했다. 거기에 스페인 전함과 수송선, 기타 다양한 노획물들의 가치도 수백 만 굴덴 이상이었다. 단 한 번의 해전으로 1500만 굴덴에 상당하는 막대한 소득을 올린 것이다.

사략선주들과 선원들에게 정말 풍족하게 배당을 해주고도 800만 굴덴이 남았다. 이 돈이면 네덜란드의 1년 전비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이제야 스헤르토헨보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동안 심각한 재정압박으로 엄두내지 못했던 스헤르토헨보스 공략이었다. 

스헤르토헨보스 공략에 이어 가문의 근거지인 브레다를 탈환하면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의 심장부를 겨눌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합스부르크 동맹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닐 필요가 없었다. 매번 부족한 전비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며 후퇴했던, 치욕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쾅!

프레데릭 헨드릭은 저도 모르게 책상을 내리치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에 지불해야 할 550만 굴덴의 부채가 문제였다.

이번에 1500만 굴덴이 굴러들어오기 전에는 언제든 상환할 수 있다고 런던공사에게 큰소리쳤다. 그런데 일단 들어오고 나니 아까웠다. 그래서 고민했다. 한국은 다양한 군수물자, 신형 포도탄과 화염병 제공은 물론이고 함대를 파견해서 마탄사스 만 해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에 대해 수고비를 두둑하게 얹어주지는 못할망정 기존 부채를 갚는 것조차 아깝다니? 

세상사의 이치가 그런 것인가!

그때였다.

“총독각하! 한국 런던공사에게서 긴급전문이 도착했습니다.”

프레데릭 헨드릭은 급히 런던공사의 긴급전문을 확인했다. 잠시 후,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수하에게 명령했다. 

“즉시 회의를 소집하고 재무관을 부르게!”

같은 시각, 한국 런던공사 집무실.

런던공사 신준묵은 얼마 전 네덜란드 프레데릭 헨드릭에게 보낸 긴급전문 내용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긴급전문의 내용은 자잘한 것들을 제외하면 단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

- [1] 뉴네덜란드와 뉴암스테르담을 포함한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한국에 넘길 것.

- [2] 누벨프랑스의 소유권을 한국에 넘기도록 프랑스와의 협상을 주선할 것.

- [3] 네덜란드는 북아메리카 한국 식민지에 각종 물자와 기술이전을 지원할 것.

한국은 네덜란드의 약속이행에 대한 대가로 부채 200만 굴덴의 상환을 면제해주기로 한다. 누벨프랑스의 소유권이 프랑스로부터 한국에 이전되면 추가로 150만 굴덴의 상환을 면제한다. 

또한 뉴네덜란드, 뉴암스테르담 및 누벨프랑스의 기존 거주민과 상업의 권리는 한국의 법률에 따라 보장한다. 다만 그 권리에 대한 법적 보장은 한국법률에 의하며, 그에 따른 세금은 한국정부에 납부한다.

****

네덜란드가 긴급전문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들의 동맹인 프랑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면... 북아메리카 동부해안은 영국이 소유한 버지니아, 스페인이 지배하는 남쪽 플로리다 반도를 제외한 전역이 한국에 넘어오게 되는 것이었다.

런던공사 신준묵은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과 유럽 여러 나라와의 총성없는 전쟁은 그의 책상 위에서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對)스페인 4국 동맹의 출발점 : 암스테르담 조약

1628년 8월 어느 날, 스페인 궁정.

쾅!

스페인 국왕 펠리페4세는 그의 총신 올리바레스 공작 가스파르 데 구즈만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다시 말해보게! 이번에 네덜란드 반역자 놈들 때문에 생긴 피해가 얼마인가?”

올리바레스 공작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탄사스 항에서 약탈당한 수송선이 16척이고 은 1154만 굴덴 상당입니다. 은, 수송선과 전함 등 기타 피해까지 합하면 1800만 굴덴 정도로 추산됩니다.”

“에잇!”

우당탕!

