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225)

신준묵은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반발했다.

“하하하. 그게 무슨 말이오? 이미 파산직전인 회사라 돈이 없어 증자를 받자고 하는 중인데... 그대들의 지분을 채권으로 전환해서 현금으로 지불해 달라는 것이오? 이게 무슨... 나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때 다른 주주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물론 당장 현금으로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귀국에서 북아메리카 개발에 성공한 이후에 지불하면 됩니다. 우리는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이미 파산직전이어서 회사 내의 자금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다. 그래서 런던공사 신준묵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자금을 수혈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주주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한 것이다. 당장 파산상태의 회사를 청산하면 그대로 돈 한푼 건지지 못할 주주들이었다. 만약 주주들의 주장대로 주식을 채권으로 전환한다면 그 채권은 회사가 갚아야할 부채였다. 

런던공사 신준묵은 가까스로 분노를 참으며 다시 말했다.

“그럼... 원하는 전환비율은 얼마요?”

그러자 주주 대표가 눈치를 살피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흠흠, 우리도 현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아메리카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곳입니다. 찰스국왕폐하께서 특허장을 새로이 허가해준 것을 감안하면 수백만 파운드의 잠재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주식액면가의 최소 10배로 전환해야 합니다.”

“크하핫! 이거 날강도가 따로 없군요. 이미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유상증자를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주주님들의 의견을 존중하기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아예 회사를 청산하고 새로 특허장을 받는 것이 빠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런던공사 신준묵은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때 주주 대표가 신준묵을 만류하며 다시 제안했다.

“크흠... 오해하지 말고 말을 끝까지 들으시오. 물론 30만 파운드가 적은 돈은 아니지. 대신 채권금액을 10년간 균등하게 분할해서 상환받는 것에 동의하겠습니다. 거기에 북아메리카의 개발에 필요한 물자공급과 생산품의 판매를 우리 런던상인들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우리도 런던 버지니아 회사에 투자한 지분을 완전히 처분하는 것에 만족하겠다는 겁니다. 사실상 이 회사는 선대 제임스국왕폐하께서 설립한 왕실회사고,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지분을 투자한 겁니다. 이제 찰스국왕폐하께서 지분을 넘기셨으니 우리도 손을 떼겠다는 겁니다.”

런던공사 신준묵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주식거래에 대한 세부사항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정식으로 협의를 진행합시다. 여기서 더 말이 달라지면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 아예 회사를 청산하고 새로 만드는 것이 훨씬 유리할거니까요.”

그들은 서로 웃으며 악수하고 ‘아메리카-버지니아 커피하우스’를 떠났다. 

잠시 후, 런던공사관 집무실.

런던공사 신준묵이 수하를 불러 물었다.

“요즘 ‘아메리카-버지니아 커피하우스’ 수익은 어떤가?”

“말도 마십시오. 이미 보셨겠지만 곳곳에서 대호황입니다. 커피만 팔리는 게 아니라 홍차(블랙티)와 녹차(그린티)도 불티나게 팔립니다. 작년과 달리 커피하우스 내에서 사교모임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에 따라 유용한 정보들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준묵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버지니아 이주민 귀환자들의 동태는?”

수하는 그 질문에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하루에 5실링을 준다고 하니까 눈에 불을 켜고 버지니아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커피와 식사까지 매일 무료로 제공합니다. 또한 이번 일이 잘 끝나면 50에이커를 추가로 무상제공하고 영국에서 데려갈 여자와의 혼인 및 이주비용까지 지급할 겁니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준묵 역시 웃으며 다시 말했다.

“버지니아에 죄다 총각들만 데려다 놨으니 여자가 아쉽겠지... 그래도 다음 주 정식 계약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절대 방심하지 말고 엄히 단속하라. 그리고 커피하우스의 지점은 앞으로도 계속 늘리게. 그래야 커피, 홍차 같은 상품도 더 많이 팔릴 것이 아닌가? 명나라 차 가격은 지금 바닥까지 떨어졌고 인도 아삼지방에선 인건비가 저렴한데다가 기후가 적합해서 더욱 많은 양이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다. 차가격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만큼 떨어졌어. 우리는 홍차시장을 더 크게 키워서 운송비용에 더해 찻잔세트를 비싸게 팔아먹어야 간신히 이득이 난다. 그래서 커피하우스를 곳곳에 늘리는 중이다. 영국인과 유럽인들에게 녹차에 이어 홍차 맛을 알게 해주면 결국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계속 홍차와 녹차를 권해. 또한 커피하우스를 맡아서 운영하는 유럽계 한국인들을 보다 잘 관리하고 아껴야 해. 그들이 부자가 되어야 우릴 따라 올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야.” 

