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장! 제가 지난번에 카누를 타고 남쪽에 들렀던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들소가죽을 구하려고 쑤우족과 동맹관계인 우파키족 마을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우파키족 마을엔 백인들이 사용하는 ‘총’이란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과 장구들도 함께 있었구요. 사실 쑤우족과 우파키족은 형제나 다를 바가 없고 그 숫자가 수천이 넘지 않습니까? 그런 쑤우족과 우파키족이 스페인 백인들에게서 별다른 큰 피해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특히 우파키족의 땅은 스페인 백인들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입니다. 쑤우족은 몰라도 우파키족은 스페인 백인과 뭔가 연결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말없는 새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센 바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이런 겁쟁이들을 봤나? 조선인들도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될 겁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라구요... 백인들이 처음 왔을 때를 생각해 보시라구요! 나이를 드셨으면 좀 현명해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젠장...”
거센 바람의 말이 끝나자 몇몇 젊은 전사들의 동요가 있었다. 그러나 호르킨족 추장 영리한 늑대가 손을 들자 이내 조용해졌다. 영리한 늑대는 곧 말했다.
“나는 이미 결정했다. 조선인은 백인이 아니다. 조선인들이 과연 백인과 마찬가지로 나쁜 족속들인지는 좀 더 기다려보겠다.”
영리한 늑대는 말을 멈추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버지,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들었던 오래된 말이 있다. 그걸로 회의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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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에서 걷지 마라.
난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마라.
난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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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늑대는 말을 마치고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로 부족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호르킨족의 힘이 하나가 되길 기원했다. 그래서 호르킨족 모두가 함께 걸어야 한다는 옛 격언을 이 자리에서 읊었다.
거센 바람과 다른 젊은 전사들은 추장 영리한 늑대의 단호한 말에 곧 잠잠해졌다. 하지만 거센 바람의 눈빛만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호르킨족 추장 영리한 늑대는 쑤우족 추장 성난 들소의 요청을 정식으로 거절했다.
잠시 후, 쑤우족 추장 성난 들소는 호르킨족이 거주하는 울창한 삼나무 숲을 잠시 둘러보다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호르킨족의 땅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뒤, 호르킨족 거센 바람을 비롯한 몇몇 젊은 전사들이 그 숲을 말없이 벗어났다. 거센 바람은 남쪽으로 향했다.
1628년 4월 어느 날, 북아메리카 서부 총독부.
총독 정충신은 김자점을 불러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부총독 최명길과 김육이 함께 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총독부 회의는 오후 늦도록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식사까지 회의실로 들여 간단히 먹으며 회의를 계속했다.
이번 총독부 회의는 사실상 김자점이 주도하고 있었다.
탁!
정충신은 오도리 기병들이 올린 보고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다시 말을 꺼냈다.
“이 모든 보고서들을 정리하면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접경지에 거주하는 쑤우족이 주변 인디언 부족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오?”
김자점은 정충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황이 그렇습니다. 서부 총독부에서 남동쪽 산맥의 협곡을 따라 3천리 길을 내려가면 거대한 소금호수가 있습니다.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과의 정계(定界)협정에 따라 우리 영토가 된 곳입니다. 그 소금호수 근처에는 여러 개의 강이 흐르는 산맥과 낮은 평원지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쑤우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남쪽에는 우파키족이라고 쑤우족과 동맹격인 인디언 부족이 있고 두 부족은 각각 수천이 넘는 대부족입니다.”
목이 마른 듯, 찻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킨 김자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우파키족이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에 형식상 복속(服屬)되었다는 겁니다. 우파키족의 동남쪽에는 투손(Tucson)이라는 전진기지가 있습니다. 물론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이 보낸 스페인 군대가 배치되어 있고, 인디언과의 교역이 수시로 이루어집니다. 인디언들이 들소가죽과 고기를 넘기고 스페인은 옥수수와 감자를 줍니다. 거기에 총과 말도 함께 말입니다. 우파키족은 스페인의 지원 덕분에 부족의 세력을 엄청나게 키웠다고 합니다. 그동안 도끼와 화살로 힘겹게 들소를 잡았는데, 이젠 총으로 쉽게 잡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습니까?”
최명길은 김자점의 말에 탄식하며 물었다.
“흠... 그럼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이 우파키족과 쑤우족을 전면에 세우고 우릴 교란하고 있다는 겁니까?”
김자점은 씨익 웃으며 최명길에게 다시 말했다.