펠리페4세는 화를 참지 못해 작은 탁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뭔가 큰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럼에도 격분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펠리페4세의 눈치를 보던 올리바레스 공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아쉽지만 최근 반역도들이 차지한 흐룬노 공세를 일시적으로 미루심이 어떨까 합니다. 요충지인 스헤르토헨보스는 주변이 습지로 둘러져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반역도들의 목표인 브레다는 스헤르토헨보스가 굳건히 막아서고 있습니다. 잠시 수비에 전념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펠리페4세는 올리바레스 공작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의 말에 크게 화가 났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솔직히 스페인 입장에서는 네덜란드를 포위하고 가만히 지키고만 있어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말라죽이면 되는 것을... 성격 급한 펠리페4세가 진득하게 기다리질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흐룬노를 재탈환하고 전면적인 압박을 위해 공격하도록 명령했었다.

네덜란드는 이미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럽내륙 봉쇄정책으로 유럽대륙에서 고립된 상태였다. 그래서 간신히 해상을 통해 작게 교역을 하고 있었다. 조만간 네덜란드가, 결국 돈이 말라죽을 운명이라는 것은 그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펠리페4세는 마탄사스 만 해전으로 반역도들의 기세가 다시 살아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리바레스 공작의 말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답답했다.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인, 그 스페인의 왕인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영지인, 네덜란드의 반역도를 지난 수십 년간 처단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크게 분노한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펠리페2세부터 이어진 스페인 왕가의 숙원이었는데... 

정말 다된 밥에 코가 빠진 격이었다.

그때 올리바레스 공작이 솔깃한 말을 했다.

“그동안 반역도를 소탕한 후에 손을 봐줄 것이라 손을 놨던 것들을 진행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반역도들의 수괴인 프레데릭 헨드릭은 겉보기엔 그 권력이 공고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산 중 대부분이 홀란트 주(네덜란드 공화국 7개 주 중에 가장 부유한 주)에서 나옵니다. 우선 홀란트 주 의회를 회유해서 반역도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밀라노 공국으로부터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길(일명 ‘스페인 로드:Spanish Road’의 상세한 내용은 작가의 말 설명 참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같은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동맹을 추진해야 합니다. 현재 프랑스가 네덜란드와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명시적으로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닙니다. 이 둘만으로 반역도를 처단할 수는 없겠지만 잠시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펠리페4세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올리바레스 공작에게 되물었다.

“프랑스와는 재작년에 몬손 조약(아래 배경설명 확인)을 체결했는데도 아직 부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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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손 조약 : 1626년 3월 프랑스와 스페인이 북이탈리아 사보이아 공국의 분쟁 이전으로 국경을 되돌리기로 합의한 것. 몬손 조약의 배경은 다음과 같음. 프랑스는 이탈리아 내의 스페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1623년 사보이아 공국 및 베네치아 공화국과 파리조약을 체결함. 그리고 1625년 사보이아 공국이 스페인의 동맹인 제노바 공화국을 공격하는 것을 지원하고 스페인군의 지원을 방해하기 위해서 북이탈리아 최북단에 위치한 발테리나 계곡을 점령. 여기에 스페인 측은 ‘스페인 로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제노바를 구원하는 군대를 파견했는데 마침 프랑스 라 로셀에서 제2차 위그노 반란이 일어났음. 결국 리슐리외 추기경은 프랑스군을 철수시키기로 했고, 스페인과 몬손 조약을 체결함.] 

**

“프랑스 왕(루이13세)은 물론이고 총신 리슐리외 추기경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우리 세력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몬손 조약은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일 뿐입니다. 우선 네덜란드가 정리된 다음에 프랑스를 손보면 됩니다.”

펠리페4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후우,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군. 우리 스페인이 이런 지경까지 몰리다니... 영국과 프랑스가 오래전부터 반역도들을 돕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국은 아예 대놓고, 프랑스는 은밀하게 말이지. 당장 쳐부수고 싶지만 일단 참겠다. 보고한 대로 시행하라!”

“네 알겠습니다.”

얼마 후, 프랑스 궁정.

“하하하!”

리슐리외 추기경은 스페인의 동맹 제안에 어이가 없어 웃었다. 

스페인의 제안은 단순히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저급한 수작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왕 루이13세는 물론이고 그 자신까지 저능아의 수준으로 보며 간을 보는 것이었다. 