그들의 은밀한 대화는 한참 더 이어졌다.

같은 시각, 찰스 1세의 집무실.

“오 이것이 요즘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팔리는 홍차(블랙티)군. 몇 번 마시긴 했지만 내 입맛에는 뭐 그저 그렇더군. 커피는 여자와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하니까 계속 금지하고, 홍차는 별거 없으니까 여자들도 마시도록 하게.”

찰스1세는 찻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며 담담히 말했다. 그가 손에 든 찻잔에는 남십자성을 상징하는 한국전통문양이 멋지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찻잔은 받침대와 하나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어 몹시 고급스러워 보였다.

“하하하! 폐하의 말씀대로 홍차는 여자들에게 제격입니다.”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즈는 크게 웃으며 화답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때, 조지 빌리어즈가 한 걸음 다가서며 은근히 말했다.

“한국은 최근 홍차를 들여와서 큰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녹차는 물론이고 홍차까지 왕실과 귀족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으니까요. 폐하께서 들고 계시는 비싼 찻잔세트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한국과의 차 교역규모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해서...”

찰스1세는 조지 빌리어즈가 말꼬리를 흐리자 더욱 궁금해졌다.

“해서?”

“크흠, 이익이 있는 곳에 어찌 세금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찰스1세는 의아한 듯 말했다

“한국도 이미 10%의 관세를 내고 있을 텐데?”

이에 조지 빌리어즈가 비릿하게 웃으며 답했다.

“런던조약의 조항에 따라 우리도 한국과 동등한 교역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최근 인도무굴제국의 아삼지방에서 녹차에 이어 홍차를 생산하고 발효시키는 것까지 성공했습니다. 홍차는 지금 유럽 전역에 급격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무굴제국은 저희가 선점한 곳이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

“음...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게.”

“한국이 독점하고 있는 홍차무역에 우리도 참가해야합니다.”

“음... 그런데 지금 홍차와 녹차 가격이 커피에 비해서 무척 저렴하지 않나?”

찰스1세는 의아했다. 현재 홍차가격은 한국에 의해 대량으로 들어와서 과거와 달리 엄청나게 저렴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커피하우스에서 팔리는 가격이 아주 싼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차 교역규모가 작아 큰 이득을 보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여왕께서 과거 동인도회사에 인도양과 동아시아에 대한 무역을 독점하도록 특허장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1613년에 합자회사로 변경했습니다. 여기엔 왕실의 전속적 권리가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런던 버지니아 회사를 넘겼으니 그들이 스스로 손을 들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북아메리카가 그리 쉬운 곳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인도는 다릅니다. 명나라와 달리 꼭 은으로 상품대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덜란드에 밀려서 포기한 향료와 교환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언제까지 그들에게 끌려다닐 순 없습니다.”

쾅!

찰스1세는 탁자를 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영국의 무역은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밀려서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었다. 북아메리카는 런던 버지니아 회사, 인도와 동아시아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큰 수익을 기대했었는데... 두 개의 버지니아 회사는 파산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에 넘겼고, 동인도회사는 인도무굴제국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인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이 유럽봉쇄정책을 지속하고 있는데다가, 중부와 남부 아메리카에 스페인을 제외한 상선의 기착을 금지하는 정책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에 영국의 무역은 네덜란드에 거의 종속된 상황이었다. 물론 아무리 봉쇄정책 아니 전쟁중이라도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상행위는 항상 존재했다. 거기에 커피나 홍차는 전쟁과 무관하게 무조건 거래가 가능한 상품이었다. 홍차의 시장규모가 영국에선 다소 작았지만 유럽 전체로 시장을 넓힌다면 커도 너무 큰 시장이었다. 

또한 독점까지 가능하다면...

만약 영국이 홍차를 비롯한 세계 차 무역에 한발을 걸친다면, 이를 통해 스페인의 무역규제와 네덜란드의 독점에 숨통이 트이게 되는 것이었다. 스페인은 해양제국으로 엄청난 식민지(상품공급처와 동시에 판매처)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네덜란드는 선박의 낮은 운임과 좋은 배, 모직물 등 다양한 산업기술과 무역 판매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은 스페인처럼 거대한 식민지도, 네덜란드처럼 다양한 산업과 무역망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그런데 홍차라니!

홍차 등 차 무역의 독점으로 스페인은 물론이고 네덜란드에 큰소리치며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 분명했다. 찰스1세는 그 흥분으로 온몸이 떨렸다. 