“물론입니다.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과 우파키족들의 은밀한 관계는 이번에 사로잡은 투손(Tucson) 병사를 취조해서 나온 겁니다. 크흠... 그 스페인 병사는 투손에서 복무하던 자인데 정찰 중에 길을 잃어서 오도리에게 잡혔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의 이런 협잡질은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이자 기미정책(羈縻政策)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의 관리가 아주 엉성한 것을 보면 그리 대단하진 않습니다. 과거 명나라에서 여진족의 입조, 관직과 칙서의 하사 등을 통해 일단 멍에를 씌우고, 칙서에 따라 제한된 교역을 통해 이득을 주어 달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은 아주 어설픕니다. 우선 스페인은 명나라에 비해 입조나 칙서처럼 뭔가 멍에를 채우는 것이 아예 없습니다. 그들이 생각한다는 것이... 지금처럼 자그마한 경제적 이득을 주어 달래는 식으로 인디언을 관리하다보면... 인디언 세력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효율적인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지금 우파키족과 쑤우족이 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우파키족과 쑤우족이 세력을 떨쳐 일어서게 될 겁니다. 이는 만주에서 후금이 세워진 과정과 마찬가집니다. 다만 명나라는 알면서도 힘이 떨어져서 후금을 막지 못했고, 스페인은 잘 몰라서 막지 못하는 것이구요. 솔직히 인디언들에게 제2의 누르하치가 나타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만약 인디언들을 크게 결집시킬 누르하치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 될 겁니다.”
김자점은 말을 끝내며 부들부들 떠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김육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스페인 무리들은 일단 분열시키고 깨부수는 것을 능사로 아는 모양이군요. 그럼 총독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정충신은 회의 내내 별 다른 의견제시 없이 듣는 것에 주력했다. 가끔 질문도 했지만 말이다. 이제 최명길, 김육, 김자점 등 세 사람이 정충신에게 주목했다. 정충신은 잠시 고심하다 말을 꺼냈다.
“저는 총독이기 전에 무관(武官)입니다. 제 생각에 상중하(上中下) 세 가지 계책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정충신이 말을 마치고 잠시 머뭇거리자 세 사람 모두 눈을 빛내며 초초하게 기다렸다. 결국 참지 못한 최명길이 먼저 푸념을 늘어놓았다.
“총독각하께서 이리도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군요!”
정충신은 최명길의 푸념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먼저 하책(下策)부터 말씀드리면 그냥 제자리를 굳게 지키고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책은 쑤우족이나 우파키족에게 선동된 주변의 인디언들을 천천히 수습하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 완병지계(緩兵之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선 시간을 벌고 적을 몰아 단번에 들이치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가장 안전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조선인과 인디언의 극심한 분열을 피할 수 없어 장기적으로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책입니다.
둘째, 중책(中策)은 당장 군사를 몰아 쑤우족과 우파키족의 거점을 기습하는 겁니다. 중책은 보급에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장 빠르게 인디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거기에 쑤우족과 우파키족같은 심복지환(心腹之患)을 미리 제거하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장기적으로는 하책과 마찬가집니다. 주변 인디언들에게 혹시나 자신들을 병탄하려는 것이 아닌지 경계심을 줄 것이 뻔합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하책보다 유리합니다. 쑤우족과 우파키족을 빠르게 제거해서 그들이 누에바에스파냐 부왕과 합세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의 간섭과 견제를 철저히 분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상책(上策)은 쑤우족과 우파키족이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과 연계되었다는 것을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내고 난 후에 그들을 격파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
“...”
그날 총독부는 밤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그리고 정충신은 단 하나의 계책을 선택했다.
늑대와 함께 춤을 2
1628년 4월 어느 날, 북아메리카 서부 총독부.
북아메리카 서부 총독부의 하늘은 조선의 가을처럼 상쾌하고 푸르렀다. 총독부 정문을 나서면 거대한 태평양과 연결되는 작고 편안한 만(灣)이 있었다. 만에는 거대한 항만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또 그 접안시설과 부두에는 수십 척의 다양한 선박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그 접안시설 부근에는 북아메리카 서부 총독부의 직원숙소가 세워졌다. 요새의 구석진 방벽, 바로 안쪽이어서 무척 조용했다. 직원숙소의 어느 방에는 한 방에 두 사람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그 방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Please...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아니 Shut the mouth...”
열심히 책을 읽던 송시열은 송준길의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괴이(?)한 잠꼬대에 피식 웃고는 다시 책을 잡았다. 송시열과 송준길을 포함한 조선 유학자 일행은 국왕의 명령으로 북아메리카 서부 총독부에 도착한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송시열이 보고 있던 것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와 이해’란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은 송시열 일행이 총독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받은 책으로, 지난 석 달 동안 열심히 익혀왔다. 송시열은 다양한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의 언어를 대부분 익혔다. 그 후로 몇 번, 실제로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제대로 익혔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크흠... 나요.”