프랑스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랜 앙숙 관계였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관계였다.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북부, 독일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다시 말해, 합스부르크 왕가인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의 패권추구에 가장 큰 걸림돌이자 미래의 주적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 공국과 몬페라토 후국을 동시에 지배하던 곤차가 가문의 혈통이 단절되면서, 그 사위였던 프랑스 귀족 샤를 드 느베르가 그 상속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인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트 2세는 샤를 드 느베르의 상속 승인을 거절했다. 이는 프랑스의 세력이 북이탈리아에서 확대되는 것을 견제하려는 페르디난트 2세의 의도임이 분명했다. 또한 페르디난트 2세는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함께 만토바-몬페라토 공국을 동서로 분할점령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이는 프랑스의 역린을 건드렸다.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인 사보이아 공작이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1623년 파리조약의 인장이 마르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유럽 정치의 냉혹한 현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만토바 계승전쟁이었다.

[작가 주 : 만토바 계승전쟁 1628년 – 1631년.]

리슐리외는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였는데, 프랑스 귀족에게 정당한 상속권이 주어진,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오래 전 발루아 왕가 시절부터 북이탈리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프랑스였다. 그러니 프랑스 귀족이 정당하게 북이탈리아 주요 영지의 상속권을 얻었다는 대의명분을 크게 환영했다. 

다만, 프랑스 내부에서 위그노 전쟁이 한창이라 프랑스의 만토바 계승전쟁 개입이 늦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위그노 반란을 종식시키려면 위그노의 본거지인 라 로셀 요새를 함락시켜야 했다. 리슐리외는 라 로셀 요새가 곧 함락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군이 만토바 계승전쟁에 개입할 시점만을 저울질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감히 스페인이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해 동맹을 맺자는 소리를 했다. 즉, 프랑스의 간을 본 것이다.

“그래, 이렇게 속보이는 짓을 하는 걸 보니 우습군. 아주 우스워. 잠깐! 네덜란드가 제안한 것이 있었는데... 맞아. 그렇군. 스페인에 선전포고하기에는 시기상조니까 다른 녀석들을 이용해야겠어. 네덜란드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이 거기에 적임자야. 퀘벡이야 워낙 춥고 모피 외에는 별 볼일 없으니 잠깐 동안 싸게 넘겨주는 것도 좋겠지. 한국이 공들여 잘 관리해서 키우게하고 나중에 다시 삼키면 되니까 말이야. 크하핫!”

리슐리외 추기경은 호탕하게 웃으며 얼마 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네덜란드 총독의 제안서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퀘벡은 북아메리카에 만들어둔 프랑스 식민지의 교두보였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한국이 프랑스 모피사업의 이익을 유지, 보호한다는 것이 또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프랑스의 이익보호를 주장하면서 퀘벡을 빼앗으면 되니까 말이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보기엔 네덜란드가 넘겨주려는 뉴네덜란드도 같은 의도인 것 같았다.

약육강식, 힘이 센 자가 빼앗고 힘이 부족하면 빼앗기는 것!

그것은 인간사는 물론이고 유구한 세계사의 진리가 아닌가?

리슐리외 추기경은 네덜란드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북아메리카 퀘벡과 아카디아는 한국의 정식영토가 되었다.

1628년 9월 어느 날, 네덜란드 총독 관저.

네덜란드 공화국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대표를 불러 뉴네덜란드와 뉴암스테르담을 한국에 할양하기로 했다는 총독부의 최종 결정문을 전달했다. 처음 총독부의 이 같은 결정 소식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한국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북아메리카 모피사업 등에 대한 각종 권리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한발 물러섰다. 또한 한국이 북아메리카에서 필요한 다양한 물자들을 네덜란드에서 조달한다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이로써 북아메리카의 뉴네덜란드와 뉴암스테르담에 사업기반이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달리 반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실 뉴네덜란드 지역은 모피사업 외에는 별다른 이권이 없었다. 또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북아메리카로의 이주에 별다른 매력을 느낄만한 곳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넓은 지역에서 불과 수백 명이 모피사업만을 힘겹게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뉴네덜란드를 차지하면서 그들의 사업권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물자를 조달한다니! 거기에 한국이 뉴네덜란드의 주인으로 인디언이나 다른 유럽국가로부터 군사적 보호까지 담당하는 것이니 이것은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삼조에 가까웠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한국과 네덜란드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영토협정은 급물살을 탔다. 또한 프랑스 리슐리외 추기경도 퀘벡과 아카디아를 한국에 할양하는 것을 찬성했다. 물론 거기엔 조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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