그리고 다음 날, 버킹엄 공작과 런던공사 신준묵의 무역협상이 시작되었다. 

런던조약이 성립된 이후 첫 번째였다.

노림수

1628년 3월 어느 날.

호주 서울, 왕립 식물원.

나는 수상을 비롯한 각료들과 함께 왕립 식물원을 방문했다. 작년 네덜란드 공화국 특사 얀이 선물로 가져온 커피나무의 묘목이 제대로 싹을 틔웠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왕립식물원장은 국왕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깜짝 놀랐는지 상하의 곳곳에 흙이 잔뜩 뭍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왕립식물원장은 급히 뛰어나와서 내게 예를 표했다.

“국왕폐하께서 식물원을 방문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커피나무 묘목이 성공적으로 싹을 틔웠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서, 방문한다고 미리 통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하던 일을 하도록 말씀하세요.”

나는 식물원 직원들을 바라보며 함박 웃었다. 그리고 왕립식물원장에게 치하의 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잠시 덕담을 하고 커피나무 묘목을 관리하는 온실로 향했다. 커피나무 묘목은 작은 화분 수백 개에 고루 심어져 있었다. 

역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식물원에서 알려준 재배방법이 옳았다!

커피나무는 처음 그 씨앗을 묘판에 옮겨 심고 30일에서 60일의 시간이 지난 후에 발아되었다. 다시 10주가 지나서 2개의 떡잎이 나오고 또 3개월 후 쯤에 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단계에서 묘판으로부터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 결과 거의 30센치에서 50센치 가량의 묘목 크기로 자란 것이었다.

당장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눈에 보이는 커피나무 묘목 숫자만 해도 화분 수백 개 분량이었다. 이 묘목들이 반년 가량만 더 자라면 화분갈이를 하고, 거기서 2년만 더 지나면 꽃을 피우고 커피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왕립식물원장과 직원들의 피와 땀이었다. 만약 네덜란드로부터 커피나무와 그 재배방법을 제공받지 못했다면, 에티오피아 인근에 정보원을 침투시켜 몰래 훔쳐올 계획도 세웠어야 할 판이었다. 

앞으로 계획대로만 커피나무가 증식된다면,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 커피나무를 전해주고 커피의 재배에서 원두의 생산, 그 다음 원두의 유통은 물론 최종소비지까지 운송 등 커피산업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리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커피나무들이 모두 금과 은으로 보였다. 그동안 홍차와 커피에 쏟아 부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 투입은 최소 십년 안에 수십 수백 배의 엄청난 이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과거 내가 지시해서 명나라 상단에게 뇌물을 주고 알아낸 홍차발효방법도 아직은 크게 이득을 보고 있진 못했다. 명나라 상인들은 차나무가 운남과 복건 등 그들의 땅에서만 자라는 줄 착각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홍차발효방법을 못이긴 체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알던 미래엔 인도의 아삼지방이야말로 홍차의 최대생산지가 아닌가? 그리고 아삼지방엔 명나라에 못지않은 아삼차나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도무굴제국의 위정자들에게 뇌물을 찔러주어 아삼지방의 천연 차나무 산지를 대량으로 확보했다.

현재 영국은 동인도회사가 인도무굴제국에 세운 정식 상관을 통해, 겨우 인도산 면직물과 향신료만을 수입하고 있었다. 그 면직물과 향신료를 영국과 유럽에 팔아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그에 반해 우리 한국은 아삼지방의 홍차와 향신료, 면직물 등을 사들여 세계 곳곳에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동남아시아 아체 술탄국 등을 중심으로 사탕수수와 기름야자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했고 이를 통해 설탕과 팜유를 만들어 수출했다.

대신 인도무굴제국과 아체 술탄국 등에는 한국의 명품 도자기세트, 시계 등 다양한 공산품들을 판매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위정자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제와 술탄의 위신을 추켜 세워주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선물을 상납하면... 자국의 엄청난 이권을 외국에 부여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결과, 한국은 명나라의 차에 대해서, 인도 아삼지방의 차라는 대체상품이 생겼다. 명나라 차 가격은 갈수록 떨어졌고, 그만큼 한국의 이익은 크게 늘어갔다. 

이제 가까운 미래에, 홍차와 커피는 생산은 부분적 완전경쟁, 운송은 불완전경쟁, 판매는 독점적 경쟁시장이 될 것이 확실했다. 이렇게 내가 만든 홍차와 커피의 세계 공급망은 앞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한국을 크게 살찌울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산업혁명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내 목표다. 그건 결국 증기기관이 완성되어야 한다.