그는 한고립이었다.
“들어오시오.”
“그럼 실례하리다.”
끼익.
탁.
한고립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송시열과 송준길을 쓰윽 둘러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호주에서나 북아메리카에서나 여전히 부지런 하구려!”
“젊은 유자(儒子)가 책을 읽으며 수양하는 것은 평생 해야 할 일이오. 호위대장의 칭찬이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한고립은 손을 크게 내저으며 다시 말했다.
“흐흐흐, 난 이제 호위대장이 아니오. 좌천된 것이니...”
“...”
송시열은 잠시 송준길 쪽을 바라보다 한고립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한결같았다. 역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송시열의 침상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더니, 뭐가 즐거운 양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길 잠시, 그의 눈이 빙글거리는 방향은 송준길을 향했다. 마치 송준길에게 용무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송준길은 깊이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훗!
한고립이 작게 숨소리를 내자 송시열이 말했다.
“형님은 깊이 주무시니 용건이 있다면 내게 말 하시오!”
“흥! 당신 재주가 좋구려.”
송시열은 한고립이 던진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꾸를 하지 않으면 더 큰 화(?)가 미칠 것을 알기에,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고립은 송시열이 금시초문인 듯 시치미를 떼자 어이가 없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다 안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송시열은 예의를 아는 유자(儒子)로서 한고립의 저렴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극한의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결국 한고립이 손을 들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임시라곤 해도 장교로 임관했다더니... 달리 청탁이라도 하신 거요?”
“난 아닙니다.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맡았을 뿐입니다.”
한고립은 송시열의 단호한 부정에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손뼉을 딱 치며 다시 말했다.
“제길 관둡시다! 송 형이 아니라면 아닌 거지. 나도 피곤하군. 송 형만 엮이면 이렇게 일이 복잡해지니 말이오.”
송시열은 떫은 감 씹은 표정으로 잠시 한고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기분나쁘게 빙글거렸다. 송시열은 이내 눈을 감으며 침묵을 지켰다. 축객령이었다. 그렇게 억겁과도 같은 일순간이 지났다.
그때였다.
한고립이 갑자기 입을 연 것은...
“송 형 그만두시오. 사실 그 길은...”
하지만 한고립의 말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기에?
그리고 한참, 말이 없었다.
이윽고 송시열은 한숨을 삼키며 다시 눈을 떠 한고립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의 안색이 무척이나 어두워보였다. 평소와 달리 빙글거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송시열은 묘한 눈길로 한고립을 쓸어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한고립은 말없이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송시열 일행은 북아메리카 각지의 인디언 부족들을 위무(慰撫)하기 위해 각자 먼 길을 떠났다. 그들 중, 송시열과 송준길은 호르킨족을 맡았다.
같은 시각, 북아메리카 서부 총독부 집무실.
정충신은 지난 회의 당시, 자신이 한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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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바에스파냐의 이간계는 지금이 초기, 제1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쑤우족이 나서서 주변 인디언 부족들을 선동하는 것이지요. 대충 ‘자신들의 땅에서 조선인들을 몰아내자!’는 격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거기에 쑤우족이 주변 인디언 부족들과 합세한 다음, 조선인들을 습격해서 그들의 힘을 북돋워주고 서로 증오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조선인과 주변 인디언부족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그런데, 이간계의 진정한 묘미는 단순히 선동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쑤우족에 영리한 지도자가 있다면... 인디언 부족을 선동함과 동시에, 공동의 적인 조선인이 아니라 같은 편인 인디언 부족들을 은밀히 공격할 겁니다. 마치 조선인들이 인디언 부족들을 먼저 공격한 것으로 꾸미는 방식으로요. 그래야 인디언 부족들이 더욱 격분해서 세력을 결집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조선인과 인디언 부족들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셈입니다. 결국 조선과 인디언의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세력이 부족한 인디언 부족들이 조선에게 패배할 것이 분명하고, 살아남은 인디언 부족들은 그대로 도망가거나 강대한 쑤우족에 편입되고 말겁니다.
이건 정말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누에바에스파냐 부왕과 쑤우족이 서로 연계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간계를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낼 방법은 알면서도 행하기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것은 이대도강(李代桃畺)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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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윽.
정충신은 조심스럽게 붓을 들어 벼루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집무실 서탁 위에는 그가 쓴 것으로 보이는 아홉 개의 글자가 선명했다. 하지만 그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글자의 획이 몹시 거칠었다. 나름 서예를 한다는 사람들이 본다면, 글을 쓰기 전에 마음부터 다스리라 훈계할 것이다.
[爲國獻身 軍人本分也(위국헌신은 군인의 본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