북아메리카를 당장 차지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그건 유럽이 30년 전쟁에 정신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앞으로 유럽의 견제를 뿌리치고 북아메리카를 온전히 차지하려면 많은 인구를 이주시켜야 한다. 또한 그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은 물론이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선 엄청난 개발자금이 필요하다.

안해(安海) 해전의 승리로 얻은 막대한 전리품은 고갈 직전이었던 한국의 재정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중물에 불과했다. 이제 북아메리카 동부와 서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골드러시는 물론이고 무역이익 대부분을 북아메리카의 산업기반건설에 재투자해야한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수상에게 말했다.

“홍차, 커피, 도자기, 설탕, 팜유 등 세계 공급망을 건설하는 대역사가 몇 년 만 더 고생하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다.”

수상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명나라에 의존하던 상품들이 워낙 많아서 크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홍차에 이어 커피까지 우리가 전체 생산과 유통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홍차가격이 하락할수록 시장의 수요가 늘어갈 것은 뻔합니다. 저희는 박리다매를 하면 그만이고, 가격을 낮출수록 오히려 그 수익이 더 크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거기에 외교부장이 화답했다.

“맞습니다! 저도 그저 비싸게 팔아야 이익이 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을 낮추고 시장 자체를 키운다면 개별상품의 이익은 낮더라도 전체적인 이익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홍차만 해도 명나라에서 1상자를 은10냥에 사왔었는데, 이젠 은3냥도 비싸다고 사질 않습니다. 인도아삼지방의 차도 맛이나 향에 있어서 품질에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요. 거기에 생산지가 여럿이니 어느 한쪽이 독점을 하기 어렵습니다. 또 인도아삼지방은 저희가 생산부터 유통까지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수상이 말을 받았다.

“외교부장께서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가 언제까지나 차 무역을 독점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까지나 차 무역의 강자로는 남을 겁니다. 다른 나라들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수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국왕폐하께서 회의 중에 하신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인도아삼지방에서 생산되는 차 무역을 영국과 함께 공동으로 운영하실 수 있다니요? 영국은 차 무역을 관리할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외교부장도 거기에 한마디 보탰다.

“수상각하의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홍차를 생산하고 나면 그걸 수매한 다음, 상품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뿐입니까? 지상과 해상에서 유럽까지 운송해야하고, 최종 판매처를 찾아 적당한 가격에 판매까지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것이 대한무역주식회사입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단순히 면직물이나 향신료를 인도상인에게서 구매해서 싣고 가는 판매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차 무역, 공급망 전체를 관리할 능력이 없는 그들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자칫하면 영국의 실수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나는 수상과 외교부장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수상과 외교부장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영국엔 차 무역을 전체적으로 관리할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찰스국왕폐하와 영국동인도회사에게도 기회는 줘야겠지요. 내각회의에서 논의한대로 유럽지역에 대한 운송권과 판매권이라면 충분할 겁니다. 그 대가로 동인도회사 주식과 교환하면 됩니다. 차 무역의 부침(浮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니 적당한 시기에 동인도회사 주식을 팔아버리면 됩니다. 물론 그 적당한 시기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저는 찰스국왕폐하께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동안의 우의를 생각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수상은 의아한 듯 다시 말했다.

“과연 주식가격이 생각만큼 많이 오를지 의문입니다. 영국인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라면 주식가격의 극심한 변동에 대해 크게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그에 대한 것은 런던공사에게 일임했습니다. 정보란 것은 진실과 거짓 자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정보의 취득속도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정보는 비대칭적인 면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아주 이기적인 존재이고, 믿고 싶은 걸 믿는 존재지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손해는 없을 겁니다. 영국이 그 손해를 감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늦은 시각, 왕궁 집무실.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나는 편히 앉아 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북아메리카 서부해안에 제2차 골드러시를 공식적으로 허가한 것이 벌써 반년 전이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그동안 조선에서 북아메리카 서부해안으로 이주한 사람이 무려 2만 명에 달했다. 호주 서울, 조선 부산과 북아메리카 서부해안을 연결하는 정기연락선은 매번 북아메리카 이주민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내 지시로 북아메리카 서부해안에는 몇 년 전부터 한국의 해군탐사선이 제집 드나들듯 돌아다녔다. 처음에 해군탐사선은 북극해부터 멕시코 북부까지,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해안항로 위주로 탐사를 진행했다. 

한국 해군탐사대는 수많은 탐사활동 중에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재를 벌써 여러 차례 확인했었다. 그들의 탐사보고서에 의하면 북아메리카 서부해안에,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여 원주민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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